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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성경본문 : 에스라 1:1-11
교회라고 할 때 우리는 성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성전이라 할 때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시대를 따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후에 그들이 광야생활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후 십계명을 먼저 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식양을 따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바로 성소였습니다.
그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행군할 때나 정착할 때나 항상 성막을 중앙에 두고 각 지파별로 동서남북으로 배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고, 후에 솔로몬 성전이 무너졌다가 다시 스룹바벨 성전이 지었습니다.
그것이 다시 무너지고 헤롯 성전이 지어졌으나 주후70년에는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진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늘의 교회를 세우시고 주의 백성들을 불러모으시고 있습니다.
교회는 참으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됩니다.
경찰서는 없어도 됩니다.
시청은 없어도 됩니다.
우리의 가정집은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없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우리 삶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마16:18절에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이 교회가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 성전이 필요합니다.
성전이 없이 교회가 든든히 서는 교회는 없습니다.
예배당 문을 닫았던 나라치고 잘된 나라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아도 잘된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소련이 교회의 문을 닫으니까 모든 것이 다 닫혔습니다.
소련의 세 가지 기적이 있는데
첫째, 땅은 많은데 양식이 없습니다.
둘째, 석유는 많은 데 기름이 없습니다.
셋째, 나무는 많은데 종이가 없습니다.
교회의 문이 닫히면 음부의 권세가 득세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교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워져야 합니다.
많이 세워져야 합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많이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바로 서면 음부의 권세가 득세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음부의 권세가 득세를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크다는 것을 자꾸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칠곡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구제, 친교, 봉사도 좋으나 영혼구원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다. 선교해야 합니다. 구제하는 것도 친교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모두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미룰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을 가지고 자리다툼이나 하고 권리행세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저는 어제 『크리스찬 뉴스위크』지에서 놀라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난 4월13일에 있었던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 중에서 신앙을 가진 것을 분석해 놓았습니다.
지역구 의원 227명 중 33%인 88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불교가 15%인 33명이고 카톨릭 신자가 26%인 58명, 무교가 21%인 48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구 당선자 중에서는 15명이 기독교인으로서 전체국회의원의 38%가 기독교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전국민의 약 18%가 기독교인인 것으로 감안하면 기독교인이 많이 당선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볼 때에 이번 선거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문에서 분석하지 않은 것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대구지역 당선자중에는 기독교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목격하고는 다시 보고 다시 보았습니다.
개인별 명단을 다 게재해 놓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서울 25명, 부산 6명, 다음이 대구여야 하는데 대구는 빠지고 인천이 5명으로 나타났고 광주 한 명 대전 4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경상남북도를 살펴보았습니다.
부산과 경상남도는 10명이었고 대구와 경상북도는 4명으로서 영남전체가 14명인데 반해, 전라남북도와 광주는 11명이요, 대전을 비롯해서 충청도는 12명이었습니다.
인구가 경산도의 절반도 안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어찌 심각하다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다가 어찌할 것인가?
왜 산불이 강원도에만 나고 경상도에만 나는가?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까?
최근의 산불은 국가적 재앙이자 해당지역의 재앙입니다.
영이 죽으면 음부의 권세가 득세를 하고 음부의 권세가 득세하면 우리의 삶이 황폐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 우리가 살펴본 이사야 말씀중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32: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으면 광야가 아름다운 옥토가 되고 밭은 수풀이 우거진 삼림으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생업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대구의 산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십니까?
영적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사업하시는 성도들은 명심하십시오.
물론 예수를 믿지 않아도 기업을 할 수 있고 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사업이 잘되시기를 원하신다면 기도하십시오.
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봉사하십시오.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영이 죽으면 옥토도 광야가 될 것입니다.
삼림이 없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임하시면 백성들이 화평과 안전한 거처를 가지고 종용히 쉬는 삶을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아-- 칠곡교회 성도들이여!
아 - - 대구지역 교회들이여!
아--무지한 대구교회성도들이여!
일어나야 합니다.
역사의 깊은 잠에서 깨어납시다.
예수를 바로 믿읍시다.
신앙생활 바르게 합시다.
우리의 책임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96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칠곡교회의 책임이 큽니다.
너희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실 때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낡아서 건축하는 경우와 좁아서 건축하는 경우이겠습니다.
낡았다고 하는 것은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비좁아서 건축한다는 것은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건축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저는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시설이 많이 낡았고 오래되어 오늘날의 성도와 새로운 신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줄 만한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는 수용의 한계가 왔습니다. 물론 억지로라도 사용하면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 좁아도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누구든지 교회에 오시면 들어오고 싶은 교회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고 좁은 공간을 이제 미래의 칠곡지역을 바라보면서 성전건축을 계획하게 되었고 지난 3월 셋째 주일에는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온 성도가 성전건축을 위한 헌금을 작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생에 있어서 한 두 번 있을까 말까하는 기회요, 하나님의 사랑을 물질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갈등과 고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성전을 건축해야 합니까? 성전이 필요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갈등과 고민속에 드린 나의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나의 마음속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물을 담으려고 하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릇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를 담기 위해서는 성전이 필요하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솔로몬 성전도 아니요, 든든한 헤롯 성전이 아니라 오직 사랑과 겸손과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교회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성도가 공감대를 갖고 기도로 준비해 왔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해방이란 요원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미 선지자들로 하여금 70년이 차야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어떤 방법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고레스라는 페르시아라는 이방나라의 왕을 일으켜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요, 섭리요 준비였습니다.
(렘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사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 ]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시려고 이방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이방 나라의 왕이 이런 조서를 내릴 수 없습니다.
2-3절에 보면 고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방 임금에게도 명하셔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는데 하물며 주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라가서 집을 지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솔로몬이 비록 성전보다도 자신의 궁궐을 더 잘 짓기는 했으나 성전을 먼저 지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다윗이 생각하기를 '내 어찌 좋은 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이런 천한 천막에 모셔둘 수 있겠는가?' 하면서 성전을 지으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맡겨 성전을 짓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지만 이 목사를 통하여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라고 믿습니다.
물론 성전을 건축했다고 해서 큰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해도 그는 훌륭한 왕으로 남아 있고 솔로몬은 성전을 잘 지었으나 성전 건축한 왕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1천 번제의 제사와 그가 구한 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지혜를 구한 선한 왕으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린 왕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5절에 보면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다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보면 백성보다는 지도자급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지도자들은 항상 안주를 원합니다.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안정을 앞세워 눌러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먼저 그들이 일어났습니다.
신앙회복 운동에는 항상 지도자들의 솔선이 필요합니다.
지도자가 솔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느 시대든지 지도자가 잠든 사회에는 항상 패역과 부패만 계속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중세 시대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시대였습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56:10)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
대구의 영성회복은 목사 장로가 솔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목회자가 목회하기 가장 힘든 지역이라고 소문난 대구, 이런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이 각성하지 못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지 못하고 영적인 생활을 뒤로한 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영예나 얻으려고 한다면 대구는 예수 믿는 우리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 받게 될 것입니다.
아-- 하나님, 무지한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무지한 교회를 용서하십시오.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저 무지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이 아닙니까?
바로 내가 아닙니까?
주님, 무지한 우리들을 용서하십시오.
울고 싶습니다.
그러나 눈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칠곡교회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가 교회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솔선합시다.
5절에 보면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고 했습니다.
지도자만 일어나지 마시고 온 성도들이 다 함께 일어납시다. 일어났다는 것은 행동에 옮겼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발로 뛰었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 일어나려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5절 상반절에 보면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달 반 동안 아니 두 주간에 걸쳐서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습니까?
감동이 없었습니까? 감동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십시오.
다른 사람 다 감동을 받았는데 나만 감동이 없다면 이것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 감동이 없었을까?
하나님은 왜 나를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동참케 하시지 않는가?
왜 나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기쁜 마음이 없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6절을 읽겠습니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들렸더라 "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돈입니까?
패물입니까?
집입니까?
논입니까?
밭입니까?
아니면 몸둥아리 뿐입니까?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영덕 경계부근에 금곡이란 동네가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바로 도로변 소나무 숲아래에 아담한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회 이름은 금곡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2년 전에 새로 지었는데 많은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그 동네는 특별한 농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항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초등학교가 있는데 이제는 학교마저 폐교가 되어있습니다.
그런 곳에 장년성도라야 4-50명쯤 되는데 교회를 지었는데 1억원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료만 구입하고 모든 일은 장로님 한 분과 안수 집사님 한 분과 그리고 청년 한 사람 그리고 온 교회 성도들이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도와서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청년 이강춘 집사라는 총각집사의 헌신적인 건축의 미담은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이강춘 총각집사는 교회를 짓는데만 몰두하기 위해 하던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오직 교회 짓는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교회 다 지어놓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교회 헌당하고 난 다음 바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청년의 그 아름다운 봉사와 헌신이 그토록 아름다운 교회를 짓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것을 다 갖고 왔는데 문제는 즐겁게 드렸습니다. 억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성막을 지을 때의 모습을 출애굽기 35장에 기록하고 있는데 5절에 보면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29절에 보면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옴으로써 성전을 다 지을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9절에는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성전에 필요한 각종 재료 중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충당을 했는데 문제는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건을 여호와께 즐거이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에스라 2장 68절에도 보면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69절에 보면 즐거이 드리되 "역량대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노력하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만큼 드렸다는 것입니다. 체면치레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해서 최선을 다하여 힘써 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보면 어려운 형편에 처한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서 마게도냐 성도들이 구제헌금을 했는데 고후 8:3절에 바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힘에 지나도록 했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독려로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내당교회가 87년에 현재의 교회건축기공을 하고 88년 10월에 입당을 했는데 빚이 1억 몇천 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당회에서는 최소한 5년 아니면 10년이 걸려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목사님이 무임하고 1년만에 그 빚을 다 갚고 91년 10월에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힘겹도록 모든 성도가 헌금을 했기 때문이었지만 그 가운데도 잊혀지지 않는 헌금이 있었습니다.
당시 안수집사로서 나이가 제일 젊은 노석규집사가 있었는데 남의 집 전세방에 살고 있었고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는 분이었는데 그것으로 생활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2천만원을 작정하고 헌금을 했습니다.
여기에 또 한분의 헌신이 돋보였습니다.
언니 때문에 예수를 믿었던 곱사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 자치를 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은 전세로 있는 방세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보니 건축헌금을 하고 싶은데 돈은 없었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당시 방세 3백만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월세방으로 구하여 방을 옮기고 그 돈으로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귀히 여겨 마치 옥합을 깨트린 여인의 이름을 영원히 성경에 기록되게 하셨듯이 그 아가씨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는데 좋은 남편을 만나 집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곱사 여 집사님이 만난 남편은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면서 지금은 장천교회에서 두 분 모두 집사로 봉사하고 하면서 자녀를 둘 낳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시고 여러분의 것으로 자원하여 힘써 드려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하나님의 구령사업에 헌신 하시기 바랍니다.
미래의 칠곡지역의 복음화 사업에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성전을 건축하여 대구 영성회복 되는데 사용되는 밑거름이 되는 교회가 되는데 헌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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