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성인과 함께한 시간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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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에 걸쳐 당고개 순교성지 공사에 참여한 화가 심순화씨가 성지 순교성인 현양탑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지난 4년은 당고개 순교성인들이 겪었을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분들의 숭고한 믿음과 함께한 은총의 시간이었어요."
한국화가 심순화(가타리나, 49)씨에게 서울 당고개 순교성지는 1752㎡(약 530평)짜리 초대형 '캔버스'였다. 심씨는 그 캔버스에 한국 순교자들의 얼을 놀라우리만치 섬세하게 담아냈다.
성지 담당 권철호(삼각지본당 주임) 신부와 힘을 합쳐 서울에서 3번째로 많은 성인을 배출한 순교터를 '어머니 품' 같은 성지로 바꿔놓은 심씨는 "순교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지만,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작업은 한없이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기와지붕을 얹은 고택(古宅)을 중심으로 10명의 순교자들이 '어머니 품'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따뜻한 공간을 조성했다. 순교 성인을 상징하는 찔레꽃과 매화, 목칼 등이 기해박해(1839년) 당시 순교자들 넋을 대변한다. 그는 순교자들의 고통보다는 그들이 하늘에서 신앙 후손인 우리를 감싸주는 모성적 사랑을 표현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찔레꽃은 원래 하얗죠. 하지만 순교 성인들을 상징하는 그림 속 찔레꽃은 빨갛습니다. 지하성전 한지 유리화에 그린 하얀 매화는 성인들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는 흰도자기 파편과 옹기조각으로도 성인들의 맑은 순교정신과 삶을 표현했다. 기와조각을 퍼즐 맞춰넣듯 담장에 붙여 매화꽃을 완성했다. 그는 도자기와 기와조각을 구하느라 지방 교우촌과 성지를 수없이 찾아다녔다.
작업 초기에는 담장 한 곳을 완성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 공사 인부들이 와편과 옹기조각으로 매화꽃을 그리는 이유를 몰랐기에 그가 밑그림을 그리고 24시간 붙어다니며 설명해야 했다.
"잠시 붓을 놓고 있을 때도 성인들 고통을 계속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당고개 작업은 한국교회를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작업실을 아예 삼각지성당 구내로 옮겨놓고 성지 작업을 했다. 작업실에는 순교성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아픔을 표현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기도한 흔적이 역력하다. 성전 한지 유리화 한 장을 그려내는데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붓을 내려놓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다시 붓을 들고, 잠시 뒤 또 멈추고….
벌써부터 성지를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구석구석에 깃든 성인들 넋을 들여다보느라 순례객 눈길이 바쁘다. 권 신부와 심씨는 "건축물이 완성된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성인 한 분 한 분에 대한 기도문과 성물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원인 심씨는 한국 전통미와 정서가 충만한 성화를 그리는 작가로 이름나 있다. 그는 2007년 작품 '평화'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봉정한 바 있다. 프랑스 루르드성지 대성당에도 성모자 성화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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