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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3주_건국전쟁과 파묘
요한복음 2:13-22
13.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다.
17.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18.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
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오늘은 수난절 제3주입니다. 그리고 3.1혁명 105주년 기념 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3·1 혁명은 일제의 강점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일어난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일 합병 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비폭력 만세 운동이었던 것이죠.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고종 독살설 소문을 계기로 고종의 장례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민족 대표 33인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지만, 직,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을 준비한 이들까지 합치면 민족 대표 48인으로도 부르기도 합니다. 독립 만세 운동은 약 3개월 가량 계속되었고, 조선 총독부는 군경을 동원하여 악랄하게 진압합니다.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 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900여명, 구속자가 4만 7천여 명이었습니다.
3.1 만세운동을 계기로 한 달 뒤인 1919년 4월 11일에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됩니다. 때문에 해방 후 대한민국 제헌 헌법은 3.1 운동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천명하게 되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수난절 3주 복음서 본문입니다. 소위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알려진 이야기죠. 이 사건은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에 모두 실려 있는데 그 시기가 좀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공생애 초창기에 하신 사건으로, 공관복음서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일으킨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만 기록할 뿐 요한복음 18-22에 있는 유대인들과의 논쟁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의 논쟁은 아마도 성전 경비와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과의 언쟁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한낱 순례자로 보이는 예수가 무슨 권리로 성전에서 난동을 부리는지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성전에서 이런 일들을 벌일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주겠소?" 하고 대들었다는 것입니다(18절). 이 구절은 그들이 예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많은 군중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이야기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는 따지고 드는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9절)"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20절)"라며 또 대들었죠.
여기까지가 선전 정화 사건의 전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께 표징을 요구했다는 일화는 공관복음에도 여러군데 실려 있지만(마가 8,11-12, 누가 11,16.29, 마태 12,38-39), 성전정화 사건과는 무관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은 성전정화 사건을 바라보는 요한복음 필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구절이입니다. 성전 정화 사건을 공생애 초기의 가나의 혼인 잔치 뒤에 배치한 것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 이야기와 유월절 성전 정화 사건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에 초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으로 말이죠.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열렸고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져서 곤경에 빠진 신랑과 하객들을 위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가서는 유월절 축제에서 부패한 성전을 정화하는 무서운 채찍을 드셨죠.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이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시사하고 있다면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시킨 사건은 다가올 심판에 대한 전조였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는 모든 악을 척결하실 것이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열릴 것임을 예고한 것이죠.
예루살렘 성전은 3번 건축되었고 3번 파괴되었습니다.
첫 번째 솔로몬 성전은 BC 957년 시작해 7년 동안 지어졌고 BC 587년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죠.
두 번째 성전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 총독 스룹바벨과 선지자 에스라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BC 536년 시작하여 BC 516년 완성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BC 169년 시리아 안티오커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세 번째 성전은 이두매 사람 헤롯이 대대적으로 증축한 성전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정치적 환심을 사려고 BC 20년 시작하였는데 헤롯 사후까지 80여 년 동안 건축되어 AD 64년 완성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공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해(AD 27년경)는 성전 증축 46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은 뿔뿔이 흩어졌죠.
요한복음의 필자는 예수와 유대인들이 ‘성전’에 대해 서로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께서는 당신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성전 건물을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21-22)“는 것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19절)”는 말씀 역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겠지만 예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을 뜻한다고 요한복음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보이는 건물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새로운 길을 만드시겠다는 말씀이었던 거죠. 제자들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서야 이 말씀이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짐승의 제사로는 죄를 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죽음오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즉 십자가 대속의 죽음만이 죄사함과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죠.
3.1절을 앞두고 일제 강점의 회한을 조명하게 하는 영화 두 편이 내걸렸습니다. <건국전쟁>과 <파묘>라는 영화입니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왜곡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승만을 건국 아버지라고, 독재자가 아니라고, 3.15부정선거가 이승만이 아닌 이기붕과 자유당 탓이라는 등 제헌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승만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죄악들, 친일청산 부정, 독립지사 살해와 탄압, 수 없는 양민학살, 독재와 부정부패 등 다 열거하기엔 너무도 많아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김덕영 감독이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항일독립?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파묘'의 흥행몰이를 두고 좌파들의 조직적 움직임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건국전쟁> 개봉 이후 보수언론과 기독교계, 윤정권은 이 영화를 통해 이승만 띄우기에 열을 올려왔습니다. 울산에서는 공무원을 동원하려다 반발을 사기도 했죠. 군인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는 지난해 전두화 쿠데타를 다룬 <서울의 봄>이 1,312만 명이 관람하는 초 성공을 거두자 총선을 앞두고 반공 이수를 만들고자 이승만 띄우기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흥행몰이에 찬물을 끼 얻는 영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파묘>입니다.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악령·악마 등을 주 소재로 다룬 영화)죠.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납니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합니다.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됩니다.
,파묘.의 장재현 감독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의 상처를 파묘하고 싶었다. 지난날의 아픔과 트라우마, 두려움들을 영화를 통해 모두 뽑아내고 싶었다. 풍수사들과 땅의 가치를 애기하다 보면 매번 ‘쇠침’에 다다랐다. 우리 땅의 과거 상처와 트라우마가 많은데 발톱의 티눈을 뽑듯 파묘해 버리고 싶었다. 반일(反日)은 안 도드라지게 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오컬트인 척, ‘우리 안의 악귀’ 파헤친 영화 ‘파묘’>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평을 합니다.
< 무엇을 위한 보국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다.
영화를 만든 감독 장재현(<검은 사제들> <사바하>)은 지난 몇 년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면서 그 내면(무덤 안) 깊숙이 큰 문제(악귀)가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시원은 미(未)청산이다. 깔끔하게 정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걸 놔두고, 놓아 주고, 감추고, 가리고, 가해자가 더 잘살게 해주고 했던 많은 일들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건 악령이나 귀신만큼 무서운 진실의 실체이자 존재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그같은 사회 정치 문제를 하루빨리 빼내고 굿을 펼쳐서 세상 밖으로 이장(移葬)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 안에 악귀 같은 병폐가 숨어 살아 숨 쉰다는 건 진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파묘’는 오컬트 공포영화지만 무서운 장면 때문에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우리 안에 담겨져 있는 공포의 실체를 새삼 느끼고 목격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역사적 공포심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여, 이 영화의 테마는 바로 “역사는 승리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옳은 자의 것이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한국은 오컬트 영화조차 역사가 올바른 자의 것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건 무서운 일이 아니라 정의로운 얘기이리라. ‘파묘’는 뜻밖에도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참고로 <건국전쟁>은 2월 1일 개봉한 이래 10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습니다. 반면 파묘는 2월 22일 개봉하여 29일까지 538만명이 관람했습니다.
저는 3.1절을 맞아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했던 일제의 만행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고발하는 <파묘>를 관람했습니다. 대사 중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으려 했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시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친일을 쉬쉬하였지만 윤석열 정권은 아예 대놓고 커밍아웃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아예 우리나라를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후진국으로 추락시키려 몸부림치는 것 같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죠.
극 중 파묘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독립운동가의 이름들입니다. 풍수사 김상덕(임정 국무위원), 무당 이화림(조선의용군)과 윤봉길, 장의사 고영근(독립협회 활동)도 독립운동가들과 동명이인입니다. 보국사 창건스님은 김원봉(의열단장), 친일로 돈을 쌓은 집안의 이름은 박지용인데 친일파 이지용을 상징하죠.
<파묘>에 등장하는 무덤은 임진왜란 때부터 일본 장군이 사망할 때 한반도의 허리에 박아 놓았던 쇠말뚝을 일제강점기에 몇몇 독립군들이 파묘해 일본장군의 정기를 없애려 하자, 일본이 그 위에 친일파 고위관료의 무덤으로 덮어버린 것입니다. 고위관료의 무덤은 파묘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죠. 오랜 세월 그 무덤 속에 있던 일본 장군의 혼령은 사물 속에 깃든 정령이 됩니다. 주인공들은 쇠말뚝을 제거하기로 결단하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정령의 정체를 알아차려 제거하는데 성공하죠. 이 땅의 정기를 끊으려고 뿌리 깊게 숨어 있던 토착 왜구들을 몰아낸 것이죠.
3.1혁명 105년이 되도록 친일파와 본일주의자, 토착왜구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이 땅을 좀먹어 왔습니다. “땅이야 땅, 우리 후손들이 밝고 살아가야 하는 땅이라고” 강조하는 김상덕의 대사는 쇠말뚝을 제거하여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다시는 식민의 아픔을 당하지 않는 당당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결의로 들립니다.
그동안 4.19혁명, 5.18민중항쟁, 6.10민주항쟁, 촛불혁명으로 일궈 온 민족정기를 다시 무너 뜨리려 획책하는 외세와 그에 동조하는 반민족 세력을 쇠말뚝 뽑아내듯 이제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채찍을 휘두르며 성전을 더럽히는 상인들을 쫓아냈듯이 말이죠.
3.1혁명 105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국민과 나라를 조롱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념식에 걸린 무대배경입니다. 무대배경은 예년과 달리 대형 문구로 대치되었습니다. 작은 글씨로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이라고 적힌 그 아래에는 큰 글씨로 ‘자’유를 향한 ‘위’대한 여정, ‘대’한민국 만세라고 세 줄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큰 글씨 세 줄의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자위대’라는 문구가 됩니다.
흔히 가로로 풀어쓴 글의 머리글자만 세로로 읽어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이른바 ‘세로 드립’은 풍자나 조롱 등의 뜻을 숨겨놓을 때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무대배경의 대형 문구에 ‘자위대’라는 문구를 일부러 넣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이건 우리 정부가 아니라 일본 정부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입니다.
기념사 역시 일본 찬양과 북한비판으로 도배하였습니다. 일본의 과오는 어떻게든 예쁘게 포장하고, 동족인 북한에 대해서는 온갖 부정적인 말로 비판하며 3.1혁명의 정신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죠. 자신들의 뿌리가 일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로 읽힙니다.
3.1혁명 105주년에 벌어진 두 영화의 대결은 총선을 앞둔 또 다른 독립전쟁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세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은 우리 스스로가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이 땅에 임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