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옛
모습과 지금
▲ 강남에서 바라본 강남북의
야경
▲ 강북에서 찍은 강남 사진
일반적으로 강남하면 강남 갔던 제비를 연상하게
되고
제비가 간다는 강남은 중국의 화남을 가리키는데
양쯔강 이남 지역으로
푸젠성,
광둥성, 광시장족 자치구가 포함된 지역을 말합니다.
이곳은 날씨가 따뜻하고 먹이도 풍부해서 제비를
비롯한 철새들이
서울의 강남은 한강
이남의
동부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 강동구 등의 지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강남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전에는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永東)이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었지요.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의 강남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뜻하며
좀 더 좁힌다면
강남구와 서초구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강남역 또는 강남역 사거리 라는 말과
함께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에 형성된 상권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사실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1963년 1월 서울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광주군,
시흥군, 고양군에 속해 있는 농촌 지역이었지요. 영동은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를 일컫는데 과거에는 논과 밭, 과수원
그리고 낮은 야산으로 이루워진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어요.
영동지구 개발이 진행된 배경에는 강북의
인구가 6백만명이 넘어서면서
“강북의 인구 집중 억제”정책이 필요했고 또
정치적으로 북한에서 언제
대공포를 쏠 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므로 북의
대공포 사정거리가 미치지 않는
강남 지역에 인구를 분산시키는 개발 정책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1970년 11월 영동
1지구 472만평, 2지구 365만평에 대한 개발 계획이
발표되었고
1973년 6월에는 영동지역 약 1,000만평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지요.
이때부터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던 강남이 지금은
우리나라 최대의
그럼 먼저 강남의 옛 사진들을 한번 구경해
볼까요?
▲ 제3한강교가
건설되기 전 한남동에서 강남 신사동을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나룻배.
1962. 8. 13. ...
▲ 강남 신사동쪽에서 출발한 나룻배가 한남동 나룻터를 향하고
있다.
▲ 1969.12. 26
제3한강교 개통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 마지막
나룻배.
▲ 제3한강교 공사가
시작되는 현장 1966년....
▲ 제3한강교
공사(현 한남대교) 1969년 ...
▲ 신사동과 한남동을 연결하는 제3
한강교 모습 ...
▲
제3한강교(한남대교)
1969년12월25일 개통
...
▲ 제3한강교가
개통되고 강남구 삼성동 일대. 1970년 모습,
영동개발계획의 첫 삽을 뜬 후 삼성동에서
강남사거리로 이어지는 도로의 윤곽은
들어나 있지만, 아직
그 주변에는 농가와 작은 야산과 논, 밭이 그대로인 농촌
모습이었습니다.
60년대 산업화·도시화를 거치면서 서울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러다 보니 강북 도심의 팽창·과밀화로 주택이 부족해지면서 강북쪽에는 주택을 지을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자연히 한강 이남쪽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북지역은 도시로서의 기능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지만,
강 건너 강남은 행정상으로만 서울이지 도시
기능이 전무한 농촌마을 이었지요.
게다가 강남을 가려면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강남으로 인구를 분산시킬려면 우선적으로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 다리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이 문제가 되었지요.
하지만 군사적으로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6.25 전쟁을 거울삼아 한강에 다리를 놓기로 결심하고
다각도로 연구한 끝에 독일에서 빌려준 차관을
이용하여 한강의 3번째 다리인
제3
한강교(한남대교)를 건설하게 되었으며 이는 강남개발과 군사적 목적도 내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 하네요.
1971년 영동토지구획 정리사업 시행으로 영동지구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황량한 벌판인 이 지역을 시가지로 만들기 위해
강북을 억제하고 강남개발을
촉진하는 다양한 서울시 정책이
펼쳐졌지요. 공무원아파트 건설, 공공기관 이전, 명문학교와
고속버스터미널의 강남 이전,
유흥업소 강남 이전시 취득세 감면,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한 압구정, 반포, 청담,
도곡동 일대를 아파트 지구로 신설하면서
건설사에 많은 혜택을 주었어요.
계획대로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건설(69년
완공)되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70년 완공)되면서
서울은 빠른 속도로 강남으로 뻗어나가며
강남개발을 본격화하였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전역과
수도 서울울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조국
근대화의 핵심적 역활을 하는 그런 다리가 되었어요.
다시 말해
영동지구(강남) 개발은 도시 분산과 국가 안보가 맞물려 이루어진 국가
사업이었지요. 또한 서울시 통계연감에 따르면
1962년 326만명 이였던 서울의 인구가 1966년
380만명,
1970년
478만명, 1972년 600만명으로 급격히 불어났어요.
이로 인해 교통난,
주택난 등 주거환경이 악화되고 인구를 분산해야 하는 필요성이 절대적이었지요.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수도 서울을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젊고 패기찬 인재를 찾던 중
불과 40세인 육사
출신 김현옥씨를 발탁하고 서울 기본도시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어요.
김현욱 시장은 불도져 식으로 밀고나가 지시
받은지 불과 6개월 만에 강남 개발 계획을 포함해
서울시개발 청사진을 제시했지요.
이 계획은 워낙 급조돼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서울시 개발계획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하네요. 아무튼 젊고 패기 넘치는 불도져 김현옥 시장은
모든 것을 일사철리로 밀어 붙였으며
그로인해 강남개발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
했지요.
▲ 박정희 대통령의 도시계획 모형전시관 관람
모습. 1969년 ...
▲ 고속도로 건설현장
...
▲ 경부 고속도로 건설현장
...
▲ 경부 고속도로 공사현장
1968년 10월 15일
...
▲ 서울-대전간
고속도로 개통 69.12.10 ...
▲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
▲ 개통당시의 경부고속도로
...박정희 정권은 당시로서는 단군 이래 최대 토건사업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준공하게 되면서 강남 개발은
자연스레 가속도가 붙었지요.
그러나
1968년 2월에 착공해 1970년 7월
7일 전구간이 개통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건설비 재원부족으로 정부는 적지않은 고통을
겪어야 했어요.
물론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도 있었지만 이것에만
의존할 수 없어 이를 위한 타개책으로
토지 판매를 목적으로 공사자금을 충당하는
“토지구획정리사업법” 을 만들었지요.
제일 먼저 강남지역 땅
900만평이 대상 지역으로 지정됐어요.
훗날 이것이 강남 땅값 폭등의 단초가 제공된
것이지요.
정부와 서울시는 토지구획정리로 확보한 체비지
매각을 통해 재원을 충당하였고
처음에는 체비지를 팔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을
내놓았어요.
1973년에는 영동지구를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해
강남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종 면세 혜택을 부여 하였으며 각종 특혜를
주었지요.
돈있는 사람들을 강남으로 이주 시키기 위한
유인책 이었지요.
이를 위해 당초 도심을 관통할
지하철 2호선 노선을
당시로는 서울 인구
20%도 못미치는 강남순환선으로 변경했어요. 그리고 재학생과 졸업생의 반대가 끊이지 않았지만 강북
도심에 있던 경기고, 휘문고, 서울고 등
이른바 정통 명문
9개교를 1976년 부터 순차적으로 강남구와 서초구로 이전시켰지요. 이로 인해
이른바 8학군이 강남에 형성된 것이지요.
그로부터 2년도 안되어
경부고속도로 주변부터 땅값 폭등이 시작됐어요.
실례로
말죽거리(양재동) 3.3㎡(평)당 땅값이
100~200원 이었으나
1년도 안돼
2.000~3.000원으로 껑충 뛰었지요.
그래서 일찍 강남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떼부자가
되었다 하네요.
▲ 영동지구 개발 기공식에 참석해 착공
스위치를 누르는 정일권 국무총리와
양택식 서울시장 1970.8.13
...
▲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근.
1970년대초 ...
▲ 농촌 모습과 개발 과정이 혼재된 강남구
초기 모습 ...
▲ 사라진 잠실 신천 나루터와
나룻배(차배).1970년 ...
▲ 영동지구 공사현장
...
▲ 오른쪽 건물이 경기고등학교
...
▲ 영동 신시가지 사업장 현장
모습. 1970년 12월 ...
▲ 영동지구개발 촉진책의 하나로 논현동에
들어선
공무원
아파트(앞,뒤).1971년.
▲ 공무원아파트 준공
모습(뒤편). 1971년 12월
...
▲
영동지구(논현동)에 맨처음 완공된 공무원 아파트.
1971년...
▲ 반포아파트 와 강남 지역이 한 눈에
보이네요. 1972년 5월 25일
...
▲ 잠실대교 개통.
1972년 7월 1일 ...
▲ 잠실대교와 잠실 지역 모습.
1972년..
▲ 삼성동 코엑스 자리,
멀리 보이는 돔형 건물은 잠실 학생체육관.
▲ 잠수교 건설 착공.
1975년 9월 5일...
▲ 강북 사람들의 강남고속터미널 이용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착공한지
10개월만인
1976년 7월 15일 완공된 잠수교
...
▲ 개발전 방배동과 반포아파트 건설
모습 ...
▲ 청담동 시영주택
...
▲ 청담동 시영주택.
그 너머에 영동교 공사가 진행중.
인상적이네요.
1978년.
▲ 잠실 성내천의 옛 모습.
1970년대말 ...
▲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주변.
1980년대초...
▲ 강남역 사거리.
1980년대초. 뉴욕제과 건물이 보이네요...
▲ 은마
아파트...
▲ 한보 주택에서 분양 중인 대치동 은마
아파트. 1982.02.10. ...
▲ 강남구 개포동.
1982년...
그후 80년대초 이뤄진
개포지구 개발을 마지막으로 대규모 강남개발계획은 끝이 났지요.
이후에는 지역을
확장하지
않고 기존 서울(강남)지역을 재개발, 재건축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바뀌었지요.
이와 함께 강남은 문화도시 기능을 추가하면서 주거중심 도시에서
자족적 도시로 완성됐으며 삼성동 일대에
한국종합무역센터, 공항터미널 등 업무시설이 생기고 서초동 일대에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도서관 등 문화시설이
1984년 12월
21일.
▲ 88 서울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잠실 종합운동장). ...
▲ 서울 종합운동장
...
▲ 예전의
광진교(광나루다리)와 현재의 광진교 :
옛 광진교는 일제 때인
1936년에 준공한 왕복 2차선 다리인데 구조물 노후도가 심하여 철거되고 현재의
광진교는 97년 3월 그 자리에
교각을 다시 세우고
다리(폭 20m)에 자전거 전용 도로와 돌출 전망대가
있는
2003년 11월에 개통한 새 다리이지요...
▲ 송파구 잠실동(옛날
잠실마을).... 잠실(蠶室)은 누에를 사육하는 곳이지요.
잠실(蠶室)이
되었는데 서울 동쪽에 있으므로 동잠실 또는 잠실리 부리도 등으로 불렸다고 하지요. 지금의 서대문구 연희동 쪽에 있던 서잠실과
송파구 잠실동, 신천동에 있던 동잠실에서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국립양잠소인 잠실도회가
설치되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두었기에 마을 이름이
실을 뽑아 승정원에 바치게 하였다고
하네요. 서초구 잠원동의 잠실은 송파구 잠실보다 늦게
생겼으므로 '신잠실'이라고도 불렀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지형도 바뀌며 생활
풍습도 바뀌었지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치루면서 우리의 산야는 벌거숭이가 되었고 해마다 어김없이
대홍수가 찾아와 잠실일대는 모조리 범람하고
훼손되며 황무지로 변해 갔지요. 지금은 강남을 대표하는 곳이지만
50여년 전만해도 서울의 한 모퉁이에
한강으로 둘러싸인
90여만평의 모래밭이 있었을 뿐이었지요. 해방 이후 마을 주민들은 모래밭에 채소 농사를
지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장마철 대홍수에 농경지가 수몰되면 마을
주민들은 때꺼리를 걱정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마을사람들은 밥벌이를
위해 강건너로 이주하기 시작했지요.
서울 잠실은 50년
전만 하더라도 인가조차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허허벌판의
황무지였어요. 그래서
잠실 마을을 도심속에 낙도라 불렀다 하네요. 그러나 해방후
1949년 서울특별시 구역 확장에 따라 이 지역은 신천동,
잠실동으로 시에 편입되었지요.
그런후 많은 세월이 흐른뒤 강남개발 정책에 따라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도로망이 완비되었고 이 일대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형성되고
신시가지가 건설되면서
오늘날처럼
비약적인 발돋움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곳도 앞으로
2016년에 제2 롯데월드 123층짜리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고층건물이 있는 활기찬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 강남구 삼성동.
1989년.
건축중인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과
한국종합무역센터.
▲ 강남과 삼성동 일대
...
▲ 한국종합무역센터
...
▲ 삼성동 포스코
사거리...
▲ 단지옆 양재천에는 산책겸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강남의 랜드마크로 불리우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 제2 롯데월드는
지난 2010년 11월 송파구청으로부터 123층으로 건축허가를
받아
현재 공사중인데
2016년 완공 예정이며 이 건물이 완공되면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초고층 건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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