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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안으로 소농의 가능성
안철환(전국귀농운동본부)
유기농이 상업농화 되면서 대안의 삶으로 발전하는 듯하다 최근에 와서 웰빙의 한 영역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유기농이 대안으로 자리잡으려면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데 머물지 말고 근본적인 삶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교사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만이 아니라 기계와 비닐과 석유자재로부터 완전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친환경농사의 한계도 뒤돌아봐야 할 때로 봅니다. 또한 씨앗도 다국적종묘회사의 불임종자를 사다 써야 하는 우리 농사의 한계도 돌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초기 정농회와 한살림 운동은 분명 그런 방향과 노력을 시도했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유기농생산자의 증가보다 유기농소비자의 증가가 훨씬 빨라지다보니 기계와 석유, 불임종자 사용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해온 것 같습니다. 아직 속단하기 힘들지 몰라도 현재는 유기농산물 소비자를 확대하고 생협 시장을 확대하는 데 더 주력하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물론 생협 간에도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유기농 운동이 그러했듯 철학이 없고 사명의식과 자부심이 없는 생명운동이 얼마나 지속가능하겠습니까? 다시 우리는 우리의 농업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과 대지, 그에 의지해 사는 인간과 우리 모두의 생명이 다 함께 공생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초기 유기농 운동이 지향했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실천을 하는 데 가장 적절한 농부는 소농뿐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은 계급도 아니고, 경제 주체의 하나도 아닌, 생명과 공동체 및 생태 대안 주체로 발전해야 합니다.
고투입 상업농, 단작농의 문제
우리의 농업이 지금과 같이 붕괴 일보 직전에 내몰린 것은 고투입 상업농, 단작농의 결과라 봅니다. 이런 농사가 우리의 흙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망가뜨리며 국민의 밥상까지 건강치 못하게 만들었지요. 그렇게 했음에도 농부가 부자가 되었으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그런데 농부가 부자는커녕 점점 부채만 늘었습니다. 상업적으로도 실패한 것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산과정은 고투입인데 시장 가격은 그것이 별로 반영이 되질 않습니다. 농민은 자기가 생산한 물건에 스스로 가격을 매기지 못합니다. 납품업 같은 농사를 짓기 때문이죠. 철저히 시장에 종속된 농사인 겁니다. 농민이 노동자처럼 파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렇게 시장에 철저히 종속된 결과라고 봅니다. 쌀값이 물값 수준으로 추락함에도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로 추락한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국민들 상대로, 나라를 상대로 수매를 거부하는 파업을 벌일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러나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잃어버린 게 지금의 농민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친환경유기농사가 대안일 수 있을까요? 지금의 대부분 유기농은 관행농보다는 진일보한 것이겠지만 크게 보면 이 또한 고투입 상업농, 단작농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애써 폄하하여 관행농과 동일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환경농산물의 안전성은 절대 의심할 바는 없겠으나 과연 생산과정 자체도 친환경적인가는 다시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생산과정에서 비닐하우스와 비닐멀칭이 일상화된지는 이미 오래이며 기계를 쓰는 것 또한 기정사실화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환경농사도 고투입 농사의 한계를 안고 말았습니다. 많이 생산해야 하는 상업농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량생산을 하기 위해선 퇴비도 많이 넣어야 합니다. 그 외 화학약품을 대체할 미생물농약 등 천연유기농자재도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다행히 생협 회원들이 많이 늘어나 생협을 통한 유통이 발달해 일반 시장보다는 가격 안정성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생협에 근거한 친환경유기농이 얼마나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요? 유기농소비자가 는다고 해서 친환경유기농이 발전할 수 있을까요? 친환경유기농 소비자가 늘면 비닐과 기계는 더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고투입이 더 늘어날 겁니다. 생산을 더 많이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과연 우리의 유기농 운동이 소비자 더 늘리는 것이어야 합니까? 시장을 더 키우는 운동만은 아닐거라 봅니다. 필요한 것이겠지만요.
친환경유기농 운동은 우리 사회와 자연을 더욱 생태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데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유기농 농부는 단순히 생산만 많이 하면 되는 것은 아닐거라 봅니다. 생산 방법과 생산 과정이 더욱 더 생태적인 것으로 깊어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속에서 점점 비닐이 줄고 기계가 줄며 외부의 투입 에너지가 줄면서 모든 것을 자립하며 순환하는 농사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으로 소비자가 감동하여 더 이상 소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친환경 유기농부로 삶의 전환을 꿈꾸게 하고 당장은 못하더라도 도시에서 스스로 생태적인 삶을 모색하게끔 자극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립 순환의 농업으로서 소농
외부로부터 고투입의 에너지와 자재를 끌어와야 하는 농사는 지속가능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언제까지 영원히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올 수도 없습니다. 피크오일이 닥치면 그런 외부 의존 구조는 금방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피크오일이 오면 교통 다음으로 피해를 볼 데가 바로 농업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런 외부 의존 구조는 자연 재앙 앞에 무력하기만 합니다. 쓰나미 대지진도 그렇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 곤파스 태풍과 가을 폭우로 우리 농사가 얼마나 망가졌습니까? 사실 날씨는 늘 농부를 편안하게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항상 이상기후 온난화 등 재앙 수준의 위기가 있어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비닐하우스 무너지고 장마 폭우로 거름과 토양 유실, 씨앗 유실, 둑이 유실되고, 냉해로 어린 싹들이 상하고 가물고 등 문제가 늘 많았습니다. 그러나 날씨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늘 편안할 거라 생각하는 우리가 문제이지요.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모든 걸 의존하는 농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종자도, 퇴비도, 기계도, 기름도, 자재도 모두 외부에서 돈 주고 사 와야 하는 이런 비자립적인 구조는 근본에서부터 우리 농사를 의존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모든 걸 외부에 의존하는 농사를 짓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상업농에서 찾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한 사람의 농부가 먹여 살릴 수 있는 비농업인의 수는 무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대량생산을 해도 기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외부 의존적인 고투입 농사에서 순환적이고 자립적인 저투입 농사로 바꾸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의존적인 판매 위주의 농사 방식도 바꾸어야 합니다. 판매 위주의 상업농이 고투입 농사를 불가피하게 하지요. 그렇다고 고립적인 자급자족 농사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의 현실은 어느덧 판매와 마켓팅을 배제하고서는 하루 삶도 유지하기 힘들만큼 삶 자체가 외부의존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 냉장고 등 전기와 석유의 외부 공급 없이 삶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지요.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런 문명의 이기들을 하루 아침에 벗어던질 수는 없을 겁니다. 혼자서 도를 닦지 않는 이상 말이죠. 그래서 상업적인 농사도 배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과 농사 방식에서 외부 의존적인 비율을 점차 떨어뜨려 가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별안간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겁니다. 그러나 늦더라도 천천히 함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무튼 이런 자립, 순환적인 저투입농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소농이 제일 적당할 겁니다. 내 땅에서 내 가족의 힘으로 주변 자연의 힘을 빌려 순환하는 농사를 지으려면 소농이 당연할 겁니다.
전통농업으로서 소농
전통농업은 그저 과거의 농업은 아닙니다. 수천년 동안 우리 환경에 적응해 온 농업입니다. 환경에 적응해 왔다는 것은 거의 외부로부터 끌어 들어오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순환하고 자립해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환경과 제일 조화롭게 적응해온 농사는 당연히 소농이었습니다.
우리 환경에 가장 적합한 농사는 벼와 콩을 비롯한 곡식 중심이었습니다. 장마와 추운 겨울, 긴 서리 기간을 이길 수 있는 작물은 곡식 뿐이었습니다. 그 외, 축산과 과수와 채소는 우리 환경에 잘 맞지 않습니다. 초원이 없어 방목이 되지 않고, 고온 다습하여 과일이 농약 없이는 재배가 어렵고, 고추는 장마를 거치면 탄저병이 꼭 오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환경에 맞지 않는 농사를 환경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대규모로 짓다보니 외부의존적인 고투입농사를 짓게 됩니다. 사료와 약품과다, 다량의 농약살포, 비닐의 남용이 우리 농사의 일상이 된 것도 이런 환경부적합 농사를 지은 결과입니다.
곡식은 장마통에 큰다고 했습니다. 곡식은 이삭만 먹고 죄다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 작물입니다. 반면 채소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 없는 비 순환 작물입니다.
벼와 콩, 곡식들을 재배하지 않는 것은 환금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채소 가축 과일을 많이 하는 것은 환금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돈이 된다고 해서 우리 땅을 망가뜨리는 농사를 지속하면 결국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볏짚을 논에서 빼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돈이 된다고 땅으로 돌아갈 그것을 빼먹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립 순환하는 소농의 방법들
외부의 자원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습니다. 관건은 최소화일 겁니다. 최소화하려면 절대적으로 환금 농사에만 올인하는 것에서 자급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농사의 가장 큰 매력은 경기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농부는 굶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외부 의존을 최소화하는 원리는 순환입니다. 씨앗도 거름도 노동력도 순환하는 것이죠. 순환 농사와 맞지 않는 것은 최대한 줄여가는 것입니다. 석유도 기계도 화학약품도 내가 만들지 못하는 자재도 줄여가는 것입니다. 다만 외부에 파는 만큼은 끌어와야 겠지요.
가장 먼저 검토를 제안하고 싶은 것은 기계 문제입니다. 땅을 가는 기계 농사가 지속되다 보니 토양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땅 속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하고 땅 속에서 올라오는 수맥이 끊겨 토양이 가뭄에 약합니다. 기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축력과 공동체입니다. 축력에 대해선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미개한 농법이 아닙니다. 기계를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소농은 공동체 운동을 해야 합니다. 나 혼자 농사지을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귀농시키는 귀농운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을을 살려야 합니다. 단오를 부활해 두레패로 손모내기 운동을 벌이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도시 사람들을 교육 시켜 손모내기 일꾼을 조직하는 일도 시도해봤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모내기는 말고 실제로 농부님들께 도움이 되는 도시농부들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비닐입니다. 비닐이 우리 토양의 숨을 막고 있습니다. 다수확과 제초에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간 이를 사용하게 되면 토양의 생명력이 망가질 것입니다. 비닐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기계와 비닐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저는 이를 대체할 방법으로 직파와 골뿌림을 제안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거름 문제입니다. 질소 위주의 시비가 우리 토양을 옥죄고 있습니다. 녹비 위주로 하루 빨리 전환하여 토양의 부식을 높이는 농사로 전환할 것을 제안드립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녹비 작물과 이모작을 실천한다든가, 곡식 농사의 비중을 대폭 늘리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가을이면 넘쳐나는 낙엽들도 좋은 녹비의 재료가 됩니다. 도시와 협력하여 이를 활용하는 것도 연구해볼만한 소재가 될 겁니다. 단, 쓰레기 문제와 침엽수를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 분진과 중금속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종 종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씨앗을 돈 주고 사다 심을 수는 없을 겁니다. 나라에서 보급하는 곡식 종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문제는 다국적 종묘회사들이 파는 불임종자, 화학약품에 길들여진 종자들입니다. 다수확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종자 자립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는 우리 농사가 가치 있는 생명의 일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근본인 종자가 망가져있는데 유기농법이라는 방법만으로 우리 농사가 지속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