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다음 세대를 위한 결단/삿 2:6-10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
출 처| 권오서목사
들어가는 말
과거 로마인들이 유태민족을 억압하던 시절, 그들은 유태인을 말살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를테면, 유태인 학교를 폐쇄시키고, 예배와 민족적인 축제를 금하고, 유태인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책을 불태우고, 랍비의 교육까지도 금하였습니다.
랍비가 정해진 교육을 마치면, 졸업식과 같은 랍비의 임명식이 있는데, 이때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랍비를 임명한 사람이나 임명을 받은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한 지역은 마을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도자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태 민족에게 있어 랍비가 없어진다는 것은 유태 사회가 정지되는 것을 뜻합니다. 랍비는 정신적 지도자임은 물론 의사요, 변호사이며, 유태인들의 모든 권위의 대변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랍비를 탄압했고, 랍비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랍비를 끊임없이 세우고자했던 것입니다.(biblenet.co.kr 예화 : 유태인에게 있어 랍비의 의미)
본 론
1.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이 왜 중요합니까?
오늘 본문 사사기 2장 10절을 보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이 나옵니다. 다함께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400여년 간의 노예생활을 하고 40년 간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오합지졸이었던 이스라엘을 이끈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있는 동안 강한 군사가 되었고,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승전가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도 죽고 이스라엘의 다른 지도자들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일어서게 되었는데, 결정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전지하심도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다음 세대를 키우지 못한 것입니다.
간혹 모세와 여호수아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훌륭합니까? 여호수아가 훌륭합니까? 물론 둘 다 훌륭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정착시킨 것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상 여호수아라는 인물이 크게 부각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에 대한 평가는 모세에 미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모세는 여호수아라는 다음 세대 지도자를 키운 반면, 여호수아는 아무도 키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늘 곁에 두고 그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아무도 자신의 곁에 두지 않았습니다. 키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여호수아 23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24장 1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여호수아의 태도가 믿기지가 않습니다. 15절 말씀을 볼까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말씀입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요? 여호수아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에게 신앙을 가르침에 있어서 이렇듯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니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심을 심어주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받아들이면 심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반드시 심어주어야 합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믿겠지!”하는 생각 정도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를 대할 때마다 “오늘 아니면 더 이상 자녀에게 신앙을 심어줄 수 없다!”는 다부진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함에 있어서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언제든 쓰시겠지!” 물론,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하면 언제든지 변화시켜서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방치해놓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목자가 양을 방치해놓는 경우를 보셨습니까? 목자가 없으면 양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 방치해놓는 목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1850년 콜체스터의 한 교회에서는 조그만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폭풍우가 매우 심하게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이날 교회학교의 한 교사가 날씨가 나쁜데도 교회에 미리 가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잠시 후 17명의 학생들이 왔고, 이 교사는 열정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 한 학생이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찰스 스펄전이었습니다. 여러분, 찰스 스펄전 목사님 아시죠. 180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가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음 세대에 위대한 결실을 보고 싶으십니까?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담임목사로서 우리 성도들을 향한 바램이 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많이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꼭 가르치는 교사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학교에서는 차량봉사를 할 교사도 필요합니다. 전도현장에 나갈 교사도 필요합니다. 새가족을 담당할 교사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데리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 교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를 그 학교에 맡기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교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부흥해 나갈 때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합니다. 심지어 간식을 담당하는 교사도 필요합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는데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다음 세대는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속에서만 세워집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주 애정어린 말을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이 말씀을 보면 당시 디모데의 나이가 비교적 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충실한 일군이 되었는데, 문제는 나이가 좀 어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얼마든지 어린 디모데를 지도자로 세우지 않고 우선 다른 사람을 지도자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오랜 시간 관심과 사랑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향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변치 않는 사랑을 가지고 대할 때 훌륭한 지도자가 세워집니다.
모 월간지(월간조선)에서 사회 名士(명사) 38人을 대상으로 「내 人生을 바꾼 교사의 말 한마디」라는 주제로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설문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답해주었습니다. 설문에 응답한 분들은 정말 교사의 말 한 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습니
金在奎(김재규·74) 영동대 총장, 웨이터 徐相祿(서상록·64)씨, 성악가 嚴正行(엄정행·57)씨, 영화배우 엄앵란씨 등은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열등생에서 우등생이 되었고, 동양화가 金炳宗(김병종·48)씨, 탤런트 崔佛岩( 최불암·61)씨, 디자이너 앙드레 김, 방송인 裵漢星(배한성)씨 등은 선생님의 칭찬에 고무되어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소설가이자 국회의원 金洪信(김홍신·54)씨, 시인 鄭浩承(정호승·51)씨, 시인 金光林 (김광림·72)씨, 李海仁(이해인·56) 수녀, 소설가 朴婉緖(박완서·70)씨 등은 『글 잘 쓴다』는 한마디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반면 全商國(전상국·61)씨는 『너 같은 녀석이 작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 다』는 선생님의 말에 오기가 생겨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피라이터 李萬才(이만재·57)씨, 수필가 皮千得(피천득·91)씨, 숭실대 명예교수 安秉煜(안병욱·81)씨 등은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오늘날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각각의 사연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을 보면 칭찬이든 꾸지람이든 그것의 바탕은 애정이 배어 있어야 하고, 개인의 개성을 잘 찾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준 경우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말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을 비롯해, “고기는 낚싯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는 독일 속담이 있습니다. 또한 덴마크에는 “바다는 사람의 손에 의해, 세계는 사람의 입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biblenet.co,kr 예화 : 인생을 바꾼 교사의 말 한마디) 이처럼 말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여러분의 말에 애정을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3. 구체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디모데전서 4장 12절 말씀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아끼는 마음으로 다섯 가지 영역에서 본이 될 것을 말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분명 우리가 다음 세대를 끼움에 있어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⑴ 언어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습니까?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이들의 표현이 너무 직설적일 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아주 딱 부러지게 말합니다. 부모들은 이런 자녀들을 보면서 표현력이 좋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좋아할 것이 못됩니다. 사실은 너무나도 직설적인 표현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약 외모에 자신이 없는 여자에게 “너 정말 못생겼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형편이 좋지 못한 친구에게 “너희 집은 왜 이리 못 살아!”라고 말한다면요? 그런 말을 듣는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듣는 아이만 상처를 받습니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반드시 상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의 말에 대한 교훈의 책을 보면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진실 역시 말해서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해서, 상대방의 처지와 형편을 헤아려 조심해서 말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녀들에게 현명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상대방을 배려하며 말할 줄 알도록 가르치세요.
⑵ 행실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부모의 눈에 비치는 자녀의 행동은 사실 못마땅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부모는 언성을 높이며 자녀를 훈계하려고 합니다.
미국 샌디에고 대학의 로버트 엡스타인(Robert Epstein) 교수는 ‘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들지 않고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9가지 방법’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환경을 바꿔 준다.
예를 들어, “밥 먹기 전에 과자 먹지 말라고 했잖니!”라고 잔소리 하는 대신 애초에 과자를 감춰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문제가 된 상황을 재현해 준다.
친구와 싸우고 들어 온 경우, 아이는 친구의 역할을, 부모는 아이의 역할을 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분과 어려움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 심호흡을 가르친다.
☛넷째, 스스로 책임지도록 가르친다.
스스로 정리해야 할 일들을 상기시키는 쪽지를 직접 써 붙이도록 하고 일이 잘 진행되어가는지를 체크하게 하여 스스로 자랑스럽게 해줍니다.
☛다섯째, 효과적으로 벌주기.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한쪽 구서에 가서 가만히 있도록 하는 벌을 주는 것만으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여섯째, 부드럽게 제지한다.
아이가 늦장을 부리면, 소리를 질러 재촉하지 말고 아이를 감싸 안고 “오늘은 바쁘니까 차에서 머리 빗자.”하고 부드럽게 대하세요.
☛일곱째,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에 대한 분명한 구분선을 두어야 한다.
☛여덟 번째, 채찍보다는 홍당무를. 구두닦이, 설거지 등 집안일을 도울 경우 약간의 보상을 하면 그 일들을 즐겁게 해 나가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부모와 자녀 간에 계약을 맺음으로써, 부모도 아이들에 대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솔직하게 사과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바른 행실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심어주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자녀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⑶ 사랑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사랑을 받는데 익숙합니다. 뭘 사줘도 고맙다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받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사랑할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베푸는 것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과 같이 봉사활동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놀토에 놀러만 가지 말고 자녀들과 사랑을 나누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⑷ 믿음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교회에서 귀히 쓰임 받는 차세대 목회자들을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이분들이 어릴 적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께 쓰임받는 비전을 놓고 몸부림치며 자신을 훈련시킨 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십대를 겪어봐서 잘 아시잖아요. 이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때입니까? 질풍노도의 때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때 믿음이 우리 자녀들의 삶에 반석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믿음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곁에서 기도해주고 있음을 늘 기억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⑸ 순결의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순결에 대한 의식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서울시 여성발전기금의 지원으로 20~30대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를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응답자 중 49.2%가 ‘사랑한다면 혼전 성관계도 가능하다’고 답했고, ‘결혼을 전제로 가능하다’고 대답한 사람도 무려 27.4%에 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류 역사상 망한 나라들의 보세요. 순결의식이 약해지고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을 무분별한 음란물에 노출시켜서는 안 됩니다.
정 리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는 희망찬 미래를 위한 결단입니다. 다음 세대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혼란스러운 사사시대가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음세대를 키우지 못한 데 있지 않습니까?
다음세대를 키워야 합니다.
다음 세대는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애정어린 말 한 마디로 다음 세대를 세웁니다.
다음 세대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언어, 행실, 사랑, 믿음, 순결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 춘천중앙교회 성도는 다음 세대를 키우는데 앞장서기를 바립니다. 목회자만 나선다고 되지 않습니다. 교사가 있어야 하고, 가정이 믿음 안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 부흥의 불꽃이 이어가는 데 값지게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