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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지런히 일하라. 박조준 목사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 30∼34절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게으른 자의 밭과 포도원에서 본 광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이 땅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 시찰을 나갔다가 그 포도밭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는 토양은 비옥한데 그 안에 자라나는 것은 "가시덤불과 거친 풀"뿐인 밭과 포도원을 보았습니다. 가시덤불도 여기저기 띄엄띄엄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밭을 덮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담이 없어서 설령 열매를 맺었을지라도 짐승들이 들어와 다 먹어버렸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8절에 볼 것이면 저주받은 땅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농사하는 직업이 얼마나 축복 받은 직업입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 한국에서도 농사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농부의 경작이 없으면 이 땅에나 가나안 땅에나 모두 가시덤불과 거친 풀이 우거지고 말 것입니다. 모두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32절에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 사실을 보고 "훈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땅주인을 찾아 욕을 하거나 책망을 하거나 비난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관찰을 통해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 밭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자신은 근면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쓴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있는 사람의 생활 자세입니까? 흔히 지도하는 사람이 범하기 쉬운 과오는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시정해야 된다고 강조하지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남에게 훈계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훈계를 받아야 합니다.
읽는 것을 통해서 받습니다. 듣는 것을 통해서 훈계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훈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서도 훈계를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태도를 보는 가운데 훈계를 받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훌륭한 행위를 보고서도 본받을 것이 있지만 악한 행위를 보고서 경계할 것도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풀타크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얻는 것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얻는 이익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결점을 보고 자신은 그것에서 피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의 덕망을 본받기 어렵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꼭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도 이불 속에 누워 잠에 취해 버립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소리칩니다.
잠은 여전히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요구할 것이고, 마침내 싫도록 잠을 자고 나서야 눈을 뜰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잠을 통해서 다음에 할 일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잠은 새 힘을 얻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너무 많이 잔 까닭에 활발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되고, 아무 소용없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빈궁은 강도같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가난은 게으른 자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으며 곧 그를 덮칠 것입니다. 그래서 궁핍이 그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덮칠 것입니다. 강도처럼 무기를 가진 자가 그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모두 빼앗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두 가지 면으로 깊은 교훈을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업하는 데도 게으르면 그 사업이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사업을 항상 연구 검토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과감하게 수행해 나아갈 때만이, 부지런히 일할 때만이 그 사업이 잘 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가 밭의 소출이 많고, 좋은 곡식을 추수할 수가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업가의 사업이 번영해 나아갑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는 학생의 성적이 좋아집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우리는 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어떤 이는 심는 일을 하고 어떤 이는 물주는 일을 한다. 그러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상급을 많이 받을 것이고, 일 못하는 사람은 상급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지런하게 성실하게 일한 사람은 많은 좋은 우량의 곡식을 거둘 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되는 대로 하는 사람은 곡식 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하는 만큼 됩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하는 일은 잘 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의 하는 일은 잘 되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에 '부지런히 반복(半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완전한 복이 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복의 절반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도와주시지 게으른 사람은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저 사람 게을러서 거지 되면 어떡하지'해서 도와주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세상에서 사업을 크게 잘하는 사람을 보세요.
다 부지런합니다. 부지런하지 않고는 큰 사업을 하지 못합니다. 부지런해야 성공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신적인 세상 사업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 면에서도 그러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영혼은 각자가 돌보고 가꾸고 지켜야 할 우리의 밭이며 포도원입니다. 이 포도원과 밭을 잘 가꾸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영혼의 밭을 잘 가꾸라는 위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영혼의 밭을 맡아 관리하자면 많은 수고와 손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게 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지게 되고, 묵은 땅처럼 황폐하게 되고, 물론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아름다운 잔디밭을 보셨어요?
공원 같은 데, 혹은 골프장 같은 데 잔디를 잘 키워 놓은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 시원하고, 평화로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까.
그런데 그 잔디밭은 가만히 놓아두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잔디밭이 됐나요? 그렇게 잔디밭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야 되는지 모릅니다. 며칠이라도 뽑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고, 한 달쯤 뽑지 않게 되면 잔디밭이 아니라 잡초 밭이 되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잔디가 빨리 자라요, 잡초가 빨리 자라요? 잡초가 빨리 자랍니다. 잔디 뿌리가 강해요, 잡초 뿌리가 강해요? 잡초 뿌리가 강합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아름다운 초원을 만들려고 하면 잡초를 자주 뽑아 주어야 합니다. 손이 그만큼 많이 갑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가꿀 도리가 없습니다. 뽑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도 이 정욕의 잡초, 혈기의 잡초, 교만의 잡초, 시기의 잡초, 욕심의 잡초 같은 것들이 우리를 할퀴고 찌릅니다. 가시덤불과 거친 풀들이 무성하게 됩니다. 잡초는 생장력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만 게을리 하면 곧 무성해져 곡식을 누르고 과수가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합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수요일 더구나 교회에 나오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모여서 기도회를 가집니까?
그 동안 우리 마음의 밭, 포도원에 싹트기 시작하는 잡초를 이 수요일 나와서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잡초를 제거해야 신령한 곡식이 바로 자라게 되고, 신령한 과일 나무가 바로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무너지는 돌담'이란 말을 하면서 이걸 다시 수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돌담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 데나 돌담을 쌓는 것 아닙니다. 동산에 돌담을 쌓습니다. 들판이 동산은 아닙니다. 일정한 구획 안에서 그걸 정해놓고 구분해 놓은 곳, 일정한 장소 그곳이 바로 동산입니다. 그러므로 동산에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벽이 있습니다. 그래야 도둑이나 짐승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은 사회에서 살기는 하지만 신령한 돌담이 있어야 합니다.
즉 동산과 들판이 구분되는 것처럼 돌담이라는 경계선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가리켜서 '성도'라 부릅니다. '구별된 무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 살면 이 돌담이 무너지기가 쉽습니다. '돌 하나 뺀다고 담이 무너지기야 할까?'라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지 아니하면 힘쓰지 아니하면 우리 심령의 포도원에 둘러친 돌담이 무너져 버리기가 쉽습니다.
왜요?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다니기 때문입니다. 택한 자라도 될 수만 있으면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돌담이 조금 움직이는 데가 있으면, 그것을 자꾸 흔들어서 뽑아 버립니다. 뽑아 버린 그 자리부터 시작해서 결국 그담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 보게 되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완전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게 되고 우리도 모르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는 말입니다.
돌담이 어떻게 무너집니까?
흔들거리는 약한 부분부터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이 약한 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홍수 때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보셨죠? 어디서 무너지는지 아십니까? 쥐구멍 같은 조그마한 구멍으로 물이 졸졸 흐르다가 그 구멍이 점점 넓어져서 결국 제방이 무너져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받습니까. 이
조그만 구멍,
구약성경에 보게되면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고 했습니다.
작은 일이라고 해도 이것을 멸시하게 되면, 등한히 하게 되면 이것 때문에 잘못 되기가 쉽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아도 "악한 것은 아예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의 몸에도 누구나 다 약한 부분이 있잖아요. 어떤 이는 폐가 약합니다. 어떤 이는 심장이 약합니다. 어떤 이는 위장이 약합니다. 어떤 이는 간장이 약합니다. 약한 부분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병은 그 약한 부분을 통하여 침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심령에도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에 약합니다. 어떤 이는 이성 관계에 약합니다.
어떤 이는 명예에 약합니다.
사람치고 약한 부분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자신이 잘 압니다. 바로 그 방면을 조심하지 아니하면 바로 그 곳에서 바로 여러분의 심령의 돌담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에 창세기에 보면 에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나이 같은 남자입니다. 형 에서가 털이 많이 난 사람이기에 야곱이 형 몰래 와서 축복 받을 때 양털을 갖다 붙이고 아버지를 속였지 않습니까. 에서는 아주 야성적으로 생겼던 모양입니다. 요새 말로 하면 아주 터프하게 생겼던 모양입니다. 야곱에 비하면 사나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생 야곱은 기생오라비 같았던 반면 에서는 아주 씩씩했고 사냥을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 훌륭한데, 남자 같은 남자인데 무슨 약점이 있었습니까?
식욕을 참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배고프면 못 참았습니다. 산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팥죽을 쑤고 있습니다.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보통 사람이면 "너 팥죽 쑤는구나"라고 했을 텐데 "야, 그 시뻘건 거나 하나 다오. 시뻘건 것 하나 다오"라고 했습니다. 이 약점을 이용해서 동생 야곱이 장자의 명분하고 팥죽 한 그릇하고 바꾸지 않았습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굶어 죽으면 죽었지 장자의 명분을 판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요 약점 때문에 결국 평생을 두고 후회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리에 이르게 되지 않았습니까. 롯은 삼촌 아브라함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물 때문에, 풀밭 때문에 두 사람들의 목자들이 싸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삼촌과 조카가 싸운다는 말을 들어선 안되겠다. 네가 먼저 택해라. 네가 우 하면 난 좌 할거다. 네가 동 하면 난 서 할거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택해라"고 했습니다. 이때 "아이구, 그거 무슨 말씀이십니까? 삼촌이 연세도 있고 한데 삼촌이 먼저 택하세요. 저야 젊은 사람이 아무 데 가도 살 것 아닙니까?"라고 해야 제대로 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롯이 척 보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 동산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삼촌에 대한 생각도 안 하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소돔과 고모라에 가서 망신당하고 망하지 않았습니까.
삼손도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나실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주셔서 썩은 당나귀 뼈 하나 가지고 블레셋 천명을 쳐 물리칠 정도로 장사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무슨 약점이 있었습니까? 여자에 대한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간첩 들릴라에게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얼마나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아간이라는 사람은 똑똑하지요. 이해 타산 밝은 사람이지요. 손 빠른 사람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 어기고 정말 하나님만 알게 금 덩어리, 외투 훔쳤다가 자기도 죽어 버렸지만 그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큰 망신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사울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다음에 변했습니다.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쳐 물리친 다윗을 자기 사위로 삼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왕 자신의 인기가 달라졌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속이 뒤집혔습니다. 세상에 정치라는 것처럼 치사한 게 없습니다. 사위가 인기 올라간다고 사위를 죽여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시기심 때문에 사울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아시지요?
이런 말을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선지자 발람 같은 사람은 뇌물 얼마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가는 길에 자신의 나귀에게 창피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이 돌담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요셉은 여러 가지로 그의 돌담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끝내 잘 지켰습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사자 굴에 들어가면서까지 잘 지켰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같은 사람들은 이 돌담을 지키기 위해서 풀무불에 들어가기까지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이 돌담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간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 심령에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이 돌담이 무너지지 않게 잘 지켜야 합니다. "이것쯤이야"하는 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돌 하나 빠지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의 밭, 마음의 포도원을 잘 돌볼 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하나입니다.
부지런하게 일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말씀한 것처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기계를 보세요. 안 쓰고 가만히 놔두면 그게 오래 갈 것 같지요? 아닙니다. 기계는 적당히 써야 녹이 슬지 않습니다. 그냥 돌리지 않고 가만 놔두면 녹이 슬어서 나중에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산 다음에 "이거 아까운 거다.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주고 샀는데. 가만 놓아두어야지. 특별한 때에만 타야지"해서 커버를 덮어놓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냥 그렇게 놓아두었다가 타려고 해보세요. 시동이 안 걸립니다.
기계는 움직여야 됩니다.
우리의 몸도 그와 같습니다.
"이거 내가 평생, 50년 60년 70년 80년 쓸 몸인데, 이거 아까운 건데"하며 쓰지 않고 가만히 한 달이고 여섯 달이고 놔 두어 보세요. 못 쓰게 됩니다. 몸은 자꾸 움직여야 됩니다. 그래야 건강이 유지가 됩니다. 운동 부족으로 인한 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몸뿐만 아닙니다. 도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한가한 사람, 게으른 사람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자극을 얻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부인들 가운데도 어떤 사람이 탈선합니까? 한가한 부인들, 소위 유한 마담들이 그렇게 됩니다.
제가 말을 들으니 어떤 미용실에는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서 거기서 전체 미용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욕하고 마사지하고 머리하느라고 아침 열 시에 들어가서 저녁 다섯 시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자기 하는 일이 바쁜 사람들은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여자뿐만 아닙니다.
남자도 한가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왕 다윗을 기억하시지요?
그가 베들레헴들에서 양을 칠 때 시험에 들었습니까? 골리앗과 싸울 때 탈선했습니까? 나라 다스리기에 바쁠 때 범죄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나라가 평정되고 자기는 일선에 나가서 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가서 싸워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가했습니다. 낮잠을 잘 정도로 한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게 되고 한 나라의 임금으로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할 수 없는 범죄를 하여 일생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 아닙니까. 바쁜 사람은 나쁜 생각할 여유 없고, 나쁜 곳에 갈 겨를도 없습니다.
발명왕이라 불리는 에디슨이 나이가 많았을 때 어떤 청년이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세계인류를 위해서 크게 공헌한 훌륭한 발명품을 많이 만들어 내셨는데 선생님도 유혹을 당하실 때가 있었지요? 선생님도 시험받으실 때가 있었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은 돋보기 너머로 그를 보면서 "유혹? 시험? 내가 맡은 일이 바쁜데 언제 시험에 받을 시간이 있나?"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니까, 정신을 집중하니까 시험받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가 왕자가 지혜 많은 철인에게 찾아가서 "내가 왕자로서 앞으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책임을 져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시험받지 않고 왕 노릇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지혜 많은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그럼 제가 하라는 대로 한번 해 보세요. 이것은 사실 장난이 아니고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컵에 기름을 가득 담아 드리겠습니다. 이 컵을 가지고 성 안을 한 바퀴 돌아오세요. 한 시간 안에 꼭 돌아오셔야 됩니다. 천천히 가지 마시고 바삐 가야 한 시간 안 에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단 돌아오시는 동안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쏟으면 뒤에서 총을 가지고 따라 가는 사람이 당장 총으로 쏩니다. 그렇게 알고 하세요."
그래서 이 왕자가 기름 든 컵을 들고 그 지시한 곳을 향해서 1시간 안에 돌아오기 위해서 열중해 가지고 기름 한방울 안 쏟으려고 하며 갑니다. 감시하는 사람은 뒤에서 총을 들고 쫓아옵니다. 열심히 해서 한 시간 안에 간신히 도착을 했습니다. 기름 한 방울 안 쏟고 말입니다. "내가 이 기름 한 방울 안 쏟고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다 돌고 왔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는 동안에 아무 빌딩 봤어요?" "못 봤는데요." "거기 종탑이 있을 텐데 그거 보았어요?" "못 봤는데요." "거기 가면 다리를 건넜을 텐데 보았어요?" "못 봤는데요." 자기 하는 일에 열중하니까 주변에 뭐가 있는지 아무 것도 못 보았단 말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내가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부지런하기만 하면 세상의 이런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말입니다.
도덕 생활 뿐만 아닙니다.
신앙 생활도 그렇습니다.
무슨 직분이든지 부지런히, 바로 감당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별로 시험에 들지 아니합니다. 의심의 잡초가 무성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험에 듭니까? 일은 안하고 남하는 것만 보는 사람이 대개 시험에 듭니다. "저 목사 봐라! 저 집사 봐라! 저 권사 봐라! 저거 뭐 사람이야? 저것도 예수 믿는 거야?" 이러면서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시험 들 일이 없습니다.
신앙이 흔들릴 염려가 없습니다. 여러분 주위를 보세요! 의심하고 불평하고 앉아 있는 사람치고 부지런히 주님의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대개 일하지 않는 사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일 안 하는 사람이 의심의 잡초, 시험의 엉겅퀴가 무성하게 되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인천에 있는 낙원제일교회에 갔었습니다. 그 교회는 합동 측에 속한 교회인데 교회도 아주 크고 교인도 많았습니다.
거기도 식당이 있어서 주일이면 식당 일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집사님 내외가 점심대접을 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봉제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손가락이 잘렸는데 몇 달 후에 손가락에 손톱이 다시 나고 손가락이 낫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그전에는 머리가 아파서 짜증이 나고, 감당을 못할 정도로 고생을 했는데 교회 식당에서 봉사하는 일을 하다보니까 머리 아픈 것이 언제 나았는지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식당 봉사하라고 이렇게 그 은혜를 주었구나"하시면서 누가 뭐래도 자기는 식당 봉사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식당 봉사하면 머리 다 낫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 하다보면 마음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해서 육신의 병도 다 달아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권면하였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금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어떤 자매 한 분을 만났는데 "목사님, 제가 29살이에요. 이제 며칠 있으면 단위가 달라져요." 30살이 된 대요. 그러니까 29하고 30살은 숫자가 다르잖아요. 상당히 조급해 합니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신 분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이 자매는 처녀로 서른이 가까워 오니까 그렇게 조급해 해요.
사실은 이 처녀뿐만 아닙니다. 엄격히 따지면 우리도 남은 날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10년인지, 5년인지, 1년인지, 아니면 몇 달인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을 책임지고 세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날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각자 다 받아 가지고 났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한정된 시간입니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 줄어들지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옛날 한시(漢詩)에 "사람이 살면 몇 해나 사노? 흔히 말하기를 70이라 한다. 그러나 70년 중에 늙어서, 어려서, 병들어 일하지 못할 때 있으니 이 삼자를 제하면 40년밖에 더 되느냐? 40년이라고 하지만 일하는 낮과 일 못하는 밤이 있으니 낮과 밤을 가르면 20년밖에 더 되느냐? 인생이 70의 수(壽)를 누린다 하여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은 20년뿐이니 이제 그 남은 시간을 선용하여라"는 내용이 담긴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날을 셉시다. 뜻없이 보내지 마십시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당하는 그 날을 우리 일생의 마지막 날과 같이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나는 오직 한 번만 이 세상을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도중에 친절을 행할 일이나 누구를 도와줄 일이 있으면 그것을 연기하지도 않고 등한히 하지 않고 즉시 행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길을 다시 통과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문으로 우리가 사는 것을 일생(一生)이라고 합니다.
이생(二生)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一生,' 한번 산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딱 오늘 한 번 뿐입니다. 우리 일생에 다시는 오늘이 없습니다.
금년도 저물어 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마음의 밭을 점검해 봅시다.
혹 가시덤불과 잡초가 우거지지는 않았습니까?
돌담이 무너지지는 않았습니까?
시편 90편에 모세가 말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計數)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언제나 봄이나 여름이 아닙니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언제나 아침이고, 낮이 아닙니다. 저녁이 오고 밤이 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이 언제나 잔칫집에 가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그 마음이 초상집에 가 있다."
끝날을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1999년, 1000년대가 이제 며칠 있으면 끝납니다. 새 천년, 2000년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내 영혼의 밭에, 내 영혼의 포도원에 잡초가 우거지지 않았습니까?
이 해 다 가기 전에, 뽑아 버리는 일이나 깨끗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는 밤이 되기 전에 열심으로 일하다가 언제라도 주님 부르시면 주님을 맞을 수 있는 부지런한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또 다른 지혜의 말씀들
(잠언 24:23~34)
* 본문요약
또 다른 지혜자들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재판할 때 사람의 얼굴을 보고 판결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악인을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고, 그를 꾸짖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까닭 없이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고, 그가 나에게 행한 그대로 그에게 갚아줄 것이라고 말하지도 마십시오. 게으르고 지혜 없는 자의 밭은 가시덤불과 잡초로 덮여 있고, 빈궁과 곤핍이 강도같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찬 양 : 276장 (새 510) 하나님의 진리 등대
514장 (새 459) 누가 주를 따라
* 본문해설
1. 재판을 공정히 하라(23~26절)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이 전하는 말씀이다.
재판할 때에 얼굴을 보아(사람을 봐 가면서) 판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온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될 것이지만,
25) 오직 악인을 견책하는(꾸짖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며, 좋은 복도 받을 것이다.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이 입맞춤과 같다.
(혹은, 적절하게 바른 말로 대답해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다).
2. 거짓 증언과 복수에 대한 경계(27~29절)
27) 네 바깥일을 다 해놓고, 네 밭일을 다 살핀 후에 네 집(가정)을 세워라.
28) 아무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고,
네 입술로 속이지 말라.
29) 너는 “그가 나에게 한 그대로 나도 그에게 해 줄 것이다.
그가 나에게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아 주리라”하고 말하지 말라.
3. 게으른 자에 대한 경고(30~34절)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가면서 보니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땅은 잡초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
32) 그것을 보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교훈을 얻었다.
33)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34)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무장한 군사같이 네게 이를 것이다.
* 묵상 point
1. 재판을 공정히 하라
1) 또 다른 지혜의 말씀들
잠언 24:23~34는 30개의 잠언 외에 솔로몬이 남긴 기타 지혜의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23절은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이 전하는 말씀이다”하고 시작합니다. 이것 역시 30개의 중요한 잠언 못 지 않게 중요한 지혜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재판할 때 악인에게 “네가 옳다”하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23~24절)
또 다른 지혜의 말씀의 첫 번째는 재판에 관한 것입니다. 재판할 때 저 사람이 나랑 같은 고향 사람이든지, 또는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를 두둔하는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 “네가 옳다”하고 말하고, 자기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죄 없는 자에게 죄를 씌우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3) 악인을 꾸짖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다(25절)
재판을 하는 자는 모름지기 악한 자를 엄하게 꾸짖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후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혹시 그 사람이 권세가 있어서 자기를 심판한 재판관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이것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잠시 고통을 받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 큽니다.
3) 적당하게 대답해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다(26절)
만일 악행을 저지른 그 사람이 나랑 아주 가까운 친구라면 어떻게 할까요? 그가 아무리 나의 친구라 할지라도 바르게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친구라고 해서 악을 의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망치는 일입니다. 친구가 잘못한 것을 꾸짖고 바르게 판결하는 것이 곧 친구와 입맞춤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친구의 우정이라는 것입니다.
2. 거짓 증언과 복수에 대한 경계
1) 까닭 없이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라(28절)
재판관이 아닌 일반인에 대하여는 까닭 없이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그를 미워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거짓으로 그가 죄를 범하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2) 그가 나에게 한 그대로 그에게 갚아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29절)
또 그가 전에 나를 괴롭게 한 그대로 나도 그를 괴롭게 할 것이라고 말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복을 하지 말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수가 보는 앞에서 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3. 게으른 자에 대한 경고
1) 바깥일을 다 해놓고 가정을 세워라(27절)
그 다음에는 가정을 세우는 일에 관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전에 먼저 바깥일을 다 해놓고, 밭의 일도 잘 살펴본 후에 가정을 세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가정을 세우기 위해 남편과 아내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른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2)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하면 빈궁이 강도같이 온다(30~34절)
이제 솔로몬이 남긴 잠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잠언 25장부터는 히스기야 왕이 솔로몬의 잠언을 모아 편집한 것이니, 본문이 솔로몬의 잠언의 마지막 부분이 됩니다. 어느 날 솔로몬이 길을 지나다가 어느 게으른 자의 밭을 보았는데 온통 가시덤불과 잡초가 가득했습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이 교훈을 받았다고 하면서 후손에게 게으름을 피우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하면 빈궁과 곤핍이 강도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 묵상 : 말씀을 가까이하여 지혜와 명철을 가진 자가 되십시오.
잠언에서 가난과 곤핍은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지혜와 명철의 가난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기를 게을리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세상에서는 부귀를 누리고 있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극히 가난하고 멸망당할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보기에 게으름 피우지 말고,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여 지혜와 명철을 가진 자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이 땅의 권세가들이 나라를 공의로 바르게 다스리게 하옵소서.
2.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들을 다스릴 자를 뽑게 하옵소서.
3. 악한 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지혜와 명철을 가진 자가 되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글쓴이: 송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