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하는 첫 소절때문에 박건 님의 히트곡인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1971)과 제목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은 박인희 님의 리메이크곡으로 널리 알려졌지요. 시인이 지은 노랫말이어서인지 가사가 매우 서정적이지요. 가사에 가을의 공원이 들어있어 가을에 잘 어울리는 곡으로 보입니다.
<세월이 가면>은 박인희 님의 낭랑한 목소리를 타고 삽시간에 인기곡으로 부상했습니다. 학사 가수였던 박인희 님은 지적이고 정숙해보이는 이미지가 강했지요. 이 곡은 <목마와 숙녀>와 함께 이런 이미지를 더욱 굳히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인희 님은 1970년 이필원 님과 남녀혼성 포크 듀엣 ‘뚜아 에 무아’(toi et moi, 프랑스말로 ‘너와 나’란 뜻)를 결성하여 <약속> 을 히트시켰지요. 박인희 님은 1973년부터 솔로 가수가 된 뒤
<방랑자>, <모닥불>, <끝이 없는 길> 등을 잇달아 히트시킵니다.
<세월이 가면>은 1956년 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곡이 탄생한 배경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명 시인과 극작가, 가수가 한 자리에 모여 명품 가요를 합작했지요. 이 곡이 만들어진 상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명동의 한 주점에서는 시인 박인환을 비롯해 극작가 이진섭, 언론인 송지영, 가수 나애심 등 몇 사람이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 참 석한 사람들이 나애심에게 노래를 한곡 불러달라고 졸랐다. 나애심이 ‘부를 노래가 없다’며 꽁무니를 뺐다. 이때 박인환이 종이에 뭔가 끄적이더니 앉은 이들에게 보여줬다. <세월이 가면>이란 제목이 붙은 시였다. 이 시를 읽고 샹송에 일가견이 있고 작곡도 할 줄 아는 이진섭이 즉석에서 샹송풍의 곡을 붙였다. 처음엔 나애심이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가락을 따라불렀는데, 나중에 합석한 테너 임만섭이 우렁찬 목소리로 이 곡을 노래하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노래 소리에 끌려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
이상의 증언을 통해 <세월이 가면>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56년 봄 어느날 명동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은 1956년 4월 나애심 님이 음반으로 정식 발표했고, 1959년 현인 님이 리메이크하여 주목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 박인희 님이 리메이크하여 크게 유행합니다. 보통 가요의 창작 주체인 작사가, 작곡가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작품을 만들지요. 그러나 이 곡은 동일 시간에 동일 장소에서 창작됐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라 볼 수 있지요.
<세월이 가면>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은 한 남자가 연인과 호수, 공원에서 데이트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곡입니다. 이 남자는 세월이 흘러 연인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녀의 체취를 잊지 못합니다. 특히 그녀를 만나던 밤 두 사람을 비춰주던 가로등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산정호수같이 아름다운 호반에서 이 곡을 들으면 더욱 근사할 것 같습니다.
이 곡은 원작 시와 조금 가사가 다릅니다. 원작시의 <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은 <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으로, 원작시 맨 마지막 행의 <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은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로 수정하여 가사 끝에 붙였습니다. 또 < 내 가슴에 있어 >는 < 내 가슴에 있네 >로 수정했습니다.
특기할 점은 나애심 님의 버전과 박인희 님의 버전이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특히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구절 부분이 큰 차이를 보입니다. 나애심 님은 이 부분을 선율에 맞춰 부르는 반면 박인희 님은 이 부분을 낭송으로 대체했지요. 또 박자, 편곡도 차이를 보여 다른 노래를 듣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현인 님 버전, 현미 님 버전(1968), 조용필 님 버전(1972)은 나애심 님의 버전과 비슷하게 <세월이 가면>을 가창했습니다.
항간에는 박인희 님과 박인환 시인이 남매라는 소문도 떠돌았지요. 이름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박인희 님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지요.
오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당연히 일면식도 없다. 그의 시가 좋았다. 그냥 좋았다. 알려진 대로 ‘세월이 가면’은 시인의 시에 극작가 이진섭 씨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 선생은 나의 왕 팬이었다. 굳이 자랑하자면 시인의 존재를 내 노래가 한국인에게 각인시켰다고 자부한다. 선생의 시 ‘목마와 숙녀’ 역시 우연히 녹음했는데 대중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이름까지 비슷해 오누이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이어서 박인희 님은 <세월이 가면>에 대해 느끼는 감회를 진솔하게 토로합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가면’이 던지는 인간의 숙명적인 의미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월이 가면’을 들으며 사람들은 옛날을 추억한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을 그리워하게 된다. ‘세월이 가면’은 자신을 다시 보게 하는 기제가 되고 그래서 나까지 새삼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유난히 사랑했던 시인이 나의 노래로 빛을 발했다는 사실도 감격스럽다.
박인희 님은 인기 정상일 때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팬들은 박인희 님의 시적인 노래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봄이 오면 방송에서 <봄이 오는 길>, 여름이 되면 <모닥불>, 가을이 되면 <끝이 없는 길>, <세월이 가면> 등이 여지없이 흘러 나왔지요. 결국 박인희 님은 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6년 컴백 공연을 열고 가수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https://youtu.be/A3dozbbtW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