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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6년 8월 9일(제32주) 오전 11:00
장소 : 인천은혜교회당
본문 : 레위기 19:1-4
제목 :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올 여름은 역사상 가장 더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양산은 7월 31일 41.5도를 찍었고, 이틀 뒤인 8월 2일에는 42.5도였습니다. 40도를 넘은 지역도 많았습니다. 기온 관측사상 최고의 온도였다고 합니다. 지난 한주간이 역사상 가장 더운 날씨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한 주간에 우리가 읽어야 할 성경이 레위기였습니다. 레위기는 성경 중에서 성도들이 가장 읽기 힘들어하는 것으로 잘 안 읽는 성경이라고 합니다. 읽으셨나요? 읽으신 성도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한 주간에 레위기를 읽으라고 했으니 읽으신 성도들에게 이것은 시험 중에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레위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 쉬운 것은 없습니다. 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 가능한 정도의 언어와 표현으로 성경을 주셨습니다. 열심만 있다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성경의 해석자이십니다. 모르고, 이해가 잘 안 되고, 어려운 부분이라고 할지라도 성령 하나님께 요청하면 알기 쉽도록 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성경 읽을 때는 꼭 기도하며 성령의 감동을 구하면서 겸손하게 읽어야 합니다.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웨이크라’로 이것이 레위기의 첫 단어입니다. 그 뜻은 ‘그리고 그가 부르시니’ 라는 뜻입니다. 70인경에서는 헬라어 ‘류이티콘(라틴어 레비티쿠스) 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레위인에게 속한’ 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40장에서 성막을 건축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막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레위기의 내용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자 결론입니다.
출애굽기 마지막은 40장에서 성막을 세우고(출 40:17), 시내 산을 떠나기 전 50일 동안의 머물러 있을 때 주신 말씀이 바로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의 핵심 사상은 거룩, 즉 성결입니다. 레위기 속에서 영적 성결은 육체적 성결로 상징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여러 종류의 희생 제사에서 완전한 동물을 요구하고 있고, 순수한 제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사는 제사장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제사장들은 이 제사를 통해 백성들을 교육시켰으며 영적이고 상징적인 교훈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 레위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드리는 5가지 제사가 나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레위기의 주제인 ‘거룩’에 대해 좀 더 알아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범위 안에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자존 하시다, 영원하시다, 불변하시다, 전지전능 하시다’ 이런 속성들이 있습니다. 이런 속성들은 하나님만인 홀로 가지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신학에서는 이것을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비공유적 속성’ 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은혜로우시다, 자비로우시다, 인자하시다, 공의로우시다’ 라는 속성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속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 나누고 계신다고 해서, ‘공유적인 속성’ 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속성들도 하나님 안에서만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바로 이 공유적인 속성 중에 대표적인 속성이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함의 본체가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거룩을 이루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거룩 이라는 단어는 곧 ‘신성함’을 의미하고 하나님 자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레위기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거룩하라’ 는 말씀을 주셨을까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서 좀 넓게 보겠습니다. 먼저 레위기를 크게 나누면, 1-10장 까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피 흘리는 희생 제사를 통해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11-27장까지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에 대해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네 몸을 정결하게 하고, 안식일을 지켜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등의 많은 율법과 규례들을 잘 지키는 생활을 전제합니다.
이렇게 레위기는, 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 ②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는 성경입니다. 이 두 가지, 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 ②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허락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바로 ‘거룩’입니다.
즉, 거룩함을 잘 유지하며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복에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고,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은 언제든지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언제나 마음대로 다가오실 수 있는 상태, 그리고 내가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상태가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오고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언제나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며 행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감과, 하나님과 동행함... 이런 상태를 잘 유지하도록 안내하는 성경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가 어려운 성경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렵다고 건너뛰거나 그냥 덮어 두어서는 안 되는 성경입니다.
서론이 좀 길었지만 오늘은 이런 성경인 레위기의 봉독한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거룩 하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만들라, 거룩의 기본을 찾으라’ 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거룩 하라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에서 ‘거룩함’( קָדוֹשׁ, 카도쉬)의 핵심 의미는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함’ 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명사로( קֹדֶשׁ, 코데쉬)는 ‘거룩, 성결, 구별됨’ 이고, 동사(ָקָדַשׁ, 카다쉬)로는 신성시 하여 ‘구별하다, 분리하다’는 뜻입니다.
이 거룩의 기본 의미는 ‘구별하다, 분리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즉 죄악과 부정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거룩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소유로서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변화된 상태를 거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속되고 부패한 행실이나 풍습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레 11:44).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거룩이 죄악과 구별된 도덕적인 삶(요 17:19)이나 세속적이고 비 신앙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건한 행위를 거룩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16). 이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중심 되는 성품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에게 첫 번째로 요구되는 명령이기도 합니다(레 19:2, 벧전 1:15-16). 그리고 ‘성전, 성물, 제사, 절기, 하나님의 백성’ 등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들 역시 지극히 거룩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을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이 거룩을 잘 깨닫고 마음에 담는 성도들이 되기를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이 오염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수돗물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깊은 지하에서 뽑아 올린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아니면 정수기를 통해서 물을 마십니다. 왜 그럴까요? 물이 그만큼 오염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만 오염되었을까요? 우리가 매일 숨을 쉴 때 사용하는 공기는 어떨까요?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가 있는 곳을 즐겨 찾습니다.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고 먹는 채식인 식물도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 식물을 선호합니다. 무공해 식물이라고 하는 것도 오염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물과 공기가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것의 영향을 받으면 무공해 채소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환경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러면 환경만 오염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말세를 사는 인간들은 더욱 오염되었습니다. 예레미야 17:9-10절을 보면 오염된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은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 한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인간의 기본인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지 오래이며, 불법과 불의와 거짓이 난무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 사회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에서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고 하였습니다. 5절 하반 절에서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오염되지 않은 물과 공기와 식물을 찾듯,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 죄악에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세상에서 돌아서서 거룩한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전서 1:15-16절에서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왜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 즉 성도의 의무입니다. 성도의 본분입니다. 본분에 충실한 사람은 윗사람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그 사람의 앞길이 열립니다.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왜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② 거룩해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에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되 거룩한 사람을 찾아 복을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거룩함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격이며 복을 받아 누리는 첩경입니다. 이사야 59:1-2절에 보면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성결하지 아니하면, 즉 거룩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거룩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거룩하고, 성결하고, 깨끗해야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왜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③ 거룩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3:5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인한 일들을 행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시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마른 광야를 40년간 빙빙 돌면서 이제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이 요단강만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백성들에게 한 말이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할 요단강 건너편에는 가나안 땅에는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었고 이 땅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려는 지금은 곡식 거두는 시기였고 항상 언덕에 물이 넘쳤다고 하였습니다(수 3:15). 물이 강둑이 넘치도록 흐르고 있는데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군대가 요단강을 건널만한 장비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40년 동안 메마른 광야를 행군해온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이 요단강 건너는 것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수 3:5)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성결하게 했습니다.
그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이한 일을 체험했습니다. 흐르던 강물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적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에로 바로 건넜”습니다(수 3:16).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서는 순간 물이 갈라져 마치 벽처럼 쌓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진 마른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자 강물은 다시 흘렀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거룩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랑스러운 어린 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배가고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엄마를 부르며 빨리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에는 더러운 것이 잔득 묻어있습니다. 먼지투성입니다. 이 경우 아이가 아무리 배가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떼를 쓴다고 해도 엄마는 그 아이의 손에 음식을 쥐어주지 않습니다. 반드시 먼저 거치는 절차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물로 손을 씻는 것입니다. 그 후에 사랑스러운 아이의 손에 먹을 것을 쥐어 줍니다. 이우가 무엇일까요? 더러운 손에 먹을 것을 쥐어 주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스스로 정결하게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20-21절을 보면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의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며, 깨끗해지는 것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복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이 말씀을 놓고 보면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리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도는 왜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④ 거룩해야 최후의 심판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참 편안한 세상입니다. 날마다 발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AI시대라고 합니다. 점점 더 편리하고 넉넉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옛날과 비교해 보면 꿈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통수단이 그렇고, 통신 수단이 그렇고, 정보수단이 그렇습니다. 모든 생활환경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언제까지나 계속 발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떠나가고 이 세상이 사라지며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며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펼쳐지는 날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3:10-14절을 보면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지구의 종말 즉 최후의 심판의 날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그 심판이 도리어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마지막 때는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라고 거기에 목적을 두고 살면 안 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을 지향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은 세상과 천국을 둘 다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두 주인에게서 배반을 당합니다.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천국을 지향하는 성도라면 천국의 자격인 거룩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어떻게 해야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성도가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 가지 원리를 찾아보겠습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이나 옷에 묻은 더러운 것들은 물로서 깨끗하게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더러운 것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 피의 공로를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요한일서 1:7절을 보면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가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②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5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영혼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영혼의 양식입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영혼을 고치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한 영혼을 튼튼하게 하는 활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낙심한 심령에게 소망과 용기를 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가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마치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가뭄을 모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내게 오셔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숨겨진 죄와 허물과 실수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렇게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뉘우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런 성도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결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가 자신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③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윗이 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편 122:6-9절을 보면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까이하며,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언어나 삶이 결정됩니다.
학교를 멀리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 할 수 없듯, 교회를 멀리하는 성도라면 올바른 믿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인간단체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골로새서 1:18절을 보면 “그는(그리스도)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일지라도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며, 예수 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라면 힘들다고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참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형통하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그 이유를 다윗은 시편 122:9절에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위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면 그 사람은 또다시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3:10절에서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마지막은 영원한 멸망, 즉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의 죄를 사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 얻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고, 지난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성도는 세상 유혹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며 이러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가 되기 위한 두 번째,
2.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만들라
성도가 거룩해지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서야 합니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회중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명령입니다. ‘하라’고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으로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거룩을 말씀하였습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려면 무엇보다도 가까이에 살아 계신 부모님부터 잘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을 보면 ‘부모를 경외하는 것’은 십계명 중 제 5계명,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제 4계명,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않는 것’은 제 1계명,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않는’ 것은 제 2계명을 가리킵니다.
성결 법전은 인간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곧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경외하지 않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부모를 잘 경외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로서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① 자신의 것을 남을 위해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이후 9-18절에서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 다른 삶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9-10절에서 거룩해지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곡식을 거둘 때 다 거두지 말고 그 일부를 남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추수하다 떨어진 이삭도 물론 남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포도원의 열매도 일부를 남겨야 하며 떨어진 포도 열매도 당연히 다 거두어 가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가난한 사람과 그 땅에 빌붙어 사는 나그네의 몫이라는 겁니다. 추수하면서 수확의 일부를 남기는 것은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풍습입니다. 그런데 이방 민족의 경우 수확물을 남기는 것은 그들이 믿고 따라는 다산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의도적으로 곡식을 남겨, 풍요를 관장하는 그들의 신들에게 음식을 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추수 때 남기는 곡식은 ‘신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음식’ 이라 하면서 거룩해지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해지기 위한 행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아픔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시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 것이 다 내게 바치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내가 너희들에게 이 모든 것을 함께 다스리고 나누어 갖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게 하신 겁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인간 개인의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 두 번째가 바로 남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베풀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이 말씀에서 누가 생각나십니까? 네 바로 ‘룻’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자기에게는 이방 땅에 온 룻입니다. 그가 밭에 가서 이삭을 주워옵니다. 그 이삭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따른 행위였습니다. 그것을 본 보아스는 막지도 말고, 한 부분을 일부러 뽑아 놓고 룻이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룻기 2:15-16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거룩한 자의 삶을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②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11절, 13절을 보면 “11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려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려” 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함의 길’을 가는 것은 주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종교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적 거룩함이 아니라, 보다 확대된 사회적 삶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란 대인관계에서 정의롭고 공평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거룩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 입니다.
레위기 19:17절과 19절을 보겠습니다.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레위기 19장이 말하는 ‘거룩함’란 한마디로 18절에 ‘...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일 강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마 22:37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하시면서 이어 39절에 말씀하십니다.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14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야고보도 말합니다. 야고보서 2:8절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거룩함은 냉정한 ‘나누는 가름’이 아니라 따뜻한 ‘안음’입니다. 개인적인 거룩을 이루었다고 남을 위한 사회적 거룩 즉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 같이 오늘 우리도 책망을 하실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잘하시고 계십니까? 그래서 개인의 의를 이루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드림의 손길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드림과 나눔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받음과 들어옴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오늘 우리에게 실행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도, 세 번째는 거룩의 기본을 찾으라입니다.
3. 거룩의 기본을 찾으라
세상에 살면서 성도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거룩입니다. 거룩은 성도들에게 생명의 맥박과 같습니다. 우리 몸의 맥박이 뛰면 살고 멈추면 죽는 것처럼 거룩하게 살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고, 거룩함에서 떠나면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의 삶의 대강령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본문은 거룩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십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거룩은 하나님의 뜻이며 의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거룩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 속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거룩을 이뤄야 합니다. 왜 성도에게 거룩이 이렇게 중요할까요? 무엇을 거룩하게 해야 할까요?
본문 2절을 보면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무엇에 거룩해야 할까요? 어떻게 거룩해야 할까요? 물론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면에서, 모든 것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3-4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야 할 것들의 기본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성도의 거룩의 기본을 여기서는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를 경외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와 셋째는 우리가 다 아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첫째는 참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십계명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하시는 말씀을 보면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성경에서 ‘경외’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사람은 절대로 경외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이 경의 대상이 되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경외하라에서 ‘경외’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한다’에서 사용되는 경외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경외’(야레)라는 말은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감정인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떨리는 두려움과 자기와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이끌리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합당한 사랑과 존경을 갖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기본입니다. 부모를 하나님을 경외하듯 존경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거룩의 기본의 둘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완벽하게 창조하시고 더 이상 만드실 것이 없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안식일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표입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잘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고 영원한 안식을 주실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큰 축복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구속을 이루어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입니다. 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고 거룩의 기본입니다.
셋째는 나 자신을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않는 것이 거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헛된 것들’은 인간이 자신들을 위하여 만든 우상입니다. 이단으로 보면 헛된 것들이 통일교회의 문선명입니다. 신천지의 이만희가 헛된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장길자입니다.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습니다.
거룩의 기본을 자기를 위한다고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대로 따라가고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거룩의 파괴입니다. 거룩의 기본을 찾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을 닮은 삶’,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본질인 거룩함을 따르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그분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도 마땅히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드리는 경배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 밖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 거룩의 기본이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고, 주일을 지키는 것이고, 우상들에게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삶이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주변의 이웃을 우리의 품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성도들만이 거룩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거룩함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아멘. 오늘 말씀을 통하여 거룩한 길을 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