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에 대한 공포로 손세정용 물비누가 인기를 끄는 등 지금이야 용도도 다양하고 향(香)도 다양한 수십 가지 비누가 생산되고 있지만, 대한민국 1호 비누는 개인의 미용 목적이 아닌 세탁용 '빨랫비누'였다.
'무궁화 세탁비누'라 이름 붙여진 이 비누는, 고르지 못한 누런색을 띠었고 표면이 다소 울퉁불퉁한 벽돌 형태였다. 크기도 요즘 세탁비누(보통 230g)의 두 배 크기인 500g이었다.
- ▲ 1956년 애경유지공업(현 ㈜애경)이 개발한 '미향'비누다.
당시 대다수의 서민들은 빨래를 삶을 때 양잿물을 넣거나, 미강유(쌀겨에서 추출한 기름)를 이용해 집에서 시커먼 색의 비누를 만들어 썼다.
무궁화 세탁비누는 큰 인기를 끌었다. 지방에서는 구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 공장장은 "회사 선배들은 생필품상들이 비누를 사려고 새벽 2~3시부터 공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추억한다"고 했다.
이 비누의 가격은 설렁탕 한 그릇 값이었다. 현재 세탁비누가 1500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서민들까지 비누를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무궁화 비누는 1980년대에는 월평균 7000t 이상 생산됐고, 1990년대에는 한달에 2만t까지 팔려나갔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세탁기 보급 이후 세탁기용 가루비누 시장이 커졌고, 현재는 한달에 2000t 정도를 생산한다.
최초의 미용비누는 빨랫비누보다 9년 뒤에 나왔다. 1956년 애경유지공업(현 ㈜애경)이 개발한 '미향'비누다. 다소 거친 촉감에 시큼한 냄새가 나는 빨랫비누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에게 매끈한 형태와 사용 후 은은한 향기까지 남는 미향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애경유지 공장이 있던 인천과 서울을 왕래하는 화물차량의 대부분이 애경유지의 비누를 나르는 차량이라고 할 정도로 미향은 큰 인기를 끌었다. 1958년엔 미향비누 단일 제품이 월 100만개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1960년 남한 전체 인구가 2500만명(약 430만 가구)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네 집에 한 집꼴로 이 비누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그해 11월 사단법인 국산장려회에서 주최한 정부수립 10주년 기념 우량국산품 인기투표에서 미향비누가 최고 득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