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계급이 되기 위해, 빚을 내서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 정부의 거시경제 안목을 굳게, 곧게 믿고, 유산계급으로 진입하기 위해 했던 표상으로써의 "그 무엇", 그것은 웃기지도 않게 "아파트" 아니였던가? 새 아파트, 명품이라 꼬드기는 명품의 삶을 동경하여, 부나방같이 불빛이라는 허상을 보고 날아 들었다. 과연그곳에 명품이 있던가? 결국은 까맣게 타들어간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산계급,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계층, 어찌보면 홀가분 하고 자유롭지 않은가? 구속됨이 없으니, 다시 뭔가가 새로운 형태로 현현됨을 기대해도 좋지 않는가? 비우라~ 마음을 비우라, 마음안에 가득찬 욕심과 조바심을 버리라~ 이상한 절대 법칙이 있다. 이건 과학이다. 세상은 비우면 어떤 형태로든, 채워진다는 것, 하물며, 신을 내재한 덧이 사람일진대, 그 비움에는 다시 채워짐이 기다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하우스푸어들, 그안을 들여다 보면, 각기 다른 형편이 있다. 심각하거나, 덜 심각하거나, 아직은 견딜만 하거나..하지만 교집합이 있다. 괜한짓! 노동의 댓가로 얻어진 피같은 소득을 바보같이 이자물기에 쓰고있다는 것, 그래서 삶은 팍팍하다. 방작 쓸돈이 절실히 모자란다. 알량한 아파트 유지를 위해, 이이들과의 즐거움꺄지 포기하는 개같은 라이프스타일로 근근히 살고 있다. 원래 모습에로 부터 축소,수정한 삶이니 팍팍하다.
그럼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아직도 못된 집단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아직은 버티고, 어쩌면 거시 경제차원의 부양책이 또 발표되고, 강력히 시장을 움직일 무슨 조치던 취할 것이다? 이게 맹점이다. 요런생각이 자기와 가족, 주변, 한국경제 전체를 죽이기 시작한 맹아적 착각이다.
당신들은 죄인이다. 발끈하겠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당시들의 헛지랄만 없었다면, 공급자들의 횡포, 말도 안되는 고분양가 정책은 사라졌을 것 아닌가 말이다. 글고 빚을 권하는 금융자본도 다른 대안을 찾아 열심히 했을 것이고, 돈은 이런 비생산적인 곳이 아닌, 국부를 창출할 만한 곳으로 어쩔수 없이 쉽게 흘러 들어갔을 터이니 말이다. 기술강국, 기술을 가지고 자본이 없어 시장에 사장되는 수많은 지적재산들, 그들은 잘못된 돈의 흐름으로 인해 비쩍 말라 고사해서 죽어 버렸다.
각설하고, 버려라~ 무얼, 아직도 타다 남은 알량한 탐심을 말이다. 수백만, 적어도 300만은 하우스푸어로 분류된다. 만약 이들중 절반 아니 1/3이라도 빨리 알량한 탐심을 버린다면, 세상은 바뀐다. 하우스푸어는 프로레타리아에 해당된다. 사형선고 받은 무산자 말이다. 다행히 지금 세상은 무산자, 하우스푸어가 필요하다면 믿겠는가?
가진자와 못가진자, 그리고 약간 가진자로 세상은 삼분지계 하였다. 힘의 균형은 팽팽하거나, 가진자가 약간 우세에 있다. 약간 가진자는 갈등한다.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이들은 한때 있는자를 지지하였다. 헌데 이제 이들은 있는자를 경멸한다. 왜? 결코 그쪽으로 갈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진자의 편이 되기 위해 ,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수십년 공을 들였으나, 땅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하우스푸어안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 싶다.
가지지 못함은 불편 하지만, 더이상 빼앗길 것이 없다. 빼앗길 것이 없는 자들은 변화를 일으킬 힘이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가진 것이 없는데 힘이 있다니,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진공묘유, 그 묘한 이치 아니겠는가? 지금은 비울때이다. 하우스푸어들은 무산계급이다. 무산계급은 잃을 것이 없다. 가족? 단란한 가족간의 사랑? 돈독한 사랑? 아니다. 사랑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건 가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일 뿐이다.
오로지 무산계급의 삶은 긴장만이 가득하다. 무산계급의 가장은 벌레가 되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가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함으로써, 진짜 흉칙하게 느껴지는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 진짜 벌레가 되었다. 그레고르, 아니 이상한 벌레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고 상처를 입고 죽었을때, 가족이라는 낯선 사람들은 잠깐만 슬퍼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가족들은 소풍을 간다....갑작스런 변신, 그리고 죽음이라는 실존의 사라짐, 서글픈 소설이다.
"변신"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없는 자들에게는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그리 선언하였음이다. 가진자들은 주말마다 가족과 즐긴다. 없는 자들은 일자리를 얻기 쉽지 않고, 노동이 없으면 가족도 없던 시절이였다. 불행히도 오늘날도 가족간의 관계성은 슬프게도 돈으로 이어져 있다. 설사 그 끈이 잠시 있다해도, 불안정한 삶의 어는 한 부분에서 그 끈은 떨어져 버린다. 확실하지 못한 삶이다. 그래서 재정낭비를 없애고 최소한의 복지를 하자는 것인데, 돈없다며, 복지를 빵갱이 타령으로 몰고간다. 쳐죽일 인간들이다. 100조 날린것, 그건? 100조에 대해 꼭 캐고 들어가야 이나라가 산다.
세상의 문제는 너무 많이 가진자와 너무 없는자들이 한하늘을 이고 살기 때문에 비롯한다. 즉 분배의 실패로 쓸데없이 갈등과 고통을 생산한다. 국가는 이를 조절하야 하는 절대적 책임이 있다. 국가, 국가의 책임이 아니였나? 적어도 2008년 부터 정부라는 조직이 ,조장질을 한 투기정책 때문에 빚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 확실하니 말이다.
과연 국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라~ 국민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었던 국가가, 아니 국가 조직, 국가 조직의 관련자들은, 무산자를 양산 시켰다.코드명은 "거지 프로젝트"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국민을 무산자로 희생시키면 정권을 유지가 아주 쉬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 관료조직,모든 정부단체 기관을 묶어 국민과 괴리를 만들어 놓았다. 적대감으로 갈라 놓았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상전이며, 그것은 지배 계급이다. 국민은 피지배계급이다. 대기업과 부자와 국가기관 종사자, 이들은 지배계급이다. 공무원들은 상위 지배자들의 사설화 된 하부조직이 되었다.
국가, 아니 이 거대한 사설 조직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자의 편을 들고, 정책 실패는 이미 벌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고혈을 빼가려고만 한다. 재정적자, 그건 정책의 실패다.실패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 관련자, 그리고 커낵션되어 있는 기업들은 거대한 잇속을 챙긴다. 다들 알지 않는가?
그리고는 적자는 예를들면 정책 실패를 고스란히 담배가격 인상등으로 보충하려 한다. 즉 , 서민 주머니를 털어 메꾸려 하는 것, 이는 명확한 현실이며, 결국 한국에서 국가란 국민을 대표하지도, 보호자도 아닌 , 감시자며, 억압하는 자이다. 북한체제를 욕하지만 그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인민의 피를 빨아 먹어야 지배층이 존재하는 북한 공산주의자들, 그들과 다름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교묘하다. 겉으로는 아닌 척, 이것은 유대자본의 전술과 동일하다.
불행하게도 이를 전혀 모르고, 우리에 가두어, 알량한 먹이주는 것에, 길러준 고마운 주인이라 믿고 순순히 우리에 갇히고, 잡혀 먹힐 날을 기다린다. 알량한 먹이 받아 먹고 , 몸을 주고....밀양 송전탑등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에서 극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찍어 주었더니, 패대기를 친다. 이것이 실체이다.
이시대의 국가란 국민에게 고통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삶을 구속하는 표상, 아이콘일 뿐이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는, 아니 뭔가를 위해 잔인하게 이용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구가형태의 소수의 조직일 뿐이다. ...이시대의 국가에 대한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조국, 국가, 우리나라, 한민족, 대체 우리 같은 가진 것 없는 서민에게는 무엇일까? 난 자알 모르겠다.
막스 베버가 얘기한 국가존립에 대한 근거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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