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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디 아워스 - The Hours >
'생의 미로에서 세월이 그대를 삼킬지라도'
生과 死... 그 외침의 서사 < 디 아워스 > 는
필립 글래스 특유의 미니멀한 선율과 함께,
1941년 버지니아 울프가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우고 이스트 서식스주의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는 시퀀스로 그 막이 열립니다.
" 레너드, 내가 다시 미칠 것이 분명해요. 이번엔
낫지 못할 거에요. 글도 제대로 못 쓰는 내 꼴 좀
봐요. 그동안 내 삶과 행복을 지켜주느라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참아내며 모두가 날
떠나도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당신... 이제 당신을
놔줘야 할 것 같군요.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잖아요..."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분)는 오늘도 집필 중인
소설 < 댈러웨이 부인 > 과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합니다.
작가라는 고독한 숙명에 짓눌린 채 우울증,
대인공포증, 환청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남편
레나드 울프(스티븐 딜래인 분)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죠.
예정보다 일찍 온 언니 바네사(미란다 리처드슨
분)와 조카들을 보고 반가워하지만... 언니가
가버린 뒤 버지니아는 저녁식사 시간을 얼마 앞두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 런던행 기차역으로 갑니다.
황급히 뒤쫓아온 레너드에게 버지니아는 절규하죠.
" 내 생각을 말해볼까! 난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데
그 고통을 아는 건 나뿐이란 거에요. 내가 사라질까 봐
당신 두렵댔죠? 당신처럼 나도 두려워요. 이건
내 인생이에요. 제발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줘요!"
결국 버지니아는 레너드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1951년 미국 LA,
평범한 주부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분)은
세살난 아들 리처드, 그리고 자신을 끔찍히 아껴주는
남편과 함께 나름 중년층의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죠.
둘째를 임신해 만삭인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에 빠져있습니다.
로라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평온해 보이죠.
심지어 남편 댄 브라운(존 C.라일리 분)은 그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일날 아침을 손수
차립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던
로라는...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못한, 가정이라는
새장 속에 스스로 유폐된 자신의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급기야 아들을 맡겨놓은 채 집을 나서죠.
동굴 같은 호텔 방 침대에 죽음의 알약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비로소 책과 단 둘이 된 로라의
상념은 버지니아의 낮은 음성을 빌려 천장을
울려댑니다.
“나는 더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 죽음은 커다란
위안이 될 수도 있지. 거기에는 무서울 정도의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을 거야.”
바로 이 시점의 모멘트에서 화면은 소설 속
주인공을 죽일까 말까 갈등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향해 오버랩되죠.
결국 살려두는 쪽을 택합니다만, 이런 배려
덕분일까요... 로라는 맘을 바꾸고 남편과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케이크를
만듭니다.
둘째를 낳은 후엔 자신의 인생을 찾아 집을
떠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말이죠.
2001년 미국 뉴욕,
'댈러웨이 부인' 이라 불리는 출판 편집자
클래리사 본(메릴 스트립 분)은 옛 애인인 리처드
브라운(에드 해리스 분)의 문학상 수상 기념파티
준비로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그러다 리처드의 헤어진 남자 애인 루이스
워터스(제프 다니엘스 분)의 이른 방문을 받고
당황해하죠.
그 순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e Lieder) 중 제3곡 '잠자리에
들 때'(Beim Schlafengehen) 가 아주 짧은 숨결로
어우러집니다.
명상적이고 애절한 음시(音詩) 격의 바이올린
간주가 끝나고 해방의 나래를 펴기 시작하는
가곡의 후반부,
'내 영혼은 아무런 속박도 없이 자유의 날개를
타고 밤(죽음)의 나라로 날아오른다' 의 대목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죠.
어린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 로라에 대한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다, 이젠 에이즈로 속절없이
죽어가는 리처드....
하지만 그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며,
무기력감에 휩싸인 클래리사는 울먹이며
루이스에게 하소연합니다.
" 어느날 아침 리처드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지. ' 굿모닝, 댈러웨이 부인! '
그때부터 내 운명은 바뀐 거 같아. 댈러웨이
부인으로 살게됐으니.
하지만 리처드는 언제나 루이스, 당신 곁에
있었는데..."
리처드는 시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세 여인을
이어주는 '린치핀' 이 되지요.
런던을 떠나 시골 집안에 출판사를 차리고,
정신질환의 아내 버지니아가 소설을 출간하는
것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레너드처럼,
클래리사 역시 놓쳐버린 연인이자 가장 진솔한
친구인 리처드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정성껏
간호합니다만...
드라마 속 리처드의 우울함은 작가 버지니아의
것에 닿아있고, 클래리사의 무기력감 또한
버지니아의 남편 레너드가 아내에게 느꼈음직한
감정이었을 것이죠.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끝말잇기처럼
연결해놓은 영화는,
세 여성의 삶이 맞물리는 간극이 점점 짧아지는
후반부 들어 더욱 격정적인 3중의 소용돌이에
빠져듭니다
클래리사는 파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리처드를 '다시' 찾아가지만, 그는 클래리사를 향해
에둘러 말하죠.
"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여는 건 침묵이
두려워서다. 남은 건 꼴난 자존심과 어리석음뿐.
한데...당신의 삶은 어디에 있는 거야?"
'빛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다' 며 창틀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리처드는, 행복했던 추억을 얘기하곤
클래리사가 보는 앞에서 그만 5층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맙니다.
" 당신과 함께한 그날 해변에서의 아침, 당신은
18살, 나는 19살였지. 살면서 그렇게 신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본 건 첨이었어.
우리도 한땐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었지. 지금껏
당신을 위해 살아왔으니 이젠 그만 놔주었으면 해."
너무 늦었지만... 리처드의 어머니 로라는 그의
죽음 소식을 전해준 클래리사 집으로 찾아옵니다.
서로 다르게 전개되던 시공간의 배경이 비로소
합일되는 순간으로, 로라는 클래리사에게
고백하죠.
"용서가 안 될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짓인...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였어요.
죽음같은 현실보다 미래의 삶을 택한 거죠..."
영화는 오프닝 처럼 버지니아 울프가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삶을 마감하는 신으로 그 막을
내립니다.
남편 레너드는 서재에서 그녀가 남긴 유서를
발견하죠.
" 삶을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맞서 싸우면서
내 삶의 의미가 뭔지 알았어요. 마침내 그걸 깨닫고
삶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제 그 삶 또한 접을 때가
된 거 같군요.
레너드, 우리가 함께 한 세월, 소중한 순간들,
영원히 그 사랑과 함께 항상 간직할게요.
우리의 '시간들'(the hours)을..."
1. 영화 < 디 아워스 - The Hours > 트레일러
- https://youtu.be/eyRzkVO7fZg-
https://youtu.be/CkPWXUxIiXs
소설 < 댈러웨이 부인 > 으로 인해 파생되고
또 연결되는 관계의 서사 < 디 아워스 > 는,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에서도 동일한
삶을 살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위로처럼
품어지기도 하고...
모든 것은 그 레플리카적 권태와 절망의 상태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저주처럼 짓눌려오기도 하는
중의적인 영화로 읽혀지죠.
그렇게, 달드리는 다른 세월 속을 살아가는
세 여성을 병렬, 교차시키면서 그들이 겪는
의식의 흐름과 무언의 연대감을 촘촘하게
메꿔나갑니다.
모든 재난과 이별이 심중에서만 일어나는
< 디 아워스 > 를 마주하며, 관객들은 예기치 않게
'즉흥 연주를 다시 즉흥 변주하는 주자' 를
구경하는 스릴에 사로잡히게 되죠.
당대에 이미 아방가르드로 간주된 작품을 변주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 다시 아트 시네마로
변용된 이 영화가,
위험천만한 세번의 공중돌기에서 살아남아
보여주는 우아한 착지는 그래서 거의
기적적 입니다.
하여 관객들은 '세 여자의 궤적은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 또 나와 그들은 어느 거리에서
마주칠 것인가'... 마음을 조이게 되죠.
영화는 시작하고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1941년 영국 이스트 서식스주 우즈강, 1951년
미국의 LA, 1923년 영국 리치몬드, 2001년
미국의 뉴욕' 하는 식으로...
아무런 설명없이, 또한 상호연관 관계를 짐작케
하는 그 어떤 장치도 없이 주인공들을 무작위로
등장시킵니다.
그들은 모두 문을 등지고 누워 있죠. 별안간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도 덜 당혹스러울 자세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데 그 대상이 옆의
남편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 어떤 여자를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이죠.
그리고 " 댈러웨이 부인은 직접 꽃을 사기로
했다 " 로 시작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속
첫 문장과 더불어,
이내 바뀐 화면은 침대에 앉아 소설책을 펴고
이 구절을 읽는 로라를 조명합니다.
다시 화면은 오버랩되며 이번에는 룸메이트
샐리(앨리슨 재니 분)에게 "꽃을 사야겠어" 라고
말하는 클래리사를 비추죠.
꽃과 꽃병은 비록 세 여인의 서로 다른 공간에
담겨지지만...
'동일한' 자세와 행동, 오브제들을 공유하는
그녀들이야말로 각자 속해있는 시공간을 초월해
'동질의' 삶의 조건에 처해있는 당사자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과
엮여진 세 여성들은 결국 단 하루로 매듭지워진,
같은 세월을 살아가죠.
가슴 속 깊이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고 실패한
사랑을 근근이 가린 채, 행복을 가장하며
말입니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버지니아와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은 죽음의 유혹에 절박하게 이끌리게
되죠.
버지니아가 강물에 투신했을 때, 그녀의 구두는
벗겨지지만 화면에 클로즈업된 결혼반지는
단단히 그녀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 디 아워스 > 의 주제를 아우르는
계시와도 같이 여겨지죠.
버지니아는 댈러웨이 부인의 죽음 설정에 대해
치열하게 갈등합니다.
" 바로 오늘... 많은 날 중 그녀의 운명이 정해진다.
댈러웨이는 죽어야 해. 아주 사소한 이유로
목숨을 끊는 걸로 하자..."
그러나 버지니아는 마음을 바꿉니다. 댈러웨이
대신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 순간... 죽음의 강물에 한쪽 발을 담궜던 로라
역시 자살을 포기합니다.
남편 레너드는 묻죠. " 왜 꼭 누군가가 죽어야만
해?"
버지니아는 명쾌하게 답합니다. " 남겨진 사람들이
삶의 소중함에 감사해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대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토록 원하던 죽음 쪽으로 얼굴을 파묻음으로써
그녀는 겉껍질의 자아에선 벗어날 수 있지만, 결코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관계를
지울 수는 없어 보입니다만...
영화 < 디 아워스 > 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진 굴레가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죠.
오히려 후대에 이르면 적어도 외형적으론 이러한
사회적 억압은 점점 더 엷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클래리사는 버지니아가 꿈꿀 수도 없는 동성애
애인이 있고, 로라 또한 버지니아와 달리 가출을
하거나 이혼할 수 있는 삶을 누리죠.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자기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파티를 열고, 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호텔에 가서
자살을 결행하려 듭니다.
버지니아는 레너드를 향해 격정적으로 토로할
뿐이죠.
"그래도 그 '시간들' 은 남아 있어. 그렇지 않아?
하나의 시간, 그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그
시간들을 당신이 다 견뎌낸다고 해도 또 그런
시간이 있는 거야. 세상에, 또 그런 시간이라니.
지긋지긋해!"
극중 세 여자는 그렇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솔로로 들려주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피조물 '댈러웨이 부인'을
제4의 여인으로 등장시켜 묵직한 통주저음을
합주하게 만들죠('디 아워스' 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 의 가제).
마치 소설가 버지니아가 펜을 잡으면, 독자인
로라가 그 구절을 소리내어 낭독하고, 편집자
클래리사는 그 장면을 직접 연기하는
프레임처럼,
독주악기의 단선율 대신 세 개의 악기로
콜라보되는 3중주의 화음같은 삶으로 변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달드리는 매혹적인 교차편집으로 마치 세 여성이
동시에 같은 날을 사는 것처럼 담아내죠.
이때 나타나는 영상 이미지의 유사성과
반복성은 < 디 아워스 > 의 가장 큰 개성으로
새겨집니다.
한데, 세 여성들이 준비하는 파티는 분열된
내면의식을 연결하고, 또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소통시키는 일종의 상징적 의식으로
펼쳐지죠.
파티를 위해 그들이 마련하는 음식은 자아의
확장, 즉 세 여인들 내면의 심리상태를 함축하는
반면,
파티의 방문객은 주인공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 원하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해주는
역할로 설정되는 구도로 말입니다.
영화 전편에 스며있는 동성애적인 코드 또한
고정된 성 정체성을 거부하고 자유를 열망하는
주인공들의 내면의식을 암유합니다만...
영화 < 디 아워스 > 의 가장 큰 미덕은 영상적
이미지의 병치와 변주를 통해 세 여성의 같거나,
또 다른 정서와 심리상태를 마주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죠.
- https://youtu.be/eyRzkVO7fZg
< 디 아워스 > 는 모든 시네마적 요소의
어우러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원작 소설,
데이비드 헤어의 군더더기 없는 각색, 무엇보다도
피터 보일의 사유적인 편집과 스티븐 달드리의
진중한 연출까지...
카메라는 인물간의 심리적 거리를 정치하게
감지하고, 컷과 컷 사이에선 과거와 현재가
자유로이 넘나들죠.
긴 인생의 단 '하루', 그 단 하루에 쓸어 담겨진
'평생'...
스티븐 달드리는 시간을 생포하는 영화만의
예민한 손가락을 악기삼아 세 줄기의 멜로디를
빠른 스케르초의 리듬으로 바리아시옹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
< 댈러웨이 부인 > 에서 의식의 서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면...
스티븐 달드리는 < 디 아워스 > 를 통해 편집이
시간을 만들어내고, 시간이 의미를 창출해낸다는
영화교과서의 가르침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는
셈이죠.
달드리는 " 여자의 일생을 하루를 통해 보여주자.
딱 그날로..." 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독백을
영화 속 마법의 주문으로 삼습니다.
" 인간의 삶에서 이해해야 할 모든 건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 는 화두로 말이죠.
윤회를 거듭하는 것 같은 이들의 삶 속에서
영화는 그저 세월의 손을 들어줄 뿐입니다.
"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되풀이하듯 하루는 전 인생을 대변한다.
'삶이 지속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 라며,
스티븐 달드리는 낮의 햇살 속에 부단히 죽음의
밤 그림자를 끼워넣고 있죠.
버지니아, 로라, 또 클래리사는 화창한 아침을
반가이 맞지만, 그녀들 모두 속절없이 어두운
밤의 시간으로 스러져갑니다.
이들 세 여인은 영화가 은유하는 그 모든 허무한
이미지들의 윤무인... 작은 새의 죽음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도, 오직 '시간' 만이
승자라는 것을 감지하죠.
마침내 버지니아가 도도한 시간의 줄기인
강물에 몸을 내맡기듯이 말입니다.
2. < 디 아워스 > - 필립 클라스의 사운드트랙
: 피아노(Complete)
https://youtu.be/alO5sA0nYQA2-1.
'일상',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에 질식된
여자들의 반란이라 할까요...
스티븐 달드리는 각기 다른 하루를 통과하는
세 여성의 삶을 날실과 씨실로 엮어 이들의
'삶에 깃든 시간' 이란 카펫으로 직조해냈죠.
그는 여인의 고통으로부터 인간 실존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그 한순간을 위해 시간의 점프
컷을 통한 교차편집에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하여... 각각의 이야기들이 옵니버스적인 개별
장들에 의해 격리된 소설과는 달리, 영화 속
세 인물들과 시간선들은 자못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죠.
거울과 침대, 꽃병과 같은 여성의 일상 속 다양한
오브제와 함께 시공간을 넘나드는 세 여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
필립 글래스의 OST는 끈끈한 접착제처럼 유기적인
안정감과 통일성을 헌정해주고 있습니다.
듀나 링크가 평한 것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매정한 흐름을 묘사하는 데 글래스만큼
적절한 작곡가가 있을런지요?
글래스의 비인격적(?)인 음악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드라마 전편에 떼려야 뗄 수 없이
자연스런 '단순함' 으로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정서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단선적
음형의 무미건조한 선율은... 세 여성에게 지워진
비인간적인 삶의 굴레가 또 다른 삶에서도
무한 재생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운명을 떠올리게
하지요.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 세월 > 을 완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 디 아워스 > 의
사운드 트랙을 맡았던 필립 글래스 사이에선
흥미로운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작품의 전통적 기승전결 구조보다는 연속성에
관심을 쏟았던 예술가라는 것이죠.
무연스레 되풀이되는 글래스의 음악은 영화 속
세 여인의 삶을 꿰매주는 '실과 바늘' 같은
역할을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서 마이클 커닝햄의
작품이 창출되고, 또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통해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가 찬연한 아우라를 발하는
셈이죠.
2-1. 'The Poet Acts'
https://youtu.be/fca2oXLe9g4
2-2. 'Morning Passages'
https://youtu.be/5JfwoWbyb2U
2-3. 'Vanessa and the Changelings'
https://youtu.be/zmqR3xtolhE
2-4. 'I'm going to make a cake'
https://youtu.be/nfpuHdyYAi8
2-5. 'Dead Things'
https://youtu.be/nkGMV9AoU-o
2-6. 'The Kiss'
https://youtu.be/QcmsoYLjVXk
2-7. 'Why does someone have to die?'
https://youtu.be/fhy4f_MIFJg
2-8. 'Tearing herself away'
https://youtu.be/qxJqIW230lM
2-9. 'Escape!'
https://youtu.be/cbCu4Tg-hS4
2-10. 'Choosing Life'
https://youtu.be/wjztS3-LnPk
2-11. 'The Hours'
https://youtu.be/Wkof3nPK--Y
우수를 한껏 머금은 단조풍의 명징한 무한선율로
< 디 아워스 > 를 장중내내 적요하게 보좌해주는
필립 글래스의 피아노 스코어.
그의 미니멀리즘 음악은 버지니아가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던 우즈 강의 격랑만큼이나 한없는
처연함의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글래스의 전작들과 달리 상당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변주를 들려주죠.
튀지 않는 멜로디임에도, 순간순간 듣는 이를
격정적으로 만드는 환상의 사운드트랙으로
스며져옵니다.
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Vier Letze Lieder) 중 제3곡 '잠자리에 들 때'
(Beim Schlafengehen)
-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 조지 셀 지휘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m.youtube.com/watch?list=OLAK5uy_nM6fvKI1fbN4UAG6NMYuVZ3xhdOj_vIuU&v=Nxzwvwx-FCI&feature=youtu.be
필립 글래스의 스코어가 < 디 아워스 > 전편을
아우르는 가운데, 정통적인 클래식 가곡은 화면을
딱 한번 감싸안죠.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잠자리에 들 때'
입니다.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소프라노 솔로
곡으로, 여기에서 삶은 낮이며, '잠자리' 는 영원한
휴식, 곧 '죽음' 이 깃든 '밤' 으로 은유되죠.
이 노래를 듣노라면 황혼의 들녘에 앉아 지나온
삶을 고즈넉이 되돌아보는 노작곡가의 뒷모습이
떠올려집니다.
클래리사가 루이스의 방문을 맞이하는 그 순간...
스티븐 달드리는 그녀를 통해 왜 하필 이 노래를
틀게 했을까요.
고통스런 서사를 써내려가는 세 여성들, 그리고
리처드는 낮이라는 시간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클래리스와 로라는 살아남고 버지니아와 리처드는
죽음을 택하지만... 남겨진 이들의 시간이 떠나간
자들의 그것보다 편하고 또 자유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파티를 준비하는 즐거운 시간에도 죽음과 이별의
순간을 노래하는 슈트라우스의 가곡을 경청하는
클래리사 역시,
살아있는 열망의 낮... 환하지만 고통스러운
그 질곡의 시간들을 향해 작별을 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 李 忠 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