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방[5388]申師任堂草書屛風[신사임당초서병풍]
申師任堂草書屛風 [신사임당초서병풍]
제1폭
此意靜無事 차의정무사
閉門風景遲 폐문풍경지
柳條將白髮 유조장백발
相對共垂絲 상대공수사
차의정무사 폐문풍경지(此意靜無事 閉門風景遲)
유조장백발 상대공수사(柳條將白髮 相對共垂絲)
(唐 戴幼公의 詩)
이 내뜻 고요하여 일없이 지내는데
문 닫고 앉았으니 봄날조차 더디 가네
휘늘어진 버들가지 백발되면
마주보며 흰머리 드리울테지..
My heart is quiet and I do not work.
Since I closed the door and sat down,
even spring day go slowly.
When the drooping willow branches turn grey.
Looking at each other, they let their grey hair drape.
* 대숙륜(戴叔倫, 732~789)
당나라 윤주(潤州) 금단(金壇) 사람. 자는 유공(幼公) 또는 차공(次公)이다
. 어렸을 때 소영사(蘇潁士)에게 배웠다.
시를 잘 지었고, 청청담을 잘했으며, 문학으로 유명했다.
은자의 삶을 동경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가는 도중
청원협(淸遠峽-成都 북쪽)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시는 은은자의 삶을 노래한 것이 많다.
제2폭- 唐 司空曙[사공서]의 金陵懷古(금릉회고)
*원문은 宮潮가 아니고 宮庭.
輦路江楓暗(련로강풍암) - 행차길의 단풍 짙고
宮潮野草春(궁조야초춘) - 궁정도장의 들풀도 봄이네
傷心庾開府(상심유개부) - 마음 다칠 유개부는
老作北朝臣(노작북조신) - 늙어 북조의 신하가 되었지 輦路江楓暗 연로강풍암 宮庭野草春 궁정야초춘
傷心庾開府 상심유개부 老作北朝臣 노작북조신
임금님 다니던 길에 신나무 우거져 있고
대궐 뜰에는 봄풀이 푸르렀네
유개부 슬픈 노래 부르며 북조신하 된단말가.
행차길 강가엔 단풍이 우거졌고
조수는 차건만 봄풀이 푸르구나.
유개부 생각자니 마음이 아픈데
늙어서 북조의 신하가 되란 말인가.
Autumn leaves grew thick along the river on the way to go.
The tide is cold, but the spring grass is green.
My heart aches at the thought of YuGaeBu.
Do you mean to become a subject of the Nothern
Dynasty when you are old?
* 사공서(司空曙, 740~790 추정)
자는 문명(文明). 하북성(河北省) 광평(廣平) 출생.
인품이 결벽하여 권신(權臣)과 가까이하지 않고 가난을 감수하였다고 한다.
전기(錢起) 등과 함께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시집 '사공문명시집(司空文明詩集)'이 있다.
이 오언절구의 시는 중국 당(唐)나라 시절 문인 사공서(司空曙)가 육조시절
양(梁)나라 신하로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유신(庾信)을 회고하며 나라가 망한 뒤에
슬픈 모습으로 방황하는 신하의 애닯은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 유개부(庾開府)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의 유신(庾信)을 가리킴. 유신은 南朝인 梁나라에서 右衛將軍에
임명되고 武康縣侯에 봉해졌다. 元帝 때에 북주에 사신으로 갔다가,
문학을 좋아하는 북주의 明帝와 武帝에 의하여 억류 당하였다.
융융숭한 대우를 받아 여러차례의 승진으로 驃驥將軍에 이어 開府儀洞三司라는
벼슬에 올랐으므로, 세상에서 庾開府라 불리웠다. 그의 문학은 북조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여 지은 '애강남부(哀江南賦)'가 유명하다.
제3폭唐 劉文房(유장경)의
送張十八歸桐廬(송장십팔귀동려)
귀인승야정 대월과강촌(歸人乘野艇 帶月過江村)
정락한조수 상수야도문(正落寒潮水 相隨夜到門)
돌아가는 사람 거룻배를 타고
달 아래 강촌을 지나가네
지금 바로 조수 한창 들어오는 때라서
물 따라 한밤중이면 문 앞까지 갈걸세
People returning by boat.
Passing the river village under the moon .
Because right now is when the tide is full swing
Follow the water, and in the middle of the night,
I'll go to the front of the door.
* 유장경(劉長卿, 725? ~ 791?)
자는 문방(文房)이다.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 출신이라는 설과
하북성(河北省) 동남쪽에 위치했던 하간(河間)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젊었을 때는 낙양(洛陽) 남쪽의 숭양(嵩陽)에서 살면서 청경우독(晴耕雨讀)하는 생활을 하였다.
733년(개원 21)에 진사가 되었다. 강직한 성격에 오만한 면이 있어 시에 서명할 때는,
자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자부심에서 성을 빼고 ‘장경(長卿)’이라고만 표기하였다.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여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시의 동일표현이 돋보이며, 전원과 산수묘사는 도연명(陶淵明)과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과 통하는 바가 있다. 관리로서도 강직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며
자주 권력자의 뜻을 거슬리는 언동을 하였다.
그래서 2차례나 유배를 당하여 실의의 세월을 보냈다.
그의 시에 유배당하여 실의 속에 보내는 생활과 깊은 산골에 숨어 살려고 하는 정서를
그린 것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歸人乗野艇(귀인승야정) - 돌아갈 사람 거룻배 타고
帶月過江村(대월과강촌) - 달빛 받으며 강마을을 지나네
正落寒潮水(정락한조수) - 막 찬물 결이 밀려오기 시작하니
前溪風正急(전계풍정급) - 앞 시내에 바람은 정말 거세네
歸人我野艇 귀인수야정 帶月過江村 대월과강촌
正落寒潮水 정락한조수 相隨夜到門 상수야도문
제4폭 (唐 戴幼公의 詩) *원시에는 溪가 아니고 程.
강남우초헐 산암운유습(江南雨初歇 山暗雲猶濕)
미가동귀요 전계풍정급(未可動歸橈 前溪風正急)
강남은 비 개었는데
산은 컴컴하고 구름 아직도 젖었구려
노를 저어 돌아가지 못할 것 같네
앞 냇가에는 바람이 거센걸 보니..
It stopped raining in Gangnam
The mountains are dark and the clouds are still wet
I can't seem to get back rowing
Seeing that the wind was strong in the river
이 글은 첫 번째에 쓰여져 있는 시와 같은 작가인 중국 당나라 중기 대 시인이었던
대숙륜이 지은 시인데,
시의 내용은 강남의 산수를 노래하면서 당시 처해있는 정국(政局)을 빗대어
표현한 내용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독재자나 간신 또는 난을 일으킨 자는 제거 되었으나
그 잔당의 세력이 완전히 평정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저항이 심하여
변화나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신사임당 쓴 글씨를 보면 대숙련이 지은 시 중 네 번째 구,, 일부 글자를
다른 글자로 옮겨 적었다는데, 한석봉이 쓴 글씨에서도 이와 똑 같은 글자가 적혀 있어
이렇게 바뀌어진 문장이 신사임당이 임의로 바꾼 문장이 아니라 당시 이미
보편적으로 원시(原詩)에서 응용되어 회자되었던 문장임을 알 수 있다.
前溪風正急(사임당)-前程風浪急 (原詩)
* 대숙륜(戴叔倫, 732~789)
당나라 윤주(潤州) 금단(金壇) 사람. 자는 유공(幼公) 또는 차공(次公)이다.
어렸을 때 소영사(蘇潁士)에게 배웠다.
시를 잘 지었고, 청담을 잘했으며, 문학으로 유명했다.
대종(代宗) 대력(大曆) 연간에 유안(劉晏)의 부름에 응해
염철전운사(鹽鐵轉運使) 부중(府中)에서 일을 맡아보았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때 조왕(曹王) 이고(李皐)가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와 강서절도사 (江西節度使)를 맡으면서
막부에 들어갔다. 일처리가 깨끗하여 칭찬을 들었다. 나중에 무주자사(撫州刺史)에 올랐다.
주민들이 해마다 관개(灌漑) 때문에 싸우는 것을 균수법(均水法)을 실시해 골칫거리를 해결했다.
정원(貞元) 4년(788) 용주자사(容州刺史)로 옮기고, 어사중승(御史中丞) 용관경략사(容管經略使) 를 겸했는데, 위명(威名)을 크게 떨쳤다.
다음 해 표(表)를 올려 출가하여 도사가 되기를 청했는데,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가는 도중 청원협(淸遠峽-成都 북쪽) 에서 세상을 떴다.
江南雨初歇 강남우초헐
山暗雲猶濕 산암운유습
未可動歸橈 말가동귀요
前溪風正急 전계풍정급
제5폭-(唐 李白의 詩) *원시는 須가 煩으로 되어있다.
동림송객처 월출백원제(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소별려산원 하수과호계(笑別廬山遠 何須過虎溪)
동림사(東林寺)의 손님을 보내는 곳에
달이 뜨고 흰 원숭이 울어대네
담소하느라 여산을 멀리 떠나왔으니
어찌 호계(虎溪) 지나는 것을 번거로워 하리.
Where to send guests to DongLimSa temple.
The moon rises and the white monkey cries.
I left Mt. Lu to chat.
How can you be bothered about going through the Hogye?(虎溪)
송(宋)나라 진성유(陣聖兪)의 <여산기(廬山記)>에,
"동림사(東林寺)의 중 혜원(慧遠)은 평소
‘영불출산 적불입속(影不出山 跡不入俗)’
(그림자는 산을 나서지 않고, 발자취는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글을 벽에 걸어두고 있었다.
동림사 삼문(三門)안에 작은 개울이 있는데 혜원이 어떤 손님을 배웅하더라도
이 개울을 지나지 않았으며, 또 이곳을 지나면 반드시 혜원을 인도하는
호랑이가 울어 호계(虎溪)라고 하였다.
어느날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 도사인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할 때,
이야기에 심취해 그냥 호계를 지나며 호랑이가 우는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을
나중에야 깨닫고 서로 마주보며 한바탕 가가대소(呵呵大笑)했다" 고 쓰여 있다.
세상에서는 이때의 일을 그림으로 그려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라 한다.
동림사(東林寺)는 여산(廬山) 제일 명찰(名刹)로 뒤로 동림산에 의지하고
남쪽으로 여산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강서(江西)성 북부(北部) 구강(九江)시
여산(廬山) 서쪽 기슭(西麓)에 있다. 지금도 동림사에는 삼소당(三笑堂)이 있으며
호계교(虎溪橋) 옆에는 돌로 만든 호랑이가 엎드려 있다.
東林送客處 동림송객처
月出白猿啼 월출백원제
笑別廬山遠 소별노산원
何煩過虎溪 하수과호계 須
제6폭
해안경잔설 계사조석양(海岸畊殘雪 溪沙釣夕陽)
가빈하소유 춘초점간장(家貧何所有 春草漸看長)
바닷가 눈을 헤치고 밭을 갈다가
해질녁 시냇가에 고기를 낚지요.
가난한 집에 무엇이 있으리
봄풀만 점점 더 자라고 있다오.
While plowing through the snow on the beach.
At sunset, we fish by the stream.
What's in the poor house.
Only the spring grass is growing more and more.
영역; Park Jeong Seon [박정선] 재미영문학자
海岸耕殘雪 해안경잔설 *畊=耕
溪沙釣夕陽 계사조석양
家貧何所有 가빈하소유
春草漸看長 춘초점간장
신사임당초서병풍(申師任堂草書屛風)
| 1973년 지방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된 이 병풍은 당시(唐詩) 오언절구(五言絶句)를 초서로 쓴 것으로 강릉시 두산동 최돈길(崔燉吉) 家에서 대대로 보존되어 오던 것을 1971년에 강릉시가 인수하여 율곡기념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병풍이 최씨문중에 있게된 것은 사임당의 이종손녀(權處均의 딸로 崔大海의 妻)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라 한다. 영조때 이 글씨가 이웃 고을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당시 부사 이형규(李亨逵)가 되찾아 주고 병풍으로 꾸며 보관하게 하였다. 고종 6년(1869)때 최씨집에서 불이 나서 온 집안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당시 주인 최전의 妻 江陵 金氏 부인이 80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불길 속에서 제일 먼저 이 병풍을 끌어내고 숨졌다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부사 윤종의(尹宗儀)가 이러한 일이 다시 있을까 우려하여 판각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 이 병풍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폭 비의정무사 폐문풍경지(比意靜無事 閉門風景遲) 유조장백발 상대공수사(柳條將白髮 相對共垂絲) (唐人 戴幼公의 詩) 어저 고요할레 할 일이 전혀 없네. 문 닫고 앉았으니 날조차 더디 가네 백발만 버들가지랑 하냥 서로 마주 드리웠네. 제 2폭 연로강풍음 한호야초춘(輦路江風音 寒湖野草春) 상심유개부 노작북조신(傷心庾開府 老作北朝臣) (唐人 司空曙의 詩) 임금다니던 길에 신나무 우거 있고 대궐 뜰에는 봄풀이 푸르렀네 유개부 슬픈 노래 부르며 북조 신하 되단 말가. 제 3폭 귀인승야정 대월과강촌(歸人乘野艇 帶月過江村) 정락한조수 상수야도문(正落寒潮水 相隨野到門) (唐人 劉文房의 詩) 달 아래 배를 띄워 강 마을 지나는 그대 지금 바로 조수 한창 떨어지는 썰물이라 물따라 한밤중이면 문앞까지 댈걸세. 제 4폭 강남우초헐 산암운유습(江南雨初歇 山暗雲猶濕) 미가동귀요 전계풍정급(未可動歸橈 前溪風正急) (唐人 戴幼公의 詩) 강남을 바라보매 비는 막 개었건만 산은 컴컴하고 구름 상기 젖었구려 앞길에 바람이 세겠네, 배를 어디 떼겠나. 제 5폭 동림송객처 월출백원제(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소별려산원 하수과호계(笑別廬山遠 何須過虎溪) (唐人 李白의 詩) 동림사 동구 밖에 달 뜨자 잔나비 우네 여산 스님과 웃으면서 나뉘노니, 아뿔사, 호계를 지났소그려. 돌아 들어 가시오. 제 6폭 해안경잔설 계사조석양(海岸 殘雪 溪沙釣夕陽) 가빈하소유 춘초점간장(家貧何所有 春草漸看長) (唐人 皇甫孝常의 詩) 남은 눈을 헤치고서 바닷가에 밭을 갈고 시냇가 모래에 내려 夕陽 아래 고기를 낚소 내 집에 무엇이 있으리. 봄풀만이 자란다오. <참고문헌> 1. <강릉시문화재대관> 강릉시. 1995 2. <강릉의 문화유산> 강릉시. 2000 3. <강릉의 문화유적> 강릉문화원. 1998 4. <임영문화대관(강릉시ㆍ명주군)> 강릉문화원. 1982 |
이 병풍은 신사임당(1504∼1551)이 초서로 쓴 오언절구의 6폭 병풍이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19세에 이원수와 결혼하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초충도, 노아도, 요안조압도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이것은 신사임당의 이종 손녀가 최대해에게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으로, 이웃 고을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강릉 부사 이향달이 듣고 주선하여 도로 찾았다. 그 후 강릉시 두산동의 최돈길가에서 전해 내려오던 것을 1971년 강릉시가 인계받아 율곡기념관에 보관하게 되었다.
여기에 쓰인 신사임당의 글씨가 각판되어 오죽헌에 있다. 이 각판은 고종 때의 강릉부사 윤종의가 병풍의 글씨를 베끼어 따로따로 각판을 만든 것으로 이 각판에서 많은 탁본을 만들었다. 또한 이 병풍에는 부사의 발문이 따로 붙여있는데 병풍이 전하여 오게된 연유를 적고 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친필(親筆) 초서(草書) 6폭병풍은 당시 오언절구(唐詩五言絶句)를 신사임당이 초서로 쓴 것을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이 병풍은 신사임당의 이종 손녀가 최대해(崔大海)에게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글씨로 영조(英祖)때에 이웃 고을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당시의 강릉 부사 이향달이 듣고 주선하여 도로 찾아 강릉시 두산동 최돈길(崔燉吉)가에서 세전(世專)되어 온 것으로 1971년에 강릉시가 양수(讓受)받아 율곡기념관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병풍의 시구는 제1폭 "차의정무사 폐문풍경지 유조장백발 상대공수사 (此意靜無事 閉門風景遲 柳條將白髮 相對共垂絲)", 제2폭 "연로강풍암 한조야초춘 상심유개부 노작북조신(輦路江風暗 寒潮野草春 傷心庾開府 老作北朝臣)", 제3폭 "귀인수야정 대월과강촌 정락한조수 상수야도문(歸人垂野艇 帶月過江村 正落寒潮水 相隨夜到門)", 제4폭 "강남양초헐 산암운유습 말가동귀요 전계풍정급(江南兩初歇 山暗雲猶濕 末可動歸橈 前溪風正急)". 제5폭 "동림송객처 월출백원제 소별노산원 하수과호계(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笑別盧山遠 何須過虎溪)", 제6폭 "해안경잔설 계사조석양 가빈하소유 춘초점간장(海岸경殘雪 溪沙釣夕陽 家貧何所有 春草漸看長)" 으로 되어 있다. 오죽헌에는 이 글씨의 각판이 있다. 이 각판은 고종 때의 강릉 부사 윤종의가 병풍의 글씨를 사(寫)하여 따로 각판을 만든 것으로 이 각판에서 많은 탁본을 만들었다. 이 병풍에는 부사의 발문(跋文)이 따로 붙어 있는데 발문의 내객(內客)은 이 병풍이 전하여 오게 된 연유를 적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