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최후의 심판 (Il Giudizio Universale, 1536)
작가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크기 : 17X13 m 프레스코
소재지 :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독일의 시성 (詩聖) 괴테는 그의 “이태리 여행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시스티나 경당을 보지 않고서는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위대함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생애 전반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최후 심판을 상기하면서 종말신앙의 묵상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전례력대로 작가의 인생 후반기 작품인 <최후 심판>을 보기로 하자.
시스티나 경당은 교종 식스또 6세(Sixtus Ⅵ, 재위 1471- 1484)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으며 바티칸에서도 중요 기능을 하는 건물로 교황 선거의 장소이기도 하고 추기경단이 정기적으로 미사를 집전하던 곳이었다.
작가는 이곳의 작업을 맡아 천장에는 <천지창조: 1508- 1512>를 그리고 제단 부분에는 <최후 심판>을 그렸는데, 이 장대한 프레스코 연작은 거의 모두 작가 혼자 초인적 열정으로 짧은 기간 안에 그린 것이며 최고 성숙기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 제작 당시 작가는 자신의 천부적 자질과 대단한 노력으로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예술가로서의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성취감 보다는 허망감과 불안감에 빠져 있었는데, 이것은 작가의 개인 체험만이 아니라 당시 로마의 비참한 현실이 그에게 안겨 준 결과였다. 그가 로마에 도착했을 로마는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두려움과 무기력의 늪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두 강대국인 스페인과 프랑스의 세력 각축장이 될 만큼 초라한 처지였는데, 설상가상으로 무능한 교종인 끌레멘스 7세의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1517년 가톨릭 국가로 자부하는 스페인의 가롤로 5세가 로마를 침략해서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참상을 연출했다.
“로마의 약탈 (Il Sacco di Roma)"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476년 야만인들에 의해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래 가장 비참하고 치욕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는데, 스페인 왕 가롤로 5세가 모은 독일 개신교 신자들인 용병들이 교회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으로 로마를 점령해서는 성직자와 수도자를 살해하고 수녀들에게 성폭행을 서슴치 않았으며, 성 베드로 대성당은 이들의 마굿간으로, 바티칸 궁전은 병사들의 막사로 만듬으로써 로마인들의 한가닥 자존심과 희망을 깡그리 파괴했기에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이 절망과 충격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이 작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던 여러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를 구분하는 양분법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을 한 공간에 배치함으로서 하느님의 최후심판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미래임을 상기시키면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언젠가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서야할 자신을 보게 만든다.
그가 <천지창조>를 그릴 때만해도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했으나 <최후심판>에서는 비록 나체라고 해도 생동감 보다는 무겁고 무기력하게 그림으로서, 르네상스의 미적 개념을 철저히 파괴하고 나체로 표현할 수 있는 물질적인 아름다움은 일시적이기에 정신성의 표현이 더 품위 있는 것임을 강조해 수많은 나체들에서도 관능적인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부터 엄청난 반대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한 후 처음 공개했을 때 성직자들, 교황청 직원들, 예술가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400명의 성인 성녀들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알몸임을 보고 경악하면서 당장 지울 것을 요구했으나, 대단한 자유인인 그는 이 그림을 수정하라는 교종 바오로 4세의 명령 앞에서도 강경한 거부의사를 보였다.
반대로 이 작품을 본 일반인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으나 점차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태리 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화란 등 유럽 각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모이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임으로서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게 되었으니, 종교개혁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개최된 트렌트 공의회는 작가의 사망 직전 작품의 수정작업을 명령했다.
다행히 작가의 제자였던 볼테라(Daniele da Volterra: 1509-1566)가 책임을 맡아 스승의 의도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차원에서 성기 부분에 최소한의 가리개만 입히는 수준으로 변형시켰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작품을 본래 상태로 복원할 것을 허락함으로서 몇백년을 칩거상태에 있던 성인들이 작가의 의도대로 모든 것을 벗어던진 시원한 자유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였으며, 이 복원 작업이 마무리 되어 관람객들에게 개방되던 날 교종께서는 미켈란젤로의 예술성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글을 남기셨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 질서 정연한 다른 르네상스 작품과는 달리, 무질서하게 여기 저기 무리를 지어 있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실재 보다 더 크게 그려져서 저마다의 고립된 세계에 머물고 있는 인상을 주며, 창조와 파괴의 상반되는 요한 묵시록적 성격이 이 작품 전체에 넘치고 있으니 전체에 깔려 있는 푸른색은 최후의 심판을 거친 후 도달하게 될 차안 너머 존재하는 피안(彼岸) 세계의 무한한 공간을 보는듯한 신비감에 잠기게 한다.
오른쪽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은 죽음의 색깔인 잿빛을 띄고 있는 반면, 구원을 받아 무덤에서 나온 인물들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면서 점점 더 밝은 빛을 띠면서 천상 광휘의 아름다움 속에 잠기게 만든다.
이 그림은 전체가 크게 네 층으로 나누어지는데 맨 위층에는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를 메고 먼 곳으로부터 날아오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고 그 다음은 심판자이신 주님께서 여러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옹위를 받으며 내려오시고 그 밑에 묵시록의 일곱 천사가 사방을 향해 나팔을 불며 심판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으며 이 작품의 중앙에 심판주이신 그리스도가 성모님과 함께 계신다.
작가는 그리스도를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어서려는 것 같기도 한 모호한 자세로 그렸는데, 마태오 복음 25장의 최후 심판에서는 주님이 옥좌에 앉으신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에 이것부터 작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반대의 빌미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었다.
주님께서 오른 팔을 올리고 계신 것은 저주받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치는 표지로 이해했으나, 실은 반대이며, 그 표정이 부드럽기에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픈 심판주로서의 더 없이 큰 자비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는 수염도 없는 젊은이의 모습이며 과거 다른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부장적인 권위를 지닌 중후한 모습이 아닌 생기발랄한 청년의 모습으로 부각시키면서 심판 후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지닐 아름다운 천상 생명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성인 성녀들은 고대 그리스적인 아름다움과 그리스도교적 초상 기법이 어우러져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는 전통적인 기법과 달리 그리스 신과 신약성서의 구세주의 주제가 합쳐 진 모습으로 그림으로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융합할 수 있는 상징으로 표현했다.
이 모습은 골로사이서 1장 16-19절의 말씀을 재현하고 있는데,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주님 오른편에 계신 성모님은 분홍빛 푸른 빛 의상을 입은 단아한 모습이나 나이가 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성모님의 발치엔 초세기 석쇠 불에 구이는 형벌로 순교한 라우렌시오 부제가 석쇠를 들고 있으며 왼편 큰 모습에 베드로 사도가 있으며, 성모님 쪽으로 세례자 요한이 두드러진 모습으로 서 있다.
주님의 왼편 다리 쪽에 걸레 같은 천을 들고 서있는 사람은 성 발토로메오 사도이며 <황금전설>에 의하면 그는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로 순교했다고 하는데, 작가는 벗겨진 이 순교자의 가죽에 자기 자화상을 그림으로서 자신이 범한 육신의 죄악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하고 영혼이 정화되어 거듭나는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친 그의 인생의 적나라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일생을 교회에 일하면서 타협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있었던 율리오 2세 교황과의 알력 등 그가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와 실망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사도들과 성인들에 둘러싸인 그리스도는 아래 부분에 비해 훨씬 더 크게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영광과 특권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며 모두 하느님의 축복받은 영혼들로서(마태오 25, 34) 이들에게는 죄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최후의 심판 때 자신이 받게 될 심판에 대해 대단한 두려움과 공포(Terribilita)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이 작품은 어떤 객관적인 진리의 전달 보다 자신의 영혼 구원에의 강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인생을 짧게 산 사람은 죄를 적게 지었기에 그만큼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이 더 크다”고 생각할 만큼, 나이가 들수록 신앙심은 더욱 깊어져 편집광적인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는 온갖 정열을 바쳐 심취했던 인간에 대한 긍정적 표현인 르네상스의 이상에 대해 회의를 가지면서 자신의 인생 전체에 대한 회의와 함께 미래 심판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저의 추한 허물을 당신의 순결한 귀로 듣지 마옵소서. 저를 향해 당신의 의로운 팔을 들지 마옵소서. 하오나 주님, 저의 최후의 순간에 당신 자비의 팔로 죄 많은 저를 안아 주옵소서.”
아래 부분 어두운 색깔의 지옥도 희랍 신화의 명부(冥府)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연출하여 저승사자인 카메론(Cameron)이 지옥으로 가는 배에서 사람들을 떼밀어 내어 물속에 빠져 죽게 만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와 더불어 도입되어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희랍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최후의 심판을 받은 영혼들이 불구덩이 지옥으로 던져지는 비참한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하단 왼쪽 구석에 위로 타오르는 지옥불로 붉은 빛을 발하는 아래 당나귀 귀를 한 미노스가 뱀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있는데, 이 미노스의 얼굴은 당시 교황청 전례 담당관이었던 비아죠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이며, 그는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고 있을 때 앞장서서 사사건건 작품을 비판하면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작가는 그에게 통쾌히 보복하는 마음으로 그를 불타는 지옥 가장 밑바닥으로 보낸 후 거기서 몸에 뱀이 감긴 채로 성기를 뱀에게 깨물리며 고통받는 모습으로 남겼다.
성 발토로메오 사도의 늘어트려진 가죽 아래 부분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웅크리고 공포에 떨고 있는 남자는 지옥 불에 떨어질 심판을 받기 위해 끌려온 죄인의 모습인데, 온 몸을 휘감은 두 악마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한 영혼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지옥의 묘사를 단테(Dante)의 신곡을 따라 했는데, 단테에 있어 지옥은 어둠과 증오와 영원한 저주의 세계이며, 여기에 떨어진 영혼들은 죽을 때까지 악과 이웃하며 살았던 구제불능의 인간들이다.
보는 사람을 처절하게 만드는 이 영혼들의 공포의 원인은 어떤 재앙이나 질병과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한 전적인 내적인 공포이며, 여기에서 작가는 자기가 일생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천정에 그린 <천지창조>와 제단에 그린 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대표적 화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웅장한 구도 안에 과감하고 힘찬 선묘(線描)를 마음대로 구사하였으며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독자적인 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대 그와 쌍벽을 이루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경향이 “균형과 조화”가 특징이었다면 미켈란젤로는 “표현의 과감함과 극렬한 동세(動勢)”가 특징이라 볼 수 있으며 이점은 이 작품 전체를 통해 완벽히 드러나고 있다.
말년에 그는 죽음 후에 받아야 할 최후심판의 두려움을 생각하면서 예술에 대한 감동을 서서히 잃게 되고, 자신의 영혼 관리에 소홀하면서 예술에만 지나치게 몰두했던 어리석음을 꾸짖고 후회하는 모습을 그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서 보이고 있다.
“하찮은 나의 예술을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착각하게 해준 준 달콤한 꿈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며 덧없는 것인가를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십자가 위에서 팔을 벌리고 죄인인 나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는 비길 수가 없다.”
1564년 88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사망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비밀리에 피렌체로 이송되어 그가 그토록 존경했고 그의 작품에 큰 영감을 준 단테(Dante Alleghieri)가 묻혀있는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성당에 안장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자기 예술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었으나 자신은 예술성의 가치에 대해 회의함으로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역설의 여정이 되었고, 성서를 주제로 한 이 대작 안에 하느님을 향한 두려움과 공포의 과정을 통해 구원의 길을 갈망하는 인간의 애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그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생기와 환희를 한껏 표현하면서도 결론은 전도서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로 귀결하면서 하느님만이 인간의 모든 갈망을 완벽히 채울 수 있으시다는 것을 인류에게 전하고자 했다.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도서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