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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포럼 9월 특강 자료]
8.25합의 배경과 동북아 정세
남문희 기자 (시사인 대기자 )
Ⅰ 8.25 합의와 경원선,북한판 새마을 사업
-8월20일의 포격전 이전에 남북 사이에 어떤일이 있었나.
주목해야할 일이 있었다. 바로 8월5일 오전 강원도 철원에서 있었던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기공식. 이상한 행사. 경원선 전체 구간이 아니고 남쪽 구간만 잇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주관할 필요가 있었을까. 6월25일자 국토교통부·통일부 공동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기공식 예정일자는 7월 말이었다. 자료에는 나오지 않지만 주관자도 애초에 국무총리. 이 사업의 미스터리와 8월20일 이후 정세가 관련돼 있다.
-경원선 남쪽 구간 사업이란
경원선의 남쪽 구간만이라도 잇자는 제안은 금년 초 통일준비위 업무 보고 때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는 사실 절벽.
지난해 10월의 1차 고위급 회담이 10월 말, 11월 초의 2차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산된 후 북한은 남한 측의 대화 제의를 철저히 묵살했다. 그렇다고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인 올해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어서는 해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게 올해 초의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공식 화답함으로써 일사천리의 과정을 밟게 된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국토부가 전문기관의 기술조사 용역을 실시했고, 5월26일 국무회의에서 경원선 복원계획이 마련됐다. 그리고 6월25일 제273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는 남측 구간 복원사업에 대해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경원선 남쪽 구간 중 신탄리와 백마고지 구간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연결됐고 백마고지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11.7㎞만 남았다. 이 중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백마고지~월정리 구간인 9.3㎞뿐이고 남방한계선에서 군사분계선 사이 2.4㎞와 북측 구간은 북한과 협의해야 한다. 그래서 1단계로 9.3㎞(사업비 1291억원)를 복원하면서 DMZ 및 북측 구간과 관련해 북한과 협의할 계획이었다. 이것이 대략 6월 중순까지의 상황이다.
-그 뒤에 일어난 극적인 상황 변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북한의 호응이 6월중순 감지되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측은 심지어 남측 구간 건설을 위한 기공식에 북측의 해당 분야 고위급 인사(건설상 또는 내각 총리)가 방문할 수 있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공식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한편 북측 인사를 초청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행사 일정이 7월 말에서 8월5일로, 행사 성격이 국무총리 주관 행사에서 대통령 주관 행사로 변경된 내막이다. 7월 중순 이후 북측에 대한 초청장이 비공식으로 발부됐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 기공식이 열리는 8월5일 깜짝쇼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또 하나의 이슈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남북한의 밀월기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슈가 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월 통일대박론을 터뜨린 이후 갈고닦은 ‘도농복합단지 구상’이다. 일명 ‘북한판 새마을사업’ 또는 ‘새마을사업 Ⅱ’ 구상으로 불린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구상이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28일 드레스덴 선언부터였다.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세 가지 원칙이 세워졌다. 그 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특히 지난해 10월13일에 있었던 제2차 회의는 대북정책과 관련한 백화제방식 아이디어 분출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드레스덴 선언과 이 회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대통령이 유달리 집착하는 개념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북한 농촌에 도농복합단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드레스덴 선언에서 세부 실천사항으로 제시됐던 이 구상이 2차 회의에서는 대통령의 모두 발언 때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올해 1월 통일부가 발표한 민생·환경·문화의 3개 소통로 구상에서도 역시 문화를 제외한 민생과 환경은 바로 도농복합단지, 즉 북한판 새마을운동 사업으로 연결된다.
급기야 7월26일 통일부는 과거 쌀·비료 지원에 초점을 맞추던 남북협력기금의 사용 기준을 민생개발 협력 사업 중심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보건의료 협력, 농·축산 협력, 산림·환경 협력 등으로 세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사업이 바로 북한판 새마을운동, 즉 도농복합단지 구상인 것이다. 19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을 보면 주택개량·산림녹화·도로·상하수도·보건의료 사업 등과 함께 농어촌 수익 증대 사업까지 동시에 진행했다.
-도농복합단지의 이점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이점은 분명히 있다. 종전의 쌀·비료 지원이 퍼주기 논란이나 대북지원 피로증, 유엔의 대북 제재 등과 마찰을 빚을 소지가 있는 데 비해 이 프로젝트는 물품 지원보다는 개발 협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분란의 소지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도농복합단지 조성의 방법과 난점
통일부의 기획안대로라면, 남쪽의 민간단체가 북쪽 파트너의 협력을 얻어 북한 마을에 도농복합단지를 조성하면 정부는 단지당 20억~30억원을 지원한다. 또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대규모의 복합영농단지 조성도 구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상에 맹점이 있다. 이 사업은 남쪽의 민간단체나 기업이 북한의 농촌에 직접 들어가서 일정 기간을 같이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만큼 남북 간에 신뢰가 구축되어야 가능한 사업인데, 이명박 정권 이래 최악의 남북 관계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경원선을 북한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 사업 역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변화
변화는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 3월은 각 정부 부처의 한 해 업무 보고가 끝나고, 새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정부의 대북 자세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통일부에서 나타났다. 전임 류길재 장관이 학자 출신으로서의 한계에 머물렀다면 신임 홍용표 장관은 그것을 뛰어넘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당국 간의 공식 라인에만 의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원선 복원의 주관 부서인 국토교통부 역시 3월부터 북측과의 간접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남북 협의의 내용들
우리 정부의 자세가 달라지자 북측의 변화도 감지됐다.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경원선 북측 구간 연결과 관련해 우리 측이 생각한 것은 원산까지였다. 그런데 이를 마식령 스키장까지 연장하자고 제안한 것은 북측이었다. 경원선 복원이 가능해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또 하나의 숙원 사업인 DMZ 생태평화공원이 자연스럽게 철원 근처에 들어설 수 있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역시 현실감을 갖게 된다.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남북협력을 생각하면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과제이다. 경원선이 연결되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선수단과 관광단이 그것을 타고 마식령 스키장을 관광할 수 있다. 이 같은 협력을 토대로 한두 개 종목을 백두산에서 분산 개최하는 일은 2022년 중국이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중국은 2022년 동계올림픽을 대부분 장백산에서 치름으로써 ‘장백산 공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따라서 남북이 힘을 합쳐 미리 ‘백두산’을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경원선 문제에서 돌파구가 열리자 이산가족 문제 역시 의견 조율이 가능해졌다. 조건부나 대가를 따지기에 앞서 이미 고령인 이산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므로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인도적 사업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도농복합단지 구상 역시 애초에 우리 측이 제안한 것에 대해 북한이 수정 제의하는 식이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우리 측의 원래 구상은 500세대 규모로 두 군데를 조성해주는 것이었다. 북측은 이에 대해 200세대 규모로 줄이는 대신 이미 발표한 19개 개발구 중에서 4~5군데를 시범단지로 하는 방안을 수정 제안했다고 한다. 첫 번째가 개성공단 배후지역이다. 남북 근로자 5만4000명이 사용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 수익성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함경북도 청진경제개발구다. 이곳은 단천·무산 등의 자원 매장지와 김책제철소, 청진항을 연계해서 자원개발구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원산의 현동공업개발구다. 현동은 금강산 관광지구와 백두산 관광지구를 연결하는 동해안 관광 벨트의 중심지다. 관광산업과 연계한 민속공예품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함경북도 어랑농업개발구다. 어랑은 19개 개발구 가운데 북청, 숙천과 함께 3대 농업개발구로 분류돼 있는 곳이다. 이미 농업과학 관련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어서 과수농업단지에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왼쪽 지도 참조).
-북측이 제시한 이 네 지역의 특징은 기존 지역개발구와의 연계 개발이나 맞춤형 개발이 가능하고, 남측 민간 중소기업이 북측 파트너와 사업을 진행하면서 BOT 방식(도로·항만·교량 등의 인프라를 건조한 시공사가 일정 기간 이를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한 뒤 발주처에 넘겨주는 수주 방식)으로 상환하게 함으로써 퍼주기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이 할 수 없는 인프라 개발은 정부에서 뒷받침하면 된다.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 이후 초지일관 도농복합단지 구상을 밀어붙여온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부친의 유지인 ‘새마을운동’을 북한 농촌에서 구현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감회와 기대가 남달랐으리라 여겨진다. 바로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후에 전개된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림이 좀 더 분명해진다.
-지뢰 사건 대응의 미스터리
먼저 8월4일 경기도 파주 인근 철책선 바깥에서 터진 지뢰 사건과 그다음 날(8월5일) 정부가 보인 이상한 대응의 상관관계다.
8월5일은 남북 관계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가 한꺼번에 진행된 날이다.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평양을 향해 출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강원도 철원에서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 참석했다. 또 예정대로라면 북측에서 고위급 인사가 내려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인 8월4일 파주 인근 철책선 안에서 지뢰가 터져 우리 측 부사관 두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며칠에 걸친 조사 결과 북측 목함지뢰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올해 들어 몇 차례 반복되는 공교로운 사건이었다. 즉, 남북 간에 뭔가 성사가 되려는 기색이 보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파투가 나곤 해왔다는 것이 일각의 갸웃하는 시각이다.
따라서 지뢰 사건 하루 뒤 정부가 보인 수수께끼 같은 모습도 이해가 된다. 대통령은 예정대로 기공식을 거행하고 통일부는 북측에 대화를 촉구하는 전통문을 보냈다. 지뢰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남북 간 흐름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8.20 포사격을 어떻게 볼까
그러나 조사 결과 북측의 목함지뢰라고 판명된 이상 대응은 불가피했다. 결국 대북 확성기 공세가 펼쳐지고, 북측은 8월20일 두 차례에 걸쳐서 대남 포사격을 하며 판을 키웠다. 그런데 유심히 볼 것은 두 차례 모두 의도적으로 사람이 없는 비무장지대에 발사했고, 동시에 대화파로 분류되는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가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왔다는 점이다. 내용도 눈에 띄고 군부가 주도할 법한 국면에 그가 등장하는 형식도 이례적이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처음부터 김양건을 내세워 ‘대화를 통한 사태 수습과 관계 개선의 출로 열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남쪽이 첫날의 제안을 무시하자 다음 날 이번에는 개인 서한까지 보내며 대화를 재차 촉구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무박4일간의 밀고 당기기라는 진통을 겪은 후 북측의 유감 표명이 나왔다.
-남측의 원칙적 강경한 대응 때문?
이런 일련의 과정대로라면 북측의 유감 표명이 단지 남쪽의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에 눌렸기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아전인수에 가깝다. 8월4일 지뢰 사건 이전까지 남북이 같이 꾸어온 꿈이 없었다면 북측이 그렇게 유연하게 나오지 않았으리라는 게 중론이다. 8월27일 김양건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대담에서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번 사태에 대한 북측의 시각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남과 북은 애당초 이번과 같은 비정상적 상태에 말려들지 말았어야 한다. 북남 관계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 대해 각성 있게 대하여야 한다.”
Ⅱ. 일본 아베 정권의 대북 접근 양상과 남북 합의의 의의
-8.25 남북 합의는 자칫하면 일본 아베 정권에게 빼앗길 뻔 한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극적으로 되찾아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하는 아베 정권의 대북 접근 내막에 대한 간단한 요약.
-아베의 대북 접근: 단기적 이유
안보 법제 강행으로 멀어져만 가는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충격요법’에 부심. 안보 법제의 참의원 통과에 고비가 될 8월 말 또는 9월 초, ‘북·일 수뇌회담’을 개최하려 기획.
-몽골이 중재역에 나선 이유.
특징이 몽골이 중재에 나선 것. 이유는 일본의 인프라 투자 유치를 위해서다. 막대한 매장량이 있지만 운송시설이 없어서 채굴을 못해온 타반톨고이 탄광에 철도를 부설해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연결하려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여기에 일본의 투자가 절실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작: 5월14~16일 울란바토르에 아베의 메신저로 파견된 인물이 자원에너지 전문가인 이마이 다카야 정무비서관이었던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5월20일 방일에 앞선 이마이 정무비서관의 몽골 방문에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가 동행했다고 한다. 일본의 한 매체는 몽골에서 그와 북한의 ‘비밀경찰 및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 사이에 극비 회동이 이루어졌다고 보도했다.
-그 뒤 두 가지 흐름이 이어졌다.
하나는 북·일 간 직접 접촉 -일본 외무성 소속 오노 게이이치 북동아시아 과장이다. 지난 5월에서 7월 초순까지 그는 베이징·다롄·상하이 등을 무대로 북한 측과 적어도 5차례 접촉했다고 한다. 6월20일에는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직접 나섰다.
또하나가 몽골의 중재 외교
6월22~28일, 몽골 외무성 바야르멍흐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방북했다. 그리고 10일 뒤인 7월8~10일에는 바야르멍흐 국장이 간호야그 외무차관과 함께 몽골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재방북했다. 몽골팀의 방북 직후 일본 아베 총리의 관저를 중심으로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하라 준이치 국장이 7월13일 하루에만 3차례 관저를 방문했고 그중 한 번은 아베와 독대했다고 한다.
-아베의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이 7월15일 중국 방문에 이어 7월18일 울란바토르로 날아갔고, 다음 날 엔프투부신 몽골 국가안전보장평의회 사무국장과 3시간에 걸쳐 밀담을 나눴다. 야치 쇼타로의 몽골 방문을 계기로 아베의 대북 프로젝트가 세상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측의 계획
1차
아베 측의 ‘서프라이즈’ 계획은 원래 7월이 목표였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울란바토르에서 납북 피해자인 요코다 메구미의 양친과 그의 딸 김은경을 만나게 해서 재미를 본 바 있는데, 이번에는 김은경을 일본에 데리고 와 당분간 같이 살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7월 중으로 예정됐던 안보 법제의 중의원 강행 통과에 대비한 포석으로 보인다.
2차
그런데 7월이 지난 지금은 9월 초를 겨냥해 또 다른 ‘서프라이즈’를 추진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9월이 바로 북한 측 조사 보고서의 데드라인이라는 점을 활용해 ‘납치 재조사 보고를 위한 북·일 수뇌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아베의 전격 평양 방문도 불사하겠다는 것이고, 몽골 측은 몽골에서 수뇌회담을 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대북 프로젝트 뒤에 미국이 있다?
지난해 7월4일 북한의 특별위원회 발족으로 시작된 납북자 재조사는 원래 지난해 9월 1차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1년째 되는 올해 7월4일까지는 마무리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그동안 조사 결과 통보를 계속 미뤄왔다. 그런데 실질적인 이유가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존이 확인된 납북자의 일본 송환 대가를 북측이 요구했는데 일본이 난색을 보였다는 것이다. 2013년 5월 이지마 이사오 방북 당시 북·일 간에는, 북한이 납치 생존자를 송환할 경우 일본이 그 대가로 대북 청구권 자금의 일부인 약 30억 달러를 선지급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일본의 북미관계 중재
그 뒤 미국의 대북 제재로 진전이 어려워지자 지난해에는 일본이 적극적으로 북·미 교섭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관의 방북으로 시작된 북·미 교섭은 11월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방북, 그리고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접촉 시도로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 1월30일 성 김이 베이징까지 갔다가 북측 관계자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이후 북·미 대화는 중단된 상태다.
-다시 미국이 아베 방북 추동?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베의 대북 프로젝트 뒤에 바로 미국이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북한의 고자세와 거부로 대북 채널 확보에 애를 먹은 미국이 일본 카드를 쓰기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국내의 한 소식통은 “지난 4월 아베 방미 이후 일본의 대북 접촉 재개를 둘러싸고 미·일 간에 긴밀한 협의가 진행돼왔다”라고 말했다. 국제 제재와 봉쇄로도 북한의 핵무장 의지를 꺾는 데 실패하자 일본을 앞세워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보 쪽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납치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한 일본의 대북 경제 진출에 대해 이번에는 일정 부분 허용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성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북한내 6월중순께 당 조직지도부의 문제제기설. 최고존엄에 대한 공작이다? 고정훈 문제 등. 북일 교섭 대신 남북 대화? 앞으로 규명할 문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