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人間革命 29卷 第4章 源流(1~4)
<원류 1>
이륙한 탑승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자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구름바다가 눈부신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신이치를 단장으로 하는 창가학회 인도방문단 일행은 1979년 2월 3일 오전 11시 규슈 동지들의 배웅을 받고 가고시마공항을 출발해 첫 방문지인 홍콩으로 떠났다.
신이치는 창문을 바라보며 옆에 앉은 아내 미네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흐린 날에는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태양이 보이지 않지. 그리고 며칠이고 비나 눈이 내리고 먹구름이 뒤덮여 있으면 언제까지나 이런 날만 이어질 것 같아 마음까지 어두워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구름 위에는 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난다. 경애를 높여 구름을 뚫고 나아간다면 인생은 늘 태양과 함께다.
또 비록 폭풍우 속을 뚫고 나아가는 듯한 하루하루일지라도, 마음에 태양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신심이다.
나는 이렇게 비행기 안에서 태양을 볼 때마다, 도다 선생님이 읊으신 ‘구름 사이로 / 달을 보려고 / 원하는 / 아시아 민중에게 / 해를 비추리라’는 시가 생각난다오.
아시아의 민중은 낮게 깔린 구름 아래에서 달빛을 보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갈앙하고 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의 광원인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의 불법(佛法), 즉 태양을 비추겠다고 결심하셨다. 이 시에서는 동양광포를 향한 선생님의 뜨거운 정열과 신념 그리고 자애가 느껴져 마음을 다잡게 된다오.”
미네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인도 방문을 통해 도다 선생님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실현하고 싶네요.”
“맞소. 이제 인도에서 광포를 위해 힘쓰는 동지가 탄생했으니 선생님이 기뻐하실거요.”
은사를 생각하자, 두 사람의 대화는 한층 열기를 띠었다. 마음이 불타올랐다. 용기가 솟았다.
신이치는 도다를 떠올리며 본격적인 세계광포를 위해 더욱더 반석 같은 토대를 만들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원류 2>
신이치 일행이 탄 제트기가 안정비행으로 타이완 상공을 지나 홍콩에 다가가고 있었다. 신이치는 조종을 잘 해준 기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저서에 시를 적어 선물했다.
“행복을 / 기원하노라”
그 옆에 “신세가 많았습니다. 귀형의 건강과 활약을 기원합니다.” 하고 덧붙였다.
가고시마공항을 떠난 지 3시간 남짓 현지시간으로 오후 1시 20분에 일행이 탄 탑승기가 홍콩의 카이탁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홍콩중문대학교 중국문화연구소 천징허 소장을 비롯해 홍콩SGI 멤버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신이치의 홍콩 방문은 1974년 이후로 5년만이다. 때마침 설 기간이어서 거리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공하신희(恭賀新禧)’라는 글자와 붉은 등이 걸려 있고,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신이치는 투숙할 호텔에 도착하자 바로 주룽탕(카오룽퉁)에 있는 홍콩회관에 갔다.
오후 3시, 회관에 도착한 신이치는 회관에 있던 30명 정도 되는 멤버와 뜰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멤버들은 홍콩중문대학교에서 유학하는 일본인 학생과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함께 근행합시다.” 하고 말하고 회관 1층 강당으로 가 근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간담을 나눴다.
유학생에게는 “유학 기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하고 당부했다.
또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진지한 창제와 학회활동, 그리고 불법연찬에 꾸준히 도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갓난아이가 일주일이나 열흘 만에 어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10년, 20년 신행학을 꾸준히 실천하면, 생각지도 못한 행복경애가 열립니다.
신심을 통해 물심양면으로 행복을 구축하는 일이 불법의 올바름을 증명하는 일이 됩니다. 여러분의 행복이 곧 광포이고, 실증이 곧 승리입니다.”
<원류 3>
신이치가 홍콩회관에서 간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멤버 수십명이 신이치가 방문한 사실을 알고 모여 있었다. 이미 일대는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신이치는 “일부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고 멤버들과 악수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곳에 부부가 세 아이를 데리고 달려왔다.
신이치가 광둥어로 “네이호우!”(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양팔을 벌려 세 아이를 함께 껴안았다. 그리고 가족과 기념촬영을 했다.
동행한 통역인 저우즈잉이 이 가족은 린 씨라고 하며, 아이들은 열한살인 넷째 딸과 아홉 살인 다섯째 딸 그리고 아들은 여섯 살이라고 했다. 린 씨 가족은 신이치가 홍콩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만나고 싶은 마음에 회관 앞에 있는 공원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신이치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처럼 왔으니 오늘은 공원에서 함께 놉시다. 저는 여러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세계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특히 올해는 유엔이 정한 ‘국제아동의 해’이니까요.”
신이치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이름을 물었다. 쉬안광(宣廣)이라고 했다.
공원에 도착해 가장 먼저 시소를 탔다. 신이치가 한쪽 편에 혼자 타고, 반대편에 세 아이가 함께 탔다.
“모두 무겁군요. 자, 갑니다! 영차, 끼이익! 쿵!”
아이들은 시종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웃었다.
이번에는 그네를 탔다. 신이치가 쉬안광이 탄 그네를 밀며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들 노력해서 대학에 가자구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세계 공통입니다.”
<원류 4>
린 가족은 자녀가 여섯으로 아버지는 운전사를 하고 어머니는 재봉일을 했다. 사는 집은 30제곱미터(9평)도 안 되는 공영아파트였다. 신이치는 아이들을 그네에 태워 놀아준 뒤 부부를 바라보았다.
“정말 잘 분발하고 있군요.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는 부모의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들 반드시 훌륭하게 자랄 것입니다.
비록 가난해도, 수수해도, 각광을 받지 못해도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며 학회활동에 힘쓰고, 필사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가장 위대하고 서민의 영웅입니다.”
그러고 나서 신이치가 아이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는 훌륭한 분입니다. 최고로 자랑스럽게 여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래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합니다. 알았지요. 약속합시다!”
신이치는 린 가족과 굳게 악수를 나누고 “그럼, 다시 또 만납시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린 부부와 아이들은 이때 들은 신이치의 말을 잊지 않았다. 부부는 신이치가 아이들에게 “대학에 가자고요” 하고 한 말을 반드시 지키자고 굳게 다짐했다.
생활이 어려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여유는 없지만 열심히 일했다. 어머니는 새벽 1, 2시까지 재봉일을 하고 아침 5시에는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이윽고 신이치가 격려한 세 아이 중에 두 딸은 대학원까지 진학한다.
또 남동생인 쉬안광은 명문 홍콩대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어 진료소를 연다. 학회 조직에서도 홍콩SGI의 의학부장(의료부장)으로 활약한다.
사람이 결의를 세우고 도전하면 자신을 고양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인간만이 결의를 할 수 있고 결의를 지키기 위해 살아야 참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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