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어서 말을 해
그날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었다.
이웃 마을 면사무소 앞 야외공연장에 나는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섰다. 귀촌한 친구와 둘이서 7080 노래를 부르는데 문득 카뮈의 ‘이방인’ 속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가 생각났다.
세 곡 중에 마지막 곡이 해바라기의 ‘어서 말을 해’였다. 그때 관객들 너머로 아스라이 노을이 깔리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로 접어들자, 내 시선은 관객 중 어떤 할머니에게 쏠렸다.
그런데, 맙소사! 그녀는 어머니였다.
아니, 후에 생각해보니 잠시 어머니로 보였던 게 정확했다. 평소 막내아들의 노래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어머니가 그 자리에 있으리라고 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호통 대신 웃는 얼굴로 날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고 때때로 옆에 있던 할아버지처럼 간간이 손뼉까지 치고 있었다.
무대는 열정적으로 변해 갔다. 모든 관객이 일어서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간혹 무대 앞까지 나와서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노래 중간에 내가 현실을 받아들인 게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현재 B 시의 병원에 있고 위독한 상태이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분은 어머니의 환시인 게 순간적으로 깨달아졌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내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 이 자리에 왔는지 느낌이 왔다. 그건 막내아들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아내에게나 아이들에게조차 하지 않은 그 어색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어서 말을 해!”
내 안의 아이,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미성숙한 상태로 남아 있는 내게 잠재의식 속의 그 아이가 나더러 재촉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워? 지금 어머니는 위독한 상태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야.」
“알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럼 어서 말을 해!」
노래가 막바지로 흐르자 내 옆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친구가 날 곁눈질했다. 뭔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 마지막 소절을 부르곤 기타를 놓았다. 어머니에게 아직 말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왜 그래? 오늘 영 이상해.”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볼 때 나는 그만, 기타 옆으로 쓰러졌다. 깜짝 놀란 진행자들이 무대로 올라와서 날 부축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눈을 떠서 관객들 사이의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당연히 그곳엔 어머니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시골집 내 방에 누워있었다. 거실에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내 방에는 선풍기 바람이 설렁설렁 불어왔다. 설핏 눈을 떠보니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와 학교를 다녀온 막내 딸아이가 곁에 있었다. 아내는 내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연방 올려주고 있었고 딸아이는 엄마 심부름으로 세숫대야에 물을 갈고 있었다. 마을행사장에서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혼수상태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때 겨우 내 귀엔 막내 딸아이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