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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鎭川] - 건강도시 생거진천
동쪽은 음성군·괴산군, 남쪽은 청원군과 접하고, 서쪽은 충청남도 천안시, 북쪽은 경기도 안성시에 접하여 충청남도·충청북도·경기도의 도계(道界)를 형성한다
진천 문화관광
길상사[吉祥祠]
김유신은 만노군(萬弩郡:충북 진천) 태수였던 김서현(金舒玄)과 만명부인(萬明夫人) 사이에서 태어나 673년(문무왕 13)에 79세로 별세한 신라의 명장이다. 후일 삼국통일의 이룩한 공으로 835년(흥덕왕 10)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고 경주의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되었다. 그의 묘(사적 21)는 경북 경주시 충효동에 있다
김유신탄생지 및 태실 진천읍 김유신길 170-4(상계리 56)
나이 15세 되던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나당연합군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668년)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흥무대왕 으로 추봉되었다.
김유신장군 탄생지는 진천읍 상계리 계양(桂陽)마을이다. 이곳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萬弩郡) 태수로 있을 때 치소(治所)가 있었던 곳으로 전한다.
김유신장군 태실은 진천읍 상계리 뒷산인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다.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봉토를 마련했으며, 태령산 정상을 따라 돌담을 산성처럼 쌓아 돌려 신령한 구역을 나타내고 있다. 뒷산 태령산에 태를 묻을 때 무지개와 함께 신들이 내려와 태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한다.
만뢰산자연생태공원
배티성지[梨峙聖地] 백곡면 양백리
보탑사[寶塔寺]
황룡사 9층목탑을 모델로 만든 3층목탑의 높이는 42.71m(108척)로,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무려 52.7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이다.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이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하여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지어졌다 한다.
김유신 탄생지를 거쳐 연곡리 내에 자리 잡은 보탑사의 통일대탑은 신라 때 김유신 장군이 민족통일을 이루어내듯 남북이 통일되기를 기원하며 지은 삼층목탑이다
석장리 고대 철생산유적[石帳里古代鐵生産遺蹟]
석장리 유적 주변에는 여러 가지 철제뿐 아니라 제철로도 다양하게 발견되는데, 이로써 이곳이 그 당시 가장 큰 철 생산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 생산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하는데, 발달된 철 생산 기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일본의 제철 기술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이상설 생가 진천읍 산척리 이상설안길 10
그 곳에서 유인석(柳麟錫) 등과 성명회(聲鳴會)를 조직, 국권침탈의 부당성을 통박하는 성명서를 작성하여 각국에 발송하는 등 세계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일본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 관헌에게 붙잡혀 투옥되었다. 이듬해 석방되어 이동녕 등과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고, 《권업보(勸業報)》 《해조신문(海潮新聞)》 등을 발행,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원아트빌리지
이원아트빌리지는 제1전시관부터 제7전시관까지 7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촌미술관을 중심으로 전시관·세미나실·행사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건축·미술·사진·음악 등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300여 그루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200여 종의 야생화들이 심어져 있어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정송강사 [鄭松江祠] 문백면 봉죽리 562
진천 농교[鎭川籠橋]
농다리의 '농'은 '대바구니, 뒤덮다'라는 의미의 '롱(籠)'자란다. 다리의 모양을 잘 보니, 얼키설키 얽은 모습이 대바구니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다. 장마때는 물이 다리위로 넘쳐 수월교(水越橋)라고도 한다. 지네를 닮았다고 해서 지네다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혹은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되어 ‘농’이 됐다고도 한다.
28개의 교각은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숙(宿)을 응용했고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든 수월교(水越橋)형태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생긴 다리는 빠른 물살에 견디기 위한 구조다.
또한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은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물살을 피하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어눌하게 생긴 돌다리가 천년을 이어온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농다리는 지난 1976년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24간이 남아있던 것을 고증을 통해 최근 28간으로 복원했다.
2006년 건설교통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우수상을 수상한 길이다. 진천 농다리축제 매년 8월경 개최
진천역사테마공원
진천역사테마공원 주변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여름철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 6월에는 진천역사테마공원 내에 건립된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이 개관하였으며, 진천역사테마공원 인근에 무형문화재 제112호인 주철장 전수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진천 종박물관
진천종박물관은 진천읍 장관리 역사테마공원 내 위치해 있다. 전통문화유산인 범종에 대한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종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건립됐다. 종에 대한 자료 검색과 소리체험 및 음향 감상코너, 종 제작과정의 밀랍 재현 코너와 관람객들이 직접 종 문양 탑본과 타종 체험을 할 수 있다.
진천참숯테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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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말인데,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효심이 지극한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용인에 살고,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진천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형제는 어머니를 서로 모시고자 다툼이 있어서, 결국 형이 진천원님에게 가서 탄원을 하기에 이르렀고, 효심이 지극한 형제를 본 진천원님의 명 판결이 이러했답니다. 살아서 모시는 것과 죽어 모시는 것이 같으니,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진천 사는 동생이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 산소를 용인에 써서 형이 제사로 모시도록 하라! 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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