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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51강> (2017.02.27)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맹자(孟子) (제15강)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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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 1. <맹자 14강> [복습] ‖ 2. 오늘의 <맹자> 읽기
* [오늘의 맹자(孟子) 읽기] (3) *— [이루장구·하] (제6~18장)]
離婁章句 下·(凡三十三章)
* [이루장구·하](제6장) — [禮와 義] ; 대인(大人)은 형식과 실질이 같다
08-06-01 孟子曰 非禮之禮 非義之義 大人弗爲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닌 예(禮)와 의가 아닌 의(義)를 대인(大人)은 하지 아니한다.”
* [강 설(講說)] —————
실제로는 예가 아닌데 예(禮)인 것처럼 가장(假裝)된 예나 실제로는 의가 아닌데 의(義)인 것처럼 가장(假裝)된 의를 하는 것은, 남에게 잘 보이고 자기의 이익(利益)을 차지하려는 욕심(慾心)에서 나온 것이다.
완전자(完全者)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성인(聖人)이라는 호칭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부여하지 않으므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완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대인(大人)이라고 부른다. 이치를 살피는 것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가지의 가리움이 있는 것이다. 대인은 이치에 따라 순연히 하고 때에 따라 마땅히 대처하니 어찌 이런 짓을 하겠는가?(察理不精 故有二者之蔽 大人則隨事而順理 因時而處宜 豈爲是哉) 대인은 예(禮)나 의(義)를 가장하지 않는다.
* [이루장구·하](제7장) — [中也 才也]중용의 덕(德)과 재(才)를 갖춘 사람의 역할은?
08-07-01 孟子曰 中也養不中 才也養不才 故人樂有賢父兄也
如中也棄不中 才也棄不才 則賢不肖之相去其間 不能以寸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中庸)을 실천하는 자가 중용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를 길러주며, 재주가 있는 자가 재주가 없는 자를 길러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명한 부형이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 만약에 중용을 실천하는 자가 중용을 실천하는 자를 버리며,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버린다면 현자(賢者)와 불초(不肖)한 자의 서로의 거리는 그 사이를 (한 치 두 치 등의) 치의 단위로 잴 수도 없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中也養不中’에서 ‘中也’는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有中庸之德]
· ‘才也養不才’에서 ‘才也’는 ‘재주 있는 사람’ [‘中也’+‘才也’]→ ‘현자(賢者)’
· ‘不能以寸’에서 ‘以’의 목적어는 ‘其間’이다. ‘寸’은 ‘치를 단위로 하여 재다’.
‘치를 단위로 하여 잴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짧을 거리임을 말하는 것이다. ‘돗진갯진’
* [강 설(講說)] —————
유학의 특징은 우리가 사는 현실사회 속에서, 현실사회를 참되고 바른 이상사회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데 있으며, 배움과 가르침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중용(中庸)을 실천하고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賢者]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不肖子]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인정할 수 없다. 여기에서 ‘불초(不肖)’는 ‘현자의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으면’ 현자나 불초자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 [이루장구·하](제8장) — [不爲와 有爲] ;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08-08-01 孟子曰 人有不爲也而後 可以有爲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야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 [강 설(講說)] —————
‘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것은, 삶의 절도(節度)이다. 정자가 말씀하셨다. “‘하지 않음이 있음’은 택할 바를 아는 것이다. 하지 않는 바가 없는 자(못하는 짓이 없는 사람)는 어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程子曰 有不爲 知所擇也 惟能有不爲 是以 可以有爲 無所不爲者 安能有所爲耶)”
‘나는 돈이나 명예와 같은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人有不爲也]만이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길[有爲]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부귀(富貴)를 얻는 수단으로 학문을 선택한 사람은, 진정한 학문의 경지에 나아가지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한다. 학문을 완성하면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게 되어, 스승이 되고 일정한 수입도 생기게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학문을 완성한 결과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지 학문의 목적은 아니다.
* [이루장구·하](제9장) — [불위(不爲)의 사례 ①] ; ‘제3자에게 남을 흉보지 마라’
08-09-01 孟子曰 言人之不善 當如後患何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착하지 아니한 것을 말하다가 후환(後患)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 [강 설(講說)] —————
후환이 두려워서 남의 착하지 못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맹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남의 흉을 보거가 남의 험담을 잘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이루장구·하](제10장) — [불위(不爲) 사례]② ; 공자(孔子)의 경우
08-10-01 孟子曰 仲尼不爲已甚者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중니께서는 하지 아니하시는 것이 매우 심하신 분이었다.”
* [강 설(講說)] —————
공자께서는 명예나 돈과 같은 세속적(世俗的)인 가치를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참다운 인격을 완성할 수 있는 학문(學問)에 큰 뜻을 두었다는 말이다.
주자께서는 ‘已甚’을 목적어로 보아 ‘너무 심한 것은 하지 않으셨다’라고 해석했으나, 앞의 문장에서 계속 ‘不爲’를 강조하고 있는 점, 또 ‘너무 심한 것은 하지 않는 것’은 일반인도 대체로 그러하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이 매우 심하다’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이기동)
* [이루장구·하](제11장) — [불위(不爲)의 사례]③ ; 대인(大人)의 경우
08-11-01 孟子曰 大人者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인(大人)은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남에게) 신뢰(信賴)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아니하고, 행위를 할 때에도 반드시 결과(結果)가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아니하며, 오직 의(義)가 있는 곳을 따를 뿐이다.
* [강 설(講說)] —————
참된 사람은 자기의 말이 반드시 남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고 자기의 행동이 반드시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현재 의(義)로운 것인지 어떤지를 살펴 의(義)로우면 할 뿐이다. 결과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자한편(子罕篇)](제4장)에서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단절하셨으니, 사사로운 의견이 없으셨으며, 반드시 해야 된다는 것이 없으셨으며, 고집함이 없으셨으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없으셨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고 했다.
* [이루장구·하](제12장) — [赤子之心] ; 대인(大人)의 마음의 바탕은?
08-12-01 孟子曰 大人者不失其赤子之心者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인이란 그 적자(赤子) 때의 마음을 잃지 아니한 자이다.”
* [강 설(講說)] —————
대인(大人)의 마음은 온갖 변화를 통달하고, 어린아이[赤子]의 마음은 순일(純一)하여 거짓이 없을 뿐이다. 그러나 대인(大人)이 대인이 된 까닭은 바로 외물(外物)에 유인되지 않아서 순일(純一)하여 본연의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충(擴充)하면 알지 못하는 바가 없고 능하지 못한 바가 없어서 그 큼을 다하게 된다.(大人之心 通達萬變 赤子之心 則純一無僞而已 然大人之所以爲大人 正以其不爲物誘 而有以全其純一無僞之本然 是以 擴而充之 則無所不知 無所不能 而極其大也)
* [이루장구·하](제13장) — [養生과 送死] ; 삶에서 진정한 큰일은?
08-13-01 孟子曰 養生者 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는 것은 큰일에 해당될 수 없고, 오직 죽은 자를 장송하는 것이라야 큰일에 해당될 수 있다.
* [강 설(講說)] —————
사람이 겪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 죽음이다. 부모의 죽음을 당하면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큰일 났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장송(葬送)하는 것은 가장 ‘큰일’이다.
* [이루장구·하](제14장) — [深造自得] ; 군자가 진리학습을 하는 이유?
08-14-01 孟子曰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도를 실천함으로써 깊이 나아가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터득하고자 해서이니, 스스로 터득하여 거처함이 편안하고, 거처함이 편안하면 삶의 근거로 삼는 것이 깊으며, 삶의 근거로 삼는 것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행동하더라도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터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居之安則資之深’에서 ‘資’(자)는 행동할 수 있는 바탕.
· ‘取之左右逢其原’는 일상생활에서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하여 진리를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두고『주역(周易)』의 곤괘(坤卦)에서는 ‘황중통(黃中通)’이라 했다. 여기에서 황(黃)은 오행 중의 땅[地]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곳이요, 통(通)은 두루 통하는 진리(眞理)를 말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두루 통하는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다. 일본이 이또오진사이(伊藤仁齊)는『논어(論語)』를 두고 말하기를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논어(論語)가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우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강 설(講說)] —————
사람이 도(道)를 실천하면서 점차 나아가 덕(德)을 밝히고 천명(天命)을 알고 실천하는 차원에까지 도달해야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깊이 나아가면(深造)’ 성(性)은 ‘자연히 갖추어지는 것(自得)’이다. 이 성(性)의 원천인 천명(天命)이 작용하게 되면, 천명은 천하(天下) 만물(萬物) 전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므로, 자기 자신이 전체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自得’은 스스로 마음[天命]에 우러나오는 경지이다.
전체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살아갈 때,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의롭고 바람직하다면’ 기쁘게 죽을 수 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과 같은 의사가 바로 그런 분들이다. 그러므로 아집에서 비롯되는 일체의 고통이 해소되고 삶이 편안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의 행동원리는 천명이므로 깊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등 평범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깊은 천명에서 나온 것이다.
* [이루장구·하](제15장) — [博學說約] ; 학문을 널리 배우는 목적은?
08-15-01 孟子曰 博學而詳說之 將以反說約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널리 배우고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곤 하는 것은 장차 그렇게 함으로써 도리어 집약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 [강 설(講說)] —————
예(禮)와 도(道)를 널리 배우고 설명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덕(德)을 밝히고 성(性)을 알며 천명(天命)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모든 것은 ‘천명(天命)’ 그 하나로 집약되므로 천명을 알아서 따르기만 하면, 모든 행동이 최선(最善)의 상태로 되어 저절로 조화(調和)를 이루게 된다. … 이는 윗 장의 뜻을 이어서 말씀하신 것이다. 배움은 다만 박학(博學)만 하고자 할 것이 아니요, 또한 곧바로 요약(要約)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承上章之意而言 學非欲其徒博 而亦不可以徑約也)
*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제25장)에 이와 관련된 공자(孔子)의 말씀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문에 대하여 널리 배우고 요약하기를 예로써 한다면, 또한 (도(道)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 [이루장구·하](제16장) — [善養人 能服天下] ;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는 방법
08-16-01 孟子曰 以善服人者 未有能服人者也
以善養人然後 能服天下 天下不心服而王者 未之有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으로써 남을 복종(服從)시키려 하는 자 중에는 남을 복종시킬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으니, 남을 기른 뒤에야 천하를 복종시킬 수 있다.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데도 왕업을 이룬 자느 아직 있지 아니하다.”
* [강 설(講說)] —————
선(善)한 사람이 악(惡)한 사람을 제압하려 하면, 악(惡)한 사람들은 제압당하지 않기 위하여 완력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므로 오히려 선(善)한 사람이 다치게 된다. 그러므로 선(善)으로써 남을 기른 뒤에야 천하를 복종시킬 수 있다.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데도 왕업을 이룬 자는 아직 있지 않다.
* [이루장구·하](제17장) — [無實不祥] ; 말에 진실성이 없으면?
08-17-01 孟子曰 言無實不祥 不祥之實 蔽賢者當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에 진실성이 없으면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상서롭지 못한 것 중의 핵심은 현명한 것을 은폐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강 설(講說)] —————
거짓말이나 진실성이 없는 말은 믿음이 없으므로 결국 상서롭지 않다. 그것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은폐하게 되어 참다운 것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거짓과 유언비어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경향이 있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 [이루장구·하](제18장) — [原泉混混] ; 공자가 물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08-18-01 徐子曰 仲尼亟稱於水曰 水哉水哉 何取於水也
02 孟子曰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03 苟爲無本 七八月之間雨集 溝澮皆盈
其涸也 可立而待也 故聲聞過情 君子恥之
01 서자(徐子)가 물었다. “중니(仲尼)께서 자주 물을 일컬어 말씀하시기를, ‘물이여! 물이여!’ 하셨으니, 물에서 무엇을 취하셨습니까?”
02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근원이 있는 샘이 콸콸 솟아나 밤낮을 쉬지 아니하고 구덩이를 채운 뒤에 나아가 사해(四海)에 이른다. 근원(根源)이 있는 것이면 이와 같으니, 이 점을 취하신 것이다. 진실로 근원이 없는 것이라면 7,8월 사이에 빗물이 모여서 도랑들이 모두 가득할 것이지만, 그것이 마를 때까지는 선 채로 있으면서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명성과 소문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徐子’(서자) ; 맹자의 제자 서벽(徐辟)을 말함
· ‘仲尼亟稱於水曰’에서 ‘亟’을 ① ‘자주 (기)’ ② ‘급하다 (극)’. 여기서는 ‘자주’의 뜻이다.
· ‘何取於水也’에서 ‘何’는 ‘取’의 목적어. 도치됨. … ‘무엇을 취하셨습니까?’
· ‘原泉混混’에서 ‘原泉’은 근원이 있는 물. ‘混混’(혼혼)은 샘에서 물이 콸콸 솟아나는 모양.
· ‘不舍晝夜’는 항상 흘러나와 다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 ‘盈科而後進’에서 ‘科’는 ‘구덩이’
· ‘放乎四海’에서 ‘放’은 ‘이른다’
· ‘是之取爾’에서 ‘之’는 ‘是’와 ‘取’가 도치되었음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爾’는 어조사.
· ‘可立而待也’ 즉 ‘선 채로 있으면서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은 ‘금방 말라버린다’는 뜻.
* [강 설(講說)] —————
지하수[원천]의 큰 줄기에서 솟아나오는 물은 밤낮없이 솟아나와 시내을 이루어 흐르다가 구덩이가 있으며 그 구덩이를 채운 뒤에 다시 흘러 결국 바다에 이르지만, 그렇지 못하고 소나기 올 때 갑자기 불어난 물은 소나기가 그치면 금방 말라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명(天命)에서 나온 행동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 때문에 오래도록 효과가 있고 생명력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 시대를 영합하고 언론에 아부하여 일시적으로 유명하게 된 사람의 행동은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 [장하주(章下註)] —————
추씨[秋浩]가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물을 칭찬하신 것은 그 뜻이 깊은데, 맹자(孟子)께서 유독 이것만을 취하신 것은 서자의 시급한 바로써 말씀하신 것이다. 공자께서 일찍이 문(聞)과 달(達)을 가지고 자장(子張)에게 말씀해 주셨으니, 달(達)은 근본(根本)이 있음을 말하고, 문(聞)은 근본이 없음을 이른다. 그렇다면 배우는 자가 근본(根本)을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鄒氏曰 孔子之稱水 其旨微矣 孟子 獨取此者 自徐子之所急者 言之也 孔子 嘗以聞達 告子張矣 達者 有本之謂也 聞則無本之謂也 然則學者 其可以務本乎)”
* [논어로 맹자 읽기]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제20장) ; 문(聞)과 달(達)의 차이
子張問士何如 斯可謂之達矣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子曰 是聞也 非達也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자장이 물었다. “선비가 어떻게 하면 달(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인가? 네가 말하는 달(達)이란?” / 자장이 대답하였다.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문(聞)이지 달(達)이 아니다. 대저 달(達)이라는 것은 직(直)을 바탕으로 삼고 의(義)를 좋아하며,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잘 헤아려 남에게 낮추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達)하게 되며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達)하게 될 것이다. 대저 문(聞)이라는 것은 얼굴빛은 인(仁)을 취하지만 행실은 어기며, 거처하면서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소문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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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제51강 <이루장구·상>(제18~28장) <하> (제1~18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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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심조자득 경지는
어느 때 맞이할까
밥 먹어 본 사람은
그 이치 쉽게 알죠
한술을 먹는다고
배부를 리 없지요
다섯 술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지요
마지막 한 술밥에
한 순간 배부르죠
심조자득 경지도
그렇게 온답니다
배불리 먹었다고
이제 밥은 끝일까
심조자득 했다고
이제 공부 끝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