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혼자 남지 않도록, 물러서지 말아 주십시오
[기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분들께
제이(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성폭력 사건 생존자)
지난해 11월 19일 민주노총은 노동자연대에 공문을 보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아울러 조력자들에 대한 비방과 괴롭힘에 대해서도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노동자연대는 12월 10일 답변 공문을 통해 “중상모략과 배제로 노동자연대는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불이익을 입었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조만간 열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노동자연대와의 연대 중단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이 같은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 공개적인 호소문을 기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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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이 지난해 11월 19일 노동자연대에 보낸 공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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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이 지난해 11월 19일 노동자연대에 보낸 공문 |
저는 노동자연대로부터 오랜 괴롭힘을 겪고 있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입니다. 저 같은 이들의 편에 서 큰 힘과 용기가 되어주시는 민주노총을 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분들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최근 민주노총이 노동자연대에 보낸 공문과 그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기막힌 답변을 보고서입니다.
퇴근 무렵, 노동자연대를 단호히 꾸짖으며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는 민주노총의 공문을 뒤늦게 접한 저는 책상 모니터 앞에 몸을 숙이고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공문에 적힌 대로 이미 “노동자연대의 관점과 시각은 …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은 지 오래였고 그 같은 행태가 몇 해를 넘기며 겹겹이 반복될수록 저는 모욕과 상처를 넘어 운동사회를 향한 깊은 냉소에 빠져 왔습니다.
악랄한 가해를 버젓이 지속하고 있음에도 노동자연대는 늘 스스로 건재를 과시했고, 바로 그 ‘건재’를 시기하는 이들의 눈먼 질투가 자신들에 대한 중상모략, 비방 운동, 따돌림의 근원이라고 자평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실은 모르지 않았다’는 선언으로 읽히는 그 공문이 저에겐 수년간 지속된 당신의 고통과 상처도 ‘실은 모르지 않았다’고, ‘이제 멈출 때가 됐다’고 담담히 위로를 건네주는 듯했습니다. 잊지 않고, 눈감지 않아 주셔서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저 상황 설명을 간략히 드리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2003년, 운동에 갓 입문한 저는 노동자연대 신입회원으로 행사준비 뒤풀이를 같이했던 한 간부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성적으로 무척 보수적이었던 저는 제대로 마셔보지도 못한 술을 만취할 만큼 먹고, 안전한 귀가를 도와주겠다며 택시에 동승했던 그 간부와 모텔에서 잠이 깬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사과가 저를 더 혼란스럽게 했지만, 더는 문제 삼거나 사건화하지 않고 가슴에 묻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가까운 지인 몇몇에게 고백하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가해자가 워낙 조직 내 신망이 크던 ‘귀한’ 동지였던 만큼 ‘나만 잊으면 되는 일’로 넘기고, 정말 잊은 듯 살았습니다. 2016년 초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가했을 땐, 이미 노동자연대를 탈퇴하고 2년이 지난 뒤였지만, 저는 여전히 그 사건을 입 밖에 내놓을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작 이렇게 말했습니다.
“논의의 기본 전제를, 최소한 제가 생각하는 기본 전제를 확인하고 싶어 두서없지만 발언을 신청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사실 상시적인 성폭력의 직간접 피해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저 역시 평범한 한국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혼전순결서약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요. 저도 그런 걸 했었고, 스스로 현모양처가 인생의 비전이라고 할 만큼 성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학생운동 경험이 없다보니, 뒤늦게 운동에 뛰어 들면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이런 온갖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해방감과 희열 때문에 아마 지금도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운동의 끝자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발제자도 말씀하셨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운동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저 스스로 보고 느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엄청난 혼란과 배신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이 특히나 고약했던 건, 운동 신입이고 소위 조무래기에 불과한 저 자신과, 상대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동지, 이런 구도 속에서 제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가 그 동지를 잃는 것, 괜히 조직을 흠집 내고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스스로 들었고, 결국은 말하지 못했고 자책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내가 왜 택시를 같이 탔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심지어 저처럼 이렇게 목소리도 크고 한 성질하는 여성조차 심지어 운동사회 내에서 이런 일을 겪고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슬픈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심한 저 같은 사람과는 달리 아주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는 그들을 열심히 응원하면서 기대했습니다. 제가 응원하고 기대했던 건 ‘내가 맺혔던 이 원한을 풀어줘라, 내 복수와 응징을 해줘라’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다만 제기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가 제기했다면 해결됐을 거야. 저 건강한 공동체가 잘못을 확인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내가 시도하지 않고 가졌던 막연한 불신을 깨끗이 해소해 줄 거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되레 피해자는 개인 신상이 낱낱이 털려 공개 당했고 의도를 의심당했고, 심지어 정신 상태까지 거론됐습니다.
저는 매우 매우 끔찍했는데, 그 용기를 지지하고 함께한다는 이유로 그 동지도 한 묶음으로 교활한 음모자로 찍혔습니다. 저는 굉장히 절망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뭘 느꼈겠습니까? 자연스럽게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가 제기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결코 이 말을 내놓지 않을 거다. 이런 교훈을 얻었습니다. 공동체 안에 있을 땐 내부자로서 스스로 내 머리 속을 단속하고, 나와서 제기하면 의도와 음모를 가진 파렴치한 사람으로 찍히는 이 구도 속에서 도저히 제기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와보니 피해자들의 이런 문제제기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토론자도 ‘송곳’ 얘기를 하시던데, 만화 ‘송곳’에 '두려운 건, 지는 게 아니라 혼자 남는 거'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내가 차마 먼저 나서진 못하지만 혼자 내버려두진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상처에만 골몰했던 게 아닙니다. 본인이 애정과 신뢰를 보냈던 공동체의 건강성을 확인하고 서로 간 신뢰를 회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게 본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토론회도 이들의 용기가 이뤄낸 성과와 진일보 위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사회는 이렇게 용기 있게 문제제기하는 분들의 기여와 그 용기에 큰 빚을 졌고 이것을 갚아나가야 할 과제를 우리 모두가 함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제가 그 토론회 백여 명의 청중들 속에서 조용히 손을 들고 소속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했던 말의 전문입니다. 녹음과 녹취록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였습니다. 청중 속에 섞여 있던 두어 명의 노동자연대 회원이 제 말을 문제 삼으며 집요하고 끈질긴 괴롭힘을 시작했습니다. 위의 발언이 단지 ‘자기 조직을 암시한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여기서부터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들은 먼저 토론회 주관단체에게는 녹취록에서 제 발언을 몽땅 들어낼 것을, 동시에 저에겐 ‘성폭력 조사를 해야겠으니 소환에 응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당연히 모두 응하지 않았고, ‘사건화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지만, 수차례 집요한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자꾸 면담에 응하지 않으시면 주장의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는 상식 밖의 협박문도 보내오더군요.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 아니라면,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황당한 일이었지만, 노동자연대와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이 일도 억지로 가슴에만 묻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2017년 9월 노동자연대 홈페이지에 저를 비방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J라는 믿지 못할 여자가 우리 조직을 중상모략하려고 성폭력을 지어내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경악한 것은 그 기사를 쓴 자가 바로 17년 전 저를 강간한 간부(운영위원, 조직국장)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분노와 충격에 휩싸여 온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악에 받쳐 그 자에게 전화부터 걸었습니다. 당장 사과하고, 기사를 내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처음엔 ‘기억은 안 나지만, 미안하다’고 하더니, 몇 시간 뒤 다시 전화를 걸어와 ‘이제부터 녹음을 하겠다. 나는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고 그런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더군요(두 개의 녹음 파일 모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억울함과 분함에 심장이 곧 터질 듯 아팠지만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가해자는 법적 대응 운운하며 갈수록 뻔뻔해졌고, 되레 피해자를 성폭력 거짓말이나 하고 다니는 못 믿을 여자라고 쓴 그 자의 글은 9개월 간 홈페이지 대문에 걸려 저를 마구 비웃는 듯 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으로 의도를 의심받고, 신상이 털리고, 명예훼손 역고소에 걸려 삶의 큰 토막들을 잃어버리는 여러 피해자들을 봐오면서 내가 얻은 교훈(?)은 ‘죽을 때까지 내가 겪은 일을 꺼내지 말아야지’였다는 게 제가 그 토론회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발언 때문에 이런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줄이야... 정말 아득했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가슴에 묻고 잊은 듯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저들이 뭐라던 내가 말려들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위로하며 속 안에 상처들을 덮고, 귀를 막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실은 어느 것 하나 잊지 않았다는 걸,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올 풀린 봉제인형처럼 곳곳에서 미투운동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내 안에 있던 서지현, 김지은이 가만있지 말라고 자꾸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2018년 5월 <참세상>에 제보하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조금도 꿈쩍 않던 노동자연대는 그제야 조급히 뭐라도 하기 시작하더군요. 물론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니만 못했지만 말입니다.
먼저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가해자 P를 운영위원과 조직국장에서 해임하며 ‘꼬리자르기’했습니다. 이조차 노동자연대가 밝힌 황당한 해임 사유는 “P가 ‘기억없음’으로 일관한 것은 … 조직과 회원들을 혼동과 분노, 긴장 상태에 빠뜨린 행위”라는 것입니다. 되레 “성폭행은 증거불충분에 의한 무혐의”라는 면죄부를 줬고, “P는 해임됨으로써 자기방어를 위해 스스로 싸워 할 것”이라고 주문했습니다. 동시에 “J의 목적은 중상모략”이므로 “어쨌거나 J는 우리를 비방할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의도를 품고 자신들을 음해하는 여자로 낙인찍고 진행한 그들만의 조사에 처음부터 응하지 않은 제 선택이 역시 옳았음을 확인해 준 글이었습니다.
이들이 다음으로 한 것은 저의 행실과 평판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으며 ‘못 믿을 여자’만들기였습니다. 사건과 완전히 무관한 저의 내밀한 사적 정보들이 마구 공개됐습니다. 특히 저의 연애사가 자주 전시되더군요. 누가 언제부터 쫓아다녔고 누구는 언제부터 만나고 지금은 누구를 사귀고 있는지 등이 ‘진실을 밝힌다’는 이유로 기사, 공문, 문자 등의 형식을 빌려 여기저기, 이 단체 저 단체에 옮겨 다녔습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제가 노동자연대 회원이던 시절, 그 조직의 성폭력 사건 전담기구를 믿고 비공개로 받았던 직장내 성폭력 상담 기밀을 입맛대로 왜곡해 공개하는 범죄까지 저질렀습니다.
그 범죄적 기사는 온갖 단체에 뿌려진 후, 지난해 5월엔 그들의 홈페이지에 공개됐고, 수차례 문제제기에도 아랑곳 않다가 민주노총이 공문을 발송한 12월에서야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밤새 술이나 마시고, 벌거벗겨진 채 깨어나고, 직장이며 어디며 야릇한 일을 겪는 행실이 의심스러운 여자라고 말하고 싶어 멋대로 공개한 상담기밀임에도 민주노총의 공문 한 장에 스리슬쩍 글을 지우고선, 최근엔 ‘실은 상담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더군요. 글을 지운 것은 사실 ‘증거인멸’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더는 잊은 듯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똑똑히 기억하고, 더 설치고 떠들고 다니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의 도를 넘은 이런 행태를 알리고, 손을 잡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덕분에 이미 수많은 여성, 인권, 성소수자, 시민사회 단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주셨습니다. 80여 개 단체들이 연서명해 입장을 발표해 주셨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도 노동자연대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공식 조사한 후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도 꾸준히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 같은 여성 노동자에게 큰 힘을 주었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이 저의 편에서 문제제기해 주셨다는 감격스러운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증거가 분명한 사실들을 버젓이 왜곡하며 저의 손을 잡아준 이들까지 다양한 논리로 공격하고 괴롭혀 왔습니다.
운동사회에서도 성폭력은 어디서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과연 이처럼 결코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단체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민주노총과 함께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요? 결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노동자연대의 깃발이나 피켓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 어떤 집회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20대 청춘부터 수십 년간 ‘동지’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내 삶과 존재의 근간이 썩고 흔들리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연대의 괴롭힘이 시작된 그 토론회 청중발언에서 제가 했던 말처럼 “피해자는 자신의 상처에만 골몰했던 게 아닙니다. 본인이 애정과 신뢰를 보냈던 공동체의 건강성을 확인하고 서로 간 신뢰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게 본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가해를 멈추고 사과하라’는 호소를 “비방운동”이라며 되레 본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적반하장의 공문을 버젓이 민주노총에 발송할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수년간 쌓아온 거짓의 숲이 너무 빽빽해 본인들이 쓴 글을 다시 인용하는 과정에서조차 뻔한 거짓이 재생산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일 것입니다. “교열오류”니 어쩌니 변명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이미 민주노총의 산하 노조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일방으로 보내온 거짓과 가해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왔고, 참다못한 이들이 제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기하고 뒤늦게 우연히 알게 되는 일도 자주 벌어져 왔습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가해 행태를 추가하는 노동자연대를 보며 ‘결국 나 혼자 안고 가야할 영원한 고통’이라는 무력감에 빠질 때면, 간혹 ‘그만 잊으라’는 말에 무릎이 꺾일 즈음이면, 어김없이 ‘모르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행동으로 말해주는 이들 덕분에 지금까지 그나마 온전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제 ‘평화와 인권과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단호히 답해주시길 호소드립니다. 저에게 건넨 위로가 듣기 좋은 말뿐은 아니었음을, 운동사회에서조차 성폭력 피해자가 단지 힘없는 개인이라는 이유로 사라지고 가해자만 남게 되는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성폭력은 골치 아픈 당사자 간 문제일 뿐이라며 판단을 유보하고 절충하면서 물러서지 말아주십시오. 앞서 말씀드린 청중발언에서 '두려운 건, 지는 게 아니라 혼자 남는 거'라는 만화 ‘송곳’의 대사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성폭력을 겪고도 침묵한 스스로를 반성하며, 같은 피해자들이 혼자 남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것으로 대신하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던 것입니다. 그 다짐이 수년의 시간을 건너 나를 위해 재인용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저를 부디 혼자 남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노동운동과 운동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받을 수 있도록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제 손을 잡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참고 자료(링크)
* 민중언론 <참세상>에서 관련 기사와 피해자 인터뷰 보도(2018.5.3.~7.5까지)- 노동자연대, 성폭력 피해 강제로 사건화하고 괴롭혀- 노동자연대, 피해자 비난하며 가해지목인 해임- 진실을 왜곡하며 피해자를 더욱 괴롭히는 것이 ‘진상규명’인가?
* 76개 단체, 755명이 노동자연대의 2차가해 중단과 사과를 촉구하는 연서명 발표(2018.8.12.)
*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노동자연대를 비판하는 보고서 발표(201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