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어의 힘센 자식 아니기에 돌이킬 수 없다
하늬바람 시작되는 곳, 너는 눈먼 꽃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다시 고물까지 십만 팔천 리 길
너를 따라온 달이 눈동자에 월식으로 지워진다
돌아오고 떠나는 사이 제 몸 넉넉히 내어주는 일뿐
너는 가끔 튀어 오르며 돌아온다 가슴 부푼 비린 꽃으로.
2015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15 남광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레몬은 나무 위에서 해탈한 부처야
그러잖고서야 혼자 세상 쓴맛 다 삼켜 내다가
정신 못 차리는 세상에 맛 좀 봐라 하고
복장(腹臟)을 상큼한 신트림으로 불쑥 터뜨릴 리 없지
어쩌면 레몬은 말야
대승(大乘)의 목탁을 두드리며 히말라야를 넘던 고승이
중생의 편식을 제도(濟度)하다가
단것 단것 하는 투정에 질려
세상으로 향한 목탁의 문고리는 감추고
노란 고치 속에 안거한 건지 몰라
들어 봐,
레몬 향기가 득도의 목탁 소리 같잖아
레몬은 반골을 꿈꿔 온 게 분명해
너도 나도 단맛에 절여지는 세상인데
저만 혼자 시어 보겠다고
삐딱하게 들어앉아 좌선할 리 없지
가만 보면 레몬은 말야
황달 든 부처가 톡 쏘는 것 같아도
내가 단것을 상큼하다고 우길 땐
바로 문 열고 나와 눈 질끈 감기는 감화를 주거든
파계처럼 단맛과 몸 섞은 레몬수를 보더라도
그 둔갑을 변절이라 부르면 안돼
레몬의 마음은 말야
저를 쥐어짜면서 단맛을 교화하는 것이거든
레몬은 독하게 적멸하는 부처야
푸르데데한 색에서 단맛을 쫙 빼면
모두 레몬이 될 수 있어
구연산도 제 가슴에 맺힌 눈물의 사리(舍利)일지 몰라
레몬이 지금 내게 신맛의 포교를 해
내 거짓 눈물이 쏙 빠지도록
바람이 누웠던 빈 둑마다
산이 뱉어놓은 통증이 하얗게 널려있다
소금은, 몰래 다듬어온 은빛 칼날로
자신을 가두었던 산의 자궁을 찌르고 싶었다
적막이 달빛처럼 침식해 들어와
점점 빙하를 닮아가고 있었다
산을 벗어나는 법을 모르기에
정해진 몫만큼 매일 하늘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몸을 낮춰 바람과 관계를 맺었다
소금을 잉태하던 순간부터, 산은
빗물을 붙잡아두기 위해
다랑이 밭에 둑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구름 족속들과 뒹굴면
바다 따위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단단한 고요를 깨뜨리기 위해
저희들끼리 엉기며 서로 핥아주어야 했다
짜디짠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억겁의 생채기가 눈보다 눈부시다
2015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2015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작(2014년 8월 공모)
바다를 본 적이 없는데도 자유가 첨벙거린다
발라드의 속도로
가짜처럼
맑게
곧게 서려고 하지만
새가 먼저 와주었던 일들
바다 쪽으로 가버렸다
저기 먼 돛단배에게 주었다
돛단배는 가로를 알고 있다는 듯이
언제나 수평선 쪽으로 더 가버리는 것
마음과 몸이 멀어서 하늘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