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시대, 순우리말의 구실>
최정민 / 미술평론가
우리는 매일같이 말을 쓰면서도, 그 말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자주 잊곤 한다. 빠르고 편리한 언어가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말은 점점 ‘감정을 품은 매개’라는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졌다.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말은 관계를 매만지고, 감정을 건네며, 사회의 온도를 조율하는 감각의 도구다.
흔히들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세종이 창제한 것은 ‘말’이 아니라 ‘글’, 즉 훈민정음이다.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은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자신들의 문자로 쓸 수 있도록 고안한 문자 체계였다. 순우리말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고, 백성들은 이미 고유어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세종은 언어의 창조자가 아니라, 백성의 말을 위한 길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 길은 지금도 우리 곁에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 길을 지켜나갈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올해의 신조어’라는 말은 매해 빠지지 않고 뉴스와 온라인 사전 콘텐츠에 등장하고 있다. 신조어가 매년 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 언어의 온도를 가늠하는 온도계와도 같다. 2023년에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2024년에는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그리고 2025년에는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말이 주요 신조어로 선정되었다. 해마다 달라지는 이 목록은 단지 유행어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 해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 상태와 관계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언어의 사회적 자화상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 해마다 바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언어의 구조 자체가 점점 짧고 단순해지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문화적 지표다.
물론 새로운 말이 생겨나는 것은 언어의 자연스러운 진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진화의 속도가 감정을 표현하거나 타인을 이해하는 언어 구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언어는 빨라졌지만, 감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표현은 늘었지만, 그만큼 마음의 여백은 줄어들었다. 이처럼 변화하는 언어 환경 속에서 감정 어휘의 폭이 좁아지고, 세대 간 언어 단절도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청소년 언어 습관과도 맞물려 있다. 줄임말과 반응 위주의 언어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점점 ‘말하기’보다는 ‘반응하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는 감정 표현의 여백을 줄이고, 관계 속 언어의 결을 흐리게 만든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는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와 더불어, 감정 어휘 부족 현상이 함께 지적되고 있다. 긴 문장을 해석하거나, 뉘앙스를 따라가고, 감정의 결을 이해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언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읽고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과도 직결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순우리말이 지닌 가치는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가 잊고 있는 말에는, 우리가 잃어가는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순우리말은 마음을 단정 짓기보다, 조용히 어루만지는 말이다. 이를테면 “살풋한 기분이 들었다”거나, “서럽다”, “가만가만 다가갔다”는 말은 그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재단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내를 섬세하게 비춰준다. ‘살갑다’는 말에는 단순한 다정함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조심스레 건네는 결이 담겨 있다. ‘사르르 녹다’, ‘고즈넉하다’처럼 말의 결이 살아 있는 표현은, 마음을 거칠게 쏟기보다 조용히 풀어놓는다. 이런 말은 마음을 서둘러 재거나 덜어내지 않고, 그 여백을 함께 건너가도록 허락한다.
우리가 순우리말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전통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곧, 말의 결이 사람의 결이기 때문이다. 말의 깊이는 감정의 깊이와 맞닿아 있고, 말의 온도는 사회의 품격과도 연결되어 있다. 말이 메말라가면 사회도 거칠어진다. 말이 단절되면 사람 사이의 거리도 멀어진다. 그래서 순우리말을 지키는 일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말하기의 출발점이다. 세종이 만든 한글이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자였다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우리말은 누구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말이다. 지금은 말의 감도를 되찾아야 할 때다. 감정 없는 언어에 익숙해진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정성스러운 말을 선택해야 한다. 순우리말은 사람 사이의 마음을 건드리고, 관계를 잇는다. 말의 결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는지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우리 한글 덕분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