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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 리 하사해군5성분전단 독도함 |
가파르고 좁은 계단, 차가운 벽, 창문이 없는 복도와 사무실, 그리고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숙취 같은 뱃멀미. 배를 단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나에게 한없이 낯설게 다가온 것들이다. 항공 직별 여군을 처음 접하는 독도함 승조원들 앞에서 내 이미지가 곧 항공의 이미지겠다 싶어 괜히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첫 1주일은 함 내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문득 길을 잃은 내 모습이 앞으로의 나날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바다의 하늘을 수호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꿈에 그리던 멋진 일을 하고자 이곳에 왔으니 나약한 생각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고 나니 육상 근무와는 또 다른 함정 근무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독도함 항공장비사인 나의 임무는 항공기 견인, 격납, 항공 장구 관리뿐만 아니라 항공기체사와 함께 항공기 유도·통제 임무를 수행한다. 항공기 유도·통제는 육상에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기체장님께 항공기 유도를 배웠다. 유도사의 실수는 조종사의 판단에 혼란을 주게 되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실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해군5성분전단 독도함 이주리 하사가 갑판에서 항공기 이륙을 유도하고 있다. 부대 제공 |
함상 항공기 유도는 육상 유도보다 공간이 좁고 항공기와 유도사 간의 거리가 가까워 온몸으로 항공기의 바람을 맞는다. 갑판에서 부는 바람과 항공기의 하강기류가 합쳐져 스스로 비참하게 느껴질 만큼 바람에 휘청거리다 못해 넘어질 것만 같았다. 훈련이 끝나고 선배들께 서 있는 것부터 다시 배웠다. 안 된다고 포기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다음, 또 다음 항공작전을 거듭하면서 점점 바람에 잘 버티고 어색한 티를 벗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입대 전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신념과 멋으로 해군에 입대했고 그때 바랐던 상상 속의 내가 현실이 돼 해상 안전비행을 책임지는 독도함 승조원이라니, 이보다 더한 성취감을 또 느껴볼 수 있을까. 일련의 시련을 극복하고 난 지금 ―앞으로 또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독도함에서 근무하는 하루하루 자긍심과 애국심을 느끼며 부족한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초’ ‘여군’이라는 타이틀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누가 봐도 잘하는 대단한 사람일 것 같지만, 나는 많이 부족하고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가르쳐준 독도함은 최고의 배움터이자 최고의 배라고 자부한다.
내 인생을 빛나게 하는 군대라는 특수성을 마련해주신 모든 인연께 감사하며, 우리 독도함에서 이함하는 모든 항공기가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무사히 RTB(Return To Base)하기를 기원한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