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갑게 내리쬐던 햇살도 어느덧 찬 기운에 밀려간다. 옷장 속에 머물러 있던 긴 소매 옷이 하나 둘 나들이 준비를 한다. 이웃 나라로 향하는 태풍의 영향으로 굵게 내리는 가을비는 겉옷까지 겹쳐 입게 만든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가을 하늘이 높다랗게 다가온다.
시골 살이 3년을 넘기면서 온돌 방 지붕이 새 단장의 손길을 기다린다. 칠을 한 지 몇 년이 지나다보니 작은 녹이 곳곳에 올라와 있다. 넓지 않은 평수이기에 가볍게 생각해 직접 하기로 마음을 먹고 시외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있는 건축 재료 가게로 찾아간다. 철제 지붕 칠하는 재료를 하나씩 마련한다. 페인트용 롤러 붓과 철이 녹 쓰는 것을 막기 위한 적갈색 방청 도료 한 통과 밝은 청색 에나멜과 희석제를 구매하였다. 직접 지붕 칠을 하기로 덥석 마음을 먹었지만,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인터넷으로 관련 영상을 몇 개 씩이나 찾아본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사전 준비부터 한다. 알루미늄 사다리를 창고에서 꺼내놓고 장갑과 사포를 챙긴다. 작업에 지장이 없는 복장과 마스크를 두르고 장갑과 모자까지 챙겼다. 사다리를 길게 처마에 닿게 펼친다. 지붕에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지지대가 체중을 견뎌 낼만큼 문제가 없는지 한쪽 발은 사다리에 고정하고 반대쪽 발을 지붕 위에 올린다. 사포를 양손에 들고 페인트 위로 올라온 녹 자국에 힘을 가한다. 약하게 생긴 녹은 쉽게 제거되지만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시뻘건 녹은 팔뚝 힘줄이 선명해진다. 지붕 두 면 녹과 이물질 제거에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난다. 페인트 기반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 이물질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칠이 끝난 후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조만간 다시 페인트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녹 제거를 시작하였다. 몇 시간이 지나도 하늘은 흐리기만 하다. 다만 이따금 씩 나뭇잎을 아래 위로 흔들릴 만큼의 바람은 서늘함조차 안겨준다. 자연의 힘으로 지붕에 남겨진 이물질 제거에 일손을 줄여 보려는 기대는 애초에 사라졌다. 마당 가장자리 수도꼭지에 두루마리 호스를 연결하여 높은 압력으로 지붕에 남겨진 찌꺼기를 씻어낸다. 켜켜이 쌓인 녹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물줄기가 닿는 자리마다 빛이 더해져 반짝인다. 얼굴에 묻은 땟국물을 벗겨내듯 개운함으로 마음 구석까지 후련하다. 한낮의 햇살은 비 소식과는 정반대 모습을 나타낸다. 반나절 후 새로운 작업에 들어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터이다. 녹 제거 후 한바탕 물줄기로 매를 맞고 강제 목욕을 끝낸 지붕은 산들산들 부는 바람 덕분에 습기를 걷어내는데 날씨의 도움을 받는다. 순조로운 페인트 칠을 기대해본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 이불을 걷었다. 방문을 열고 마루 끝에 나서 날씨부터 확인한다. 지붕 도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뭇잎이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의 바람이 피부에 시원함을 보탠다. 방청 도료를 ㅇ.5리터정도 페인트 트레이에 따르고 희석제를 비율에 맞게 섞는다. 골고루 섞인 도료와 기다란 손잡이를 끼운 롤라 붓을 들고 지붕에 오른다. 오른쪽부터 칠을 한다. 기다란 막대는 지붕 용마루까지 한 번에 닿는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페인트가 여기저기 날린다. 롤러의 회전수를 늘릴 때마다 도료가 눈물 방울처럼 흩어져 점점이 박혔다.
급하게 행한 일은 도리어 매끈한 뒷 손질이 따른다.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가 있으랴.’ 차츰 요령이 생겨 붓질에 속도가 정해진다. 롤러에 묻은 용액이 넉넉할 때는 굴리는 속도를 느리고 하고 이후에는 빠르게 한다. 사다리를 옮겨가며 지붕 한 면 칠이 마무리 되었다. 건너편 지붕은 옆집 마당에 사다리를 옮겨 시작한다. 발아래 남새 밭 자투리에 들깨와 무, 파가 심어져 있다. 작물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빈 자리에 걸친다. 방청 도료는 희석제가 더 들어간 탓인지 일 리터를 남긴 채 1차 작업은 완성되었다. 햇살이 뜨겁게 내리쬔다.
든든한 일꾼에게 소고기 가지 덮밥으로 점심 배를 채워준다. 연한 커피 한 잔으로 여유도 가진다. 2차 도색은 앞서보다 시간이 더 걸리리라. 방청 도료가 드러나지 않게 덮어야 하기에 에너지가 더 소모된다. 연한 하늘색 도료 뚜껑을 열어 일 리터 남짓 덜었다. 적갈색이 묻어날까 봐 롤러 붓을 새 것으로 바꾼다. 오전에 칠을 해 본 터 인지라 이제는 제법 익숙한 몸짓으로 속도가 빨라진다. 반면에 팔과 다리가 묵직해졌음을 느낀다.
철제 지붕을 고정한 못이 시간이 오래되어 헐거워 진 곳이 여기저기 보인다. 아내에게 창고 선반에 있는 쇠망치를 요청한다. 말라 가는 목을 연하게 해줄 물병도 뒤따른다. 시원한 물은 잠시의 휴식 시간이 필요함을 일러 주는듯하다. 팔을 멈춘 것도 잠깐이다. 망치는 허리춤 혁대 틈에 끼우고 도색 작업이 이어진다. 드디어 한 면이 끝났다. 새파란 하늘과 연한 페인트 색이 지붕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반대쪽 면은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좁아 진행이 빨라진다. 이틀에 걸쳐 시작된 혼자만의 전투가 마무리 직전이다. 모자와 바지에는 페인트 자국이 작업 표시를 남긴다. 초보 일꾼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처음 시작할 때의 걱정과 달리 골고루 칠이 되었고, 다행스럽게도 지붕에 오르내리며 상처 난 곳 없이 온돌방 도색을 마쳤다.
손수 뛰어든 집 관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한가지 장점 외에 뒤따르는 얼룩은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는듯하다. 말 그대로 몸이 개고생이다. 지붕 도색을 결정하고 실행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쩌면 시골살이의 또 다른 억누름이 아닐까. 공동 주택과 달리 집 주인이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잦다. 아니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 수두룩하다.
재료는 몇 푼 들지 않는데 문제는 일꾼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손이 가는 곳이 점점 많아진다. 목조 시골집은 더더욱 그렇다. 4도3촌의 꿈을 안고 집을 인수 한 지 삼 년이 지났다. 낭만 가득한 귀촌으로 마당에 새로 설치한 그네와 탁구대도 빛이 바랜다. 자연 상태로 노출된 구조물들은 해가 거듭될수록 챙겨야 된다. 몇 년 내버려두면 그 구실은 물 건너 간다. 자연의 힘이 어마어마하다. 보이지 않게 기구들은 시나브로 기능이 약해진다. 헤진 시멘트 벽면과 도료가 벌어진 나무 기둥도 손길을 기다린다. 아직은 후 순위에 밀렸다. 덩치가 큰 본체는 직접 해결할 일이 아니다. 몇 년 뒤에는 비용이 들어도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겠다.
무작정 나섰던 지붕 단장하기가 끝났다. 곱게 화장을 마친 온돌방 지붕은 멀리에서도 눈에 먼저 들어온다. 동네 길가에서 눈만 들어도 안긴다. 어설프지만 정성을 들인 첫 결과물에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내일은 새로운 과업이 기다린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시골 일은 무한 반복이다. 마무리하고 돌아서면 또 일이 기다린다. 얼마간 내버려 둔 마당의 잔디는 잡풀로 뒹엉겼다. 뒤뜰의 공간은 배수구 정리와 풀 제거가 남았다. 계속 머무르면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 주에 이삼 일 있으면서 정리하는 것은 무리다. 전원 생활을 그리는 그대여! 진정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하면 당장 시도하되 그렇지 않으면 생각을 접고 달리 생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