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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보은(報恩) 삼산관에 머물다(留報恩三山舘)
是年夏余往留三山舘(주67)而或登山臨水以爲消遣之資(주68)矣 有吟詠若干編故因附尾于遊京日記
이 해(1849년) 여름, 나는 삼산관에 가서 머물렀는데 보내준 돈으로 때로는 등산을 하고 때로는 물가에 가서 지냈는데 읊은 시가 약간 편 있어 유경일기(遊京日記)의 말미에 붙인다.
주67) 삼산관(三山舘) : 1846년 7월에 보은군수로 임명받아 재직 중 휴가를 내어 경산(京山) 춘유를 마치고 다시 보은에 머무는 동안의 일기를 기록하였다. 보은읍에는 삼산리가 있는데, 군읍소재지이므로 내아(內衙 : 동헌 안 살림채)로 생각된다.
주68) 아직 보은군수에서 이임한 것이 아닌데, 보내준 돈으로 등산도 하고 지내는 비용도 썼다는데, 집에서 또는 고향에서 보낸 것인가? 아니면 소득보다 지출이 큰 것인가? 7월말에 경성판관에 제수되었으므로 그 이후에는 이임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백파가 쓴 금서공 행력(行歷)을 보면, 모친을 봉양해야 하므로 임지에 권솔(眷率, 가족)을 동반하지 않았다고 한다.
< 보은읍 삼산리의 보은동헌(報恩東軒,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
27. 무금헌(撫琴軒)(주69)
층헌무사좌(層軒無事坐) 층 난간에 일이 없으면 앉아
진일청도금(鎭日聽陶琴) 평시 즐거운 거문고 소리 듣기를 좋아하네
차세난회옥(此世難懷玉) 이 세상에 옥은 품기 어려우니
오유불보금(吾儒不寶金) 나 같은 유생이야 보금이 소용 있겠는가
담운비속누(淡雲非俗累) 엷고 맑은 구름은 세속이 쌓이지 않고
제조식춘심(啼鳥識春心) 새는 울어 봄 마음을 알리네
탁물형정기(托物亨貞氣) 만물을 맡기니 곧은 기운이 돌듯
빙수료득심(憑誰料得深) 누구에 기대는 것도 마음의 부담을 지는 것이네
주69) 무금헌(撫琴軒) : 1637년에 경상도 경산현감 임선백(任善伯)이 건립한 慈仁縣의 政廳으로 일명 撫琴軒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보은군읍의 정청인 동헌(東軒)으로 생각된다.
< 보은 현감·군수 송덕비군 >
28. 삼년산성(三年山城)(주70)
진적공산흑자성(陳跡空山黑子城)
억증려대동병림(憶曾麗代動兵林)
만처처잔회겁진(巒處處殘灰劫塵(주71))
풍우시시화고성(風雨時時畵鼓聲)
삼백리정귀마권(三百里程歸馬倦)
일천년사담운청(一千年事淡雲晴)
동주보장여황분(東州保障餘荒奔)
일구승평노차생(日久昇平老此生)
군진 펼친 자리 텅 빈 산 자성에 어둠이 들고
일찍이 화려했던 왕조 떠올리니 군병이 숲을 이루었네
산 곳곳에 잿빛 먼지만 날리고
풍우는 시시각각 북소리처럼 그림을 그리네
삼백 리길 돌아가기엔 말도 고달픈데
천년 역사는 옅은 구름 되어 개이고 있네
동쪽지방 지켰는데 이젠 폐허가 되고
태평세월 오래되니 어느덧 나도 노인이 되었네
주70) 삼년산성(三年山城) :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 있는 삼국시대의 포곡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성곽. 산성이다. 사적 제235호. 삼국시대는 삼년군(三年郡)·삼년산군(三年山郡)으로 불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으로 불린 듯하나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오항산성(烏項山城)으로, 《동국여지승람》·《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71) 결자(缺字)는 ‘진(塵)’으로 보충하였다.
29. 속리산(俗離山)
이속위산중(離俗爲山重) 속세와 떨어진 산은 겹겹이 쌓여
가명천해동(佳名擅海東) 아름다운 명성이 해동에 드높네
총림파협취(叢林巴峽翠) 빽빽한 숲은 산골짜기를 비취로 물들이고
춘수무릉홍(春水武陵紅) 봄의 옥수는 무릉의 붉은 꽃잎 띄우네
학노소대월(鶴老巢臺月) 학은 늙도록 달뜨는 높은 대에 둥지 틀고
화심련수풍(花深輦樹風) 깊은 산 꽃피고 나무는 바람 가마타네
육오류재북(六鰲(주72)流在北) 여섯 마리 거북이 흘러가 북쪽에 있는데
왕사향망중(徃事香茫中) 옛일은 향기를 아득히 풍기네
주72) 육오(六鰲) : 발해의 동쪽 바다에 산다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여섯 마리 큰 거북. 바다에 떠 있는 대여(岱輿)•원교(員嶠)•봉래(蓬來) 등의 다섯 선산(仙山)이 떠내려 갈 것을 걱정한 천제(天帝)가 15마리 큰 거북으로 하여금 5마리씩 교대로 짊어지게 하여 안정시켰는데, 용백국(龍伯國)에 있는 대인(大人)이 그 가운데 여섯 마리를 잡아서 불에 구워 점을 쳤다는 전설에서 나옴. 육오(六鼇)로도 씀.
* 동해 바다의 삼신산(三神山)을 머리에 떠받들고 있다는 전설상의 동물
30. 아전노괴(衙前老槐) 관아 앞뜰의 늙은 회화나무
부지기년수(不知幾年樹) 나무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는데
반울노장동(盤欝老墻東) 빽빽하게 우거져 오랜 담장 동쪽에 서있네
엽밀차미우(葉密遮微雨) 잎은 촘촘해 보슬비를 가리고
지고수원풍(枝高受遠風) 가지는 높아 먼 바람에도 흔들리네
조래아파후(鳥來衙罷後) 관아업무 끝나면 새가 찾아오고
지정야분중(地靜夜分中) 뜰이 고요하면 밤중이라네
점장참천의(漸長參天意) 점차 자라나 하늘의 뜻을 아는 듯하고
신추촌허총(新抽寸許叢) 새롭게 한 뼘이 뻗어 나와 우거짐을 더하네
31. 사친(思親) : 부모님 생각
다년위객광신혼(多年爲客曠晨昏)
독야삼성청협원(獨夜三聲聽峽猿)(주73)
감지미공련포오(甘旨未供憐哺烏)(주74)
촌성난격괴부돈(寸誠難格愧孚豚)
치심감소기조위(痴心堪笑期烏㥜)
여계녕사착독곤(餘計寧辭着犢褌)(주75)
위자여오무유유(爲子如吾無有愈)
나감백발의고문(那堪白髮倚高門)
여러 해 객으로 지내다보니 새벽과 저녁에는 공허한데
홀로 지내는 밤엔 세 번씩이나 산속의 원숭이 소리 들리네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을 못했으니 반포지은이란 말에 부모님이 가엾고
조그만 성의도 격식을 싫어하시어 내 자식 기르는 것이 부끄럽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몸 둘 바 모르고 탄식만 쏟아내는데
곰곰이 헤아리니 편안하다는 말은 송아지 잠방이 입은 것 같은 허언이었네
자식 노릇하는 것이 나와 같다면 걱정할 것이 없으니
백발을 어찌 견디고 높은 가문을 맡는단 말인가
주73) 원성(猿聲) : 원숭이 새끼의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리듯, 어미·자식 간 찾는 소리. 한시에도 더러 인용되는 소재이다.
주74) 반포오(反哺烏) :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기른 은혜에 보답한다는 까마귀. * 반포보은(反哺報恩) : 자식(子息)이 부모(父母)가 길러준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하는 것. 1849년 당시 부친 신현록(申顯祿, 1752~1789)공은 이미 별세하셨고, 모친 전주이씨(全州李氏, 1761~1830)도 별세하셨으므로 옛 시절을 회상한 것으로 보인다.
주75) 착독곤(着犢褌) : 부모님이 자식에게 “난 잘 지낸다. 난 편안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허사에 불과하다. 이러한 말은, 마치 ‘송아지가 잠방이(짧은 반바지 또는 속옷)를 입은 것처럼 억지 말이란 뜻이다.
32. 우야구염(雨夜口拈) 비오는 밤에 읊다
군재적적우음음(郡齋寂寂雨陰陰)
호암향수약멱부(湖客鄕愁若覔釜)
눈록교수당응영(嫩綠交垂當应(주76)影)
잔류번동출강심(殘流翻動出江心)
민요양일행교주(民謠洋溢行郊酒
성화훈도순전금(聖化熏陶舜展琴)
약휴미점대유락(時若休微占大有)
각매춘색야응심(閣梅春色也應深)
군아의 건물들이 조용하고 비 내려 우중충 하니
충청도 나그네 향수 밀려와 고향집 가마솥 찾는듯하네
나뭇가지 옅은 초록빛을 늘어뜨리니 마땅히 그림자 지고
바람 불어 물결이 출렁대면 마음은 강에 나가있네
노래 소리 바다처럼 넘치니 교외로 나가 술자리하고
성인의 덕으로 질그릇 데우고 순임금 궁궐에 거문고 연주하네
시간은 정지함이 적은 것처럼 내 것으로 차지함을 크게 한다면
누각 옆 매화의 춘색은 더욱 더 짙어 가리라
주76) 응(应) = 應
33. 득훤자(得喧字) 왁자지껄한 봄
나기청창수(懶起晴窓睡) 늦게 일어나니 맑은 하늘 창문에 걸려있고
단첨일영번(短簷日影翻) 짧은 처마에 해 그림자 비추네
무농화기중(霧濃花氣重) 안개 짙은데 꽃의 향기도 진하고
괴탈조성훤(槐晩鳥聲喧) 해질녘 회화나무에 새들이 왁자지껄하네
여인유자졸(旅人猶自拙) 나그네는 오히려 움츠러들고
태수정감번(太守正堪煩)(주77) 태수는 정사에 괴로움 견디네
아파휴금색(衙罷休鈴索)(주78) 관아업무 끝나 휴령을 찾아 울리고
검수고간흔(檢收古簡痕) 옛 편지 자취 살피며 검수를 하네
주77) 봄은 분주한데, 군수는 하루 종일 동헌에서 바쁜 일을 처리하고 있다
주78) 휴령(休鈴) : 하루 일과 업무를 마칠 때 치는 종료 종
34. 한거(閑居)
위납청량반엄비(爲納淸凉半掩扉)
도임풍력촉생위(度林風力觸生威)
한간만체조화낙(閒看晩砌枣(주79)花落)
매송고루연자비(每送高樓燕子飛)
다미번잉소위득(茶味頻仍蘇胃得)
시수공사전미희(詩愁空使展眉稀)
요령여가성산옥(遙怜如可星山屋(주80))
응설유인구미귀(應說遊人(주81)久未歸)
맑고 시원함은 가버리고 사립문 반쯤 잠겨있네
숲 바람 힘이 건드리는 감촉 드세어
한가히 저녁에 섬돌에 나와 보니 대추나무 꽃잎은 떨어지고
매번 송별하는 고루엔 제비가 높이 나네
뱃속이 편하게 소생하는 것은 차를 자주 마셔서일까
시 짓는 시름으로 헛되이 보내고 살펴보니 눈썹도 드물다
가엾게 떠돌다가 어찌 성산옥은 가능할까
말을 주고받던 유인은 오래토록 돌아오지 않네
주79) 조(枣) : 대추나무 조(棗)의 약자, 간체자
주80) 성산옥(星山屋) : 관용 어귀나 단어의 사용 예를 찾을 수는 없다. ‘산 높은 곳. 별이 사는 집’이니 ‘극락’ 또는 ‘천당’, ‘신이 사는 곳‘ 이런 개념으로 <고인 되신 부모님이 계신 곳> 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주81) 응설유인(應說遊人) : ’말을 주고받던 나그네가 오래토록 돌아오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성산옥‘이라는 단어와 연관하여 볼 때, 작고하신 부모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35. 청춘향곡(聽春香曲) 춘향곡을 듣고
남국명화출(南國名花出) 남국에 이름난 기생이 나와
가전만구향(歌傳滿口香) 노래로 전해져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네
선형당일사(善形當日事) 선한 모습은 그 당일의 일인데
왕단기인장(枉斷(주82)幾人腸) 부당한 판결은 몇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나
제소유능병(啼笑猶能倂) 새는 지저귀고 웃으며 오히려 참아내는데
송영고태망(送迎故太忙) 이별과 만남이 이렇게 애탈 줄이야
풍류이어사(風流李御史) 풍류를 아는 이 어사도
색계유정즉(色界有情卽) 여색에 정이 있음이라네
주82) 왕단(枉斷) : 법률(法律)을 굽히어서 부정(不正)한 판결(判決)을 함
36. 회추(懷秋) 가을의 회포
추풍다여관(秋風多旅館) 가을바람 여관에 불어 닥치고
고침몽선귀(孤枕夢先歸) 외로운 잠자리 꿈속에 먼저 빠져드네
물태수허경(物態輸虛境) 세상 모습을 헛된 곳으로 데려다 놓고
세정석모휘(世情惜暮暉) 세사 물정은 아쉽게도 저녁 석양 비치네
복기회원주(伏騏懷遠走) 준마에 엎드려 먼 곳으로 달려가니
이안원동비(離雁(주83)願同飛) 이별한 기러기가 함께 날기를 청하네
요억성산옥(遙憶星山屋) 멀리 성산옥을 회상하니
위수야제의(爲誰夜製衣) 누가 밤에 옷을 짓나
주83) 꿈속에 검은 준마를 타고 가는데 이별한 기러기가 같이 가길 청하네. 먼 저세상의 성산옥에 어머님이 계신데, 밤마다 옷을 지으시던 어머니는 지금 어디계신가? 금서공은 외아들이신데 나이 들어 더욱더 선친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간다.
37. 신청(新晴) 맑게 개인 날
단성홀기우성수(蟬聲忽起雨聲收)
위간풍광등수루(爲看風光登(주84)小樓)
목말사양추의도(木末斜陽秋意到)
허장세색서여류(虛將歲色逝如流)
매미소리 홀연 들려오니 빗소리 잦아들고
작은 누각 올라 경치를 둘러보니
나뭇가지 끝에 석양 매달리고 가을빛이 와있는데
헛되이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네
주84) 빠진 한 자(字)는 ‘등(登)’으로 보충하였다.
38. 우야경(雨夜景) 비 내리는 밤
출몰운중월(出沒雲中月) 구름 중에 달이 숨바꼭질 하더니
송광우세정(送光雨洒庭) 달빛은 가버리고 비는 뜨락을 씻네
락하횡연대(落霞橫練帶) 노을은 떨어져 길게 누워버렸고
경한방소성(傾漢放踈星) 비스듬히 한강이 흘러가듯 멀리 별이 떠있네
속어지허백(屬語知虛白) 사람들의 말이란 허언이 있듯
괴음적만청(槐陰滴晩靑) 회화나무 그늘에 물방울 떨어져 저녁인데 더욱 푸르네
한이침객몽(寒聲侵客夢) 차가운 소리가 나그네의 꿈을 깨우니
첨각누빈령(簷角漏頻零) 처마 모서리에 빗줄기가 줄줄 떨어지네
39. 영문(詠蚊) 모기
반학가희입암소(伴學歌姬入暗宵)
형수단소의편교(形雖短小意偏嬌)
문성공타무건협(聞聲空打無愆頰)
유취감침불병요(有觜堪針不病腰)
교투중렴수폐멸(巧透重簾須燭(주85)滅)
난과고침희인소(爛過孤枕喜烟消)
문거전성시능기(問渠全盛時能幾)
지파추풍감역요(祗怕秋風歛迹遙)
가희에게 가무를 배워 어둔 밤에 들어와
모습은 비록 짧고 작아도 정취는 교태가 있네
허공 때리는 소리 들리면 뺨을 지나침이 없고
부리엔 뛰어난 침이 있어 허리 병이 없지
여러 겹 발을 교묘하게 뚫고 들어오는데 화톳불을 피우면 망하는데
혼자 자는 사람 번질나게 왕래하고 연기나지 않으면 좋아하네
도랑에서 왕성하고 어느 때도 가림 없지만
가을바람 싫어해 그 땐 탐욕도 자취도 멀어진다네
주85) 원문에는 ‘火+市’인데 이런 자(字)가 자전에 보이지 않는다. 내용상 “모름지기 낭패를 본다.” 는 뜻인데, ‘87. 북청 남병영(北靑 南兵營)’ 시에 같은 글자가 있는데, 촉(燭)을 이렇게 쓴 듯하다.
40. 자조이조인(自嘲而嘲人) 스스로 자조하니 서글퍼지네
余與族人白坡(주86)在撫琴軒 而李吏廷殷適以詩來見 故因以和之而且寫言外之感耳
나와 족인 백파가 무금헌에서 아전 이정은(李廷殷)을 맞았는데 마침 시를 가져왔다. 이에 화답하려고 이를 베껴 쓰는데 언외지감(뜻밖의 생각)이 들었다.
양리무연견객수(兩裡無緣遣客愁)
강장시태고항부(强將時態故沆浮)
문장영락영웅노(文章零落英雄老)
절파인간화백두(絶怕人間化白頭)
두 사람 간 연고가 없는데 객수에 젖게 하고
당장 객수가 많아지니 마음만 들떠있네
문장가도 영락하고 영웅도 늙어 가기에
사람은 백발 오는 것을 무서워 싫어한다네
주86) 족인백파(族人白坡) : 사전에 ‘족인’이란 ‘같은 종문(宗門)이면서 유복친(有服親) 이외(以外)의 겨레붙이’ 라고 설명한다. 즉 직계가 아닌 집안사람이다. 이 설명에 충실하지면, 백파는 삼남 신헌구(申獻求 : 후일 문과 후 판서에 오름) 공으로 보기에 어렵다. 아래 화답시의 수준이나 성숙도로 보아, 때로는 금서공의 연장자로도 보일 정도이다.
다만, 「55. 송백파부경제(送白坡赴京第) 한양으로 가는 백파를 보내며」, 「56. 각화삼산(却話三山) 삼산관을 떠나며, 백파(白坡)」를 보면 아들임이 다시 확인된다. 왜 이러한 혼란이 오는가? 이는 금서공의 처세관에 기인한다. 자식과 나이 어린 문인(文人 또는 門人)일지라도 벗으로 존중해 주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백파는 40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이다 차남과도 14살 차이가 난다. 44세인 장남 만구는 선공감(繕工監)의 부봉사(副奉事)로 재직 중이고 41세인 차남 면구는 사마시 준비 중인데 다음해 입격하게 된다.
41. 증우연소(蒸雨連宵) 무더운 날 비 내리는 밤 백파(白坡)
증우연소뇌객수(蒸雨(주87)連宵惱客愁)
누옥막막야운부(漏夭漠漠野雲浮)
상봉구시표봉세(相逢俱是飄蓬世)
아탁청평군백두(我托靑萍(주88)君白頭(주89))
무더운 날 비가 연이어 내리는 밤에 쓸쓸한 객수가 괴롭히고
비가 심하여 막막한데 들판에는 구름만 떠있네
서로 만나 함께 있는데, 세찬 바람이 세상에 불어오니
나는 푸른 개구리밥처럼 유랑하고 아버님도 어느덧 백발이 드셨네
주87) 증우(蒸雨) : 여름철에 후터분하게 내리는 비
주88) 아탁청평(我托靑萍) : 개구리밥은 호수나 저수지 등 수면위에서 작은 뿌리를 내리고 둥둥 떠다니는 작은 수초인데, ‘청평(개구리밥)에 의탁한다.’ 라는 것은, ‘세상을 유랑한다.’라는 뜻이다.
주89) 군백두(君白頭) : ‘군(君)’ 이란, 임금, 남편, 아내 또는 그대, 자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아버지 금서공과 같이 머물고 있으므로 금서공을 지칭한다.
42. 암격(暗激) 어둠속의 격랑
경각효진몽(更覺囂塵(주90)梦) 세상 시끄러움이 꿈이라고 느껴질 때
안한편시선(安閒便是仙) 한가하고 편안하니 이 바로 선선이네
휴운전야우(休云前夜雨) 쉬는 중에 어제 밤에도 비가 내렸는데
격랑기평천(激浪起平川) 평탄한 개천에도 격랑이 일었네
주90) 효진(囂塵) : 1. 시끄럽고 먼지가 많음. 곧, 번화한 시가의 시끄러운 모양. 2. 번거로운 속세의 일, 속세
43. 자탄(自歎) 늙음을 한탄하다
모탄년화설만두(暮歎年華雪滿頭)
명구좌장성시유(名區坐長盛時遊)
노무소식유선도(老無消息猶先到)
한불경영가잠휴(閒不經營可暫休)
권국장정연복기(踡跼長程憐伏驥)
부항약해임경구(浮沆若海任輕鷗)
진소소사여능소(盡宵所事如能訴)
백세인생반시수(百歲人生半是愁)
늙음을 탄식하고 나이만 많아지니 흰머리가 머리에 가득하네
이름난 곳에 오래 눌러앉아 젊은 때 놀아야 되네
늙음은 무소식한데 오히려 나에게 소식이 먼저 닿았어도
한가로이 무신경하니 잠깐 휴식 달콤하네
몸 구부려 떠나온 오랜 일정에 태워준 천리마가 참으로 가엾지만
바다에 띄운 듯 가벼운 갈매기에 몸을 맡기네
밤 다가도록 일 하면 하소연이 있듯이
백세인생에 반은 바로 시름이라네
44. 편령노대(偏怜老大) 늙어갈수록 지혜롭다 백파(白坡)
유로막행최진두(有路莫行最盡頭)
십년회수감전유(十年回首(주91)感前遊)
탁영초택심응결(濯纓(주92)楚澤(주93)心應潔)
개관두릉사시휴(盖棺杜陵事始休)(주94)
모저비관경시호(暮杼非關驚市虎)
연양내가압강홍(烟襄耐可狎江鴻)(주95)
편령노대군가독(偏怜老大君家督)
박첩연조잉작수(薄帖椽曺(주96)剩作愁)서까레연
길이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생각이 아주 다한 것이어서
십년을 돌이켜 보니 전에 놀던 감흥을 느끼게 하네
탁영 김일손의 일과 굴원이 상수에 지낸 일은 마음이 깨끗한 때문이고
두보는 관 뚜껑을 덮어야 모든 일을 쉬게 된다고 하네
나이 드는 것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저자거리 범처럼 놀라게 하더라도
흰머리 피어오름 견디면 강가의 기러기 마냥 익숙하고
나이 들수록 지혜로 집안을 보살필 수 있네
향리의 얇은 시첩이 향수를 넘치게 하네
주91) 회수(回首) :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뱃머리를 돌려 진로를 바꿈을 이르는 말.
주92) 탁영탁족(濯纓濯足) : 갓끈과 발을 물에 담가 씻는다는 뜻으로,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초탈(超脫)하게 살아가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탁영(濯纓)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김일손(金馹孫)의 호(號)이기도 하다.
주93) 초택(楚澤) : 초나라 충신 굴원이 회왕(懷王)에게 버림받고 귀양 갔던 소상강(瀟湘江)의 물가. 이 곳 멱라수에서 단오 날에 물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
주94) 두보의 ‘자경부봉선현영회오백자(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봉선현으로 가는 길’에 이러한 표현이 있다. ‘杜陵有布衣(두릉유포의) 두릉에 베옷 입은 사람이 있어’와~~~~ ‘개관사즉이(蓋棺事則已) 관 뚜껑이 덮여야 모든 일이 끝나지만’ : 이 시는 당 현종 때,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발발하기 직전에 낮은 관직에 있던 두보가 봉선현에 두고 온 가족을 찾아가는 길에 지은 것으로, 현종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으면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주95) 연양내(烟襄耐) : 늙어감을 주제로 시귀를 전개하는데,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인내하면’ 가히 강가에 기러기 보는 것처럼 익숙하게 된다고 하니, 머리에 흰머리 늘어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주96) 박첩연조(薄帖椽曺) : 보은의 삼산관에 머물면서, 보은의 향리 이정은이 한 꾸러미의 시축을 가져와 보게 하였다는 구절이 있었다. 틈틈이 이 시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상황을 언급한 듯하다. 연조라는 단어가 알기 어려운데, 정조 때 상주(尙州) 지방향리인 이진흥이 지은 연조귀감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보듯, 아마도 지방향리가 근무하는 아전 또는 향청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45. 자견(自遣) 스스로를 위로함
호가인주력(豪歌因酒力) 호탕한 노래는 술김에 나오고
와흥임시신(洼興任詩神) 깊은 흥은 시의 신에게 맡기네
장하삼산관(長夏三山舘) 긴 여름 삼산관에
수마여작린(睡魔與作隣) 쏟아지는 잠은 이웃이 되어버렸네
46. 시주탁방음(詩酒托芳吟) 시주가 또 다른 시를 읊게 하네, 백파(白坡)
효각영홍욱(曉閣迎紅旭) 새벽에 누각에서 해를 맞이하니 더욱 붉고
훈태배소신(薰䬈倍笑神) 산들바람의 향기가 신을 더욱 미소 짓게 하네
강장청의미(强將淸意味) 탐욕이 없다는 뜻이 더욱 굳세지고
시주탁방음(詩酒托芳吟(주97)) 시주는 또 다른 시를 읊게 하네
주97) 방음(芳吟) : 남의 시가(詩歌) 또는 남의 음영(吟詠)을 높이어 이르는 말
47. 해조(觧嘲) 비웃음을 벗어나는 길
만년휴사환생사(晩年休事還生事)
탁세무명승유명(濁世無名勝有名)
포각진간다소려(抛却塵間多少慮)
부방천석낙여생(不妨泉石樂餘生)
만년에 일에서 떠나니 삶이 다시 돌아오고
혼탁한 세상 이름 없는 것이 유명한 것보다 낫네
속세를 버리고 물러나면 다소간 근심은 있을지라도
전원에는 방해 없고 남은 인생이 즐겁구나
48. 무시자족(無時自足) 스스로 만족할 때는 없네 백파(白坡)
차세무시가자족(此世無時可自足)
인간은원총절명(人間恩怨摠切名)
독유영월난지증(獨留嶺月難持贈)
저신선명료반생(祗信先明了半生)
이 세상 스스로 만족할 때는 없고
인간사 은혜와 원한은 모두 명성을 끊어버리네
홀로 남아 산봉우리 달을 벗 삼으면 보배를 지니기 어렵듯이
오직 신의를 우선 밝히면 반생은 마친 것이네
49. 수계(垂戒) 삶의 깨우침 백파(白坡)
명도감수분(名途甘守分) 명예로운 길은 분수를 지키는 것
욕해가징심(慾海可澄心) 바다처럼 넓고 깊어야 맑은 마음이 가능하고
우후파류의(雨後波流急) 비온 후에야 물길이 빨라지듯이
방재식천심(方再識淺深) 사방에 다시 얇고 깊음을 알게 되었네
가빈당수분(家貧當守分) 집이 곤궁하면 마땅히 분수를 지키고
운부가구심(運否可求心) 운이 닿지 않으면 참된 마음을 찾아야 하나
현자이금소(賢者而今少) 어진이가 요즘엔 드물어
허군감개심(許君感慨深) 임금에게 인정받아도 마음속 탄식만 깊어진다네
50. 자소(自笑) : 운시(韻詩) - 夢中空(주98) 금서(錦西)
칠분세사삼분몽(七分世事三分夢)
과겁문장적막중(過劫文章寂寞中)
태반부생다착료(太半浮生多錯料)
안전존주유시공(眼前樽酒有時空)
칠 할이 세상사이고 삼 할이 꿈속인 듯
글 쓴지 오래되어 적막할 따름이네
태반의 뜬 세상살이 잘못 헤아림도 많고
보이는 것은 눈앞의 술 단지 밖에 없구려
주98) 50, 51번 시(詩)는 운조를 몽중공(夢中空)으로 맞추었다.
51. 수언방사(誰言方士) : 운시(韻詩) - 夢中空, 백파(白坡)
십년위포염진몽(十年韋布染塵夢)
홍의연화노락중(紅薿(주99)烟花(주100)老洛中)
각도삼산담화조(却到三山啖火栆(주101))
수언방사선담공(誰言方士(주102)善談空)
십년 된 가죽과 천이 세속의 꿈처럼 물들었는데
붉게 물든 봄 경치는 오래토록 한양에 남아있네
한양 떠나 삼산에 도착하여 잘 익은 대추를 씹고 있으니
누가 방사를 말하며 선담을 날리는가
주99) 원문의 ‘金+疑’라는 글자가 자전에 보이지 않으므로, 의미가 자연스럽게 와 닿는 ‘의(薿)’로 바꾸어 ‘붉은 꽃에 물든’ 으로 바꾸었다.
주100) 연화(煙花) : 봄철의 경치(景致). 춘경(春景)
주101) 1611년 허균이 지은 음식품평서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도 보은대추는 크고 뽀족하며 붉은 색이 나고 당도도 높다 하였고,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보은대추가 으뜸이라고 하였다.
주102) 방사(方士) : 신선(神仙)의 술법(術法)을 닦는 사람
52. 감야몽(感夜夢) 밤에 꾼 꿈에 감사하다
사십유운소(四十(주103)猶云少) 사십은 오히려 어린데
년광기반사(年光已半斜) 나이는 이미 반이 차서 내리막이네
공명비분수(功名非分數) 공명은 나에 맞지 않더라도
시주역생애(詩酒亦生涯) 시와 술은 역시 평생 할 일이네
매노의가수(梅老宜家樹) 매화가 나이 들면 마땅히 집안의 소중한 나무되는데
난지결자화(蘭遲結子花) 난초가 늦어지더니 꽃망울 맺었네
여하전야몽(如何前夜梦) 전날 밤 꿈을 어찌 꾸었기에
열홀접창사(悅惚接窓紗) 기쁘고 황홀하게 창가에 비단을 늘어뜨렸나
주103) 금서공이 1784년생이신데, 차남 면구(冕求)는 1809년생으로 1849년에 마흔 살이 되었다. 초시를 거쳐 1850년(철종1년)에 진사에 입격하게 되는데, 이 시를 지은 날이 이 맘 때인 듯하다.
53. 침상구념(枕上口拈) 베개맡 생각
침상경륜도야심(枕上經綸到夜深)
전인궁달총관심(前人窮達摠關心)
천공응유둔환리(天公應有循環理)
추엽춘화견일림(秋葉春花見一林)
베개 맡에서 지나온 생각으로 밤은 깊어만 가네
옛사람은 빈궁과 영달에 모든 관심을 두었는데
하늘의 뜻에 따름이 이치의 순환이듯
가을에 낙엽지고 봄에 꽃이 피어 하나의 숲을 보는 것이네
54. 삼산관(三山舘)
원수선하락(遠樹漩霞落) 멀리 나무에 노을이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면
심창어학환(深窓語鶴還) 창 깊숙이 학이 돌아와 속삭이네
수지호령내(誰知湖嶺內) 누가 알겠는가! 충청도 산맥 중에
진인유삼산(眞茵有三山) 진짜 명당으로 삼산이 있는 것을
55. 송백파부경제(送白坡赴京第)(주104) 백파(白坡)
집마성두전고지(縶馬城頭餞故遲)
인정편감거류시(人情偏感去留時)
지응귀객다총거(只應歸客多忩遽(주105))
등시부생중별리(等是浮生重別離)
동락정운노원몽(東洛征雲勞遠夢)
중추명월증와기(仲秋明月證洼期)
모년화수삼산관(暮年花樹三山舘)
미기단란우증시(未幾(주106)團欒又贈詩)
성 머리에 말고삐 잡고 전별 늦어지고
가고 머물 때 인정이 마음을 흔드네
귀객을 보내자니 모두 마음이 바빠지고
이를 기다리자니 뜬세상에도 이별은 반복되네
한양동쪽으로 구름타고 가면 꿈처럼 멀리 가는 노고를 덜 텐데
중추절 밝은 달에 다시 볼 것을 기약하네
만년에 꽃나무 많은 삼산관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단란한 모임을 기다리며 또 시를 써 보내네
주104) 1849.7.25.자로 함경도 경성판관을 제수 받았으므로, 관아에 내려와 같이 지내던 삼남 백파가 한양 집으로 먼저 떠나게 된다. 이 때 일부 이사 짐을 딸려 보냈을 것이다. 금서공은 신임 군수와 인수인계 등을 마쳐야 되므로 보은 출발이 늦다.
주105) 총거(悤遽) = 총망(悤忙) : 몹시 급(急)하고 바쁨, * 悤忙之間
주106) 미기(未幾) : 동안이 얼마 오래 걸리지 않음
56. 각화삼산(却話三山) 삼산관을 떠나며, 백파(白坡)
판부착망물태지(判不着忙勿太遲)
별시선여어봉시(別時先與語逢時)
편포송학나린노(便抛松鶴郍憐老)
잠대처아막석리(暫對妻兒莫惜離)
두간연래원탑몽(蠹簡硏來圓榻梦)
록초가고진정기(鹿草歌去趂程期)
한남귀안중추월(漢南歸鴈仲秋月)
각화삼산송객시(却話三山送客詩)
급하게 옷 입고 준비한 것은 아니라도 그리 늦지도 않고
만날 때는 말로 했는데 이별할 때는 먼저 나와 같이 계시네
소나무와 학은 쉽게 헤어지는데 어찌 노인이 불쌍하신지
잠깐 머뭇대는 처와 아이를 대하고 아쉬워 떠나지 못 하시네
좀먹은 편지 들고 와 연구하랴 원탁에서 꿈 꾼 후
사슴은 풀 찾아 노래 부르며 약속된 길 쫓고
중추절 달 보려 기러기는 한강 남쪽으로 돌아가는데
삼산을 물러가는 인사말 나그네는 송별시로 남기네
57. 송백파유감(送白坡有感)
경기동루효고성(驚起東樓曉鼓聲)
행인최발우선청(行人催發雨旋晴)
명조비남도다일(明朝飛南渚多日)
귀운한북성평수(歸雲漢北城萍水)
봉영성유약추풍(逢迎誠有約秋風)
송별최관정분망(送別最關情奔忙)
감소부생세상사(堪笑浮生世上(주106-1)事)
거거내내저의영(去去來來底意營)
놀라서 일어나니 동루에 새벽 북소리 울리고
행인들은 갈길 재촉하고 비는 그쳐 맑아졌네
내일 아침 남쪽에서 날아가도 한강까지 여러 날 걸리겠지
한강북쪽으로 돌아가는 구름은 성 연못에 있는 개구리밥 같네
만나고 맞이함이 정성이 있듯이 가을바람을 기약하고
송별에 주고받는 정이 분주하고 바쁘네
뜬세상 참고 견디는 것이 세상일이니
가고 가고 오고 오고 그 속마음을 삼키네
주106-1) 두 자가 빠졌는데 ‘세상(世上)’으로 보충하였다.
□ 8월 파주농장에 다녀오다(徃坡州農庄)
是年八月徃坡州農庄 看秋題三首詩 歸見白坡因贈一律. 西野秋聲起午烟打稻 家斗升吾細矣鷄忝爾寬(주107)耶 隨出論豊儉較 前說喊加數盃能不醉 歸路日將斜城西時候早落木下郊原店遠知無酒 山深險有村秋官(주108)非安職 峽俗少溫言堪笑萍鄕客 稻畦坐日昏 緣溪十里路如繼草裡行尋步步疑造物不能藏 別界終敎俗客武陵知
팔월에 파주농장에 갔다. 도중에 가을을 제목으로 하는 세 수의 시를 보고, 돌아갈 때 백파가 보낸 시 한 수를 보았다. 서쪽 들판은 가을추수 소리가 들리고, 낮에 벼를 타작하는 먼지연기가 피어오른다. 우리 집의 가작 추수는 얼마 안 되어 닭들이 “당신을 위로하오.” 하고 비웃을 정도이다. 수시로 나가서 풍흉을 비교하고 논하는 것은 전에도 설명했듯이 입을 꾹 다물고, 술을 여러 잔 들이켰는데도 취하지 않는다. 귀로에 해는 막 기울어 한양성의 서쪽 풍경은 일찍 나무 아래로 떨어진다. 교외 뜰에는 여관이 멀고 술이 없다는 것을 안다. 산이 깊고 험한데 촌락이 있다. 추관(秋官)은 편한 직책이 아니다. 산골의 풍속은 따스함이 적어서 시골의 나그네에게도 말이 투박하고 우습다. 논둑에 앉아 있으니 황혼이 든다. 개천을 끼고 십리 길을 마치 풀 속에서 무슨 물건을 찾듯이 걷고 또 걷는데 가질 것이 없다. 별천지가 끝나고 시골 풍속을 배우니 나그네는 무릉도원을 알겠다.
주107) 계첨이관(鷄忝爾寬) :“ 닭이 당신은 위로하오!” 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당신의 농토가 작아서 수확량이 별거 없다는 것을 하찮은 닭도 조롱한다. 라는 의미로 보인다. 자탄(自歎)일 수도 있고 검소하고, 생활이 궁벽하다고 볼 수도 있다. 금서공은 자식도 3남 2녀이고, 장남인데다 시주(詩酒)와 여행을 좋아하니 살림이 나아질 수가 없다. 별도로 살펴보겠지만, 자신과 아들딸의 혼처도 모두 한미한 선비집안이다. 현달과 재산에 연연하지 않는 분이다.
주108) 추관(秋官) : 추수관(秋收官), 궁가(宮家)의 타작을 맡아보던 사람
58. 증백파(贈白坡)
한재면월매신여(寒齋眠月每晨與)
향몽총원기미능(鄕夢傯圓記未能)
객자심회수란서(客子深懷隨亂緖)
주인고표삭청영(主人高標削淸永)
생래부식청춘호(生來不職靑春好)
노거무단백발증(老去無端白髮憎)
야시삼산임별어(也是三山臨別語)
료장차야대고등(料將此夜對孤燈)
추운 집에 잠자는 달 새벽마다 같이하고 고향 그리는 꿈 어지러워 몇 번인지 모르겠네 나그네 깊은 회포 혼탁함의 시작인데 주인의 높은 이상 맑음을 잊게 하네 살아오며 직업 없어도 청춘은 좋고 늙어 가며 끝없는 것은 백발이 싫다는 것이네 아 여기가 삼산인데 이별의 말 하려는데 문득 헤아리니 이 밤도 외로운 등잔불이 벗 되겠네
첫댓글 게시 후에도 교정은 계속됩니다.
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