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의 본질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 있는 백성을 만족시키는 것이기에 위정자들은 종종 음식을 정치의 소재로 삼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먹는 찜닭, 백숙도 정치와 관련이 깊다.
“신께서 나에게 허락하시는 한, 프랑스의 모든 국민들이 일요일마다 냄비에 닭 한 마리를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
17세기 초, 프랑스 부르봉 왕가를 건설한 앙리 4세가 신구교도 사이의 지루했던 종교전쟁을 마무리 짓고 풍요로운 프랑스 건설을 약속하며 한 말이다. 여기서 비롯된 요리가 유명한 프랑스의 찜닭 요리 코코뱅(coq au vin)이다.
코코뱅은 ‘포도주 속의 수탉’이라는 뜻으로, 냄비에 닭고기와 각종 채소를 썰어 넣은 후 와인을 붓고 오랫동안 졸여서 닭고기에 포도주의 향이 스며들도록 만드는 프랑스 전통 요리다. 프랑스 농민들이 주로 먹었던 요리로 대중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인지, 혹은 수탉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인지 포도주 속의 수탉, 코코뱅은 지금 프랑스를 상징하는 요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프랑스는 왜 미국이나 독일과 달리 독수리도 아닌 수탉을 나라의 마스코트로 삼았을까?
프랑스 사람들은 닭을 영물로 여기지만, 그 때문에 마스코트로 삼은 것은 아니다. 수탉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고대 프랑스는 골(Gaul)족이 살던 땅이라서 로마인들은 프랑스를 갈리아라고 불렀다. 갈리아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갈루스는 프랑스를 의미하는 동시에 수탉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수탉이 프랑스의 마스코트가 된 것이다. 이래저래 프랑스 사람들이 포도주로 졸인 수탉 요리, 코코뱅을 즐겨 먹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프랑스 국민 모두가 일요일에 닭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한 앙리 4세는 어떻게 갑자기 그 많은 닭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국가 재원을 총동원해서 대대적으로 양계 산업을 육성하기라도 한 것일까?
서민들까지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비결은 프랑스의 마스코트인 수탉에 있었다. 늙은 수탉은 고기가 질겨서 맛이 없기 때문에 귀족과 부자들은 주로 살이 연하고 부드러운 영계를 요리해 먹었다. 대신 비싼 영계를 먹을 수 없었던 도시 서민과 시골 농민들은 질긴 수탉을 와인에 끓이거나 조려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요리법을 발달시켰다. 앙리 4세가 없는 닭을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질 떨어지는 재료로 고급 요리를 창조해낸 것이다.
정치와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우리나라 안동 찜닭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안동 찜닭 하면 조선시대 때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오래된 전통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1980년대 들어 안동시장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통닭 튀김에 식상한 고객의 입맛을 잡으려고 닭고기에 채소와 당면을 푸짐하게 넣고 간장에 조린 음식을 만들어냈는데 이 찜닭이 안동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안동의 전통 향토 음식으로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닭고기를 와인으로 졸이는 프랑스의 찜닭 요리 코코뱅과 간장으로 졸이는 안동찜닭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둘 다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 식상한 소재의 음식을 재가공해 새로운 유행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참고로 찜닭을 정치의 소재로 삼은 정치인이 한 명 더 있다. 대공황 당시의 미국 대통령, 로버트 후버다. 1928년 후버는 대선에 출마하면서 “일요일에는 모든 가정의 냄비에 닭을, 모든 집의 차고에는 자가용을”이라는 선거 공약을 내걸었다. 여가 생활과 풍요로운 삶을 동시에 제공하겠다는 약속의 상징으로 찜닭과 자동차를 강조했지만 대공황이 시작된 탓에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지금 우리는 오히려 음식이 넘쳐 고민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닭고기 한 마리에서 행복을 찾던 때가 있었다. 정치인이 내건 ‘일요일의 닭고기’는 한물간 구호가 됐지만 힐링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에게 찜닭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질긴 수탉을 부드러운 찜닭으로 바꾼 것은 결국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라면 꿈을 실현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찜닭에서 너무 거창한 의미를 찾는 것일까?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