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와 노인.
10월이 되니 노인과 참새가 생각난다.
가산면 학하리, 일명 학마을에 사는 어르신 한 분이 우리 면사무소 산업계로 뛰어 들어오셨다.
“보소, 산업계장! 우리 논에 참새 좀 쫓아주소. 벼농사가 잘됐는데 참새가 망쳐놓고 있소. 아니, 산불 진화차 사이렌 소리라도 틀어 주소.”
나는 공무원을 20년 넘게 했어도 논에 참새를 쫒아달라는 민원은 처음 이었다.
“아, 산업계장이 나와서 보기라도 해야지!”
“예,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제가 곧 나가겠습니다.”
잠시 서류를 정리한 뒤 산불 진화차를 타고 학마을로 향했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누렇게 익은 벼가 만경창파처럼 펼쳐져 있었다. 들판에는 참새뿐만 아니라 까치, 까마귀, 황새, 두루미, 학 등 온갖 새들이 날아다녔다.
어르신의 논이 있는 곳은 가산면의 곡창지대 학하리다. 저수지 바로 아래에 있는 논이라 물 걱정 없이 벼농사가 잘되는 곳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정말 깜짝 놀랐다. 논 옆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고, 어르신은 할머니가 가져다주는 식사를 드시며 참새를 쫓고 계셨다.
논을 둘러보니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논 둘레에는 긴 줄을 이어 놓고, 그 줄에 돌을 넣은 깡통을 매달아 놓았다. 어르신은 꽹과리를 두드리며 참새를 쫓고 계셨다. 그렇게 애를 쓰는데도 참새들은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물러났다가 또 앉고 또 앉고 했다.
그래도 우리가 현장에 나오니 반가우셨는지 어르신은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산불 진화차의 사이렌을 울려 참새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다.
한참을 함께 있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어르신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자전거를 타고 가신 어르신을 따라 조금 가니 마을이 나왔다. 어르신의 집은 곳간이 딸린 전통 한옥이었다. 어르신은 우리에게 감을 내놓으셨다.
우리는 감으로 허기를 달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 앞으로 자주 나오겠습니다. 그런데 천막에서 주무시지는 마세요. 그러다 감기 걸리십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2~3일이 지났을 때였다. 젊은 남자 한 명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신청하러 왔다. 신청서에 적힌 필지와 소유자 이름을 살펴보니 며칠 전 참새를 쫓던 그 어르신의 토지였다. 전체 토지의 절반이 적혀 있었고, 취득 사유는 증여였다.
그는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 또 다른 젊은 남자가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신청하러 왔다. 이번에도 어르신 소유 토지의 나머지 절반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남자는 동생으로 보였는데, 행동이 어딘가 건방지고 무례했다. 한마디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 마땅치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아들을 잘못 키우셨구나.'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서류를 받아 주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노인에 관한 것이다.
아직 건강하게 농사를 짓고 계신 어르신이 왜 이렇게 일찍 아들들에게 재산을 증여하셨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평생 땀 흘려 일군 농지를 아들들에게 모두 물려주고 나면, 어르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까.
농지는 아들들 명의로 바뀌었지만, 농사는 여전히 어르신이 짓고 계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들들에게서 그만한 대우는 받고 계실까. 혹시 재산을 모두 물려준 뒤에는 지금과 달리 홀대받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들들이 아버지를 잘 모시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르신이 논에서 참새를 쫓으며 고생하시던 모습과 다음 날 찾아온 아들의 무례한 태도가 자꾸만 겹쳐 떠올랐다.
어르신께서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먼저 챙기셨으면 좋겠다.
평생 고생하며 일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마음이야 부모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산을 물려준 뒤에도 부모로서 존중받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참새를 쫓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어르신 자신의 건강을 챙기셨으면 한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준 뒤 홀로 남겨진 천막이 노인의 침실이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그곳이 무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