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는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은총의 선물이다."(마르틴 루터)
올해는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예요. 1517년 10월 31일, 독일 성직자 마르틴 루터(Luther·1483~1546)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됐어요.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때마침 발달하던 인쇄술이 성경책 보급에 날개를 달아줬지요.
이처럼 인쇄술은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얻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됐지요. 오늘은 화약, 나침반, 종이와 함께 인류 4대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인쇄술에 대해 알아볼게요.
◇동양에서 출발한 인쇄술
인쇄술이란 일정한 판면(版面·글자 면)에 잉크를 묻힌 뒤 종이 등의 재료에 찍어 문자나 그림을 반복적으로 복제하는 기술을 말해요. 인쇄술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글자를 베껴 쓰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지요.
역사적으로 인쇄술은 크게 목판 인쇄술과 활판 인쇄술로 나눌 수 있는데요. 목판 인쇄술은 나무판에 글자를 음각(오목하게 파는 것)이나 양각(볼록하게 깎는 것)으로 새긴 후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기술이고, 활판 인쇄술은 활자(인쇄를 위해 만든 글자)를 하나하나 따로 만든 뒤 그 활자들을 조합해 문서를 찍어내는 기술이지요.
목판 인쇄술과 활판 인쇄술은 모두 동양에서 시작됐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자 현재 남아있는 목판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우리나라에 있어요. 8세기 통일신라에서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지요.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형태의 불경(佛經) 인쇄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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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심체요절’.
활판 인쇄술은 11세기 중국의 '필승'이라는 사람이 흙을 구워서 활자를 만들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활자 형태를 유지하고 보관이 쉬운 것으로 금속만 한 것이 없었지요. 나무나 점토로 만든 활자는 쉽게 부서지거나 깨졌기 때문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 역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는데요. 고려시대인 1377년 충청북도 흥덕사에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에요. 부처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으로 당시 50~100부 정도 인쇄한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이렇게 초기 인쇄술은 대부분 동양에서 시작됐어요. 하지만 한자 문화권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활판 인쇄술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지요. 수천 자나 되는 한자를 일일이 활판으로 만들어 찍는 것보다 차라리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편이 더 수월했던 거예요.
◇지식의 범람을 낳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서양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1445년 독일의 인쇄업자인 구텐베르크(Gutenberg·1397~1468)가 납으로 활자를 만들었어요. 납에다 주석, 안티몬(금속 원소 중 하나)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녹인 다음, 글자를 새긴 틀에 부어 활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지요. 그리고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만들 때 사용하던 압착기(프레스)를 응용해 힘이 고루 가해지는 압착 인쇄기를 발명했답니다. 이어 그을음과 아마씨 기름을 혼합한 새로운 잉크를 만들고, 압착 인쇄기의 압력에 잘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이탈리아산 종이도 찾아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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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텐베르크의 인쇄소 풍경을 그린 19세기 그림. 구텐베르크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전 유럽에 인쇄술을 퍼뜨렸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활자, 인쇄기, 잉크, 종이 등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는 인쇄에 관한 모든 기술이 집약돼 있었어요. 활자의 배열, 행과 행 간격, 잉크 농도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기울이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최고 작품을 만들었지요. 바로 1282쪽에 이르는 '42행 성경(구텐베르크 성경·1450년)'입니다.
각 쪽마다 42줄씩 인쇄돼 있어 '42행 성경'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를 만들려고 구텐베르크는 서로 다르게 생긴 알파벳과 기호 등 활자 290개를 만들었어요. 당시 180여 권을 찍어냈지요. 이렇게 15세기 후반 발달한 인쇄술로 성경이 대중에 널리 보급되며 루터의 종교개혁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정작 구텐베르크는 인쇄술로 떼돈을 벌거나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42행 성경'을 찍고 파산하는 바람에 인쇄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지요. 1460년 이후에는 지병으로 시력까지 잃어 인쇄업을 그만뒀답니다. 결국 고향인 마인츠로 돌아와 대주교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468년 2월 3일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어요.
구텐베르크 이후 독일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 인쇄소가 속속 설립됐습니다. 1500년쯤 독일에만 300곳 가량 인쇄소가 있었지요. 대량으로 쏟아지는 인쇄물 덕분에 유럽 사회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를 경험합니다. 이전에는 책 한 권을 필사하는 데 대략 2개월이 걸렸다면, 이제는 1주일 만에 500권 넘는 책을 인쇄할 수 있었어요. 인쇄술을 통해 사람들은 더 이상 정보를 얻을 때 소수의 통치자나 교회 성직자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됐고, 스스로 정보를 해석하거나 기존 견해에 도전할 수 있게 됐죠. 중세에서 근대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에요.
인쇄술의 발달은 계속됐어요. 19세기 초 신문 발행이 크게 늘면서 대량 인쇄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자 유럽에서 원압기(원통을 돌려 찍는 것)와 윤전기(두루마리 종이에 원통을 돌려 찍는 것)를 잇따라 개발해요. 20세기에는 컴퓨터에 입력한 글자를 활자 없이 곧장 뽑아내는 잉크젯 프린터(가느다란 잉크 줄기를 종이에 뿌리는 것), 레이저 프린터(잉크 가루를 레이저로 쏘는 것) 등을 사용했답니다. 현재는 가루를 뿌려 굳혀가며 모양을 쌓아올리는 방식의 3D 프린터까지 나왔답니다.
첫댓글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언 9장 18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