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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7351]이백-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 고방서예자료[269]智永楷書集字 이백 望廬山瀑布 李白-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향로봉에 해 비치니 자주빛 안개가 피어나고 遙看瀑布挂長川(요간폭포쾌장천) 아득히 폭포 바라보니 긴 강을 걸어 놓은 듯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떨어지는 물줄기가 삼천 자나 되니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흡사 은하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구나 <註> 廬山(여산)-江西省에 있는 산 이 시 한수에 해,산,구름,강,폭포를 넣고.... 폭포가 삼천척이면 약900m 인데.... 실재로는 155m 라고 합니다.... 역시 이백도 과장이 심했습니다.... 日照香爐生紫煙 (일조향로생자연) 遙看瀑布掛長川 (요간폭포괘장천) 飛流直下三千尺 (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 (의시은하락구천)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멀리에 폭포는 강을 매단 듯, 물줄기 내리 쏟아 길이 삼천 자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 요점 정리 작자 : 이백(李白)갈래 : 칠언절구(七言 絶句)의 근체시(近體詩) 성격 : 서정적어조 : 비유적. 영탄적이면서도 맑은 어조 심상 : 서술적. 감각적 구성 : 1행 햇빛 비친 자주빛 향로봉의 정경 2행 폭포의 위치와 정경, 멀리서 본 폭포의 모습 3행 폭포의 규모, 엄청난 폭포의 높이 4행 폭포수의 장관, 폭포에 대한 감상 제재 : 여산 폭포의 위용 주제 : 여산 폭포의 장엄한 위용을 노래함 출전 : 당시선(唐詩選) 내용 연구 廬山(여산) : 중국의 강남성(江南城) 구강(九江)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함 香爐(향로) : 여산의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 紫煙(자연) : 자줏빛 연기. 산이 해에 비치어 보이는 모습 直下(직하) : 곧바로 떨어지다 九天(구천) : 구중(九重)의 하늘. 높은 하늘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피어나고) : 하늘과 맞닿을 만큼 높이 서 있는 향로봉에 붉은 해가 비치기 시작하니, 자줏빛 안개 구름이 피어나는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산이 해에 비치어 푸르게 보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대목이다. 웅장한 폭포수에 의해 안개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멀리에( 멀리 보이는) 폭포는 강을 매단 듯(긴 강을 매단 듯하네), : 저 편 향로봉의 폭포를 바라보니 마치 길고 긴 강줄기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하다. 강물은 수평상으로 흐르나 수량이 매우 많으며, 그에 비해 폭포는 수량이 적은 듯하나 낙하하기 때문에 그 힘이 강렬하다. 폭포의 위용을 표현하기 위해 강물의 흐름을 끌어들인 점이 당연한 듯 싶으면서도 매우 강렬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자의 대략적인 위치와 폭포의 전경이 드러나 있다. 물줄기 내리 쏟아 길이 삼천 자 : 폭포의 규모 묘사와 함께 시적인 생동감이 두드러진 대목이다. 특히 떨어지는 폭포수의 흐름을 '飛(비)'자에 집약시켜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直下(직하)'는 산세가 급하고 험준하여 폭포수의 흐름이 급함을 형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한시(漢詩) 특유의 과장적인 표현 기법을 살필 수 있다.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쏟아지는 듯 하네). : 제3행의 '내리 쏟아[直下]'의 시어를 발전시켜, 폭포수의 웅장한 기세를 높은 하늘에서 직접 떨어지는 은하수에 비유하여 표현한 대목이다. 이백의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낭만적인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자신이 폭포를 본 경험을 생각하며 아래 빈칸에 들어갈 비유적인 표현을 서 넣어 보자. 만일 폭포를 본 적이 없다면 다른 경치를 본 경험으로 활동해 보자 . 이끌어주기 : 일정한 형식적 제약을 주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활동을 설정하였다. 이 활동을 할 때에는 자신의 경험을 되살펴 창작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며, 작품을 패러디해 보는 경험을 통해 작품 창작의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한 활동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 활동은 비유적인 표현을 익히는 과정으로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활동이므로 개별적으로 창작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나, 모둠별로 공동 창작을 하게 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든 발표를 하게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예시답안 (구곡 폭포)를 바라보며 햇빛 비치는 (봉화산 기슭)에 (하얀스크린)멀리 바라본 (폭포)는 마치 (누에가 실을 뽑는 듯)(아홉 굽이 동안 숨고르며 떨어지는) 모습(푸른 나무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연기인 줄)알았다네 이해와 감상 "망여산폭포"는 중국의 절경(絶景) 중 하나인 여산(廬山) 폭포의 장관을 묘사한 7언 절구(七言絶句) 이전의 근체시 형식의 작품으로, 시선이라 불리던 이백의 감각적이면서도 낙천적이고 호방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자연에 동화(同化)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보임으로써 탈속(脫俗)의 낭만적 동경의 시정(詩情)을 담고 있다. 이 시는 이백의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중국의 명승지인 여산의 향로봉(香爐峯)에 있는 폭포의 장엄한 위용(威容)을 노래한 것으로, 이 시의 전반부에서는 시각적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멀리서 보는 폭포가 흡사 강을 매달아 놓은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폭포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햇빛에 비쳐서 안개가 어려 있는 여 산의 봉우리이다. 이처럼 산과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의 묘사는 그대로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한편 시의 후반부에서는 폭포의 높이가 삼천 자나 되기 때문에 그 모양이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다고 표현함으로써 시인의 호탕한 기개를 마음껏 표방하고 있다. 특히 삼천 자나 되는 높이에서 곧바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는 시인의 강직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시는 칠언칠구의 압축된 형식 속에서도 감각적인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폭포를 속세가 아닌 선경(仙境)으로 묘사함으로써 이백의 웅장한 기상과 풍부한 상상력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인간 세상이 아닌 신선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장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자는 '여산의 폭포를 바라보며(망여산폭포: 望廬山瀑布)'라고 하여 자연에 대해 관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하나, 실상은 대자연의 위력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沒入)하여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져 있다.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당唐 이백李白 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해 비치어 아침 운무 붉은데 遙看瀑布掛前川 폭포를 바라보니 시내를 걸어 놓은 듯 飛流直下三千尺 삼천 척 그대로 날아 쏟아져 내려오니 疑是銀河落九天 구만리장천에서 떨어지는 은하수인 듯 이백이 이 시와 동일한 제목으로 쓴 시는 총 4수나 된다. 나머지 3수는 5언 절구 3수이다. 그런데 이 시가 유독 세상에 알려진 것은 시의 기세가 강하고 웅장한 맛 때문일 것이다. 특히 후반 2구는 속진이나 잡념을 송두리째 부셔버리는 호쾌함이 있다. 무아지경의 시원함을 선사한다. 내가 15년 전 쯤에 이 폭포에 갔을 때는 가물 때였는데도 그 기세만큼은 대단했다. 나는 예전부터 이백의 시에 나오는 많은 표현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충실히 표현한 것이라 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폭포는 총 길이가 180여 미터 되는데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비가 왔거나 수량이 많을 때라면 그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비류직하삼천장’이나 ‘은하낙구천’이 아니고 어떤 말로 표현을 해야 실감이 날지 모르겠다. 당시 그 곳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 말에 의하면 수량이 많을 때는 멀리까지 물보라가 튄다고 한다. 이백은 다른 시에서도 감동의 정도를 동일하게 ‘괘류삼백장(掛流三百丈)’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폭포가 길기도 하지만 그 모양이 삼백이나 삼천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조속히 해결되어 금강산 구룡폭포나 개성 박연폭포에 가서 이 시와 같은 장쾌함을 한 번 맛보고 쌓인 속진을 털어버리고 싶다. |
이하=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여산은 보는 자리마다 모습이 달라진다.
멀리서 보면 산맥처럼 이어지고, 가까이서 보면 높은 봉우리가 된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풍경과 낮은 데서 올려다보는 풍경도 다르다.
동파는 여산의 기이하고 수려한 모습을 한마디로 담아내려 했지만,
끝내 그 전체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언제나 여산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깨닫는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때문에 이 시는 단순한 사경시가 아니라 철리시가 된다.
어떤 일이나 상황을 제대로 보려면 그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거리를 두어야 비로소 전체가 보인다.
이른바 '당국자미(當局者迷), 방관자청(旁觀者淸)'의 이치다.
도연명기념관
도연명 입상
■국화 따며 산 노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을
소동파가 특별히 흠모한 시인이 있었다. 이백도 두보도 아니었다.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이었다. 도연명의 고향이 바로 여산 자락에 있다.
여산은 도연명을 낳고, 그의 시를 길러낸 어머니 같은 산이다.
도연명의 시에 등장하는 '남산'도 바로 이 여산을 가리킨다.
'음주(飮酒)' 제5수는 도연명의 삶과 여산의 정취를 가장 잘 보여준다.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집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는 법
동쪽 울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네
산 기운 저녁 되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 더불어 돌아간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려니
따져서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노라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辯已忘言
도연명은 사람 사는 세속에 살았지만 부귀영화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수레와 말'은 바로 그런 세속적 가치의 상징이다.
"마음이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는 법"이라는 말은,
몸이 어디에 있느냐보다 마음이 무엇에서 멀어졌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세속 한가운데 있어도 마음이 욕망에서 멀어지면 그곳이 곧 깊은 산중인 것이다.
가을날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문득 남산을 바라본다.
저녁 산기운은 아름답고, 새들은 더불어 돌아간다.
시인은 그 속에서 삶의 참뜻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래서 "따져서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노라"고 한 것이다.
구강현 사하가(沙河街) 동북쪽에는 도연명기념관이 있다.
도연명의 사당 정절사(靖節祠)를 기념관으로 확장한 곳이다.
그 안에는 술을 거르던 두건을 쓴 도연명의 입상이 서 있고,
기념관 뒤쪽에는 그의 오래된 무덤이 있다.
그러나 이미 1600년이 흘렀으니 무덤보다 더 깊은 것은 여산 그 자체일 것이다.
그의 넋은 진즉 여산의 흙과 나무와 바위가 되어 있을 터이다.
몇해전 봄날, 나는 기념관을 나와 밭둑길을 서성였다.
꽃을 따고 바람 냄새를 맡으며 그를 그리워했다.
문득 고개 들어 여산을 바라보니, 그 옛날 도연명이 한가롭게 바라보던
바로 그 여산이 나를 다정스레 굽어보고 있었다.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여산
수봉폭포라고도 불리는 여산폭포
■비류직하삼천척, 여산폭포
도연명을 흠모한 것은 소동파만이 아니었다.
이백 역시 도연명의 진솔한 삶을 사랑했다.
그의 시 '산중에서 은자와 술을 마시다(山中與幽人對酌)'에는 그 풍류가 잘 드러난다.
두 사람이 대작하니 산에 꽃이 피네
한잔 한잔 또 한잔
나 취해 졸리니 그대 그만 가시게
내일 아침 생각 있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나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卿且去, 明朝有意抱琴來
제3구 "나 취해 졸리니 그대 그만 가시게"는 도연명의 음주 후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토록 도연명을 좋아했던 이백이 도연명의 고향 여산에 올라
천고에 남을 시를 남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다.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색 연기가 이는데
멀리서 폭포를 바라보니 앞 강물을 걸쳐놓은 듯
직하 삼천척 날아 흘러 떨어지는 물
은하수가 구천에서 쏟아지는가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前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이 시에서 노래한 폭포는 여산의 학명봉과 구배봉 사이로 떨어지는
수봉폭포(秀峰瀑布)다. 여산에는 삼첩천(三疊泉)처럼 더 장대한 폭포도 있지만,
수봉폭포가 여산 대표 폭포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순전히 이백 때문이다.
남송에 이르러서야 널리 알려진 삼첩천은 '비류직하삼천척'이라는
최고의 예찬을 얻지 못했고, 그 영광은 수봉폭포가 차지했다.
이 시는 이백이 스물다섯살 무렵, 청운의 꿈을 안고 사천을 떠나
중원으로 향하던 시기에 지은 작품이다. 젊은 이백의 패기와 상상력이
여산의 폭포를 만나 한 폭의 관폭도(觀瀑圖)가 되었다.
해가 향로봉을 비추고, 폭포가 앞 시내에 걸린 듯하며,
물줄기는 은하수처럼 하늘에서 떨어진다. 폭포의 기세가 곧 젊은 시인의 기세다.
천하의 명산, 여산으로 가자.
서림사에서는 동파의 시벽을 읽으며 삶을 바라보는 거리를 배우고,
도연명의 옛 마을에서는 국화와 남산 사이에 깃든 참뜻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여산폭포 아래에선 젊은 이백의 힘찬 목소리로 한번 외쳐보자.
"비류직하삼천척!" 폭포를 타고 은하로부터 내려오는 힘찬 기운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시원하게 흘러들지 모른다.
멀어져야 보이는 깊은 산세, 천년의 풍류… 눈 앞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