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저출산·입시 해법까지 내놓는 한은 총재?[횡설수설/김재영]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과 재정·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과거 한은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의식해 정부와의 교류를 꺼려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좀 다르다. 지난달 30일 역대 총재 중 처음으로 기재부를 방문해 ‘정책 공조’를 강조했다.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엔 대학 입시 문제를 거론해 논쟁의 불을 지폈다. 기재부와의 미팅 직후 “성적순 대학 진학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8월 말 한은이 보고서에서 제안한 ‘상위권 대학 지역 비례 선발제’를 다시 거론했다. 올해 들어 한은은 ‘BOK 이슈노트’라는 형식을 빌려 논쟁적 이슈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3월엔 돌봄 비용을 낮추기 위해 돌봄 서비스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했고, 6월엔 한국의 의식주 비용이 높다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제안했다.
▷통화정책을 다루는 한은이 입시경쟁 문제에 주목하는 논리는 이렇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교육열이 서울 쏠림과 집값 급등, 저출산 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낮춰 금융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은의 관심 영역이 아닌 곳이 없다. “자녀를 낳으면 정년을 연장해 주자”는 내부 기고문도 있었고, 비수도권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균형 발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등의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도 제시됐다.
▷이 총재는 취임 이후 통화정책만으론 장기 저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구조개혁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조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수준을 넘어 한은이 직접 해법을 찾으려는 모양새다. 문제는 금융 분야에 특화된 한은이 내놓는 각종 해법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데 있다. 주요 대학 신입생 선발인원을 지역별 인구비례로 할당하자는 정책을 교육부가 내놨다면 입시 현장을 모르는 획일적인 규제라는 비판이 들끓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듯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작 금리와 가계부채에 대한 한은의 해법은 모호하기만 하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제대로 올리지 못하더니, 이제 내려야 할 땐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한은으로선 정부 탓을 하고 싶겠지만 한은 총재 역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회의)’의 멤버인 만큼 자유롭다고 할 순 없다. 이 때문에 한은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고 ‘구조적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금리정책 실패의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이 집중해야 할 본연의 역할은 ‘모든 문제 연구’가 아니라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지 않을까.
단어 정리
*BOK 이슈노트 - 한국은행이 웹사이트에 기고하고 있는 뉴스레터 형식의 경제현안을 연구 분석한 글
*불가근불근원 - 대인 관계에서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는 뜻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4.8.6.(화) 07:30,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경제수석 등과 함께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하여,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지난 주 후반 미국 증시가 ①7월 고용지표 부진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 부각, ②주요 빅테크 기업 실적 우려와 밸류에이션 부담, ③일본 은행의 금리 인상 후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④중동지역 불안 재부각 등이 중첩되면서 큰 폭 하락하였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요인들에 대한 미국 시장의 평가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주말 이후 아시아 증시가 먼저 시작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과도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 주요지수 변동률(%, 8.5일 장마감) : (美 나스닥)△3.43, (美 S&P)△3.00, (유로스톡스50)△1.45,
(韓 KOSPI)△8.77, (日 니케이)△12.40, (홍콩항셍)△1.46
참석자들은 과거 급락 시에는 실물·주식·외환·채권 시장에 실질적인 충격이 동반되었던 반면, 이번 조정은 해외발 충격으로 주식 시장에 한해 조정이 되어 과거와는 다른 이례적 상황으로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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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시장 참가자들이 지나친 불안심리 확산에 유의하면서 차분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최 부총리는 중동 지정학적 불안 재확산, 미 대선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당분간 관계기관이 가장 높은 경계감을 갖고 24시간 합동 점검체계를 지속 가동하는 한편, 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Contingency Plan)에 따라 긴밀히 공조해 대응하고, 필요시 시장 안정조치들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 대응체계 유지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외환·채권시장 선진화, 공급망 확충 등 우리 자본·외환시장의 체력 강화 및 대외 안전판 확충을 위한 과제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키워드
성적순 대학진학의 불공정성 -> 주요 대학 신입생 선발인원을 지역별 인구비례로 할당
과도한 교육열 -> 서울쏠림 집값상승 저출산 -> 금융불안으로 확대
비수도권 거점도시 균형발전 필요
금리 가계부채 문제가 산재
韓 ‘10년 초저출산’ 주범은…“여성 고용률 상승, 수도권 밀집”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경제분석’ 논고
OECD 35개국 출산율은 ‘집값-혼외출산’ 크게 좌우
지난 10년간 한국의 합계출산율 급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여성 고용률 상승’과 ‘수도권 인구 밀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인식·제도가 개선되면서 맞벌이와 소위 ‘워킹맘’이 늘어난 반면 출산과 관련한 사회문화적 조건은 그에 맞게 성숙하지 못했고,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도권으로 몰려들면서 발생한 집값 급등, 경쟁 압력 등 비효율이 최근의 초저출산 현상을 부채질했다는 분석이다.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 경제연구원은 지난 30일 펴낸 학술지 ‘경제분석’에 ‘초저출산 원인 및 정책 효과 분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분석을 중심으로’ 제하의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을 작성한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소속 성원·유인경·정종우 부연구위원은 저출산의 주된 원인을 크게 △경제적 △사회문화적 △제도정책적 요인으로 분류한 뒤 OECD 국가 간 비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이 한국의 출산율 하락과 더 연관됐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최근 10년(2012~2021년) 동안 한국의 출산율 급감(1.30→0.81명)은 여성 고용률, 도시 인구 집중도 변화의 기여도가 제일 높게 나타났다.
저자들은 “2000년대 이후 여성에 대한 성 역할 기대와 사회적 규범, 교육 수준의 변화는 여성 노동 공급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청년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자 수도권으로 대거 유입하면서 발생한 혼잡 비경제(congestion diseconomies)가 출산율 감소와 연관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음으로 10년간 출산율을 가장 많이 끌어내린 요인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하락과 주택 가격 상승으로 지목됐다. 반대로 가족 관련 정부지출, 청년 고용률의 변화는 출산율을 밀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여성의 노동 공급은 절대적으로 출산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없다.
논문은 “최근 고소득 국가에서 여성 노동 참여율과 출산율 간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선행 연구는 이런 관계가 보육 서비스 시장의 발달, 가족 친화적 제도의 도입과 확대, 성 역할에 관한 사회적 규범의 약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보였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노동 환경이나 가정 내 가사, 자녀 양육의 합리적 분배 등 사회문화적 조건이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출산율 간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논문은 시사했다.
한편 연구진이 OECD 35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국제적으로는 2000~2021년 출산율 증감에 ‘집값’, ‘혼외출산’의 기여도가 가장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OECD 평균적으로 합계출산율은 주택 가격이 내릴 때 가장 많이 증가했으며, 혼외 출산 비중이 늘어나는 정도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증가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주택 가격의 경우, 2000~2021년 도시 인구 집중도와 막상막하 수준으로 출산율을 끌어내렸다. 분석 기간을 최근 10년이 아닌 20년으로 늘리면 집값이 저출산 현상에 미친 부정 영향이 확연히 드러나는 셈이다.
다만 분석 모형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요인들을 합친 ‘기타 요인’은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저출산 기여도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논문은 “이는 본고의 모형이 다양한 요인을 고려했음에도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출산율 급감 현상의 이면에는 가족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 노동 행태의 변화, 젠더 갈등 등 측정하기 어려운 변화가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내 견해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된 것에 반해, 그를 뒷받침해줄 사회적인 기반과 조건이 그에 맞춰 성숙하지 못하였다는 논점이 정확히 맥을 짚었다고 본다. 내년부터 공무원 육아휴직 전 기간(최대 3년)이 승진을 위한 근무경력으로 인정되고, 육아휴직 수당도 휴직 중 100% 지급된다는 인사혁신처의 최근 발표가 있었다. 인력공백으로 인한 직원들의 반발이 있는 분위기이지만 공무원과 공공기관에서부터 육아복지 관련 기업문화를 확대해나갈 가능성을 열었다는 면에서 청신호다. 공공기관에서 출산과 육아를 독려하기 위한 단순한 고육책에서 끝나지 않고 개혁안이 완전한 조직체계로서 자리잡는다면 사기업들에도 그 문화가 확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