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공세리 성당을 찾아 가는 길
4월 중순경에 다녀왔던 공세리 성당을 다시 찾아가던 날은
연휴가 시작된 날이라 차가 엄청 많이 밀려 천안터미널까지
무려 3시간이 소요 되었다.
보통 1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을...
그곳에서 아산 가는 버스로 옮겨 타야했다.
아산 터미널에서 하차 길 건너에서 공세리가는 버스를 타고
인주 파출소에서 하차.
아산 터미널에서 공세리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씽~씽~ 날아간다.
공세리 성지에 도착하니 성지 순례 온 사람들도 많다.
영산홍, 철쭉꽃들이 떨어지는 중~
조금 일찍 날을 잡아 왔으면 만개했을 꽃들을 보았을 것 같다.
아산만에 인접한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서산·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문의·옥천·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곡 창고지(貢稅穀 倉庫地)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됐다가 고종 때 폐지됨으로써 80간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舊)본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 공세리 성당은 대전교구
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현재 성당이 위치한 8000여 평의 부지는 이같이 세곡을 임시 보관
하던 자리가 가톨릭 신앙 전교의 전진기지로 바뀌었다. (글 출처- http://www.paxkorea.co.kr)
1895년 당시에는 동네 한가운데 있는 가정집을 성당으로 사용했었으나 1897년 창고
건물을 헐고 구 성당 건물(현 사제관)과 구 사제관 건물(현 회합실, 창고)을 짓게 되었다.
초대 본당 신부이었던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성당을 설계하고 지휘 감독하여
1922년 10월 8일 현 성당을 완공하였다. 공세리 본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드비즈 신부는
2대 기낭 신부가 1년 만에 전임하면서 초대에 이어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를 닦았다.
그 크고 화려함으로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로 멀리서까지 많은 구경꾼을
불러왔던 현재의 성당 건물은 그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면서 지은 성당이다. 그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의술을 활용, 한약을 조제하였으며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씨에게 고약을 비법을 전수시켰다.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는 한국명인 '成一論 고약'으로 불렸었다. 드비즈 신부는
1930년까지 공세리에서 사목하였다.
어느새 나무들이 푸른 잎들로 치장을 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피아노 반주 소리가 들려온다.
토요일이라 어린이 미사가 3시에 있다.
수녀님은 제대를 꾸미시는 중이었고 어린이들은 성가 연습중이었다.
미사 시간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있기에 성지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아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싸온 점심을 먹기엔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 배고픔을 참고 ....
박물관
베네딕도관
연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
나무들의 모습이 싱그럽고 예쁘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자.
아름다운 성당을 이런 저런 모습으로 담아본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 앞에서 기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어느성당의 신부님이신지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시다.
혹시 공세리 성지에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이실지도 모르겠다.
흰머리가 많지만 얼굴은 동안이시었다. ^^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빠져 나갈 때 쯤에 얼른 전경을 담아본다.
빨리 촬영을 하다보니 발이 그만 ....
다 담았으면 보기 좋았을텐데....아쉬움이 남는다.
미사시간이 다 되어 성당으로....
산만한 어린이들과 미사를 봉헌하는 신부님 힘 드실 것 같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않고 미사를 끝마치신다.
어버이 날이 가까워 간식을 준비하는 엄마들에게 감사의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강론시간에는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이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
공세리 성지!!! 순례를 마치고....
서둘러 버스 타는 곳으로....
4시 45분 차가 떠났나 싶었는데 아직 오질 않았다고 한다.
5시가 다 되어 도착한 버스를 타고 아산터미널로....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터미널에서
5시 50분 차를 탈 수 있었다.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안그럼 한 참을 기다릴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길이 막혀서 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들다는 안내원이
천안으로 가서 타야된다고 해서 어쩌나 했는데
다행하게도 울 동네까지 오는 버스가 마침 있었기에...
버스 전용도로라 그런지 올라오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2014년 5월 3일(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미사에 참례할 수 있어 더욱 좋았고...
요즘 세월호 사고를 보면 산다는 일이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지 모르는 삶.
후회하는 삶이 되지않게 하루 하루 잘 살아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