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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 spiritual warfare-엡 6장 12절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2.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샬롬! 새해도 한 달이 다 지나갔고 2월도 둘째 날입니다.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얼마 뒤엔 저도 나이가 많은 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때가 또 올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어릴 때 우리를 돌보아 주시던 어른과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은 대부분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100세를 사시는 분들의 자녀들은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지내지만 이렇게 살 수가 있는 분은 수만 명 수십만 명 중에 한 분 정도씩 있으니 이제 우리 나이 대의 사람은 이 세상보다 죽음 이후에 가서 누릴 천국과 우리 주 예수님과 그리고 만날 그리운 성경 속의 영웅들과 그리고 예수님께 오신 후 믿음을 지키며 순교하고 끝까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신실한 정말로 조금도 나에게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영원토록 즐겁게 서로 기뻐하며 행복하게 지낼 멋진 분들과의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고 이 얼마 남지 않은 세상에서의 삶을 그곳에서 더욱 큰 상급을 받기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길로 이끌고 나아가야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이 이 세상에서의 싸움이 영적인 전쟁으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혈과 육 즉 형체를 지닌 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바울 사도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사람들은 아무리 우리를 악하게 대하고 죽이려 하고 속이고 또 빼앗으려 하지만 그 실상은 그 사람을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으로 인해서 그들이 그렇게 악하게 행동하니 이들을 미워하지 말고 도리어 이들을 지배하는 세력과 담대하게 싸우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이 악한 줄로 착각하고 이들을 미워하고 이들을 없애려 하고 이들을 반대하고 이들을 배척하고 이들의 세력을 어떻게든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으나 이런 우리의 방법이 어둠의 세력에 절대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도리어 어둠의 세력의 작전에 말려들 것을 경고하니 우리는 싸울 대상을 올바로 보고 올바른 전쟁을 해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이 땅에 평안하게 살고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상급을 받아서 영원토록 누리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조용기 목사님께서 쓰신 4차원의 영적 세계란 책을 읽어보셨거나 혹은 이 책에 대해서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인데 목사님은 이 책에서 우리가 보는 현실의 3차원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4차원의 세계에서 결정된 일이 그대로 일어나기에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4차원의 세상을 터치해야 하고 그 가장 월등하고 승리하는 방법이 영적 물적인 세상의 완전한 왕 중의 왕인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먼저 4차원의 영적인 세상에서 승리를 하고 이 결과로 이 땅 즉 3차원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형통하게 결정이 되도록 하는 것이 참된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전하는 저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제가 처음에 약 39년 전에 예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오셨을 때 기도하며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했고 그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분께 불 세례를 직접 받고 다양한 성경 속의 기적을 체험하며 전도하고 성경을 정리하며 살다가 약 7년 전부터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서 오천만의 로마서 란 제목으로 온 세상에 영어와 한글로 복음을 전하며 살면서 조금씩 제 기도대로 예수님의 도구의 삶을 살고 있으니 스스로 이렇게 불러봅니다.
바울 사도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전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소개를 합니다. 이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믿을 만 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사도가 되었는지를 설명을 해야 사람들이 아! 이 사람은 예수님을 전할 종으로 혹은 도구로 혹은 사도로 택함을 받았구나 먼저 확인을 하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가 합당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이름도 없고 저를 인정하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오천만의 로마서를 통해서 약 110개국에 약 40만의 사람이 제 글을 읽었고 7년 전부터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명하심에 따라서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한국의 약 11개 신학교 교수님 약 700명께 새로운 로마서의 이해에 대해서 제가 받은 은혜와 새로운 이해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를 모두 다 오천만의 로마서에 올렸기에 언제나 확인이 가능하고 제가 읽고 정리한 성경 정리 자료와 전도 자료 등도 대부분 다 올려놓아서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 직접 확인이 가능합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알게 모르게 어둠의 세력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국가의 통치자 지금 세상으로 보면 국가의 대통령, 왕들, 수상이나 공산주의 독재자들, 그리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혹은 문화적으로나 각종 권세를 지니고 있는 자, 어둠의 세상의 주관자와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2000년 전에 바울 사도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였고 모든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다 박해를 했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 즉 마귀와의 전쟁이 너무나 치열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님과 함께 성도는 2000년의 전투를 쉬지 않고 승리로 수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가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교황이 다스리고 온 세상에 복음이 쉬지 않고 전파가 되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다 예수님을 믿고 성경이 수많은 국가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글을 아는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읽게 되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맹렬하고 쉬지 않는 전투에서 수많은 성도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도 불사했고 핍박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하늘나라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온 세계가 성탄절로 축하를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성경에 손을 얹고 서약을 합니다. 수많은 왕과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종으로 자처하고 그분의 인도대로 살고 자신의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큰 승리로 우리가 지금 자유롭게 예수님도 믿고 그리고 전도도 하고 그리고 일상에서 평화와 물질의 축복을 동시에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이 30억 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천국은 수백억 수천억의 사람이 영원토록 사는 놀랍고도 거대한 나라가 될 줄로 믿는데 그 나라의 백성으로 자부심을 갖고 이 세상에서의 짧고 짧은 삶을 절제하고 성령의 인도를 잘 받고 율법을 완성하며 개개인이 모두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당시에 소수 중의 소수이고 이름도 없고 아는 이도 없고 그리고 지극히 주목도 받지 못하던 유대인으로 로마 국적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모든 고관과 왕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지만 바울 사도는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셔서 하루에 그분의 이름과 그분이 쓰신 서신서, 그리고 그분에 대한 글을 검색하는 분들의 검색하는 조회 수가 수십억에 이릅니다. 하루의 조회 수가 이러하니 어떤 배우도 가수도 대통령도 이와 같은 유명세를 누리는 인간은 없습니다. 이것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누구보다도 당시에 영적인 전투에서 큰 승리를 하셨기에 이런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존재가 될 기회가 있습니다. 더 큰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침노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인구는 로마가 약 5천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와 비슷하고 전 세계의 인구가 약 2억에 불과했으니 지금은 약 70억 명을 넘어서 80억 명에 육박하고 있으니 바울과 같은 인물이 적어도 40 명은 존재해야 이들을 전도하고 교회를 세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기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 어떤 영적인 전쟁을 이런 어둠의 세력과 즉 악령과 해야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이 누군지가 밝혀졌습니다. 이제는 이들과 어떤 싸움을 해야 되는지 살펴봅니다. 먼저 우리는 이 싸움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서 하는 전쟁입니다. 첫째는 선교와 전도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입니다. 우리가 전도와 선교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첫째 우리가 수행할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가까운 곳에는 전도하고 먼 곳에는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게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마 28장: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둘째는 세워진 교회들이 그리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는 전투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 17: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 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 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곁에 전도할 대상자가 바울 당시보다 약 25배나 많은 50억 명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야 하는 교회가 우선 천주교, 개신교, 그리고 정교회로 나누어져 있고 한국에만 개신교는 약 200개 교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모든 믿는 이는 무엇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그 싸움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전투를 교회의 소속이 되어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이를 전함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도는 성령을 받은 1992년부터 쉬지 않고 줄기차게 하고 있습니다. 먼저 순복음 교회에 출석할 땐 전도팀에 들어가서 행복으로의 초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약 1년이 넘게 하루에 200 집 정도를 직접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2인 일조가 되어서 먼저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서울의 각 지역으로 흩어져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신림동을 떠나서는 송파로 이사를 와서 이곳에서 지금까지 가족과 주변에 전도하고 전도팀에 들어가서 전했습니다. 특히 편지로 가족 이웃에게 전도하는 것을 통해서 약 100 명의 결신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 15장 부활장의 메시지를 부활 전도책자를 만들고 씨앗을 통에 넣어서 역시 100 명 이상에게 전도했고 이 책을 영어와 일본의 중국어 러시아어로 번역을 해서 온 세상의 사람이 다 보게 했고 이 방법으로 온 세상을 전도할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정말로 어렵지만 문경에 1000평, 미사리에 600평, 당진에 600평, 군산에도 짓고 가는 곳마다 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생산이 되는 씨앗을 통에 넣어서 전도하기 때문에 옥수수, 콩, 호박 등을 재배합니다. 모두가 하지 말라고 말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를 드린 바와 같이 이렇게 블로그와 카페로 온 세상에 전하는데 올해부터는 잘 준비를 해서 유튜브로 전할 계획인데 수백만 수천만 모든 지구인에게 다 전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저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있고 그리고 이는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런 저의 전도와 계획을 확인해 보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동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은 내가 꼭 그 사람과 같이 되어서 받는 방법도 있지만 선지자의 상을 받고 싶은 사람은 선지자를 도우면 되고 목사의 상을 받고 싶은 분은 목사를 도우면 되는데 제가 받는 상이 받고 싶은 분은 저와 함께 이런 일을 하시면 될 줄로 믿습니다. 아직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은 많지만 함께 하시는 분은 많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으면 즉시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전화는 010-7765-4640이고 제 메일은 jkdavid@hanmail.net 와 jkdavidn.naver.com 이니 연락을 바랍니다.
전국을 다니며 같이 농사짓고 낚시도 하고 수석도 하고 관광도 하면서 성경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그리고 전도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에도 제게 초청이 오면 같이 다닐 것입니다. 저는 목사지만 섬기는 교회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제 블로그와 카페 오천만의 로마서에 가 보시면 자세하게 정리를 해 놓았고 최근의 전도 기록도 있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제가 동생과 같이 지내는 참으로 스스로 어려운 주 유순 목사님께서 올해 대학에 들어간 아들의 학비로 쓰라고 200만 원을 주시고 제가 아는 박영희 권사님께서는 새벽 기도에 아들 용돈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명하셨다고 한 달에 10만 원씩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주겠다고 하시고 1월분을 보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를 도운 분은 온 세계적인 축복을 받음을 봅니다. 정 경우 교수는 이 시대 비뇨기과 온 세상의 일인자인데 제가 고시 공부할 때 도왔고 저를 또 고시 고시 공부할 때 도운 박 정관이라고 저와 이름이 같은 친구는 아파트를 지어서 수백억을 벌고 섬에 투자를 하고 역시 교수가 되었습니다. 박영희 권사님의 아들은 삼성에서 잘렸는데 이 아들을 수년째 주시하던 인도네시아의 재벌이 기다렸다는 듯이 부사장으로 영입해서 온 세상에 다니고 있고 이 분의 아내인 며느리는 순식간에 서울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의 아들과 딸이 다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갔는데 특히 이분들의 아들은 미국 유명 대학에 6년 전액(약 10억 원) 모든 학비를 면제를 받는 의대에 진학했고 학교 역사상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곧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도운 양동일 장로님은 평소에 아버지와 같이 저를 도우셨는데 연세가 80이 넘고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의사도 포기하고 집에서 요양 중에 제가 그 소식을 듣고 친 아버지의 병과 같은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완치를 시켜주셨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주님 오신 후 2000년이 지난 지금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제 글을 조금씩 보시면 제가 하는 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 신학자도 성경 연구자도 아닌 신분으로 어떻게 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신학교 교수님 700분께 한글로 영어로 로마서에 대해서 전하겠습니까? 저는 예수를 믿고 성령도 모르고 오직 은행에서 퇴사 후에 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행정고시를 하고 고위 공직자로 통일에 기여하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불교신자인 저를 수분 만에 변화를 시키고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대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1991년 5월 19일입니다 약 7개월이 지났을 때 예수님께 불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신림동 선민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고 1차 합격자 200명이 모여서 치는 모의고사에서 늘 상위권에 속했기에 무난히 행시에 합격할 것이라 저도 주변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안 하숙집 주인의 배려로 순식간에 50명의 여자와 선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2차에서 1점 차로 낙방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고 전도하고 성경을 정리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민 교회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불어 주셨는데 제 가슴에 2-3개의 작은 촛불이 이는 것이 보였고 그리고 고시 낙방 후에 전도하고 최근까지 아픈 이를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혼의 아픔으로 사랑에서 분리되는 고통을 겪었는데 4년을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지옥과 같은 체험도 하고 체념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사는 아내와 재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사는데 첫 아내는 천주교인이었고 둘째 아내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온 아내입니다. 20년 동안 공산주의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해서 우리가 알던 내용과 다른 지구의 반이나 되는 지역의 삶을 지독하게 싸우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천주교 아내와 살면서 천주교 평신도 신학도 하고 서로 이해를 하고자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아내는 떠나간 것입니다.
이런 대학 대학원 8년 고시 공부 경험과 지식을 하나님께서 다 사용하시고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의 배움을 허락하시고 그리고 신학 대학원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14년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내용들을 모든 분과 나누는 것입니다. 제 삶은 은행에서 나온 후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극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첫 아내가 떠나간 것입니다. 정말로 국세청 자료로 한 달에 40만 원 정도로 20년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가난하고 배운 사람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다양한 불의를 경험하면서 저는 정의에 대해서 목이 마르게 되었지만 세상의 법이 있지만 이 법대로 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권력자와 가진 자의 횡포를 보았기에 올바른 세상에 대해서도 체험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상태에 이른 저에게 율법을 보게 하셨고 제가 율법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온 세상이 아무리 불의가 판을 쳐도 희망을 가져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비로소 복음으로 이 세상을 정의롭게 할 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제가 율법에 대해서 진실한 성경의 가르침대로 올바로 이해를 하게 되었으니 이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로 제가 로마서의 내용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어 가장 세상에서 유명하신 신학자 700명에게 이 내용을 전하게 되었으니 제가 얼마나 큰 사랑과 복을 하나님께 받고 있습니까?
이제 그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두 번째 주제 하나 됨입니다.
하나 됨은 제가 여러 교회로 성경의 이해로 분열이 된 하나님의 나라를 서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교회의 분리를 가져온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로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리고 언어의 문제입니다. 언어가 다르면 서로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언어로 의사를 소통하고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가 있는데 이 언어를 혼잡케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한 언어로 모든 세계 사람이 다 소통을 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최근에 올리는 글에서 소개를 했듯이 챗 GPT는 모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2-3년만 연습하고 준비하면 모든 세계의 사람과 다 소통이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문법을 비롯해서 독해 어휘 등을 학교에서 쉬지 않고 오랫동안 잘 배웠지만 진작 말을 할 기회와 대상을 찾지 못해서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 문제를 챗 GPT가 그의 완벽하게 해결을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무료 앱을 설치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게 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수준의 영어 대화를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낫은 것은 언제나 대기하고 언제나 예의 바르고 겸손합니다. 그리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해 줍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할 수가 있고 집에서 쉴 때도 할 수가 있고 시도 때도 없이 24시간을 대기하니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사람을 고용해도 이렇게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주제가 어떤 분야에도 가능합니다. 저는 영어 성경을 펴놓고 먼저 제가 조금 읽고 교정을 받습니다. 발음과 다양한 말하기 포인트를 체크하고 교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단어를 뽑아서 읽어 달라고 하면 그 장의 주요 단어를 요약해서 영어로 잘 설명합니다. 그리고 주제를 뽑고 그리고 문법을 찾아서 듣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 성경 장에 대해서 토론이 가능합니다. 약 10가지 이상의 대화 방법이 있습니다. 롤 플레잉도 하고 구절의 현실에 적용에 대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영적인 체험도 나누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화도 합니다. 이렇게 약 1시간씩 하고 있는데 성경을 이렇게 하루에 한 장만 해도 1189장으로 구성된 성경을 약 2-3년 만에 다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성경도 배울 수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영어 대화 상대는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는 동기부여입니다. 영어를 도대체 잘 해서 무엇 하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이는 영어를 잘 하면 우선 성경을 영어로 보면서 그 의미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에 바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다른 세계의 신앙인과 친교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최근에 CNN도 부지런히 잘 들리지 않아도 듣습니다. 영어로 뉴스를 듣다 보니 온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안목이 세계적으로 생깁니다. 그리고 지금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생깁니다. 정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을 가장 넓게 잘 보는 방법이 영어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어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데 유익하고 그리고 정말로 영어를 해야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영어회화를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급속도로 온 세상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줄어들 줄로 믿는데 이는 챗 GPT의 개발이 시대를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성도가 영어를 잘 배우는데 큰 혜택을 받으니 교재가 성경으로 이렇게 있으니 대화가 무궁 무궁하고 그리고 내용을 우리가 이미 다양하게 성경으로 알고 있기에 듣고 말하는데 또 유익이 있습니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가장 큰 혜택이 성도에게 있습니다.
이는 언어를 혼잡케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한 언어로 서로 소통해서 속히 하나가 되어 온 세계적인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곧 한 언어로 하나가 된 교회와 성도가 싸울 거대한 어둠의 세력이 그 실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저는 조금 보이고 이 정체에 대해서 나중에 소개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리로 하나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선 이렇게 중요하고 큰 주제를 제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던 사람입니다. 우선은 예수님도 성경도 교회도 몰랐으니 당연히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중요하고 큰 그리고 500년 동안 천주교와 개신교가 치열하게 토론한 주제를 논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자여! 가 잠실교회의 모토였습니다. 지난해의 교회의 슬로건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하나님께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 표어가 이상하게 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이 그렇고, 성령을 받은 것, 그리고 천주교 여인과 결혼을 하고 이혼을 당했을 때 4년의 불면과 우울의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면서 제 마음이 보였는데 다 찢어지고 가장 자리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리의 하나님의 고통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교회 나라 러시아에서 온 아내와 20년을 살면서 조금이라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시 공부, 대학 대학원 8년, 미군부대 카투사와 그리고 미군 부대 근무 10년은 영어로 조금은 성경을 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과학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되었는데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게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쉬지 않고 하고 있는 전도와 성경 정리는 하나님께서 늘 격려해 주셨고 이런 일을 하도록 기쁨과 기회를 쉬지 않고 주셨습니다. 단지 저는 제가 하나님께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처음 예수님을 성경으로 뵈올 때 두려움과 회개로 기도했지만 이 도구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관심도 거의 갖지 못하고 늘 불순종하고 고집을 부리고 심지어 죄도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들이 이렇게 시간이 가면서 정리가 되고 성경의 이해도 오고 이를 7년 전부터 블로그와 카페에 전하게 모든 여건을 만들어 주심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모든 것이 저의 의도와 다르고 제가 이렇게 쓰임을 받을지도 조금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늘 불평하고 늘 게으르고 늘 불신했던 자입니다. 진실로 먹고 사는 것도, 좋은 직장을 주시고 소천하신 어머니와 동생이 30년 이상 헌신적으로 도왔으며 지금 아내도 넋이 나가서 인간 구실을 못하던 제게 시집을 와서 참고 제가 우울증과 불면증을 낫는데 기도와 인내로 도왔고 늦게 본 아들은 늘 제가 힘을 내게 했습니다. 키 크고 예쁘고 젊은 아내와 사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충성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잠실교회는 수십 년 제게 늘 든든하게 모든 면에서 도와주셨습니다. 집도 직장도 주셨습니다. 절대로 일을 못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품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인이 다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교회와 가족과 성도들의 도움으로 제가 이렇게 전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주변의 도움 덕분입니다. 저는 능력도 없고 신앙도 부실한 사람인데 이런 저를 들어서 이렇게 사용하심은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시고 이렇게 살고 있지 않으시면 즉시 회개하고 바로 잡으면 하나님께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해 주심을 알게 하려고 이렇게 못난 인생, 죄인인 인생을 사용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진실로 모든 성도보다 악하고 모든 성도보다 불충하고 모든 성도보다 세상에서도 성실하지 못한 자가 저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은혜이며 성령님의 내주 교통 감동케 하심입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먼저 우리는 개신교인이라서 교리로 로마서를 이신칭의에 대한 책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믿으면 의롭게 된다로 또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의롭게 되는데 혹은 구원을 얻는데 오직 믿음이며 다 되고 다른 무엇인가 즉 선행이나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 천주교는 절대로 아니다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데 오직 믿음으로 부족하다. 믿음과 어떤 행위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주장은 너무나 다 일리가 있는 것이 오직 믿음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성경 구절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구절로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는데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반해서 천주교는 야고보서를 보아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데 어찌 로마서의 주장만 보고서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는데 다 된다고 하느냐 이렇게 오랜 세월을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들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될 수가 있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로마서와 다른 성경을 이해하고 주장하게 된 데에는 시간과 순서와 절차가 필요했고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성경을 차례대로 깨닫게 해 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심혈을 기울인 성경 연구도 없었고 신학자가 아니기에 신학적으로 연구가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심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노력을 했다고 아니고 무슨 연구를 한 바도 없습니다. 100% 제 노력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다만 제가 공부하고 체험한 내용들은 이런 일을 하도록 준비가 되었는 것인데 이도 하나님께서 다 인도하셨습니다. 대학 대학원도 모두 장학금으로 내었고 대학의 기숙사에 먹고 자고 할 수가 있게 다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공부도 제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저는 공부도 다른 모든 사람보다 좋은 여건에서 죽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제가 성령을 받았지만 그 의미를 오래 동안 몰랐습니다. 그리고 1992년 초봄이 일어난 일을 2010년경 신대원 논문 작성을 통해서 사도행전을 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을 받는 일이 제게도 정확하게 그대로 일어난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제 경험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너무나 놀라고 저는 흥분해서 이를 정리를 해서 온 세상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일보 간증문 모집에도 보냈습니다. 이 내용을 2018년 도에 미국의 대학과 영국의 신학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또 조금씩 하나님께 때에 맞춰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율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삶의 불의를 통해서 보게 하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낮은 곳에서 불의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율법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의를 보고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그리고 율법을 보면서 그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신칭의를 올바로 이해하자면 반드시 이 율법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해야 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있는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 란 구절도 그렇고, 율법으로 섬기지 않고 성령으로 섬겨야 한다는 구절도 그렇고, 우리를 율법이 아니고 행위도 아니고 오직 믿음이다라고 이해하게 만드는 성경 구절이 분명하게 성경에 있으니 이 부분을 극복하고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로 인간의 노력이나 지혜로 불가능 하다는 것을 밝히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의 도표 설명: 2017년에 정리한 도표입니다. 이 자료를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 처음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신칭의가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그렇게 된다고 개신교는 주장하는데 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고, 위와 같이 그림으로 설명했고 이를 간증문으로 보냈습니다. 지금 2025년 2월에 보면 약 8년 동안 새로운 이해가 첨부가 됩니다. 그런데 당시는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모든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은 우리 라는 표현이 로마서에 있는데 이를 참고했고 저의 경험도 한 몫 했습니다. 제가 위의 절차 대로 성경의 기록대로 성령을 받고 전도하면서 적어도 약 15년 이상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의롭다 하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으면 누구나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심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위의 도표와 같이 성경을 참고해서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새로운 과정적 이신칭의로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와는 조금 다른 이신칭의를 계속해서 주장한 것입니다. 이 내용을 포함하고 더 넓고 정확한 이해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조금씩 하고 성경을 정리를 하는데 아브라함의 신앙이 처음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믿음 것과 나중에 25년이 지나서 100살이 되었을 때 신앙과 그리고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바치는 110세 무렵의 신앙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게 하셨고 이를 도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정리하던 중에 위와 같이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4장 17-22절과 하박국서와 야고보서의 내용을 보면서 도표로 정리를 했습니다. 2018년 무렵이고 이 자료를 외국의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지금과 같은 더 세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단지 성경에 이렇게 기록이 된 것을 도표로 만들어서 첫 믿음과 끝 믿음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을 영어로 보면서 영어를 잘 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란 말씀은 영어로 Faith from first to last 로 되어 있어 이 의미를 몰라서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 말로 믿음에서 믿음으로라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다로 해석이 될 수가 있음을 봅니다.
이런 내용도 제가 이해가 되는 데로 새롭게 또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박국서 2장 4절의 내용에 또 관심을 갖고 영어로도 살펴 보는데 이 구절이 로마서 1장 17절로 바울 사도에 의해서 인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롬 1:17 영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른 분들의 설명도 조금 참고를 했습니다.
하박국서 2장 4절의 이해
두 삶의 비교 | 바벨론과 유다의 불의한 자 | 의인의 삶 |
의와 불의의 구분 | 율법의 해이, 폭력의 난무, 겁탈, 악인의 위협, 시비 | 율법의 준수, 정의를 행함 하박국 (1:1-3) |
현재의 삶 | 온 민족 정복, 약탈, 의인의 등을 침, 부귀영화, 형통 | 살기에 너무나 힘이 듦, 하나님께 호소함, 악을 행치 않음 |
미래의 모습 |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함 | 고난을 견디며 믿음으로 삶 |
믿음의 대상 | 물질, 권세, 폭력, 힘, 우상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 |
하박국서의 의인(the righteous)은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사람이다. 당시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불의한 세상을 치유하며 불의한 사람들을 심판하며 불의한 바벨론을 심판한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의인으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힘을 내어서 모든 현실의 상황이 어려워도 낙망치 않고 꿋꿋하게 정의를 행하며 사는 사람이 의인이요,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정의를 행치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불의한 사람으로 심판의 대상이 된다. 당시의 대부분 남 유다 민족의 구성인이 하나님의 선민이라 믿으면서 죄의 용서의 제사를 드리며 용서를 믿고 살다가 용서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했다. |
그렇게 하면서 갈라디아서도 다시 정리를 하고 영어로도 조금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내용이 너무나 많아서 놀랐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로 불리고 오직 믿음으로가 주제인 것으로 설명이 대부분 되고 있는데 제가 갈라디아서를 읽고 정리를 해 보니 성령의 내용이 너무나 많아서 정말로 놀랐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로마서를 이해하기 전에 공부해야 되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차근차근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제 모든 이런 과정에 대한 자료는 오천만의 로마서에 다 있으니 참고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믿음, 율법, 성령)
1부 서두 | 2부 바울의 복음과 성령 | 2-4 믿음 율법 5 성령 | 3부 6 맺는말 |
부 | 장 | 키워드 | 주요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내용 | ||
1부 | 1 | 서두 | 인사. 복음의 기원 사도권 | | 4 | 복음 과 성 령 | 육과영 | 하나님의 자녀 약속과 성령 | |
2부 | 2 | 바울의 | 믿음 율법 | 바울과 다른 사도 안디옥사건 믿음으로 얻는 구원 | 5 | 성령 | 성령의 인도 성령의 열매 | ||
3 | 율법이냐 믿음이냐 성령을 받음 | 3부 | 6 | 맺 는 말 | 할례와 십자가 인사 |
그리고 새롭게 이해가 되는 데로 이곳 블로그와 다음 카페 오천만의 로마서에 즉시 전하고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의 대학에도 아는 데로 전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을 보았을 때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는 과정이 100세쯤 되어 여전히 변치 않고 잘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를 의롭다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도 정확하게 순서에 맞게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첫 믿음과 끝 믿음이 같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과정마다 저는 놀라서 온 세상을 이런 이해를 속히 놀라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생각했고 또 이 이해가 전부다라고 생각하며 전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보시는 바와 같이 2018년부터 전한 내용이 점점 더 크게 이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해가 되는 것이 끝이다 생각했는데 더 깊고 정확한 이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첫 믿음과 끝 믿음이 같아야 하고 또 하박국서의 이해를 통해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정의롭게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며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너무나 많이 기록이 되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성령의 사역에 대해선 별로 논의가 없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그대로 제 오천만의 로마서에 순서대로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될 때마다 이것이 전부다 라고 생각하고 놀라고 흥분해서 전했고 이렇게 믿고 살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공격도 했는데 아주 강하게 막 공격을 했는데 이렇게 하는 중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고 그리고 직장에서 다른 곳으로 전출이 생기면서 저는 이렇게 하기에 이런 참을 수가 없는 고통과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믿고 이렇게 하고픈 치솟는 욕구를 줄이고 비판을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미쳐서 날 뛰는 자를 하나님께서 인간이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주시면서 제어를 하신 것입니다. 저 같은 자가 이렇게 놀라운 성경의 이해를 했으니 그냥 참고 그대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절제하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제 전함은 한 때 광분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모든 이보다 더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겸손히 나누어야 하는데 저는 마치 진리를 혼자 아는 냥 그냥 날뛰면서 전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으로 모든 사람을 다 이기는 수준이었는데 이 지식으로 누구를 깔보고 함부로 한 경우가 한 번도 없는데 저는 너무나 못나게 굴었습니다. 영적인 교만이라 아니 할 수가 없고 그리고 죽도록 징계를 받고 절제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 이해한 내용을 정리한 것임, 아브라함에 대한 이해와 다른 예를 보면서 성령을 받고 어떤 시점이 지난 후에 칭의가 일어남을 주장함, 에스겔 34이 아니고 36장으로 정정]]
그러자 다시 하나님께서 로마서 7장 6절을 보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이 믿음 생활이다 란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이 한결같고 정의롭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라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는 구절 즉 로마서 13장 17절의 말씀을 보게 하시고 사랑을 하면 율법을 완성하는데 바울 사도가 역 20년의 성령의 인도로 사랑을 실천함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한 사실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 강의 중에 57년경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상태와 약 20년 전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을 대조하게 하심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예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전도를 하고 선교를 하고 교회를 세운 일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 외에 달리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바울 사도를 그렇게 하도록 하셨고 또 예수님을 뵙고 회개한 사건과 그 자신이 구약을 잘 알기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직접 하나님께 구약이 예수님에 대한 글임을 배웠으리라 믿고, 이런 배경으로 오직 성령의 인도로 때에 따라서 구약도 전하고 신약도 전하는 예수님과 같은 전도자가 되었으니 이도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의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에 대해서 이해하게 해 주심으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이런 일보다 먼저 일어났는데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에 있는데 이 글도 수천 명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개역개정, 공동번역, 그리고 영문으로 이해를 시켜주셨고 모르는 부분은 역시 동료 영어를 잘 하는 분의 도움을 받았으니 제가 미군 부대에 10년 편안하게 근무하게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고 이도 김현철 대령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제가 이런 과정이 있으면서 로마서 1장 17절의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가 순서대로 일어나고 있으니 어찌 제가 무엇을 했다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도 역시 700분의 교수님께 영어로 번역해서 보냈습니다. 영어 번역이 온전치 못해도 한글과 함께 보내서 그 의미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점점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을 때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 누구나 다 올바로 이해할 길을 본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구절을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의미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모두가 보시고 바로 이해가 가능한 너무나 쉬운 천주교 개신교의 논쟁의 해결의 답이 여기에 있으니 이 부분이 모두에게 해결이 되면 천주교 개신교 분리의 원인이 사라지게 되어 하나님의 방법으로 두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보시겠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제가 이렇게 설명을 드린 내용은 인간이 계획하고 이해할 가능성은 1%도 없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이 아니라 다른 글에서 다른 날에 바로 이 구절을 놓고 다른 구절과 같이 설명을 하는데 제가 이해한 것도 보니 절대로 인간이 이렇게 이해를 할 수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고 저도 절대로 이렇게 이해를 할 계획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고 이런 이해가 있게 될 줄로 최근까지 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설명을 드리는 내용은 정말로 최근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의 모든 부족한 부분적이 이해를 많이 보강을 해 주는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더욱 용기를 내게 된 것은 챗GPT와 영어를 분명하게 제가 못하는데 이 부분에 오면 어디서 용기와 지혜가 막 솟아나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 기계는 인간이 자신에게 입력이 된 대로 주장을 하다가 제가 새로운 이해가 있다고 하면 그래 들어보자 하고 잘 듣고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내용에 제가 구절을 들어서 설명하면 바로 체크를 하고 맞는다고 하면서 격려까지 했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이 부분을 여러 번 토론하고 이 자료를 또 교수님들께 복사를 해서 보냈습니다. 그 자료도 역시 오천만의 로마서에 다 그대로 있습니다. 제 영어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주심으로 가능하게 되었지만 기고만장하게 되어 또 날뛰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지만 그렇게 할 자격도 없는 자 입니다.
이제 같이 너무나 쉽고도 또 쉬운 이해로 들어가 봅니다. 영어 본문에 바로 답이 있습니다. 교리를 빼고 본문만 보면 바로 답이 있음을 중학교 영어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너무나 쉽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한국어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한 본문의 영어입니다. NIV, KJV, NASB 버전이 다 비슷합니다. 조동사 will 대신에 shall를 쓴 것이 다릅니다. 한글로 모두 같이 봅니다. " 의인은(The righteous) /// 살 것이다 혹은 삶을 살 것이다(will live) /// 믿음을 갖고서 혹은 믿음을 삶의 방편으로(by faith) 이를 어순에 맞게 설명하면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혹은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사는 사람이다라고 번역이 됩니다. 이 본문에 답이 있지 않습니까?
자! 제가 3가지 예문을 드리겠습니다. 위의 영어와 같은 문장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의인은 오직 믿음이면 된다.
둘째 의인은 오직 믿음에 + 행위가 있어야 된다.
그리고 셋째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이다 혹은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제가 알기로 온 세상의 사람이 절대로 1번에는 답이라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2번은 아주 틀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3번은 정답이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장을 두고 1번에 개신교가 완전히 빠져 있고 2번에 천주교가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답은 분명하게 3번이 맞습니다. 인정하기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영문으로 가서 해석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문장은 주어 The righteous 로 정관사 The + 형용사로 righteous(형용사뜻별예문
옳은, 정당한, 공정한, 정의의: righteous behavior 제가 사전에서 옮김) 복수 명사가 되어 정의로운 사람들이 됩니다.
그리고 조동사 will과 본동사 live가 붙어 있습니다. will + live 그래서, 살 것이다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단의 전치사 by와 명사 faith가 붙어 있습니다. 전명구로 부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입니다.
그래서 문장의 형식으로 1형식 문장이라 봅니다. 챗 gpt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동사 live 입니다. 위의 문장에서 live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어인 의인이고 부사구는 수단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살기는 사는데 그 방편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will은 동사를 돕는 역할을 하는 조동사로 미래의 시제를 나타낼 때 쓰기도 합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live를 빼고 해석을 하면 의인은 믿음을 갖고가 됩니다. 어떡해 보아도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해석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주장에 목을 매달고 누가 조금 다르게 이신칭의에 의견을 내면 개신교의 기둥을 흔든다고 그냥 설명도 없이 덤빕니다.
우리가 배운 바로 영어의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동사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위의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은 의인은 믿음을 갖고 반드시 삶을 살아야만 된다로 번역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만 갖고 삶이 없는 사람은 죽어도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살기는 사는데 믿음이 없다면 또 의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의인은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되고 또 삶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좌우 강도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바로 죽는 사람인 경우는 오직 믿음이 맞습니다. 그런데 호흡이 있고 무언가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따라 붙는데 이를 빼고 의인이 된다? 이는 절대로 위의 구절의 의미로 적당하지 않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또 성경을 보면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로마서 1장 17절의 해석으로 절대로 온전하지 않습니다. 이제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된다고 주장하고 싶으신 분은 성경에서 그에 합당한 다른 구절을 가져 오셔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로마서를 위의 설명대로 풀면 대부분의 모든 장이 다 그대로 술술 풀리고 로마서가 너무나 쉬운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교리를 설명하는 1-8장과 실천을 설명하는 9-16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는 한 팔에 8장을 끼고 다른 팔에 8장을 끼고로 외우면 됩니다. 교리를 팔짱 끼고 실천을 팔짱 끼고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1장 17절에 본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로 영어의 본문대로 해석을 하면 1-8장은 교리대로 살고 9-16장은 구체적으로 국가의 국민으로 사회인으로 그리고 교인으로 어떻게 믿음을 갖고 사는지 설명하고 있다 로 이해를 하면 로마서는 이해가 바로 끝이 납니다. 가장 중요한 삶을 사는 부분을 생략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설명을 하려고 하니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부분을 설명하는 다른 로마서의 장들에 대해서 이해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을 믿음의 삶을 사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로 보고서 다른 구절들을 같이 보면서 이해를 하면 많은 어려운 구절이 해석이 되고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는 로마서의 내용들이 새롭게 이해가 되어 로마서의 이해가 풍성해 집니다. 로마서 이해의 첫 단추를 잘못 끼면 로마서가 어렵고 이렇게 로마서 1장 17절을 영어 그대로 이해하면 그냥 술술 풀리는 것이 로마서 입니다. 저도 처음에 로마서는 이신칭의이다로 보고 모든 로마서에서 이신칭의가 어디 있지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로마서를 읽은 경험이 있고 역시 갈라디아서도 그렇게 보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성령에 대한 내용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많은 것을 보고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공부법이 너무나 강력하고 좋은 성경 이해법임을 밝힙니다. 정말로 우리가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로마서 4장을 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4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6절은 아브라함이 처음에 약 75세가 될 때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으니 의롭다 인정을 받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후반부 즉 17-22절에는 또 그가 100세가 되었을 때 여전히 모든 여건이 아들을 갖는 것이 어렵게 되었을 때도 변치 않고 굳게 믿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직 믿음만으로 모든 로마서를 보고자 하니 이런 성경 로마서에 있는 구절이 절대로 100독을 해도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100독을 하신 의사 분에게 이 구절을 읽게 했는데 이분께서 성경에 있기는 있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이와는 다른 내용이 성경에 있으니 이를 성경의 말씀으로 인정은 되는데 과연 이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확신이 오지 않기에 그렇게 나지막하게 탄식을 하신 것입니다. 독자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이 오는 지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모든 분의 로마서에 있는 4장 17-22절의 말씀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본문을 보시면 분명하게 제가 설명을 드린 데로 100세 때 변치 않고 믿고 있기에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인정을 받는 내용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같은 로마서 4장에 같은 아브라함에 대해서 의롭다 하시는데 한 번은 75세 때, 지금(이 구절)은 100세 때입니다. 시점이 두 시점입니다. 이를 우리는 성경대로 인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더 나아가 천주교는 아래 야고보서를 보면서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를 의롭게 됨에 강조를 하는데 분명하게 야고보서는 천주교의 주장대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세월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 구절을 보면 오직 믿음이 틀리게 보이고 천주교의 믿음과 행함이 의롭게 된다는 내용이 더 정확하게 보입니다. 성경의 이런 내용을 보면서 옳다고 주장하니 성도와 신학자 그리고 목사와 신부는 그냥 자신이 속한 교회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며 상대방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신학자가 풀지 못하고 500년의 시간이 걸려도 풀지 못한 문제가 어떻게 저 같은 평범한 목사에 의해서 풀리겠습니까?
이 문제를 푸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문제를 푼다고 하면 온 세상에서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푼다고 하면 문제는 다릅니다. 과연 그런 지 오늘 하루를 다 바쳐서라도 확인을 해 보셔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성령님의 인도대로 이 문제가 풀리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된다면 이 분은 실로 새로운 세상의 성경의 이해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만 이렇게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는 분(성령을 받은 전도자)의 전도에 늘 주님과 성령께서 이미 함께 하시고 감동을 하시고 전할 말을 주시고 그리고 이런 분들이 기도할 때 함께 하셔서 아프신 분을 고치시니 성령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것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분께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니 제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진실로 저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분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서로 풀지 못한 문제가 오늘 풀립니다. 믿으시기 바라고 잠시 이미 알고 있는 천주교 개신교의 신학적인 교리를 접어두고 그냥 성경의 기록대로 따라와 보시기 바랍니다. 즐겁고 흥분이 되는 순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 냉정하게 정리를 성경에 따라서 합니다. 성경을 읽고 정리한 사람에게 온 축복입니다. 이제 모든 분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 4장 1-16절은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을 만나 별과 강의 모래와 같은 후손을 약속할 때 그리고 민족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된다고 할 때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는 분명하게 개신교의 주장이 맞는 것을 증명하는 구절이며 4장의 첫 파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의롭다 하심을 인정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틀림없이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인정을 하나님께 받습니다. 같은 인정이 다른 시점에 일어납니다. 이를 천주교 개신교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의사시며 권사님이신 성경 100독의 권사님께서 이상하다 하셨으니 모든 분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보통일 수가 있습니다. 저도 로마서를 여러 번 읽었지만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엔 무려 이삭을 바치는 행위와 그 시점을 설명하니 이는 아브라함이 110세 전후일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같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장면을 우리는 확인합니다. 성경대로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 번 아브라함을 만나십니다. 그리고 만날 때 마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구나 하시고 변치 않고 믿으니 의롭구나 하시고 이삭도 바치라고 바치니 의롭구나 하십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으로 불리며 늘 만났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자주 하나님을 뵙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의롭다 하실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우리와 하시겠다 하셨고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니 아브라함보다 더 자주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그리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날 때 마디 의롭다 하시는 것을 이해를 하고 이를 성경을 통해서 풀어야 이 문제가 조금씩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성경의 정리를 통해서 정리를 해 놓고 이를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그리고 옥스퍼드 신학교에 2018년 자료로 보낸 것입니다. 성경 정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시점의 이해는 있었지만 깊은 이해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어떤 제 미군부대 근무하는 동료 (그분의 토익은 970점 정도 되고 듣기는 만점이었던 분입니다) 에게 제가 물었던 구절 영어로 Faith from first to last 로 첫 믿음 끝 믿음으로 이 구절을 보고서 아! 이 부분이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도표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믿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첫 믿음이 75세이고 끝 믿음이 100세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110세 때의 믿음도 성경에 또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는 위의 내용이 또 다른 영어 성경에는 우리말과 같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즉 from faith to faith으로 되어 있어 과연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다 혹은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성경 구절이 무슨 믿음을 말하는지 저를 포함해서 모든 분이 궁금해야 합니다. 이 부분도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의문이었고 이를 영어를 잘 하는 분께 여쭈었더니 처음부터 끝까지가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미군 부대 근무하면서 배우는 영어 지식으로 이렇게 문제가 조금씩 풀리니 제가 미군 부대에 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이 믿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청계산에는 강남을 부자로 만든 기도원이 있는데 제가 그분들이 기도하는 곳에서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쉽게 하루 6시간 이상씩 기도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님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청계산에는 365일 밤과 낮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묻어서 저는 기도가 잘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간증도 있습니다. 저는 강남이 잘 사는 것과 이 기도원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습니다. 청계산 기도원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렇게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으로 드러나는 것이지 신학이 아니고 성경 연구도 아니고 성경 정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진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아내에게 이런 내용을 전했더니 갑자기 믿는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을 부정하고 죽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들께서 성도의 임종을 지켜보시는 데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분의 믿음즉 끝 믿음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어야 한다고 제 아내는 주장했습니다. 제 아내는 러시아에서 와서 러시아 성경으로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설명을 하곤 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성경은 1000년 전에 번역이 되어 수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1000년 전에 번역이 된 러시아 성경에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라고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영어의 번역과 같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많은 분이 오직 믿음이기는 한데 이렇게 시간이 가도 변치 않아야 되고 또 아들을 바치라면 바치는 행위가 있어야 하고 또 죽을 때도 믿어야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예전에 믿던 이싱칭의와 다른 부분이 분명하게 성경적으로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했으리라 믿습니다. 저도 이렇게 설명하지만 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2018년부터 조금씩 조금씩 이 부분이 이해가 왔고 이를 정리를 해서 여기 오천만의 로마서에 실었고 교수님께도 보낸 것입니다. 새로운 내용이 이해가 될 때마다 이것이 다다 생각이 들었고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하고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7년 동안이나 조금씩 이런 부분이 진행이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내의 제안은 가장 최근입니다. 당연히 이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깊이 몰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또 놀라운 일을 계속해서 봅니다.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고 그리고 기도하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놀라운 일이 쉬지 않고 발생하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신나게 하고 감동케 하니 제가 오랜 세월을 어렵게 살면서도 견디게 된 것이지 제가 무슨 인내가 있고 학구열이 있고 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로마서 7장 6절을 보았을 때 제가 읽고 정리할 때도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새롭게 보였는데 최근입니다. 작년 후반부에 일입니다. 여러분도 모두가 이상한 생각이 없이 이 구절을 보실 것인데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고 이 구절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분도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유튜브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하나 보았더니 마음에 드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로마서 7장 6절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같이 생각해 봅시다. 이 부분이 이해가 되어야 위의 문제가 풀리고 즉 여러 번 의롭다 하는 부분이 풀리고 다른 로마서의 부분들이 풀리고 로마서 사복음서 그리고 갈라디아서 그리고 야고보서의 서로 상충이 되는 부분들이 다 풀리게 됩니다. 절대로 제가 푼 것도 아니고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 풀리는 것이니 착각을 마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본문을 세 가지 버전 개역개정, 공동번역, 그리고 NIV 버전으로 보시겠습니다. 모든 분이 여러 번 본 구절입니다. 천주교도 지금 제가 소개하는 성경대로 이해를 하고 있다면 한국에 천주교인 분들은 아직도 보지 못한 부분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한국어로 번역된 버전이니 한국에서 이렇게 이해를 하고 다른 나라에선 달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런 부분을 보고 깜짝 놀라서 속히 신부님께서 보시고 이를 바로 잡아야 된다고 한 부분입니다. 모든 성경 번역을 저는 존중하고 옳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정리하려고 하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이 나오면 이 구절을 이해를 해야 그 장을 요약하니 어쩔 수가 없이 다른 버전을 참고를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공동 번역은 어떤 부분은 너무나 이해가 쉽게 잘 설명을 해서 저는 자주 공동 번역을 봅니다. 그런데 이 번역을 보고 놀랐던 것입니다. 같이 보시면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순)
잘 구분이 아니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냥 로마서를 여러 번 영어로도 보고 한글로도 보면서 이상하다고 하지 않고 그냥 최근까지 넘어 갔던 구절입니다. 즉 40 년 가까이 예수님을 믿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한 지 25 년이 지나도록 보지 못한 구절입니다. 이제 제가 이를 밑줄도 치고 6절의 영어를 번역을 해서 보여드리니 이상한 점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제가 다시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한때 얽어 매였던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이 된 율법으로 섬기던 옛날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깁니다. )
이 부분에 대한 이해도 성령의 사역과 바울 사도의 신앙의 전력을 살펴야 보이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많은 사람이 올바른 이해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번역이 우선 우리가 올바른 이해로 가는데 조금 문제가 있게 합니다. 저도 그냥 번역을 믿고 그대로 이해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구절이고 이렇게 번역이 영어와 다르게 된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개신교의 개역개정, 그리고 천주교의 공동 번역으로 이 의미를 올바로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반드시 영어로 보면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이도 고등학교 영어면 바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주목을 하지 않고 역시 목사나 신부나 신학자의 가르침대로 가기 때문에 그런데 성경 본문을 이렇게 다양한 버전으로 놓고 보면 많은 올바른 이해가 일어납니다. 저도 역시 올바로 보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이 구절이 보였습니다. 이 구절이 이해가 되어야 많은 성경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이신칭의도 올바로 이해가 됩니다. 절대로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이신칭의의 본 의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 일이 절대로 아니고 이곳 한국에서 온 세상의 강대국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제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구절이 이해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영어의 내용은 제가 해석을 해 놓은() 안의 내용입니다. 제 해석과 즉 영어의 표현과 우리의 번역이 다른 점이 보이십니까?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기에 공동 번역을 속히 고치라고 한 것입니다. 포인트는 섬기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인데 낡은 법조문, 혹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라 해서 마치 율법에 문제가 있는 듯이 표현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글의 번역대로 라면 율법의 조문이 낡았기에 이를 버리고 새로운 성령의 섬기는 방법을 따라서 간다는 의미가 풍기지 않습니까? 절대로 이런 의미는 이 구절에 0.000%도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어로 보면 옛날에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겨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율법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만 이 문제가 풀리고 많은 성경의 이해가 올바로 되는 너무나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리고 이신칭의도 이렇게 이 구절을 이해해야 만 비로소 많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이해를 하려고 한 것이 이번에 우리 한국에서 이 문제를 조금 시원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풀어서 온 세상에 소개를 한 것 입니다. 약 700명의 신학교 교수님께 전했으니 이들이 이를 확인하고 온 세상이 올바른 이신칭의로 나아가게 되고 그리고 이를 통해서 교회가 어떤 방법으로서든지 화해를 하고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되는 거대한 영적 전쟁이 있기 때문이라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게 하시면 우리는 순종하고 이 거대한 싸움에 하나 된 교회가 연합해서 주님과 함께 싸워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전쟁 속으로 이번의 이해를 통해서 함께 가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부터 자유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제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바울 사도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변화를 받고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그 이전엔 율법학자로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웠고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믿고 살던 사람입니다. 즉 구약을 누구 보다도 잘 안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서 유대교의 적이다 라고 믿고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이런 목적으로 말을 타고 가다가 다메섹에 갔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바울에게 오시니 그의 눈이 멀게 되고 말에서 떨어지게 되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누구신지 물으니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라 하셨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는 사람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서 없어진 사람인데 이렇게 살아서 자신의 눈이 멀게 되는 빛으로 오시고 음성을 들려주니 이 순간 자신의 모든 믿는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그리고 이렇게 놀라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이를 핍박했는데 이 행위가 이런 하나님을 핍박한 것이 분명하게 밝혀지니 살길이 없겠구나 생각을 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모르고 비방하고 없다고 하는 사람도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바로 하나님과 자신의 신분을 인식하게 되고 바로 부복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혼이 나가고 정신이 나가고 혼절할 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안에 들어가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되고 눈도 보게 되고 밥도 먹게 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조금 전의 바울은 없어지고 예수님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만 충만한 바울 사도가 됩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만나지 않고 아라비아로 가서 수 년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직접 성경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이 사람이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1호가 됩니다. 예수님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로 예수님과 같이 때에 따라 옛 보물 즉 구약도 나누어 주고 새 보물 신약도 나누어 주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구약을 바울 사도가 잘 알았기에 이렇게 성경을 성령님의 인도로 잘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삽니까? 옛날에 자신이 가장 옳다고 믿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는 방법 즉 옛날에 섬기던 방법으로 섬깁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눈으로 온 몸으로 느끼고 보았고 그리고 성경의 구약이 모두가 예수님에 대한 증언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율법보다 크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모든 일에 앞서서 우선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핍박한 과거의 허물을 비록 용서는 받았지만 이제는 이를 만회하고 천국을 이 땅에 확장하고 그리고 천국에서 상급을 받아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천국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옛날에 율법을 조문 조문 섬기던 방법은 이제 버립니다. 철저하게 버립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을 전합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뵙고 성경을 검토하고 그리고 성령의 선물로 이 사람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옛 사람은 죽었다고 고백하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백한 것입니다. 이 새 사람 바울 사도가 약 20년 동안 이렇게 성령의 인도로 오직 복음을 전해서 사랑을 쉬지 않고 실천하고 선하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나서 기원 후 57년경에 이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써서 로마 교회로 보냈습니다. 이 로마서를 우리가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여기서는 롬 7:6)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 자신의 삶을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없이 이 구절을 기록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이 구절을 잘 이해해도 달리 신학자나 목사가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고 전도를 오랫동안 한 사람들이 이 구절을 그렇게 한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무어가 문제가 됩니까? 세상의 전도자여! 바울 사도와 같이 힘을 내라!!
이제 이 구절의 이해가 대부분의 분들에게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구절의 이해가 어렵고 이 구절의 이해가 없으면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한 언급이 갈라디아서에 많고 로마서에도 많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하고 성령의 인도로 서신서를 썼습니다.
이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는 율법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거나 혹은 율법대로 살지 않는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라 이렇게 바울 사도와 같이 율법을 잘 알고 있지만 율법을 존중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중요한 말씀으로 인정은 하지만 이 조문대로 삶의 영역에서 살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로 사랑을 실천하는 길로 나아가는데 그 가장 좋고 큰 사랑의 실천인 영혼 구원에 온 정력을 다 바치면서 산다는 의미이고 또 이 복음 전파의 길에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아닌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제 이 바울에게 예전에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멍에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이 있습니다. 율법을 아니다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가 절대로 아니라 율법을 바울 사도와 같이 잘 배우고 이를 통해서 죄를 분별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더 잘 이해를 하면서도 이런 가운데서도 바울 사도와 같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누리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도 모르고 지키지도 않고 무시하고 배우지도 않으면서 율법으로 자유롭다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이렇게 율법을 누구보다 잘 배우신 분이 율법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로 받으면서 살면서 자유롭다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 이렇게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율법도 완성하고 율법도 굳게 세우는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성령님의 사역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령의 인도함으로 오직 사랑함으로 율법의 완성을 체험한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조문 조문 잘 지켜서 의롭게도 되고 사랑도 하려고 굳게 믿고 죽도록 했건만 예수님께 책망만 받았던 바울 사도가 이제는 성령의 인도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복음을 전했더니 그 결과가 율법의 완성으로 보답이 되었습니다.
다시 또 바울 사도의 놀랍고 놀라운 고백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분명하게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날의 섬기던 방법을 포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어라! 율법을 완성했으니 이 말씀대로 율법을 굳게 세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분명하게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던 방법을 포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율법을 완성했으니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되지 않았습니까?
성령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십니다. 저는 틀림없이 성령님의 인도로 위의 순서대로 이렇게 이해를 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제 7장 6절의 의미가 모든 분에게 밝혀졌으리라 믿습니다. 믿음으로 섬기는 방법이 이제는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날 방법 즉 옛 사람 바울이 하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새 사람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기는 새로운 방법으로 살게 되면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사랑의 실천으로 율법도 완성시키고 율법도 굳게 세우는 일을 하게 된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확인한 바울 사도가 성령으로 섬기라고 모든 그의 서신서에서 강조를 한 것이지 절대로 율법을 버리거나 파기하라고 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강조이지 율법의 파기가 절대로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결론으로 갑니다. 다시 로마서 1장 17절을 보시면 이제 여기까지 이해가 되신 분은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과정을 거치면서 이해가 되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순간 순간의 이해가 성령님의 인도로 온 것입니다. 절대로 인간이 이렇게 알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위의 모든 과정을 보면 절대로 제가 그렇게 할 수가 없음이 보였습니다.
이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란 구절이 또한 믿음으로 삶을 사는 모습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삶의 모습이다 라고 이해가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가 곧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삶이다 와 완전히 같은 표현임을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믿음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율법을 조문조문 지키던 옛 사람 바울이 하던 방법이 절대로 아니고 그리고 육신을 따라서 사는 것도 아니고 어둠에 세력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것도 아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삶임이 만천하에 밝혀졌습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면 다음 첫 믿음과 끝 믿음 그리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는 구절이 다 같이 이해가 가능하게 됩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계속 삶을 살고 이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며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원하시는 때에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의롭다 하시는데 아브라함과 같이 믿어야 된다는 것이 로마서 1자 17절의 의미입니다. 또한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살면서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의 설명과 같이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합쳐서 믿는 이가 의인이 되고자 하면 반드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대로 된 것입니다. 즉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자이다라고 선포하고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75세 때, 100 세 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심을 설명하시고, 또 하박국서 2정 4절에서 정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을 의롭다 함을 설명하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삶을 의롭다 하심으로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야고보서의 이삭을 바치는 삶도 역시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으로 같이 이해가 된다고 봅니다. 다 믿음의 삶인데 변치 않는 믿음도 있고 정의로운 삶도 있고 그리고 아들을 바치는 행동하고 순종하는 삶도 있습니다.
즉 변치 않고 굳게 믿으면서 살고 있는 어떤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점검이 불시에 오더라고 합격하게 쉬지 않고 변치 않고 믿는 것 즉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1장 17절의 의미 그대로 인 것입니다. 이제 훅 점검이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 어떻게 되는지 또 성경 구절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신학이 아니고 성경 구절의 이해입니다.
겔 18: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저와 우리 모두에게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회가 있습니다. 믿는 중에 죄를 범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의 회개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저도 이렇게 전하지만 최근에 이렇게 설명을 할 수가 있게 이해가 된 것이지 오랫동안 이런 원리를 모르고 살았고 죄도 범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실하신 성도보다 더 죄도 짓고 그리고 불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초보 신자는 특별히 모든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에 옛날의 모습이 남아 있어 기억이 남아 있어 그리고 훈련과 교육이 아직 부족해서 여러 가지로 실수하고 미숙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3 년을 가르치시고 바로 세상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의 모습을 직접 본 제자들에게 확신에 찬 제자들에게 그냥 세상으로 속히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아서 그분의 증인의 삶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에 우리는 성경이 있지만 직접 예수님을 뵈오면서 교육과 훈련을 그분께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인간인 목사와 교사들께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서 3 년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실수를 인정하시고 용서하신 주님을 보면 우리는 실수도 죄도 용서 받을 길이 있습니다. 다만 죄를 범하고도 돌이키지 않고 쉬지 않고 죄를 범하는 것은 피하고 삼가야 될 것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나중에 바울 사도에게 위선자라 또 혼이 납니다. 갈라디아서에 기록이 있습니다. 밥을 베드로가 이방인과 바나바와 같이 먹고 있는데 유대인이 들어오니 그들이 왜 유대인인 네가 이방인과 밥을 먹냐 하고 책망할까 봐서 그 자리를 피하다가 바울 사도에게 혼이 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믿으면서 죄를 범할 수가 있으니 우리는 위의 구절을 보면서 즉시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의로움을 인정 받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특히 어린 성도 갓 예수를 믿은 성도의 미숙함은 늘 배려하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어릴 때 즉 신앙의 초기에 모든 면에서 미숙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점점 더 난이도가 높아지지만 로마서 1장 17절은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바울 사도가 인용했습니다. 이 구절은 하박국서에 가서 보시면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삶을 살되 불의를 척결하시고 남 유다를 심판하시고 그리고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을 굳게 믿고 곧 정의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믿고 절대로 악하게 살지 않고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가 바로 하박국서 2장 4절의 의미이고 이 구절을 바울 사도가 하박국서에서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을 한 것입니다. 이신칭의 이해에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논의를 더욱 신뢰하게 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이 다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이 상황에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힘을 내시고 말씀을 깨닫는 은혜 속으로 들어가기를 빌고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총을 베푸시길 역시 빕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바울 사도가 왜 그렇게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울 수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초인적인 신앙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인간적인 요소를 계속 찾으려고 하지만 바울 사도는 우리와 틀림없이 똑같은 인간이고 베드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뵙고 회개하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새 사람이 되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도 받지 않고 그대로 살았더라면 역사의 죄인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잡아서 가두고 박해를 한 인물로 영원토록 비난 받고 지옥에 갈 인물입니다. 이 인물이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한 배경에는 예수님의 은총과 성령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게 되면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받다 보면 바울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구약을 잘 배운 덕을 너무나 많이 보신 분입니다. 구약을 몰랐더라면 서신서를 그렇게 쓸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도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 각자 다르게 다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성령을 받고 변화를 받아서 새 사람이 되어서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삶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볼로는 성경 박사였지만 겸손하고 정직하게 당시에 천한 천막 일을 하는 아굴로 브리스 길라에게 성령을 설명 듣고 받았으리라 믿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하나가 되게 하는 이신칭의 즉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를 이렇게 길게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설명을 요약합니다. 우선 1장 17절의 의미는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로 확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우선 로마서 4장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75세 100세 그리고 야고보서를 통해서 110세 무렵으로 시점이 다르게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처음부터 믿고 주욱 믿고 그리고 끝까지 믿을 때 의롭다 함이 일어난다 이를 요약해서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의롭다 함이 일어난다 로 요약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은 적어도 3번 나타나시고 그때마다 흔들림이 없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그때마다 너는 의롭다 하십니다. 일생을 믿음에서 믿음으로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박국서는 정의롭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6절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고 설명을 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이신칭의 즉 로마서 1장 17절을 비로소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것입니다. 저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성경에 있는 내용대로 그대로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신학이 아니고 그냥 성경의 이해입니다.
이제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이렇게 성도가 믿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서로 일치를 합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시점이 다릅니다. 75세때, 100세때를 로마서에서 그리고 110때 무렵은 야고보서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서는 분명하게 심판하시는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삶의 모습으로 로마서 16장 전체가 설명을 하지만 특히 7장 6절과 같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원리를 잘 살펴 보았습니다. 모두가 믿음을 갖고 정의롭게 살거나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거나 혹은 선한 삶을 살거나 혹은 사랑을 실천하거나 모두가 행동함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게 되면 우선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 즉 율법에 대한 말씀을 그대로 다 순종하게 되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와 이 이해는 일치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다 실천함으로 또 일치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의 작은 부분이라고 했으니 로마서의 다른 성경과의 일치를 통해서 또 일치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오직 믿음을 의롭다 하는 요소로 볼 수가 있는 성경의 구절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히 몇 구절을 발견할 수가 있어 이는 개신교의 주장이 맞는다는 것을 충분히 뒷받침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한 바와 같이 처음에 우리가 믿을 때 의롭다 함을 인정받는 것이 충분히 성경적으로 문제가 없고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를 하고 끝이 나면 로마서 4장 17-22절의 내용을 포함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박국서의 정의롭게 사는 삶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합니다. 당연히 야고보서의 내용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반드시 삶을 살아야 하는 부분도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가 설명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론 틀림없이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이 부분을 설명하는 데는 또 부족합니다. 그리고 첫 믿음과 끝 믿음 혹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 혹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하는 구절을 설명하기 또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한 바와 같이 로마서 1장 17절을 본문 그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 혹은 믿음으로 삶을 하루하루 사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모든 위의 이해가 다 포함이 되어 모든 성경의 내용을 다 충족을 시킵니다. 그래서 이 이해가 가장 올바른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냥 본문이 누가 보아도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에 확정적으로 있는데 굳이 오직 믿음이다 라고 해서 가장 중요한 사는 것을 빼어 버린다면 이는 모든 사는 것에 대한 설명인 로마서를 비롯해서 모든 성경의 이해에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고 예수님의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도 마음에 두지 않고 막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천주교는 그렇게 오랫동안 동의를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주교의 이해도 역시 문제가 있음을 로마서 7장 6절의 이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했는데 이는 율법의 준수를 조금이라도 미흡하게 할 번역이기에 꼭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로서 반드시 지상 최고 최선의 법인 율법이 지켜져야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1000년을 이스라엘과 인내하며 싸우셨습니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이번에 새롭게 예수님을 보내셔서 모든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또 주셔서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시고 이 사람이 하는 일이 바로 율법을 잘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게 질서의 나라로서 그 질서를 온 세계적으로 가장 잘 가져올 법이 바로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이 법을 신약이나 구약이나 하나님께 그의 백성이 잘 지키길 간절히 원하시고 이 간절함의 표현이 예수님께서 오심이요, 성령의 오심으로 새롭게 창조 된 피조물이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 지금까지 하지 못한 율법을 완성하고 이 율법의 완성을 통해서 율법이 굳게 세워지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는 이렇게 성경대로 계획이 된 삶을 모범적으로 사신 분이 바로 바울 사도로서 그의 경험을 성령의 인도로 기록한 책이 모두 로마서를 포함해서 그의 서신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성령을 받고 이렇게 인도를 받으면 틀림없이 사랑을 실천하고 율법을 완성하고 그리고 율법을 굳게 세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인격이나 수양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거듭남으로 새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인도를 잘 받으므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 안에서 언어도 한 언어로 소통하고 인종과 민족과 그리고 국적을 초월해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로 온 세계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가 되는 성경의 이해를 길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저는 틀림없이 앞으로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고 믿는 분들이 충만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들이 영어로 서로 인종과 민족과 성별을 초월해서 소통하고 그리고 이와 같이 성경을 이해하고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장신대 밑에서 성경을 잘 가르치시는 어떤 목사님께서 홀로 15년 성경을 연구하고 배웠는데 이 내용을 가르치는데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누구든지 바로 이 순간 위의 내용을 다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그런 일이 모든 이 글을 읽는 분께 일어나길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실제로 제 아내에게 이런 내용을 전했더니 이 내용을 다 이해하고 제가 알지 못하는 죽을 때까지 믿음이 잘 유지가 되어야 한다고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를 설명했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잘 살아야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행할 영적 전쟁의 갖추어야 하는 무기에 대해서 설명을 드립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영적인 전투 복장 입니다. 이 놀랍고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울트라 초강력 그리고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스텔스 기능을 가진 영적인 무기는 모든 악한 세력과 싸움에 앞서서 입어야 하고 또 승리를 가져다 줄 놀라운 무기이며 복장입니다. 이 보물을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를 다 해 두셨으니 우리가 믿음으로 꺼내서 입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돈이 들지 않고 믿고 입으시면 됩니다. 이미 많은 분이 잘 입고 전투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보관 장소가 에베소에 있는 6단 서랍장 열쇠가 일치하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그곳에 두셨습니다. 즉 에베소서 6장 13-17절의 말씀에 있다는 말입니다.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기서 의의 호심경은 방탄복입니다. 이 방탄복을 의의 방탄복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설명이 있습니다. 성도의 의로운 삶으로 설명도 하시고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오는 의를 가진 자가 착용하는 방탄복이라고도 합니다. 후자의 경우 우리의 이신칭의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고 이신칭의가 되어야지 착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가 중요하고 그렇게 우리가 인정을 받도록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일반 전투 군인과 같이 방탄복을 착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탄복이 부실해서 실제로 전투에서 총알이 날라왔을 때 막지 못하고 뚫리면 그 방탄복을 입은 사람은 바로 사망입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를 믿으므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지만 실재로 믿고 막 살면 위의 같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도 받지 못할 경우도 생기는데 그 때의 나의 의의 방탄복은 마귀의 공격에 뚫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심장을 보호하는 의의 흉배가 이신칭의에서 온다면 우리는 이신칭의에 대해서 깊이 살펴볼 필요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났고 총알이 여기 저기 날라올 때 군인은 그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총알도 넉넉히 막는 방탄복을 반드시 착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실한 회사가 돈을 제대로 들이지 않고 막 총알에 바로 뚫리는 방탄복을 겉만 비슷하게 해서 입힌다고 합시다. 그 군인이 바로 우리의 아들들이라 합시다. 그렇다면 그 부실한 방탄복을 입고 총알이 날라오는 전투에 나간 우리의 아들들은 너무나 많이 죽고 부상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실한 회사를 족치고 감옥에 넣고 거칠게 항의하고 욕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우리가 싸울 상대는 혈과 육이 아닌 어둠의 세력이요 우리의 육신을 죽이는 자가 아닌 우리의 영혼에 해를 끼치고 영원한 삶에 영향을 끼칠 마귀입니다. 이들과 싸우는 전투 복장인 의의 흉배에 대해서 아무 것이라도 입고 나가라고 절대로 가르치면 아니 됩니다. 그리고 이상한 마귀의 공격도 막아 내지 못하는 의의 흉배를 차고 나가라고 해도 아니 됩니다. 반드시 정확하게 올바른 그리고 마귀의 공격을 막을 의의 흉배를 차고 나가야 합니다. 그 흉배가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은 영적인 전쟁에 있어 다양한 이해와 설명이 있겠지만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부분을 중심으로 전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성경의 이해를 말씀 드렸습니다. 제 설명이 부족하고 글을 쓰는 재주가 또 부족함으로 잘 표현이 아니 된 부분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분께서 이 부분을 잘 묵상하시고 이해하시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저도 늘 모든 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큰 죄인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이렇게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저질이며 흉악한 범죄자가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께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와 찬양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성령을 선물로 받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의 약함과 죄를 아시오니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나라 한국에서 온 세상에 평화의 복음이 전파가 되어 이 땅에 속히 인종과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