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지도론 제75권
58. 몽중입삼매품(夢中入三昧品)을 풀이함
【經】 그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삼매에 들면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습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만일 보살이 대낮에 삼삼매에 들어서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다면 밤의 꿈속에서도 당연히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낮이나 밤의 꿈속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대낮에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익이 있다면 이 보살은 꿈속에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역시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업(業)을 지을 때에 이 업은 쌓여서 완성되는 일이 있습니까?
부처님의 말씀대로라면 온갖 법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므로 쌓여서 완성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꿈속에서는 어떤 법도 쌓여서 완성되는 일이 없거니와,
만일 깨어 있을 때에 기억하고 분별하는 것은 마땅히 쌓여서 완성되는 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만일 사람이 꿈속에서 중생을 죽이고는 깨어난 뒤에 기억하면서 모양을 취하여,
‘나는 중생을 죽였다. 그것이야말로 유쾌한 일이다’고 분별한다면,
사리불이여, 이런 일은 어떻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인연이 없으면 업(業)은 생기지 않고 인연이 없으면 생각[思]도 생기지 않습니다.
인연이 있어야 업이 생기고 인연이 있어야 생각도 생깁니다.”
“사리불이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인연이 없으면 업은 생기지 않고 인연이 없으면 생각도 생기지 않거니와, 인연이 있어야 업도 생기고 인연이 있어야 생각도 생깁니다.
보고[見]ㆍ듣고[聞]ㆍ깨닫고[覺]ㆍ아는[知] 법 가운데서 마음이 생기며, 보고 듣고 깨닫고 알지 못하는 법 가운데서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에는 깨끗한[淨] 것도 있고 더러운[垢] 것도 있으니,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으며 인연이 있기 때문에 생각[思]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다면 모든 업(業)과 모든 생각[思]은 자기 모양[自相]을 여읜 것이거늘,
어떻게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으며,
인연이 있기 때문에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모양을 취하기 때문에 인연이 있으면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으며,
모양을 취하기 때문에 인연이 있으면 생각이 생기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닦아 이 선근의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迴向)하면 이것은 진실한 회향이 됩니까?”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지금 이 앞에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불퇴전(不退轉)의 수기를 주셨고 장차 부처님이 되실 분이니, 당연히 미륵보살께 물어야 하며 미륵보살께서는 당연히 대답하실 것입니다.”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수보리께서 말씀하시기를,
‘미륵보살께서 지금 이 앞에 계시고 부처님께서 불퇴전의 수기를 주셨으며 장차 부처님이 되실 분이므로 미륵께서는 당연히 대답하실 것이다’고 하십니다.”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미륵이란 이름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아니면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로 대답해야 합니까?
또는 물질의 공한 것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아니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공한 것으로 대답해야 합니까?
이 물질로는 대답할 수가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로도 대답할 수 없으며,
물질의 공한 것으로도 대답할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의 공한 것으로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법을 대답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있다고도 보지 않으며
나는 이 사람이 수기를 받았다고 보지도 않고, 또한 수기를 줄 수 있는 어떤 법도 보지 않으며 수기를 받을 곳도 보지 않나니,
이 온갖 법은 모두가 둘이 없고[無二] 구별도 없습니다[無別].”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씀대로 그와 같은 법을 증득하셨습니까?”
미륵이 사리불에게 대답했다.
“내가 말한 바와 같은 법은 그와 같이 증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사리불이 생각했다.
“미륵보살은 지혜가 매우 깊고 오랜 동안 단바라밀(檀波羅蜜)과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과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과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과 선바라밀(禪波羅蜜)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하면서 얻을 바가 없음[無所得]을 썼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할 수 있구나.”
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대는 이 법으로써 아라한을 얻었다 하는 그 법을 보더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보지 못합니다.”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법으로 수기를 얻을 것이다. 이 법으로 이미 수기를 받았다.
이 법으로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그와 같아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나는 얻을 것인가 얻지 못할 것인가?'라고 의심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진실로 얻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論】
【문】 사리불은 무엇 때문에 꿈으로써 보살의 삼삼매를 따지는 것인가?
【답】 꿈은 거짓이어서 마치 미치광이가 헛것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이 삼삼매는 바로 진실한 법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말하기를,
“꿈속에서도 착한 것[善]과 착하지 않은 것[不善]과 무기(無記)의 세 가지가 있다.
만일 보살이 착한 마음으로 삼삼매를 행하면 마땅히 복덕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꿈은 그것이 미치고 어리석은 법이라 그 가운데서는 진실한 법을 행하면서 과보를 얻지 못해야 한다.
만일 진실한 법이 있다면 꿈이라 하지 못한다.”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묻기를,
“만일 보살이 꿈속에서 삼삼매를 행하면 반야바라밀의 복덕이 더욱 불어나고 선근을 쌓으면서 부처님 도에 가까워지는 것이냐?”라고 한다.
수보리는 생각하기를,
“만일 이익이 있다 한다면 꿈은 거짓이요 반야는 진실한 법이거늘 어떻게 이익을 얻겠는가?
만일 이익이 없다 한다면 꿈속에서도 착한 일이 있거늘 어떻게 이익이 없겠는가?” 하여,
이익이 있다거나 이익이 없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수보리는 이 두 치우친 소견에 대한 질문을 여의며 그 때문에 모든 법의 실상으로써 대답하기를,
“오히려 낮에 한 일조차도 파괴되거늘 하물며 꿈속이겠는가?”라고 하고,
말하기를,
“사리불이여, 보살이 만일 대낮에 반야를 행하여 이익이 있다면 밤에도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낮에도 이익이 없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꿈속이겠습니까?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에는 낮과 밤이 있다고 분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사리불은 수보리가 하는 말을 듣고,
이미 반야에는 더하는 것도 없고 덜하는 것도 없음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더 따지지 말아야 할 것인데,
여기서는 다시 그 밖의 일로 인하여 꿈속의 것을 묻기를,
“수보리여, 만일 꿈속에서 업을 지으면 이 업이 쌓여서 완성됨이 있습니까?
쌓여서 완성된다는 것은 업이 진실로 쌓이면서 과보를 이룬다는 것입니까?
이 업이 만일 진실로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되,
‘온갖 법은 공하여 마치 꿈과 같다’고 하셨으므로 쌓여서 완성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꿈속의 마음은 미약하기 때문에 쌓여서 완성될 수 없습니다.
대낮의 미약한 마음조차도 오히려 쌓여서 완성될 수 없거늘 하물며 꿈속의 일이겠습니까?
만일 꿈을 깬 뒤에 꿈속에서 냈던 착하고 착하지 않은 마음을 분별한다면 그것은 바로 쌓여서 완성되어야 합니다.”라고 한다.
수보리는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사람을 죽인 것과 같아서 깬 뒤에
‘내가 죽였다. 이 일이야말로 유쾌했었다’고 하면서 분별한다면,
사리불이여, 이 업은 어떻게 쌓여서 완성되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사리불은 수보리에게 말하기를,
“온갖 업은 낮이거나 밤이거나 모두가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니,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수보리는 그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그렇습니다. 업은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으며, 생각[思]은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라고 한다.
업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며, 생각은 의업(意業)만을 말한다.
생각이야말로 진실한 업이고, 신업ㆍ구업은 생각 때문에 업이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업은 네 가지의 법으로 인한 것이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다.
이 네 가지로 인하여 곧 마음이 생기며 이 마음은 인연에 따라 생기되, 혹은 깨끗하기도 하고 혹은 깨끗하지 않기[不淨]도 하다. 깨끗하지 않은 것은 죄업(罪業)이요, 깨끗한 것은 복업(福業)이다.
그러므로 만일 꿈속에서 보는 바가 모두 앞의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으로 인한다면,
꿈속에서 지은 선과 악은 수면에 덮여서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세력이 없고 과보를 쌓아 이룰 수가 없거니와,
만일 이 업이 꿈을 깬 뒤에는 선과 악의 마음이 화합하기 때문에 과보를 돕고 이루게 할 수 있다.
수보리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꿈속의 업은 실로 쌓여서 완성된다. 왜냐하면 인연으로 생긴 것이 있기 때문이니,
대낮의 마음이나 꿈속의 마음에는 차이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두가 네 가지로 인하여 생기기 때문이다’고 한다.
사리불은 공으로써 수보리를 힐난하기를, “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업은 자기 모양[自相]을 여의거늘 당신은 어찌하여 반드시 모든 업은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합니까?”라고 한다.
수보리는 대답하기를,
“모든 법은 비록 공하여 멀리 여의는 모양[遠離相]이라 하더라도,
범부는 모양을 취해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업이 생기며 만일 모양을 취하지 않아서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온갖 업은 모두가 모양을 취하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그 때문에 대낮과 꿈속이 있다 해도 차이가 없습니다.”라고 한다.
사리불은 다시 “
만일 꿈속에서 6바라밀을 행하여 위없는 도에 회향하면 이것은 진실한 회향입니까?”라고 묻고는 다시
“만일 꿈속과 대낮에 차이가 없다면 이 꿈속의 회향도 마땅히 진실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또 대낮이라 해도 마음에 집착하면서 모양을 취한다면 회향이라고 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잠을 자면서 마음이 가려 있는 것이랴”라고 따져 묻는다.
수보리는 이 두 가지의 힐난이 깊은 이치라 대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마땅히 미륵께 물어야 합니다.”라고 한다.
【문】 미륵은 무엇 때문에 공만을 말하면서 대답하지 않는가?
【답】 이 두 큰 제자는 보살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를 분별하면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온갖 법은 마치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므로,
만일 낮에 도(道)를 행한다면 꿈속에서도 역시 도를 행해야 한다.”라고 한다.
미륵은 두 사람이 저마다 집착한 바가 있어 통달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미륵이 이 공으로써 대답하므로, 사리불은 미륵에게 묻기를,
‘말씀하고 계신 공은 그것으로 증득하신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사리불의 뜻은 만일 이 법으로 증득했다 하면 곧 따지려 하면서
‘어떻게 증득한 것입니까?'라고 할 것이요,
만일 증득하지 못했다면
‘당신 자신도 얻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할 것이므로,
미륵의 뜻은
‘당신은 열반으로써 증득을 삼거니와 나는 열반도 공하여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증득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미륵은 아직 부처님 법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증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보살의 법은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는 법이므로 증득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다.
그때 사리불은 생각하기를,
‘미륵보살은 그 지혜가 매우 깊어서 이와 같이 잘 아는 것이요,
열반의 모양을 잘 알면서 증득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나니,
이것을 바로 매우 깊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 사리불은 스스로가 그 인연을 말하되,
“오랫동안 6바라밀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 지혜가 매우 깊다.”라고 하며,
“미륵은 다음에 부처님이 되실 분이므로 마땅히 대답하셔야 한다.”라고 했는데도,
미륵은 지금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도리어 사리불에게 물으시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대는 이 법으로 아라한이 됨을 보느냐?”라고 하신다.
사리불은 말하기를,
“보지 못합니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법은 공하고 모양이 없고 지음이 없거늘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만일 본다 하면 그것은 모양이 있는 것이라 육안(肉眼)과 천안(天眼)은 분별하면서 모양을 취하기 때문에 보지 못해야 하고,
혜안(慧眼)은 분별하는 모양이 없기 때문에 역시 보지 못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무생인(無生忍)을 얻을 때에
‘이 법을 보았다. 수기를 얻었다. 장차 위없는 도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비록 이런 소견을 짓지 않더라도 또
‘나는 위없는 도를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의심하지도 않느니라.
마치 그대가 법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아라한이 될 것인가, 아라한이 되지 못할 것인가?’라고 의심하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신다.
【經】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할 때에 만일 중생이 배고프고 추위에 떨면서 옷이 해진 것을 보면,
보살은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단바라밀을 행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없게 해서 의복과 음식과 살림살이가 마치 사천왕천(四天王天)과 삼십삼천(三十三天)과 야마천(夜摩天)과 도솔타천(兜率陀天)과 화락천(化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같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단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을 행할 때에 중생이 살생(殺生)을 하고 나아가 삿된 소견[邪見]을 지니어 수명이 짧고 병이 많고 얼굴빛이 좋지 않으며 위덕(威德)이 없고 가난하여 재물이 없으며 하천한 집에 태어나 꿈이 흉악하고 누추한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시라바라밀을 행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시라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행할 때에 모든 중생들이 서로가 성을 내어 꾸짖고 욕하며 칼이나 몽둥이ㆍ기와조각ㆍ돌로 서로 잔인하게 해치면서 목숨을 빼앗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찬제바라밀을 행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 이와 같은 일이 없게 하여,
서로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보고 형과 아우처럼 보며 손위와 손아래의 누이처럼 보고 선지식(善知識)처럼 보면서 모두가 자비를 행하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찬제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을 행할 때에 중생들이 게으름을 피우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고 성문승(聲聞乘)ㆍ벽지불승(辟支佛乘)ㆍ불승(佛乘)의 3승을 버리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비리야바라밀을 행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 이와 같은 일이 없게 하리라.
온갖 중생들은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며 3승의 도에서 저마다 제도되고 해탈을 얻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비리야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선바라밀(禪波羅蜜)을 행할 때에,
중생들이 음욕(婬欲)ㆍ진에(瞋恚)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疑)의 5개(蓋)에 덮여서 초선(初禪) 내지는 제4선(禪)을 잃고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와 허공처(虛空處)ㆍ식처(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잃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선바라밀을 행하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선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행할 때에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바른 소견[正見]을 잃고,
혹 업도 없고 업의 인연도 없다고 말하며,
혹은 신(神)이 항상하다고 말하며,
혹은 아주 없다[斷滅]고 말하며,
혹은 아무것도 없다[無所有]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반야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一切種智)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들이 3취,
곧 첫째는 필정취(必正聚)요 둘째는 필사취(必邪聚)요 셋째는 부정취(不定聚)에 머무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 사취(邪聚)는 없고 나아가 그 이름까지도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지(一切智)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지옥(地獄) 안의 중생과 축생(畜生)ㆍ아귀(餓鬼) 안의 중생들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에서는 3악도(惡道)라는 이름까지도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대지(大地)에 등걸ㆍ가시나무ㆍ산ㆍ언덕ㆍ도랑이나 쓰레기가 있는 더러운 곳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에는 나의 국토에는 이와 같은 나쁜 땅이 없고 마치 손바닥처럼 편편하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이 대지(大地)가 순전히 흙일 뿐이요, 금은 등의 진기한 보배가 없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에는 금모래[金沙]가 땅에 깔리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들이 그리워하면서 애착하는[戀著]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그리워하면서 애착하는 일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찰제리(刹帝利)와 바라문(婆羅門)과 비사(鞞舍)와 수다라(首陀羅) 이 네 성씨[四姓]의 중생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는 네 성씨라는 이름조차도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하(下)ㆍ중(中)ㆍ상(上)의 구별이 있어서 하ㆍ중ㆍ상의 집에 태어나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이와 같은 우열(優劣)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갖가지로 이상한 모습이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갖가지 이상한 모습이 없고 온갖 중생들이 모두 다 단정하고 정결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성취하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들에게 주인[主]이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부처님의 법왕(法王)을 제외하고는 주인이라는 이름조차도 없게 하고 나아가 그런 형상까지도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6도(道)의 다름이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이것은 지옥이다, 이것은 축생이다, 이것은 아귀이다, 이것은 귀신이다, 이것은 하늘이다, 이것은 사람이다.’라고 하는 6도의 이름조차도 없게 하고,
온갖 중생이 모두가 동일한 업(業)으로 4념처(念處) 내지는 8성도분(聖道分)을 닦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난생(卵生)과 태생(胎生)과 습생(濕生)과 화생(化生)의 네 가지 태생[四生]이 있는 것을 보면 ,서
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세 가지로 태어남[生]이 없이 똑같이 화생 한 가지로 나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이 없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다섯 가지 신통을 얻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대소변(大小便)을 누는 걱정거리가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들은 모두가 법을 누리는 기쁨으로써 밥을 삼아 대변이나 소변 누는 걱정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광명이 없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의 중생에게는 모두가 광명이 있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일월(日月)과 햇수가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에게는 일월과 햇수라는 이름조차도 못 듣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들의 수명이 짧은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들은 한량없는 겁(切) 동안의 수명을 살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상호(相好)가 없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32상(相)을 성취하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들이 모든 선근(善根)을 여의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선근을 성취하고 이 복덕으로써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3독(毒)과 4병(病)이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에게는 냉병(冷病)ㆍ열병(熱病)ㆍ풍병(風病) 및 이 세 가지의 합병증(合倂症)인 4종의 병과 그리고 3독의 병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3승(乘)이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에게는 2승이란 이름조차 없게 하고 오직 하나뿐인 대승(大乘)만 있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 중생에게 증상만(增上慢)이 있는 것을 보면,
서원을 세우되,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내 국토 안의 중생에게는 증상만이란 이름조차도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서원하기를,
‘나의 광명과 수명에 한량이 있고 비구승의 수(數)에 한량이 있다면,
나는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나의 광명과 수명이 한량없고 비구승의 수도 한량이 없기를 원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서원하기를,
‘만일 나의 국토에 한량이 있다면,
나는 그러한 때마다 6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며,
내가 부처님이 되었을 때 나의 하나의 국토로 하여금 마치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의 세계와 같아지기를 원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나고 죽는[生死] 길이 길고 중생의 성품이 많다는 생각이 들리라.
그러나 그때에는
‘나고 죽는 끝[邊]은 마치 허공과 같고 중생 성품의 끝도 역시 허공과 같다.
이 가운데서는 실로 나고 죽는 것도 없고 오가는 것도 없고 또한 해탈하는 이도 없다’고 바르게 생각해야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행하여 6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면 일체종지에 가까워지느니라.”
【論】
【문】 어떠한 차례가 있어 보살은 중생이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것을 본다는 등에서부터 말씀하시는가?
【답】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지나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수기를 얻으면 다시는 그 밖의 일이 없고 오직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면서 중생을 성취시키는 일을 행할 뿐이다.
여기서는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인연을 말씀하고 있나니,
청정하지 않는 세계의 모양을 보고,
“원컨대, 저의 국토에는 이러한 일이 없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차례대로 그런 일들을 말씀하신다.
보살은 단바라밀을 행할 때에 만일 배고프고 목마르고 옷이 해진 중생을 보면,
곧 이런 생각을 내면서,
“나는 복덕과 지혜를 아직 성취하지 못했으므로 중생들이 구하는 것을 다 대줄 수는 없다.
만일 내가 자비심만을 행하고 있다면 그 중생들에게 아무 이익이 없다.
나는 그러한 때에 세 가지의 복덕을 깊이 행하여 그 세 가지의 복덕 안에 머무르면서 가난한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해야 하리니,
그것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는 것이요, 천상의 왕[天王]이 되는 것이며 신통을 지닌 성인(聖人)이 되어서 곧 그 많은 중생들을 인도하여 그들의 간탐을 깨뜨리고 보시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러한 중생들의 보시 내지는 보살이 보시하는 인연 때문에 뒤에 성불할 때는 그 국토 안에는 빈궁한 이가 없고 마음대로 얻게 되는 것이 마치 욕계(欲界)의 제6천(天)에서 모든 물건을 얻는 것과 같다.
보살도 또한 그러하여서 그러한 때마다 단바라밀의 공덕을 쌓아 모으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온갖 유위(有爲)의 법은 인연(因緣)에 속한지라 선(善)을 행한 인연이 완전히 갖추어졌으므로 모두 뜻에 따라 과보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또 중생은 시라바라밀을 깨뜨리는 인연 때문에 목숨이 짧고 질병이 많으면서 위덕(威德) 등이 없는 것이니,
보살은 원을 세우되,
“나 자신이 계율을 완전히 갖추면서 또한 중생들에게도 계율을 지니게 하리라”라고 한다.
그 밖의 나머지 소원들도 그와 같으므로 그 뜻에 따라 분별하면 된다.
맨 나중의 소원에 대한 뜻은 명료하지 못하므로 이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보살은 위에서와 같은 원을 하고 나면 피로하고 싫증도 난다. 즉
“부처님 도는 한량없고 수없는 아승기겁 동안 모든 공덕을 행한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
1겁 동안의 햇수조차도 셀 수 없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비유로써 사람들에게 보이고 계시거늘 하물며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에 이런 나고 죽음을 겪으면서 모든 고뇌를 받는 중생도 또한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비유와 산수(算數)로도 미칠 바가 아니다.
다만 삼천대천세계 안의 작은 티끌같이 많은 중생들조차도 오히려 제도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 안의 작은 티끌같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함이겠느냐?”라고 한다.
이런 일 때문에 혹은 마음이 물러나고 침몰하기도 하나니, 이것을 바로 삿된 생각[邪憶念]이라 한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이 보살에게 바른 생각을 가르치기를,
“나고 죽는 것이 비록 길다 하더라도 이 일은 모두가 공하여 마치 허공과 같고 마치 꿈속에서 보는 일과 같아서 실은 길고 먼 것도 아니니, 싫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
또 미래의 세상도 또한 이 한 생각[一念]의 반연할 바[所緣]라 또한 길고 먼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신다.
또 보살은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의 힘 때문에 한량없는 겁을 초월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인연 때문에 싫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그 큰 인연을 말씀하시되 이른바
“나고 죽는 것은 마치 허공과 같고 중생도 또한 그와 같다.
중생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정해진 실체로서의 중생이란 없으며,
마치 중생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 또한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제도하는 것도 또한 어렵지 않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피로해하거나 싫증을 내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