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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이 나왔다. 등반기로서는 제목이 재미있다. 산악인이 많고 멀리 히말라야에 갔던 사람이 적지 않은데 지금까지 눈에 띄는 산행기가 없어 늘 서운하던 참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기분이 더 우울하다. 와야 할 비는 안 오고, 이름도 이상한 병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난숙할 대로 난숙해진 현대문명이지만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다. 하기야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히말라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산지니 출판)라는 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바로 대형서점으로 달려갔다. 디지털시대, 책이 안 팔리고 책보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상대로 살고 있는 사회 풍조 속에 이런 신간 소식은 나를 놀라게 했다.
필자는 에베레스트 삼수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다. 나는 우리 산악계가 놀라운 발전을 하면서 등반기다운 등반기 하나 나오지 않는 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나와 20년 차이가 있는 산악인이지만, 알피니즘의 세계에 남긴 그의 업적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그의 ‘한계 도전’의 발자취보다 그가 남긴 많은 등반기다. 알피니스트로서 그는 산행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체험기를 남겼다.
250년의 세계 등산 역사 속에서 위대한 등산가와 그들의 산행기가 있다. 에드워드 윔퍼의 <알프스 등반기>,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 모리스 에르조그의 <안나푸르나>, 존 헌트의 <에베레스트 등반기> 등은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우리나라 산악계에 뒤늦게 소개된 발터 보나티의 〈내 생애의 산들〉과 머지않아 나올 리오넬 테레이의 〈무상의 정복자〉 역시 손꼽히는 산악 고전이다.
등산세계에서 사는 한 생활인의 생활기록
우리 대한민국은 뒤늦게 세계무대에 뛰어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살아온 탓도 있지만 자연조건이 너무나 열악했다. 등산의 무대가 높이 2,000m도 안 되는 저산지대인 데다 국가나 사회적 조건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것을 구실로 변명으로 삼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 산악계는 눈부시도록 선진대열에 끼고 있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14개봉 완등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많은 젊은이들이 원정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알피니즘의 세계는 원래 그런 것임을 우리 산악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 늘 서운한 것은 그토록 놀라온 발전 속에 등반기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때 그때 보고서가 나왔지만 그것은 체험기가 아니다. 자기 한계에 도전한 처절한 기록이 아니다. 생명을 걸고 스스로 그 길을 갔던 자들의 고상하고 소중한 기록을 보고 싶은 것은 책을 좋아하고 독서 취미를 가진 사람의 하찮은 욕망이 아니다. 산악인이나, 산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나 그 특이한 인생 체험을 부귀와 명예와 거리가 먼 길을 치닫고 있는 산악인들의 세계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
책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쓸 줄도 알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자기의 체험을 정리하고 남김으로써 자기가 살아온 흔적을 남들이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인생은 지식과 체험의 누적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을 기록물로 남기는 것은 문화의 축적이다. 사적 유적만이 문화가 아니다. 책에 고전이 있는 까닭이다. 책은 잘 써야 하는 것이지만, 책의 생명은 우수한 문장에 있지 않으며, 그 내용에 있다.
<히말라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산악인 이상배의 첫 작품인 셈이다. 나는 저자를 그의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그의 말대로 그는 뒤늦게 등산 세계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꾸준히 그 길만 갔다. 그의 산력은 놀랄 만하다. 아무리 생활 조건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1990년대 나이 40대에 시작한 그가 히말라야를 누비고 세계 5대륙 최고봉에 도전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시대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다. 산악인은 많아도 그들이 간 길은 모두 다르다. 에베레스트에 하루 수백 명이 오르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의 평범치 않은 산행 기록보다는 그가 남달리 책을 썼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여기저기 비친 남다른 글귀들이다.
이 책은 한 산악인의 산행기가 아니다. 산에 갔다 와서 일기처럼 기록한 책이 아니다. 그가 뒤늦게 시작하면서 그 누구보다 앞서 나갔던 그 의욕과 정열이 그대로 체험기에 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고 싶다. 그 많은 산악인이 히말라야를 다녀와서도 체험기 하나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아는 나로서는 그렇게 보는 수밖에 없다.
지난 산서회에서 그의 책을 놓고 이야기할 때 나는 그 책의 저자를 처음 보았다. 그는 극히 평범하고도 온순한 장년이었다. 그의 나이는 그의 책에서 처음 알았지만 나는 원래 남의 학벌이나 나이에 관심이 없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만이 나의 관심사다. 그중에서도 뒤늦게 이런 책을 썼다는 것 그 하나로 나는 이상배에 호감이 갔다.
실은 그의 책 속에 여기저기 비치는 알피니즘의 핵심, 여러 선구자들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그 키워드들, 나는 그 출처들을 알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는데, 그는 결코 그것을 밝히지 않았다. 권말에 흔히 있는 참고 문헌도 없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의 책을 읽어 나가며 그 키워드가 적절히, 아주 깨끗이 자기 것으로 소화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상배라는 산악인의 등산정신이 단단히 형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이라는 조지 핀치의 말이 있지만, <히말라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산악인의 책이라기보다 등산세계에서 사는 생활인의 생활기록이다. 이 책은 그가 1990년 나이 40에 시작한 산행기록이라기보다는 그때 그때 오지를 돌아다니며 느낀 자기의 인생 기록이다. 목차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으며, 그런 목차 가운데 ‘등산은 학문이다’라는 것까지 있다. 원정에서 책을 펼쳐 든 사진도 있다. 내가 아는 책이다.
나는 사람을 산에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길 좋아한다. 그리고 산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누곤 한다. 사람이 산에 가고, 책을 읽으며 글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보람 있게 하는가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다. 이러한 이야기는 문명과 자연의 틈바귀에 끼어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조건 가운데서도 너무나 소중한 일이 아닐까.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이유 일깨워 주는 책
이 책의 필자는 등산은 학문이라고 단정하다시피 했는데, 바로 여기 등산의 특수성이 있다. 등산이 일종의 야외 스포츠이면서 일반 스포츠와 다른 근거가 거기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국립등산학교가 문을 연다는데, 유럽의 최고봉 몽블랑을 자랑하는 프랑스 샤모니에 국립스키등산학교(ENSA)가 있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다. 그런데 늦깎이 등산국인 대한민국이 표고 1,708m의 설악산 기슭에 국립등산학교를 열게 됐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늦깎이 산악인이 뒤늦게 내놓은 책 <히말라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를 나는 흔한 산책의 하나로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일찍이 고교 교사를 지내며 학생들에게 “Forget your age!”(나이를 잊어라), “Opportunity is fleeting”(기회는 흐른다)고 교과서를 떠나 이야기하곤 했다. 인생이란 언제나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데는 사회적 통념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등산에서 배운 나의 ‘존재이유’다. <히말라야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저자 1924년생. 1976~1980년 제7대 대한산악연맹 회장,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1978년 한국북극탐험대장, 한국등산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을 썼고, <검은 고독 흰 고독>, <제7급>, <8000미터의 위와 아래>, <죽음의 지대>, <내 생애의 산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