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 토저의 『하나님을 추구함』 심화 강해] 제1강:
죽은 정통주의의 사형 선고와 맹렬한 추적(Following Hard)
부제: 교리적 만족감을 불태우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재(Reality)'를 향해 돌진하라
본문 말씀: 시편 42편 1-2절, 시편 63편 8절, 빌립보서 3장 8절 (개역개정)
참고 텍스트: A.W. Tozer, 『The Pursuit of God』 (제1장: 하나님을 바짝 따름, 제2장: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의 복)
1. 서론: 지식의 우상화와 거룩한 갈망의 실종
현대 기독교는 뇌수를 채우는 종교로 전락했습니다. 강단에서는 매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신학적 개념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경외감에 사로잡혀 엎드리는 자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종이 위에 적힌 교리적 명제가 아닙니다. 그분은 인격이시며,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이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물리적이고 영적으로 접촉하기를 원하시는 압도적인 '실재(Reality)'이십니다. 영혼의 주파수가 이 살아계신 실체와 단절된 채 교리만 붙들고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껴안고 만족하며 정작 그 사람과의 실제적인 만남은 거부하는 것과 같은 기괴한 영적 간음입니다. 이 강단은 성도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 그분만을 향한 원초적이고 거룩한 갈망(Thirst)을 폭발적으로 끄집어내야 합니다.
2. 본론: 신학적 해체와 추구의 메커니즘
첫째, 교리적 지식을 넘어선 영혼의 맹렬한 갈증 (시편 42:1-2)
인간의 영혼은 교리적 설명서만으로는 결코 해갈될 수 없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시편 42편 1-2절의 타는 듯한 갈망의 절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목마른 사슴은 물의 화학적 성분(H2O)을 분석한 논문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슴은 자신의 타들어 가는 목구멍을 적셔줄 '실제적인 물'을 원합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은 물에 대한 신학적 강해를 듣고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그 피상적인 만족감을 찢고 일어나,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도와 예배가 메말랐다면, 그것은 당신이 교리를 덜 알아서가 아니라, 창조주의 얼굴을 대면하고자 하는 이 야성적인 갈망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행하는 은혜와 인간의 바짝 따름 (시편 63:8)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것은 내 의지로 신을 찾아내는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끌림에 대한 가장 치열한 항복입니다.
시편 63편 8절의 영적 역동성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영어 성경은 이를 "My soul followeth hard after thee"라고 번역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바짝(Hard)' 추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맹렬히 좇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 뒤에 나오는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 영혼 속에 갈망이라는 거룩한 불씨를 던져 넣으셨습니다(선행 은혜).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당기시기에, 우리는 비로소 그분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을 일깨우실 때, 종교적인 핑계나 세상의 바쁜 일상으로 그 거룩한 신호를 소멸시키지 마십시오. 모든 소음을 끊고, 즉각적이고 맹렬하게 그분의 임재 안으로 바짝 달라붙어야 합니다.
셋째, 추구의 절대 조건: 소유권의 영구적 파기 (빌립보서 3:8)
하나님을 바짝 따르기 가로막는 가장 거대한 장애물은 우리 영혼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소유욕(Things)'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의 완벽한 파산 선고를 보십시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자아의 보좌 위에는 두 명의 왕이 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원한다면, 반드시 내가 움켜쥐고 있는 '나의 것들'—재물, 명예,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사역마저도—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죽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의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치켜들었을 때, 하나님은 이삭을 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이삭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영혼이 만물(Things)을 지배하려는 교만하고 끈적한 소유권을 철저히 포기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 오직 창조주 한 분만으로 완벽한 영적 포만감을 누리게 됩니다.
3. 결론: 지식의 무덤을 파헤치고 실재(Reality)를 붙잡아라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 땅의 모든 강단과 성도들이여!
우리는 성경책을 끼고, 찬송을 부르며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끔찍한 종교적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 차가운 지성과 영성의 명제로 모든 거짓된 안정감을 쪼개버리십시오!
지적 교만의 영구적 도륙: 성경 지식과 신학적 교리 뒤에 숨어, 정작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지 않는 종교적 위선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교리는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대체할 수 없음을 자각하라.
거룩한 갈증의 회복: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타는 듯한 갈급함이 없다면 영적으로 심정지 상태임을 인정하고 애통하라. 세상의 쾌락으로 채우려 했던 영혼의 허기를 오직 창조주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으로만 해갈하라.
완전한 포기와 맹렬한 추적: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 모든 '소유(Things)'의 목덜미를 끊어버려라. 내 안의 자아를 완벽하게 파쇄하고,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은혜의 밧줄을 붙잡아 당신의 전 존재를 걸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맹렬하게 추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