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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
초월과 일상의 담론세계, 우리 시조의 다양한 얼굴들
시조시학 2013년 여름호 -이 시집을 주목한다
-이우걸, 『주민등록증』(고요아침)
-정수자, 『탐하다』(서정시학)
-박미자, 『그해 겨울 강구항』(동학사)
-조민희, 『은행잎 발라드』(책만드는집)
박성민(시인)
1. 날카로운 직관으로 응시하는 존재의 진실 -이우걸,『주민등록증』
1973년에 등단하여 『지금은 누군가 와서』, 『빈 배에 앉아』, 『주민등록증』,『저녁 이미지』, 『사전을 뒤적이며』, 『맹인』,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등을 상재했던 이우걸 시인이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유의 미학을 정형의 그릇에 담은 새 시집, 『주민등록증』을 발간하였다. 이우걸 시인은 고루한 시조를 지양하고 현대시조의 전범(典範)을 보여줌으로써 정형시단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시인이다.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잘못 쓰면 식상해지기 쉬운 직유나 은유를 참신하고 적확(的確)하게 구사하는 이우걸 시인은 그런 의미에서 플로베르가 주장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의 구체적 용례를 보여주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의 이치에서 가장 핵심적인 곳 하나를 끄집어내어 엉킨 실타래를 풀어낸다. 서정적 미감에 초점을 둔 초기의 시편도 있지만, 주로 우리 주변의 소외계층이 겪는 아픔과 방황을 짙은 페이소스로 형상화한 시편, 강렬한 역사인식이 드러난 작품, 도시인들의 물화된 삶을 그린 작품으로 시적 영역을 확장해왔다. 우리 현실에서 억압받고 소외받아 상처받은 존재들을 향하고 있는 그의 시세계로 들어가 보자.
아직도 우리 주위엔 직선이 대세다
바로 지시하고 바로 반응하고
길들은 산을 뚫어도 스트레이트로 뻗어야 하고.
건물들은 눈치껏 가로 세로를 맞추고
사람들은 안전선 밖에 일렬로 서야 하고
아직도 우리 주위엔 직선이 대세다.
쉽고 편하고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직선은 굳으면 칼날이 된다는데
아직도 우리 주위엔 직선이 대세다.
-「아직도 우리 주위엔 직선이 대세다」 전문
물질 중심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현대사회는 직선적인 삶의 방식이 세계를 지배한다. 고속도로와 건물들은 일직선으로 만들어져야 하고 상사가 지시하면 바로 즉각 반응을 보여야 부하 직원은 출세할 수 있다. 신속하고 정확하고 효율적이라는 명분에 의해서 우리 현대인들은 직선적인 사고방식과 직선적인 삶의 양태 속에 살아간다. 한마디로 “아직도 우리 주위엔 직선이 대세”인 것이다. 이러한 직선적 삶의 양태는 상명하복의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를 낳고, 타자를 감싸 안는 곡선적인 삶보다 자신의 욕망과 요구를 타인에게 관철시키는 힘을 추종하는 상황을 야기한다. “직선은 굳으면 칼날이 된다는데”에는 이러한 우려가 내포되어 있다. 내부적으로 약자에 대한 지배계급의 착취, 외부적으로는 약소국에 대한 침략과 전쟁 등이 모두 직선적 삶을 욕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현대인들은 이런 직선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적 대응이 없이 ‘눈치껏’ 이를 추종하고 있다. 이런 직선이 대세인 삶의 공간은 “일층은 경양식집/ 이층은 커피숍/ 삼층은 주점/ 사층은 노래방// 마지막 관문을 열면/ 야누스 모텔이 있다.”(「반도 빌딩 안내도」)에서도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이 물질문명의 화폐성과 손잡고 결탁한,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우걸 시인이 진정 바라는 것은 곡선의 삶이다. 그것은 “그저 달무리처럼 둥글고 싶었을 뿐/ 빗금이 되어서라도 부딪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각도가 생겼다.”(「관계」 2수)에서와 같이 직선으로 인해 인간이 입게 되는 상처가 아니라 달무리처럼 상대를 감싸고 수용하고 포용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원형 지향의 시세계는 이우걸 시인으로 하여금 물질문명으로 가득 찬 세계의 허위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하게 하며 직선이 창출해 내는 높은 건물과 같은 물질적 삶을 거부하고 그의 시선이 원형 지향의 낮은 곳을 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시에서 이우걸 시인의 원형 지향은 ‘다리미’라는 곡선 지향의 객관적 상관물로 형상화된다.
한 여인이 떠났습니다, 월요일 자정 무렵
아들, 딸은 멀리 있었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가끔은 들렀다지만
온기라곤 없었습니다.
식은 다리미처럼 차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 다리밀 데우기 위해 퍼져 있던 코일들이
전원을 찾아 헤매다
지쳐 눈을 감았습니다
한때는 뜨거운 다리미로 살았겠지요
웃음도 체온도 나눠주던 얼굴이지만
전원을 잃어버리자
그만 눈을 감았습니다
-「다리미」 전문
독거노인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됐다고 한다. 20년 사이에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5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청 수치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노인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도 생겼다. 현대판 고려장은 부모를 요양원이나 노인시설에 홀로 방치한 채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을 말한다. 고령화 사회의 심각한 부작용을 증명하는 사례다. 독거노인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핵가족화인데, 가족해체의 속도와 자살률은 비례한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연로하신 어머니가 월요일 자정 무렵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 딸들은 멀리 있어서 아무도 임종을 맞지 못했다. 가끔 들러서 자식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이행했을 뿐 무릎에 앉혀 키웠던 자식들은 노인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만져볼 온기조차 남겨놓지 않았던 존재들이다. 다리미는 코일을 통해 전원이 공급되어 제 몸이 뜨거웠을 때라야 존재가치가 있다. 노인에게 뜨거운 전류는 자식들이다. “한때는 뜨거운 다리미로 살”면서 가족들에게 “웃음도 체온도 나눠주던 얼굴”이었던 노인이 차갑게 식은 몸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독거노인 문제가 이제 이웃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힘들게 키워낸 자식사랑에 대한 대가가 슬프고 가혹하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 것을 우려해 스스로 요양원을 찾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바로 얼마 후에 우리가 직면할 현실일 수도 있다.
이 비누를 마지막으로 쓰고 김 씨는 오늘 죽었다.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조그마한 비누 하나.
도시는 원인 모를 후두염에 걸려 있고
김 씨가 쫒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엔
쓰다 둔 그 비누만 한
달이 하나 떠 있다.
-「비누」 전문
비누는 더럽혀진 부위를 씻는 소모품이다. 일당을 받으며 자신의 땀과 피를 비누거품처럼 노동현장에 흘리는 도시노동자 역시 비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하루하루 자신의 몸과 생각이 닳아진 채 사는, 피동적 존재인 노동자. 누추한 노동의 하루가 끝나면 김 씨의 몸을 씻어주던 비누,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져 몸이 깎인 비누, 밤새 쥐가 갉아먹기도 하는 비누, 점점 더 작아진 몸으로 김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비누는 다름 아닌 김 씨의 왜소한 자화상이다. 1수 초장에서 화자는 “이 비누를 마지막으로 쓰고 김 씨는 오늘 죽었다.”는 진술로 노동자인 김 씨를 비누에 투사한다. 김 씨가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갈 때, 노동으로 인한 통증의 부위까지 어루만지고 씻어주던 비누는, 김 씨에겐 “헐벗은 노동의 하늘을 보살피던” 존재였고, 자신의 닳아져가는 삶을 응시하는 “영혼의 거울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나르시스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자아성찰로서의 거울은 물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바로 물기 묻어 매끈한 비누가 거울이 되는 것이다. 거울과 비누의 속성은 사물을 비추는 표면성을 소유하지만, 그것들을 흡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비추게 하거나 씻게 하면서도 자신의 내부로 흡수하지도 않는 존재, 그것이 거울과 비누의 속성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누는 김 씨와 등가물의 관계에 있으며 혼융일체의 상태는 아니다. 비누 또한 노동자로서 동병상련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달동네 꼭대기에 살던 “김 씨가 쫒기며 걷던 자산동 언덕길 위”에 “쓰다 둔 그 비누만 한/ 달이 하나 떠 있다”는 결구는, 시인이 경험한 정서적인 내면풍경 속으로 독자를 완벽하게 끌어들인다.
“아직도 내 사랑의/ 주거래 은행이다/ 목마르면 대출 받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고/ 갚다가/ 대출받다가/ 대출받다가/ 갚다가…”(「어머니」)와 같은 인간적인 온정을 간직하면서도 “30년 된 서점을/ 퓨전 술집이 밀어버”(「낮술」)리고 물질적인 이윤과 쉽게 손을 잡는 현실을 비판하는 예리한 시선과 함께 “스스로 울음 울면서 한 시대를 기록하”(「만년필」)는 시인이 바로 이우걸 시인이다.
2. 울음의 내력, 그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 -정수자, 『탐하다』
1984년에 등단하여 『허공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등 시집을 상재했 던 정수자 시인이 등단 30년 만에 탐하다 를 발간했다. 시집 제목을 본 순간 독자들은 궁금증에 빠진다. 탐(探)하다일까? 탐(耽)하다인가? 아니면 탐(貪)하다인가? “달항아리 어깨 같은/ 무심의 흰 경계를 탐하다// 시인은 끝까지 가보는 자라니/ 말의 안과 밖과 너머를 탐하다// 아픔 고픔 슬픔의 곳곳을/ 못 미치는 말로 탐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의 으늑한 그늘에 깃들어/ 다시 흠흠 탐하다”라는 시인의 말의 읽어보면 시인은 언어와 자신과 세계를 탐(探)하고 탐(耽)하며 탐(貪)하는 것이리라. 정수자 시인이 탐하는, 언어와 세계의 안과 밖을 함께 탐해 보도록 한다.
외롭고 외로울 때
바다는 더 저승 같고
수선화 목을 빼도 봄소식 감감할 제
꽃인 양 서책을 품고
달려오던 그대여
그립고 그리울 제
집은 한 채 무덤 같고
먹물 나눈 벗조차 황차 무심할 제
생을 건 먼 바닷길에
비단을 펴던 그대여
세한의 매운 그늘
뼛속까지 시려올 제
문자향 문득 피운 송백을 우쭐 세운
더없이
깊은 그대여
푸르도록 기루겠네
-「장무상망(長毋相忘)-세한도 시편」 전문
장무상망(長毋相忘)은 문자 그대로 ‘서로 오래 잊지 말자’는 의미로 세한도 한 쪽에 붉게 찍혀 있는 인장인데, 이는 추사가 제주로 유배 가기 전은 물론이고 유배 간 후에도 변함없이 극진하게 따르던 제자인 우선 이상적의 마음을 기린 것이다. 제주로 유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친한 친구였던 김유근, 사랑하는 아내의 사망소식을 들었고, 반대파들의 끊임없는 박해에 “먹물 나눈 벗”으로 자처하던 친구들의 소식도 끊어졌다. “수선화 목을 빼도 봄소식 감감할 제”는 이런 추사의 심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책만을 벗 삼아 지내며 외로울 때마다 추사가 바라보던 바다는 저승보다 더 저승 같이 출렁이며 검은 형체로 밀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통역관이었던 제자 이상적만큼은 항상 청나라 사신으로 갈 때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최신의 책들을 구해다가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는데, 한번은 그 구하기 힘들다는 경세문편을 보냈다. 권력자들에게 바치면 출세가 보장될 책을 바다 멀리 유배되어 아무 힘도 없는 스승에게 보냈던 것이다. “꽃인 양 서책을 품고/ 달려오던” 제자, 변함없는 그의 마음에 “세한의 매운 그늘/ 뼛속까지 시려”오는 뭉클한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을 추사는 창문 하나 그려진 작은 집, “그립고 그리울 제/ 집은 한 채 무덤 같”은 집을 그려내고 “문자향 문득 피운 송백을 우쭐 세”워 그린 것이다. 세한도라는 그림의 왼쪽에 세로로 써진 우선시상(藕船是賞: 우선은 감상하게나)이라는 글귀는 제자의 의리와 지조에 대한 감동과 칭찬의 의미가 담겨있다. 눈 내린 흔적도 없는 세한도가, 바라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쓸쓸한 분위기이듯이 이 시 역시 반복과 변조의 율격 속에 세한의 매운 필체, 그 저승 같은 외로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들은 역 근처나 공원에서 발굴됐다
알코올에 절인 몸은 주로 굽어 있었고
텅 텅 빈 눈구멍들은 낙백(落魄)으로 깊었다
직업은 풍찬노숙 더러는 와불 탁발
철을 잊은 방랑자 또는 나름 빨치산
결국은 걸신 공양임을 보고서가 밝혔다
하지만 뼈만 보유한 저 무욕의 종족은
바람을 주신 삼던 오랜 유목의 현신
하건만 불가촉 도태가 날마다 상장됐다고
각종 변종 쓰나미가 그렇게 거듭 칠 동안
1%의 신흥 부족은 다른 별로 이주하고
노숙국, 지구 곳곳은 화석으로 늙어 갔다
-「노숙화석」 전문
노숙자들이 겨울이면 꽁꽁 언 몸으로 역 근처나 공원에서 발견되는 모습을 화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서울역에서는 노숙자들에 대해 강제퇴거조치가 내려졌다. 그들은 인근 공원이나 수원역 부근으로 흩어져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역 근처나 공원이 거주지인 노숙자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소주를 마시고 잔다. “알코올에 절인 몸은 주로 굽어 있”고 “텅 텅 빈 눈구멍들은” 넉 나간 사람들처럼 움푹 패어 있다는 묘사를 통해 노숙자들과 화석을 자연스럽게 오버랩하는 능숙함을 보여준다. 겨울에도 가을 옷을 걸친 “철을 잊은 방랑자”이거나 세상에서 숨어 지내는 “나름 빨치산”으로 자부하지만, 풍찬노숙과 와불 탁발뿐인 노숙자들. “결국은 걸신 공양임을 보고서가 밝혔다”에서는 시인의 고급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이러한 유머감각이 경박하게 생각되지 않은 이유는 “뼈만 보유한 저 무욕의 종족”이나 “바람을 주신 삼던 오랜 유목의 현신”에서처럼 시인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대상을 안쓰럽게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노숙자들은 인도의 계급에 비유하자면,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노예, 천민)로 구분되는 카스트제도 내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인 달리트(dalit)다. 이 작품은 “노숙국, 지구 곳곳은 화석으로 늙어 갔다”와 같이 감정을 배제한 채 철저하게 르포 형식의 서술태도를 취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노숙자 문제를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시인의 의도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따리상 곁꾼이야 풍찬(風餐)의 방계려니/ 일용할 슬픔인 양 선숙(船宿)을 뉘고 보면// 한생이 샛바람이라네/ 찬 별들과 찬 이슬과”(「땅멀미」)에서처럼 우리나라와 중국의 바다를 오가며 배 위에서 잠자는 보따리 상인들의 삶, “잠시 뽑은 여생을 다시 끙, 박는 오후/ 몸뚱이는 이제부터 바람의 만찬이다/ 서서히/ 살을 발리는/ 검은 노숙”(「겨울 효원공원」)에서처럼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따뜻한 애정의 시선을 견지한다.
늑대 울음 같은 게
늑골을 종종 받는 건
목매야 다시 사는
폐족의 내훈 같은
찬 우물
차마 두고 온
폐가의
내력 때문
목매야 사는 족속의
두레박을 두고 온 뒤
목메는 생을 건너도
목메는 꽃은 못 피워
먼물이
또 뒤채나 보다
미리내가
문득 차다
-「울음의 내력」 전문
이 시에는 귀기(鬼氣) 같은 고독과 한숨이 서려 있다. ‘우물(두레박) - 먼물 - 미리내’라는 물의 생성과 순환, 상승과 하강을 통해 뼈저린 고독의 경지를 형상화하는 정형의 미학이 돋보인다. ‘목매야’라는 비극적 자살의 상황과 ‘목메는’이라는 울음의 상황을 오묘하게 결합하여 유사한 음으로 반복 배치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율격을 획득하는 이 작품은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이 처절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찬 우물/ 차마 두고 온/ 폐가의/ 내력” 같은 원초적인 울음의 내력은 “목메는 생을 건너도/ 목메는 꽃은 못 피”운 화자를 “늑대 울음 같은” 절대고독의 상황에 놓이게 한다. 폐가에 내던져진 채 버려진 두레박 같은 화자의 영혼은 실존적인 층위에서 “늑대 울음 같은” 울음을 울어야 하는 존재,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에 ‘내던져진(Gewortenheit) 존재’다. 고독한 존재인 인간은 “목매야 다시 사는/ 폐족의 내훈”을 읽으며 허무를 깊이 깨우치고, 자신을 내던져서 실현하기 때문에 실존하며, 실존하기 때문에 “목메는 생을 건너”려는 존재, 즉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는 현존재(Dasein)다. 그러나 화자는 차디찬 은하수의 “먼물이/ 또 뒤채”는 소리를 들으면서 울음의 처소에서 살아가는 거주자일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정신의 유연성을 통해서 통념이나 관습적 표현을 깨뜨리고 사물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모습, 또는 자유로운 본성을 꿰뚫어본다는 점이 정수자 시의 매력이다.
3. 상처를 다독이고 감싸 안는 내간체의 시 -박미자, 『그해 겨울 강구항』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박미자 시인의 첫 시집인 『그해 겨울 강구항』은 이우걸 시인이 시집 해설을 통해, 여류시인만이 쓸 수 있는 “따뜻한 내간체의 시”라고 단언할 만큼 모성애적 언어로 써내려간 시편들이다. 박미자 시인의 시세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를 비판하거나 경고하는 경향을 취하기보다는 세계를 긍정하고 포용하면서 조화를 이루려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질서와 규칙을 깨뜨리면서 오브제에 해학적으로 접근하거나 신랄하게 풍자하는 시편들이 눈에 많이 띄지 않는 것은 시인의 성향이나 체질이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가깝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광과 냄새를 그려내려는 첫 시집의 의도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박미자 시인의 등단작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극 끝난 화면처럼 다 쓸린 해안선 따라
더 이상 참지 못해 안부 묻는 비릿한 초설
복숭뼈 아려오도록 길을 모두 감춘다
흰 이빨 드러낸 파도 밤새 기침 해대고
사연 낚는, 집어등 즐비한 환한 횟집
화끈히 불붙는 소주로 동파의 밤 데워간다
가출한 갈매기 떼 돌아오는 아침이다
풍향계 돌려대는 바람은 신선하고
풀리는 뿌연 입김에 인화되는 흑백 한 컷
-「그해 겨울 강구항」 전문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작품은 겨울날 썰물의 바닷가를 “극 끝난 화면처럼 다 쓸린 해안선”으로 형상화하는 도입부가 눈길을 끈다. 상실과 허무의 절망적 공간인 겨울 바다에 “더 이상 참지 못해 안부 묻는 비릿한 초설”라든가 “흰 이빨 드러낸 파도 밤새 기침 해대고”와 같은 활물적 이미지로 생기를 부여하는 시인이 “복숭뼈 아려오도록 길을 모두 감춘” 겨울 강구항의 생채기를 읽는 눈도 예리하다. 강구항 주변의 횟집에서 “화끈히 불붙는 소주로 동파의 밤 데워”가면서 갈매기가 돌아오는 아침을 기다리는 화자는 상실과 허무의 절망적 공간 속에서 희망의 아침을 기다린다. 그 아침은 “풍향계 돌려대는” 신선한 바람과 함께 떠오른다. 바닷가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뿌연 입김’을 느끼면서 간밤의 강구항을 “인화되는 흑백 한 컷”으로 출력해내는 화자의 시선 속에서 겨울 강구항의 아침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주변의 일상사를 노래한 시편들이 많지만, 「새만금 소묘」에서처럼 “방조제 안쪽에 갇힌 붉은 울음”을 듣는 귀와 감각도 함께 읽혀졌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학연·지연·혈연에 대한 비판과 그에 동조하려는 욕망의 실체를 사설시조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줄」도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를 해학적으로 구사한 수작이다. 다음과 같은 시편들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풍자한 시로 눈에 띄었다.
콕콕콕 무언가를 뒤뚱뒤뚱 쪼고 있다
인기척 소음에도 놀라거나 들은 체 않는
닭인지 비둘기인지 분별 안 된 닭둘기
시대가 낳은 산물 살기 위해 너도 변한
거멓게 추해진 몸 네 잘못 아닌 오늘
날개에 묻은 추억만 허공에 털어내고
평화란 수식어는 책갈피에 끼워둔 채
달동네 소식 한 줄 목을 빼지 않는다
회색빛 보도블록을 밟고 섰는 누구도
-「닭둘기」 전문
비둘기에 관한 현대시의 시편들로는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김유선의 「김광섭 시인에게」, 신동집의 「포스터 속의 비둘기」 등이 있다. 김광섭 시인의 작품이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 그리고 소외된 현대인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였다면, 김유선의 작품은 인간에게 길들여진 시청광장 비둘기들을 통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도시의 소시민들을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신동집의 작품은 자유와 생명을 잃어버린 존재의 비극을 형상화했다. 박미자 시인의 「닭둘기」는 도심에 사는 비만한 비둘기를 통해 꿈과 함께 자연을 상실한 도시인들의 나태하고 이기적인 속성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닭둘기는 “닭인지 비둘기인지 분별 안 된 닭둘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닭과 비둘기의 합성어다. “날개에 묻은 추억만 허공에 털어내”는 닭둘기는 새의 속성인 나는 것을 잊어버린 채 편리한 먹잇감을 위해 도심에서 살아가는 존재, “콕콕콕 무언가를 뒤뚱뒤뚱 쪼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살기 위해 “거멓게 추해진 몸”으로 변해 버린 닭둘기는 평화라는 수식어조차도 별 관심이 없고 “달동네 소식 한 줄 목을 빼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이 닭둘기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화자는 자신도 결국 이렇게 닭둘기처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인식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임란의 치욕 안고 끌려갔던 조선 도공
물레 돌린 시간만큼 고국 하늘 품었지만
쨍그랑 빛빛의 조각 사금파리 탑이 되고
생질꾼 십 년 만에 명장 되어 혼 뺏겼어도
청화백자 몸체마다 물고기 키웠으리
현해탄 건너는 꿈은 고국 뭍에 닿게 할
아직 삭지 못한 가마 속 그 울분은
비늘 돋은 파편들로 시리도록 빛나는데
살풀이 흰빛의 혼령 조류 따라 떠돈다
-「사금파리 탑」 전문
시인의 역사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임진왜란이라는 8년 전쟁으로 인해 조선은 폐허가 되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하거나 끌려갔으며, 숱한 문화재가 약탈되고 도공들도 끌려가서 치욕적인 삶을 견뎌내야 했다. “생질꾼 십 년 만에 명장 되어 혼 뺏”기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청화백자 몸체마다 물고기 키웠”을 조선의 도공들, “물레 돌린 시간만큼 고국 하늘 품었지만” 현해탄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오는 꿈은 꿈속의 꿈일 뿐, 그들의 한은 가마 속 울분으로 활활 타올라서 “쨍그랑 빛빛의 조각 사금파리 탑”이 되어 “살풀이 흰빛의 혼령”으로 떠돌았을 것이다. A. 토인비가 “역사는 그 자체를 되풀이한다.”고 했던가. 반성하지 못한 역사, 대비하지 못하는 상황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 일제강점기를 통해 증명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그 아픔을 재현하고 되새겨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금파리 탑으로 지나간 아픔의 역사를 되살리면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상기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임을 이 시는 새삼 상기시켜주고 있다. 일본 교토에는 임진왜란 때 야만적인 왜군들이 전공(戰功)을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하기 위해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베어서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가지고 돌아간 코무덤, 귀무덤도 있다. 그때 희생되어 코와 귀를 잘려나간 조선인의 수는 무려 12만 6천여 명이라고 한다. 아픈 역사는 절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4. 음악적 상상력의 진폭과 여운 -조민희, 『은행잎 발라드』
조민희 시인은 《문예시대》시부문 신인상에 당선된 후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신춘문예 사상 최고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첫 시집은 결혼 50주년을 기념하여 부군이 조시인의 시를 작곡한 노래, 그리고 큰 따님이 세밀한 색연필화로 표지와 본문의 삽화를 담당함으로써 아름다운 하모니 속에서 종합 예술적 면모도 선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면조민희 시인의 등단작인 「콩나물 일기」에서의 콩나물 역시 콩나물시루 안에서 자라나는 음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
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이 열리고.
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주는
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
-「콩나물 일기」 전문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은 “별꽃 뜬 어둑새벽”이 “그믐달과 살을 섞”는 영등포역 부근 국밥집이다. 한여름 미명의 새벽은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선잠을 털고 일어나서 하루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 고단한 시간이다. 이 새벽에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리는 콩나물 역시 또 하루의 생을 시작한다.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은 사실 콩나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단순반복적인 도시 노동자의 왜소한 꿈과 열망, 그리고 누추한 삶이 콩나물 속에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열고 싶은 콩나물은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주”면서 상처가 상처를 쓰다듬고 위로하는 동병상련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조민희 시인은 생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자들의 힘겨운 삶과 외로움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 본연의 따뜻한 삶이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의도에서 연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1.
좌와 우 조화롭게 뒤집고 다독인다.
깃가지 머리에 달고 높이 날던 새의 무리, 오금이 저린다고 땅바닥에 머릴 박았겠지, 고것이 뭐 하는 짓거린가 하니 자살이란 말이랑께. 오메 자살이라니, 자살이 뭔 말이당가? 자살, 자살할 양이면 자 살자, 자 살자 입 앙당물고 참으란 말이랑 마시.
이보소,
‘살’자에 힘 팍 주고
자살자
힘껏 살장께.
2.
(전략)
뭐시라
d, o, g, g, o, d,
멍! 멍! 개 영물(靈物) 된다?
(중략)
4.
애국가 열창하며
태극무늬 너울지고
어린 피 어룽지며
피워낸 장미 송이
그렇지,
데칼코마니
8·15 & 5·18
-「데칼코마니-나비 날개, 그 무늬를 읽다」 부분
고희를 넘긴 시인이 썼다고 생각하기엔 발상이나 표현 면에서 너무나도 젊은 시조다. 물론 젊은 시조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연령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아니다. 20대의 갓 등단한 신인이 몇 백 년 전 시조에서 몇 발자국 벗어나지 못한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요는 시 정신 혹은 개성과 관련된 문제다. 데칼코마니와 나비날개라는 대칭적인 의미의 제목을 통해 시인은 좌와 우, 위와 아래를 “조화롭게 뒤집고 다독”이면서 통념과 상식을 뒤집는 역동적 상상력을 걸쭉한 입담 속에서 선보인다. 해학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전라도 사투리로 구현되는 시인의 입담은 마치 남도창을 듣는 듯 생동감과 현장감이 넘친다. “오메 자살이라니, 자살이 뭔 말이당가? 자살, 자살할 양이면 자 살자, 자 살자 입 앙당물고 참으란 말이랑 마시”를 읽으면 입 꼬리가 저절로 말려짐을 느낄 수 있다. ‘자살’의 데칼코마니는 ‘살자’, ‘dog’의 데칼코마니는 ‘god’이 된다. 개(dog)가 신(god)이 되는 이 통쾌한 전복의 상상력은 “멍! 멍! 개 영물(靈物) 된다?”라는 진술을 통해 해학의 정점을 달리게 되는데, 해학과 풍자로 일관된 이 옴니버스 시조의 분위기에 중량감을 부여하는 것은 4다. “애국가 열창하며/ 태극무늬 너울지”던 8.15와 “어린 피 어룽지며/ 피워낸 장미 송이”를 데칼코마니로 인식하는 시인의 인식이 놀랍다. “그렇지,/ 데칼코마니/ 8·15 & 5·18”라는 인식의 층위는 여느 시인에게나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탐진강 따라간다, 애기 은어 잔발 뛰는
섬 그늘 징검돌 놓아 쪽물 푼 정남진에
관 쓰고, 천관(天冠)을 쓰고 은비늘을 펼친 순간
녹슨 칼날 짤랑이며 신명 나게 검무를 추는
차르르 춤사위에 낮달 저리 흥이 돋아
둥기 둥, 술대를 들고 거문고 줄 고르는가
비워낸 마음 안쪽 소리들이 쌓여간다
허방 같은 가슴께를 밟고 가는 발자국들
죄 뜯긴 앞섶 여민다, 주워 담는 음율 하나
-「애기 은어 잔발 뛰는」 전문
조민희 시인의 섬세한 시안이 손끝에 만져지고 귀에 들릴 듯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시다.
“애기 은어 잔발 뛰는/ 섬 그늘 징검돌 놓아 쪽물 푼 정남진”이라는 표현은 자연 정경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감각적이고 능숙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녹슨 칼날 짤랑이며 신명 나게 검무를 추는” 애기 은어의 춤사위에 낮달까지 한 통속으로 흥이 돋아 어깨를 들썩이는 정경은 흥겨운 음악적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흡입하는 개성적인 변주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풍경으로만 읽혀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시인이 놓치지 않는 삶의 일면은 “비워낸 가슴 안쪽”과 “허방 같은 가슴께를 밟고 가는 발자국들”을 발견하는 섬세한 심안(心眼)이다. 삶이 그렇듯이 애기 은어의 춤사위가 흥겹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님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죄 뜯긴 앞섶”에 음률 하나를 주워 담으며 애기 은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은비늘을 펼치면서 탐진강 오선지 위에 몸의 악보를 그려내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측면에서 조민희 시인은 비관적인 낙천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 시냇물의 흐름에도 음악이 있다. 사람들이 귀를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한 G. 바이런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이 바로 조민희 시인이다. “파릇한/ 저 피치카토/ 바이올린 켜는 봄비”(「3월 칸타빌레-명자나무)에서처럼 봄비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시인, “후드득 찬 빗줄기 왈츠를 연주한다”(「은행잎 발라드」)에서처럼 늦가을 빗줄기 속에서 왈츠를 듣는 시인, “시린 가슴에 베이스로 감겨든다”(「12월 별자리」)에서처럼 자연의 모든 사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인이 바로 조민희 시인이다. “당신은 음악을 듣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음악 쪽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고 말한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음악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다. 조민희 시인의 시편들 역시 내적으로 조화롭고 통일된 우주를 향해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발췌: 《시조시학》2013 여름호
박성민 :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1~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시집 『쌍봉낙타의 꿈』. 21세기시조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