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소설]
잔다리 사람들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1부.
족구이야기
<4장>
진화하는 족구③
성구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 신발장 옆에 가방을 툭 내려놓는다. 이제 가방 속의 족구화와 족구공이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할 것이다. 아니면 주중에라도 퇴근하여 돌아온 주인이 자신들을 데리고 나가 저녁 늦게까지 함께 놀아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오십니까? 즐거우셨나요?”
아내가 매번 같은 멘트를 날린다.
“네~. 즐족~했네요.”
“술 마셨어요?”
얼굴이 붉게 물든 성구의 얼굴을 본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어, 막걸리 조금 마셨어.”
“아, 나도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
아내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한다.
아내는 종종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어렸을 때, 장인어른이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면 주전자에 담아오던 막걸리를 호기심으로 한 모금씩 마셨던 때를 말이다. 그때 맛들인 입성이 지금까지 입맛을 다시게 한다는 거였다. 흐흐.
“담에 한잔 하자고~. 아니면 울 팀 운동할 때 한번 나오던지...”
“그러지요, 뭐. 어서 씻어요. 저녁 준비할 게요.”
아내는 주방으로 성구는 욕실로 간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마치니 한결 몸이 개운하다. 잠시 후, 성구는 식탁에 앉아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 밥맛이 좋다. 역시 음식의 가장 좋은 재료는 배고픔인가 보다. 배가 고프면 음식들이 맛있는 것을.
성구는 배부른 식사를 마치고 곧장 컴퓨터 앞에 앉는다. 파워를 켜고 부팅이 되는 짧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족구 카페를 만들어야 하고, 회칙도 만들어야 한다.
성구는 우선 다음 카페에 들어가 통합검색 창에 ‘족구’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친다. 순식간에 검색어에 해당하는 카페 사이트가 떠오른다. 서울특별시, 경기도, 경상남도, 울산시, 평택시, 강원도 등 전국의 수많은 족구카페가 보인다. 지명을 가진 이름은 대개 연합회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연합회, 경기도연합회, 경남연합회, 충남연합회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클럽 이름만으로 만들어진 카페도 수십 페이지가 된다.
‘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성구는 놀라는 기색을 숨길 수 없다. 족구가 이렇게 활성화 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카페가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족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
성구는 생각한다.
‘카페를 개설하지 않은 클럽들도 많을 터, 그러면 족구를 즐기는 인구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전국에서 족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오백만이니 육백만이니 하는 소리가 낭설은 아닌 듯하다. 이제 동네 학교나 공원 또는 작은 공터마다 족구를 하는 사람들이 짙은 안개처럼 점령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족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즐기지 않는 사람도 많단 말이야.’
성구는 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다른 카페들을 방문해 본다. 그리고 여러 곳에 가입을 하며 카페를 살펴본다. 어떤 카페는 회원수도 많고, 족구에 대한 자료와 다양한 메뉴로 구성되어 있어 활성화가 잘 되어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반면 어느 카페는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회원수도 많지 않고 다양한 메뉴도 갖추어지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성구는 한 시간은 족히 다른 카페를 살펴보다가 메모를 하기도 하며 카페를 개설할 준비를 한다. 활성화가 잘 된 카페의 메뉴를 꼼꼼히 적어놓고 살피며 진지하게 레이아웃을 구상 한다.
잠시 후, 성구는 로그인을 하고 ‘카페 만들기’ 버튼을 누른다.
카페 이름을 ‘평택잔다리족구단’이라고 입력하고, 도메인 역할을 하는 주소에 ‘JANDARI'로 하고, 카테고리를 설정하고 카페 검색어를 입력하고 마지막으로 소개 글을 작성한 후 ‘카페 만들기’ 버튼을 누른다. 이번에는 설정 단계로 넘어가 왼쪽에 들어갈 각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회원들이 매일 방문하여 인사말을 주고받는 ‘한줄 메모장’을 만들고, 가입 인사말과 자유게시판, 좋은 글, 유머, 음악감상, 게임 방 등과 방송동영상, 족구기술자료, 회원사진실, 회원전용게시판, 회비관리게시판 등을 만들어 간다.
메뉴마다 읽기와 글쓰기 권한을 부여하기도 한다. 어느 메뉴는 특별회원만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어느 메뉴는 준회원 이상 읽기와 쓰기 권한을 부여한다. 그렇게 권한을 부여하는 자체가 어떤 권리를 누리는 것 같아 성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카페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은 카페지기와 운영자만 할 수 있는 권한도 스릴을 느끼게 한다.
성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카페 만드는 데에 할애한다. 카페 대문도 만들고, 대문 문구도 적어 넣는다. 골격이 서고 하나씩 메뉴가 만들어지며 족구 카페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메뉴는 거의 다 되었고, 메뉴마다 글을 올리고 스크랩을 해 오면 되는 구나.’
그는 다른 카페에 방문하여 좋은 자료들을 메뉴에 맞게 스크랩을 하며 구색을 맞춰놓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가게를 꾸며놓았으면, 그에 맞는 물건을 들여와 구색을 갖춰놓아야 손님들이 자주 방문하게 되는 거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메뉴마다 어느 정도 글을 올리게 되니 빨간색으로 ‘NEW'라는 표식이 생긴다. 그 표식은 새로운 글이 올라올 때만 생기게 된다.
성구는 다시 카페 주소를 클릭한다. 카페의 시작페이지로 변한다. 대문이 중앙에 위치하고 왼편에 각 메뉴가 ‘N'로 물들어 있다. 제법 카페다운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며 성구는 어떤 성취감에 마음이 성욕처럼 뿌듯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자주 방문하여 활성화되기만을 바랄뿐이다.
‘이제 클럽회칙을 만들어야지.’
성구는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평택잔다리족구단 정관’이라고 입력한다. 그리고 제1조 명칭에 본 회의 명칭은 ‘잔다리족구단’ 이라 칭한다. 라고 입력한다.
제2조 ‘목적’에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 및 족구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회원의 의무’에는 ‘회원은 본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회비 납부의 의무가 있다.’
그리고, 각 조마다 ‘회원자격, 회원탈퇴, 자격상실, 회비, 행사 등’을 정하고 부칙으로 ‘회원의 의무’ 사항을 하나씩 기술하기 시작한다. 약간의 장난기도 발동한다.
1. 족생족사를 좌우명으로 해야 한다.
2. 토욜, 일욜에 시간이 있어야 한다.
3. 눈을 감으면 족구공이 보여야 한다.
4. 회비 납부는 신속 정확한 날짜야 한다.
5. 말보다 실천을 잘 해야 한다.
6. 장모님 생신날에도 제끼고 나와야 한다.
7. 근무 중에도 연락하면 2시간 이내에 즉시 출동해야 한다.
8. 승부에서 지면 패인 분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9. 가족처럼 족구를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적고 나니, 성구는 다음에 회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 있다. 아내가 피곤하지도 않느냐고, 잠을 자자고 한 것이 조금 전 같은데 벌써 시각이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니. 성구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카페와 회칙을 다 만들어 놓고 갈무리를 한 후 컴퓨터를 큰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지도 모른다.
성구는 화장실을 다녀와서 도둑처럼 아내의 침실로 파고들어 간다.
-계속-
첫댓글 한 족구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채롭군요~ 울들의 이야기같아서 공감이 갑니다. 족구소설 감사드립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