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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aloisio
지금으로 부터 꼭 200년 전 이곳 팔공산 자락 한티에 신앙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 지역에서 청송 노래산 등지로 피난을 내려와 교우촌을 이루며 신앙을 지켜가던 중 1815년 부활절 배교자의 밀고로 포졸들에게 습격당하여 체포되고 맙니다. 이 1815년 을해박해로 살아남은 교우들은 하늘 아래 첫동네인 구룡으로 숨어 들어가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체포된 교우들은 경주를 거쳐 대구감영으로 이송되게 됩니다. 그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이곳 팔공산 깊은 자락으로 숨어들어 몰래 교우촌을 이루게 되니 바로 '한티순교성지'인 것입니다.
한티마을 200년을 맞는 오늘 한티마을에 큰 잔치가 열립니다. 이제 후손인 우리가 이곳 한티마을 교우가 되어 병인박해때 이름조차도 남기지 않고 칼을 받아 순교하신 분들의 모범적인 신앙의 삶을 쫓아 갑니다. 아울러 깊은 팔공산 자락에 붉게 물들인 무명순교자의 피빛으로 인해 오늘 우린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00년 오랜 세월동안 한티마을을 면면히 유지되어 온 것은 관장신부님의 강론 말씀처럼 분명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이곳 한티마을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듯 합니다. 어쩌면 오래 전부터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날줄과 씨줄이 촘촘히 짜여진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자 그럼 우리 선조들이 한티 깊은 자락에 숨어들어와 담대히 신앙을 지켜왔던 흔적이 배여있는 한티의 순례자 길을 함께 떠나 볼까요.
이곳에서 살다가 그리고 이곳에서 칼을 받아 죽고 그래서 이곳에다 뭍힌 한티의 무명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빌어주소서! 아멘.
순례자의 합창/바그너
오토 신부님께서 오늘 큰 잔치 행사의 순서 및 안내 말씀을 하십니다.
각 팀별로 10명씩 조를 이루어서 십자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한티의 1번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순교자 묘역마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며 순례의 길을 이어 갑니다.
십자가의 길을 끝내고 인내의 길로 들어섭니다.
순교자 묘역 십자가에 이렇게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각 팀별로 보물을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총 10개의 보물이 37기 순교자 묘역 십자가에 걸려 있습니다. 그 10개 보물 중에 한 곳만 은반지 묵주가 숨겨져 있습니다. 과연 어느 팀에게 은반지의 행운이 돌아 갈까요?
인내의 길 37번, 36번 순교자 묘역이 앞뒤로 나란히 있습니다. "조아기"팀에서는 37번 묘역에 있는 보물을 선택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뻐하며 인증샷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과연 마지막 순교자 묘역이 37번에 우리들이 바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러나 보물은 37번이 아니라 뒤에 자리잡은 36번 묘역 십자가에 걸려 있습니다. 이곳 37기의 순교자 묘역 중에서 가장 초라한 봉분을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신부님께서 이곳에다 보물을 걸어 놓으신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은반지 묵주를 보물로 찾는 요행을 얻지 못했지만 그 보물 속에 담겨진 달콤한 사탕 한 알과 말씀사탕이 오히려 값진 선물임을 깨닫게 하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내의 길은 다소 경사가 가파릅니다. 그렇지만 관장신부님께서 수 백번 이 길을 오르내리시며 이 순례의 길을 만드셨다지요. 길을 참 편합니다. 길은 참 아늑합니다. 길은 이렇게 나 있으되 오랜 옛날의 깊은 산속의 저절로 생긴 오솔길과 같습니다.
해발 700미터나 되는 산악지방이며 특히 경사진 곳이라 논농사는 애초 불가능하기에 숯을 구워 지개에 지고 길도 먼 대구 큰장까지 나가서 팔아 양식으로 바꾸어서 생계를 이어 나갔다지요. 그래 그래 이곳에 숨어 들어와 신앙을 지켜나갔다지요. 그러다 느닷없이 포졸들이 들이닥쳤다지요. 그 자리에서 칼을 맞아 죽어 바로 그 자리에 묻혔다지요.
도대체 '신앙'은 무엇이길래 깊고깊은 계곡으로 숨어들어와 이렇게 척박한 삶을 선택하였던 것일까요?
이곳이 무덤일까 할 정도로 봉분이 낮고 초라하기만 합니다. 다만 십자가만이 그것을 알려 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곳 한티의 순교자들이 한결같이 이름조차도 저희들에게 남겨 두지 않은 채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것도 어쩌면 오로지 주님께 모든 걸 바치길 원하고자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겸손의 길 25번 순교자 묘역입니다. 이번에 시범적으로 묘역 봉분을 황토로 복토로 하고 잔디를 심었습니다. 5시 특전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피정의 집 대성전으로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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