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김연수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종말 이후의 사랑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작가가 최근 2~3년간 집중적으로 단편 작업에 매진한 끝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김연수의 변화된 시각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김연수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시간을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우리가 현재의 시간을, 즉 삶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설득해낸다. 특별한 점은 그 가능성이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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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토록 평범한 미래
세계의 끝과 사랑의 시작이 어떻게 함께 놓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미래’를 키워드로 두 개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첫번째는 1999년 여름에 일어난 ‘나’와 ‘지민’의 이야기다. 스물한 살의 ‘나’는 1학기 종강 파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지민과 같이 외삼촌이 편집자로 일하는 출판사로 향한다. 출간이 금지되어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장편소설, 그러니까 지민의 엄마가 자살하기 전에 쓴 『재와 먼지』가 어떤 책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평생 책만 읽어온 외삼촌은 1970년대에 나온 그 책을 떠올리고는 내용을 설명해주는데, 두 사람은 줄거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두번째 이야기는 이 소설에 한 연인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하는 사랑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정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동반자살을 한 그날이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 되고, 자고 일어나면 그 전날이 되는 것이다.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지민이 놀란 이유는 바로 그 줄거리가 자신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해 여름 동반자살을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계획을 들은 외삼촌은 『재와 먼지』에 대해 이어서 설명한다. 그 소설에서 연인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다보면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난주의 바다앞에서
「난주의 바다 앞에서」의 소설가 ‘정현’은 강연 요청을 받아 추자도로 갔간다. 은정 즉 30년 만에 우연히 대학 동창 ‘손유미’를 만난다. 대학 시절 추리소설을 쓰는 게 꿈이었던 손유미는 그때의 바람대로 추리소설을 쓰면서 살고 있다.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몇 년 전 아이를 잃고 인생이 크게 한 번 휘청였다는 것. “어떻게 해도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58쪽)는 상황에서 손유미를 일으켜세운 것 중 하나는 언젠가 정현이 들려준 ‘세컨드 윈드’라는 말이다.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를 가리키는 이 체육 용어는 정현의 설명을 따르면 극한의 고통에 이르렀을 때 불어오는 ‘새 바람’이다.
3. 진주의 결말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진주의 결말」은 범죄심리학자인 ‘나’와 용의자 ‘유진주’의 이야기를 다루며 사건의 진실을 탐색해나가는 소설이다.
시사 프로그램 〈사건의 결말〉에 출연한 ‘나’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혐의가 있는 삼십대 후반의 독신 여성 유진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다. 그는 능동적인 범죄자라기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를 모시며 지내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탓에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수동적인 희생자라고. 그리고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새벽 ‘나’에게 유진주가 보낸 메일이 도착한다. 유진주는 말한다. 아빠가 죽기를 바란 건 사실이라고, 아빠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또한 맞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아빠를 죽인 게 아니라고. 그리고 이때부터 사건을 둘러싼 ‘나’와 유진주의 팽팽한 해석의 장이 열린다.
4.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들
우리 몸 중 귀는 가장 먼저 깨어나고 가장 나중 죽는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아내 정미의 죽음 이후 서재를 정리하다가 '인도방랑'이라는 책을 발견한다.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TV 여행 프로그램 진행자로 참여하여 PD와 카메라 감독과 동행하여 몽골 여자 코디네이터인 자르갈의 안내를 받으며 고비 사막의 비얀자그를 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5. 엄마 없는 아이들
대학 동아리에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연극을 준비한다. 명준은 아그리파 역을 맡았는데, 주인공인 클레오파트라에 누가 선택될지 선배 연출에 관심이 모인다. 연출은 동아리 회원도 아닌 혜진을 가입시키면서 클레오파트라 역을 준다. 연출의 신임은 떨어지고 혜진도 회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혜진은 부모의 이혼으로 자살 시도까지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사춘기를 보낸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친모가 있는 미국에도 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바로 온 그녀는 연출 선배와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명준과 멀어진다.
6.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수록작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2014년 4월, ‘나’가 옛 연인 ‘희진’에게서 메일 한 통을 받으며 시작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이어지는 그 메일에서 희진은 자신에게 벌어진 우연한 일의 연쇄에 대해 설명한다. 한국의 인디 가수를 대표해 일본에 와 있는데 공연에서 자작곡인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부르다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에서 자신을 이번 공연에 초대하기 위해 고생했다고 말하는, 후쿠다 준이라는 오십대의 남자를 만났다는 것. 왜 그렇게 자신을 찾았느냐고 묻는 그녀에게 후쿠다는 10년 전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한다.
7. 사랑의 단상
휴대폰을 잃은 지훈은 네스프레소 한정판 캡슐 하나를 발견한다. 원래 열 개였는데 하나 남은 그것은 2011년 봄 출시된 '오니리오'라는 이름을 가졌다. 지금은 애써 외면하는 리나가 준 커피다. 그 당시 사케를 함께 마시던 리나와는 앨리스의 다락방에서의 기억 등 많은 추억이 있다. 사랑이 식어지는 데에는 언제나 마음이 유죄다.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인생은 외롭다. 하지만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로 사랑을 잃은 사람들의 글에는 사랑이 결국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8. 다시 바르바라에게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는 조금 더 긴 시간의 차원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가 병세가 심해진 뒤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혼잣말을 하는데, 그 대화에 ‘바르바라’라는 세례명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말을 듣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출판사에 다니는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녹취해 책으로 만드는 기획을 진행하다 유야무야된 적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바르바라’가 있었나 싶어 녹취 원고를 열어 검색해보고, 할아버지가 말하는 바르바라가 바로 할아버지의 막내 여동생, 그러니까 1949년 할아버지가 북한의 수도원에 있을 때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 당한 막내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각해볼 이야기
1.“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2.“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29쪽)
3.‘세컨드 윈드’라는 말이다.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 이런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
4. “시간여행자는 어떤 사건을 지켜보고 어떤 사건을 외면할지 결정할 수 있다. 어쨌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결말은 똑같다. 다만 어떤 징검다리를 거쳐 그 결말에 이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다.”(71쪽) 유진주가 ‘나’에게 보내온 첫 메일에서 언급한 시간여행자에 대한 그 이야기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각자 그 결말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을 취사선택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5.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181쪽)
6.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