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6년도 1월.「Eastern Summit」호에 승선 임명을 받았다. 전년도 「Eastern Splender」호와 꼭 같은 크기와 구조의 쌍둥이선으로 선주(Owner)도 같았다. 아마도 전년도 선주(Owner)측 Mr. Tse(쎄) 영감님이 나를 괜찮게 평가를 한 모양인지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1월 21일 17시에 부산 국제선 부두를 출항하는 ‘부관(釜關)페리’로 3명이 출발했다.
애들 셋이 따라 나섰다. 이젠 그들의 무게도 점점 늘어간다. 비행기가 아니었기에 서도(書道)용 종이 뭉치와 건반악기(Keyboard)까지 싸 들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그냥 가져가 본다. 악기(樂器)는 작년에 사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인데 입국할 때 통관이 안 되어 세관에 유치되었다가 입찰을 보아 정식으로 구입한 것이다. 그래도 적적할 때 흘러간 노래라도 한 곡조 타보면 마음의 위로도 안정도 얻을 수 있었다. 횟수를 늘여 감에 따라 마치 우시장(牛市場)에 끌려가는 소 같은 표정도 느낌도 자꾸만 감추어야 한다. 끝낼 때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었다.
자주 타던 곡은 '눈물젖은 두만강' 외 몇곡이 있었다
목적지는 부관페리의 도착지점인 일본 시모노세끼(下關)에서 해협만 건너면 되는 키타큐우슈시(北九州市)에 있는 야하타(八幡)제철소였다.
으시시하고 추웠다. 역시나 꾸린 중국사람들이였다. 직접 찾아가라고 했다. Mr.Tse가 내 실력(?)을 가늠하기에 경비 절감을 위해 선주 대리점을 지정하지 않은 듯 싶었다.
과연 세계 제1의 제철소였다. 거창한 규모였다. 제철소 내에 부두가 구역별로 나뉘어 있어 철의 원료인 철광석을 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산품을 적재, 세계 각국으로 실어 나가도록 되어 있다. 지금은 기념 역사관만 남기고 공장은 없어졌는데, 일본이 막부(幕府)에서 명치(明治)시대에 걸친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일본 역사의 발자취를 증언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야하다제철소의 옛모습. 가운데 건물이 지금 유네스코에 등제된 체 남아있다(빌려온 사진)
정문(正門)의 검문에서 걸렸다. 크기도 하지만 복잡하기도 한 거대한 문이었다. 증명서가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이곳 부두에서 당신의 제품을 싣고 있는 선박의 선장”이라고 해도 자기들로선 연락을 받은 바 없다는 대답이다. 역시 대리점이 없기에 사전 연락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럼 당신들이 담당 부서에 문의해 보소.” 했다. 한참 걸렸다. 확인이 되자 태도가 돌변했다. 거수 경례를 척 붙이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불찰은 선주측 잘못인데도……. 그리고는 자기네들 차로 본선까지 데려다 주었다.
선주인 HK(홍콩) Fortuna의 Mr.Tung과 두 번 전화, 선창(船艙) 청소(Hold Cleaning), P&I Survey(선박보험검사) 등의 문제였으나 명확한 결론도 없이 맥빠진 소리만 하다가 말았다.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될 일인 듯 했다. 앞으로 갈수록 해외 선원수출 상황이 어려워져 간다는 여건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가고카와(加古川), 오사카(大阪) 요코하마(横浜) 등 여러 항구를 거쳤다. 규모야 어떻든 제철소가 있는 곳이다. 마지막 적하항인 요코하마항(横浜港)에서 선적(船積)을 마쳤다. 그야말로 만선(滿船:Full Loading)이다. 화물 전부가 철강제품(Steel Products)이다. 선체와 화물이 모두 쇳덩이란 소리다. 부피는 선창의 절반도 안 되지만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까지 자물자물하게 찼다. 만약에 어떤 이유로 선창에 해수가 유입된다면 마치 돌맹이처럼 바닷속으로 뽀로록 가라앉을 판이다. 선저과중(bottom heavy) 상태를 피하기 위해 갑판 위에는 컨테이너도 적당히 얹었다. 태평양을 넘어 미국항으로, 그것도 저속(Slow Speed)으로 건너 가야 한다니 아득하기만 했다.
선박 자체가 강철 구조인데다 같은 철제품 화물이기 때문에 만약에 조금이라도 서로 부딪치는 일이 있으면 그 소리는 통째로 선체의 뼈대를 타고 구석구석을 울리며 선박 전체를 진동시킨다. 적재 작업은 육상의 인부들 몫이지만 제대로 완벽한지를 확인하는 것은 본선의 갑판장과 일등항해사의 직무에 속한다.
철강제품들 왼쪽부터 코일. 강판. 철사 등(빌려온 사진들)
철제품 가운데 ‘coil(코일)’이란 것이 있다. 가끔 길에서 길다란 평판 트럭에 철판을 동그랗게 말아 강철테로 묶은 것을 싣고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달랑 한 개인데 트럭은 길쑴하고 크다. 그만큼 무게가 무겁다는 의미다. 종류도 무게도 다양하다. 한 개가 수십 톤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것을 실을 때는 선체의 기울임에도 움직이지 않게 야무지게 묶는다. 이것을 고박(固縛:lashing)이라는데, 아래는 삼각 받침대를 공구고 옆으로는 선체와 바로 묶는다.
코일 제품은 주로 자동차, 가전제품, 건축자재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각종 도금강판의 중간소재로 사용되는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둥글기 때문에 취급할 때 자칫 구르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2월 19일 오전 09:00 출항했다. 해면(海面)에 얕게 깔린 짙은 안개, 그리고 찔끔거리는 비, 느닷없이 닥치는 한때의 돌개바람, 모두가 심란하게 한다. 육중한 선체가 물에 떠서 움직이는 것도 새삼 신기했다. 이처럼 만재(滿載) 하기는, 1978년도 히로시마마루(宏島丸) 승선 중, 스페인 라스말마스항에서 일본까지 항해시 예비부력 200여 톤을 남기고 만재한 이후 처음이다. 과연 무사히 건너 뛸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을 갖자. 모든 것을 내 스스로의 최선(Doing Best)에 맡기고-.
하루,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자신의 성역부터 정리를 마친 시점인데 슬슬 바람과 파도가 일어난다. 일본 연안에 이 계절에 자주 발생하는 저기압의 영향이다. 이게 3일간 연이어 바다를 홀랑 뒤집었다. 곤혹과 번민과 시달림의 시간. 곧 악몽의 연속이었다. 난생 처음 두려움을 겪었다. 선수(船首)가 마치 잠수함처럼 파도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겨우 솟아오른다. 어떻게 해서 그 황파(荒波) 속을 헤쳐 왔는지 기억이 없다. 그냥 시간에 맡기고 자연에 순응할 따름이었다. 도력 높은 도사(道士)도 아닌 내가 무슨 놈의 신통한 술법이 있으랴. 아무 소용은 없었지만, 입속으로 하느님, 부처님, 용왕님, 조상님…… 들만 들볶았다. 겨우 바람을 제 길로 보낸 뒤에도 여파(餘波)로 반나절을 여전히 20여 도씩 좌우로 흔들림에 시달렸다. 이제 만성이 된 듯도 하다만 겁도 나고 싫어진다. 내 일상과 사고 등 모든 것이 멈췄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어떤 일이건 깊이 알수록 어렵고 두렵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겠다. 바닥에 붙어 있지 않은 것은 모두 싹쓸이로 넘어졌고 딩굴었다. 시간이 언제 어떻게 흘렀고 언제 먹고 언제 잤는지? 그러면서도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을 5권째나 더듬었다. 스스로도 용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먹을 것은 먹었고 쌀 것은 쌌다. 미친듯한 해상이 자연현상이라면, 먹고 뱉는 것 또한 인체의 섭리가 아닌가? 생각처럼, 그 무거운 기계가 흔들림 속에서도 움직여 준 것도 오히려 이상스럽다.
부관페리(옛 관부연락선)의 출발지인 시모노세끼와 기타큐슈
다시 가게문을 열었다. 신장개업하는 기분이다. 물잔받이도 만들고 연필꽂이도 다시 붙이고 의자도 붙들어 맸다. 역시 인간의 간사한 마음은 그 사이에도 면역을 살아 일으키고, 시간과 함께 괴롭던 순간들을 망각의 저쪽으로 옮겨주고 있다. 아무래도 로스 엔제레스(Los Angeles)까지는 불가능하겠다고 여길만큼의 그 불안과 초조가 차츰 얇은 색을 띄고 허물어져 감과 동시에 새로운 색깔의 희망과 가능성이 고갤쳐든다. 그러나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하루만 지연(Delay)가 생겨도 연료유(Bunker)가 바닥이 날 만큼 절박한 사정을 않은 체 15일이나 남았다. 그렇군! 따져보니 이제 겨우 4일째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정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아이구!
일요일,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어디선가 쿵쿵, 쾅쾅 하는 굉음이 울린다. 마치 파도만큼이나 큰 망치로 옆구리를 치는 듯한 소리다. 다시 바짝 긴장했다. 선체의 로링(rolling)을 고려하면 분명히 중량화물(Heavy Cargo)의 고박(lashing) 장치가 풀렸거나 끊어져 움직이는 것이다. 갑판상에서 가늠하면 2번 선창(Hold)의 좌현(左舷)인 듯했다. 갑판장과 일등항해사가 직접 들어가 현장을 확인하게 했다.
역시 코일(Coil) 한 개가 제자리서 그냥 까딱까닥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전체의 울림은 마치 당장이라도 외판이 뚫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그 한 개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한 주변의 다른 화물에 끼칠 영향과 상태이다. 한번 생긴 유격은 그냥 두면 커지고 결국은 옆의 잠자는 것들을 두들겨 깨우듯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통신장에게 최근 기상도를 받아 주변의 날씨부터 점검하고, 뒤따라 오는 또 다른 저기압을 고려하며 일등항해사의 지휘하에 갑판부 전원이 참여하여 고박작업에 돌입했다. 통상 갑판 위의 것은 수시로 확인하지만 선창 안의 것은 하지 않는다.
선창 안에는 조명등이 없기에 큼직한 작업등을 곳곳에 배치하고 무선전화기를 옆구리에 차게 했다. 그러나 양상(洋上)에서 선창 덮개(Hatch cover)를 열 수가 없어 교신이 끊어지기에, 작은 출입구에서 중계자를 비치해야 통화가 가능했다. 선교에서는 파도의 방향을 보며 최대한 횡요(橫搖:옆으로 기울임)가 적도록 선속과 코스를 내가 직접 조선(操船)하기로 했다. 코일이 제자리에 갔을 때 준비하고 기다리다 큼직한 삼각 받침대부터 밀어 넣고 새로운 와이어로프(wire rope:철강색)로 쬐는 것이다. 그러나 응급조치일 뿐이다. 뒷따라 오는 저기압에 전 신경이 곤두선다. 뭣에 놀란 놈이 솟뚜껑에 놀라듯이-. 전원이 땀에 젖어 올라왔다. 선창 내부가 더워서가 아니고 위험에 대처한 긴장감 때문이었다. 도착항인 L.A(로스 엔젤레스)까지의 항로가 너무 멀었다.
타이타닉호와 세월호(빌려온 사진들임)
선박의 대형사고 중 침몰(沈沒)과 전복(顚覆)이 있다. 침몰은 충돌이나, 좌초 또는 다른 이유로 선창에 해수가 침수하여 가라앉는 것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대서양을 건너던 ‘타이타닉호’가 유빙과 부딛쳐 선체 외판이 찢어져 선창에 해수 유입으로 침몰한 사고이며, 전복(顚覆)은 선박의 무게중심이 부력중심보다 위에 있어 뒤집히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세월호’가 대표적인 예이다.
항해 중인 선박이 소리없이 사라지는 경우는 대부분 침몰이 원인으로 선체의 동요로 고박이 풀리거나 끊어져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전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항해중 매일매일 그 상태를 점검하고 쬐는 일이 갑판부 선원의 임무이다.
래싱(고박)은 중뿔나게 특별한 기술이 아니고 큰 힘도 들지 않는다. 이것은 초보적인 자도 잘 보면 할 수 있는 안전 상식이지만, 이 별것 아닌 것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수가 있다.
대양을 누비는 선박들의 적하(積荷)와 양하(揚何)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각각의 화물 중량 ‧부피‧모양부터 양하지, 그리고 입항지에서 내리고 실을 때마다 감항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까지 빈틈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컴퓨터로 자동 계산되는 걸로 알고 있다.
내 성격이 내성적, 즉 소심한 타입이다.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적당히, 담당자의 보고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넘어가지 않았다. 어떤 땐 지나치다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얼렁뚱땅 하지 않은 것만은 옳았다는 판단이다. 마음의 에너지 소모가 엄청 들었지만 그 결과는 분명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 문제에서도 그랬다. 가령 함께 한 승무원들의 가정, 심적 문제도 세심한 배려, 오래토록 마음을 같이 나눔으로서 그들은 물론 내 자신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예측이 가능했던 어떤 사고의 결과가 없었다는 것은, 미리 예방된 것들이라 가늠한다. 20여 년간 승선중 큰 사고없이 잘 버티어 온 것은 바로 그 소심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군인으로 본다면 덕장(德將)이었다고들 주위에선 얘기했다.

첫댓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프로세계의 항로와 항해사님들이 ,
전개하는 책임감과 자연에 순응해 가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아무래도 강건한 체력과 정신력의 승리라고 봅니다.
운과 타이밍도 절묘한 젊은과정! 오죽하면 코리언이라고 하겠습니까!
근데 선배 님의 기억력과 상황 전달력이 부럽내요!
건강하이소!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안전을 위하여 철저한 점검과 조치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선장님의 노고를 치하 드립니다. 지금은 서재에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쓰시고 계시니...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엄지 척
외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