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과 공 동 체 이 야 기
2011-03
공 감 대(共感帶)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우리는 지난 한달 이상을 추위의 매서움에 싸여서 그 안에서 몸서리를 치면서 지낼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냉냉한 기류가 급기야는 이 나라에 병을 불러다 일으켰는지? 발굽이 갈라진 짐승들에게는 돌림병처럼 떠돌아다니는 구제역의 여파에 밀려 온 나라 안의 그 많던 짐승 떼들이 땅속에 생매장을 당하는 신세들이 되었다. 말 없는 짐승이 무슨 죄라는 말인가? 그것은 문명의 이기라는 호젓한 것에 이어져가며 사는, 우리 인간들이 톡톡하게 치러내듯 맞이해가며 겪었어야 될 서릿발을, 애꿎게도 땅 속으로 발버둥거리며 함몰되어간 소, 돼지가 흙더미의 벼락을 뒤집어 쓴 꼴이 되고만 형국이다. 사람의 몫을 수레에 싣고 가는 소에게 목숨까지 내어놓으라는 날강도들이 바로 사람이라는 군상들이다. 이번에 그 소, 돼지의 짐승 떼들이 바로 사람들의 담봇짐을덤터기로 쓰고 흙 속으로 초주검이 되어 들어가는, 그 판이하게 뒤범벅이 된 그 꼴의 세상? 막말로 말하자면 아뿔싸의 개차반이(?) 안겨다준 세상이다. 어쩌면 하늘에서 그 분께서 내려다보고는 쯔쯔쯔 혀를 차면서 “이 소, 돼지만도 못한 사람들아......” 두려운 노릇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꼴이 된 것은, 다음의 성서 얘기대로 패역의 기세에 들뜬 기고만장한 사람들이 쌓고자하는 금자탑의 깃대 위에 형통과 안락이라는 깃발을 휘날리며 휘항하게 살아가려고, 오늘도 각선(角線)의 비탈의 길을 미끄러져 가면서도 꾸역꾸역 기어오르고들 있다. 사람들은 지금도 속이 들여다보이는 자신의 유리 위를 걷고들 있다. 그 모습을 성서에서는 기질(氣質)을 지녔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고 말았냐고 선견자는 하나님께 도리어 묻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爭辯)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계속해서, 닥쳐드는 구제역 같은 얘기를 그 책에서는 말을 한다.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예레미야 12:1,4). 사람들이 제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게 되면, 곧 이어서 방자하게 되고, 더 치달으면 극악무도(極惡無道)라는 길의 끝점을 밟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패륜아(悖倫兒)라는 낙인(烙印)이 그들의 살갗을 파고 들어갈 것이다.
소와 돼지 떼가 그렇게 열사들처럼 흙더미에 무치어 갈 때, 몇 십 년 만에 찾아든 매서운 추위를 겪어내기 위해서는 미리 불과 물을 잘 채비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이에 미치지를 못한 늦장대응으로, 물이 얼어붙으며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방을 데우는 불통에 물이 조달되지 않게 되어 불도 얼어붙은 꼴이 되어, 마치 움츠린 그 꼴이 이겨내어야 할 긴 한파의 세월처럼, 추위에 작은 시름을 하며 몸 떨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람 곁에 물과 불이 없게 되면, 그 전에도 말하였듯이 그 안의 사람들은 춥고, 배고프고, 잠을 못자는 혹여 사람이 겪게 되는 삼고(三苦)를 맞이하게 된다. 불도 통하지 않는 냉냉한 한기를 이겨낼 힘은 없고, 그래서 집에 안주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그 자구책으로 아이들은 시내의 할머니 댁에 가서 있게 하고, 처와 나는 아랫집의 공동체에서 찾아든 사람마냥 겨우겨우 보내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처해진 것을 핑계로 여기고, 지난달 소식지는 2003년 6월에 올렸던 박 목사님의 “신사적인 국민의식”을 재탕하여 실었다. 지금도 다시 위급한 세태라고 마음을 다져가며 책을 읽자는 이야기가 숙제처럼 얹어 지게 되었다. 그리고 공동체 이야기에서는 1990년대 초에 공부를 배워주는 선생으로 자처하며 지낼 때, 맑은 마음의 수정과 같은 수진(秀珍)을 만나, 그가 겪어가며 이름 같이 보배로운 값의 삶을 이어가지 못한 채, 꺾이어 저서 기울어져가는 꽃송이와 같은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던 상황을 글로 기록해 놓았었는데 그것을 옮겨 실었다. 글은 삶을 끌어오는 과정을 기록 속으로 담아야 했었는데, 나 자신을 뭉그적거려가며 이끌기도 힘이 부쳐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지나쳐간 것의 망상에 묶여있었던 듯하다.
이 나라의 수장은 ‘소통(疏通)’이라는 말을 말거리고 많이 들고 나왔다. 그 말의 시발이라서 그런지 말께나 한다는 많은 사람들은 말 속에 소통이라는 말을 은근짜로 끼워가며 얘기들을 이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이 말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게 된 것은 통 속을 통해서 가고, 와야 할 것들이 다다르지를 못함 인듯하다. 우리네의 어르신들은 그 분들의 표현 없는 은연함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겸연하게 배어들어가게 하였다. 예수께서도 말하였다. “이 시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과 같을까?” 마치 장터에서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 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하는 아이들과도 같다(누가복음 7:31-32 -공동번역성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종교인인 레위인도 그냥 지나가고, 성직자인 제사장도 그냥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측은히 여겨 그 사람의 아픔을 자기가 당한 어려움처럼 여기고 그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었다(누가복음 10:30-37). 그냥 지나쳐 간 레위인이나 제사장의 위치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자기 임무가 있고, 바쁘고, 더구나 피를 만진 부정한 손으로 어떻게 제사일을 맡아볼 수 있었겠는가? 그에게는 제사일보다 중요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신념에 의거하면 도드라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옳게 여겨졌을지는 모르나? 그저 지나침이 간과하고 가버리는 발 빠른 행동거지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바로 뒤를 돌아다보고만 갔을, 빠뜨린, 그래서 놓쳐버린 회한의 몸가짐에 불과했을 것이다. 바로 공감(共感)을 스치고 가버린, 무감(無感)이 무의식(無意識)을 비저 낸 행차들이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바로 공감함에 있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느낌을 알아차려 주자는 것이다. 상대방의 느낌을 무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런 느낌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이때 서로간의 신뢰가 자라고, 신뢰 속에 공감대(共感帶)가 매듭처럼 묶여져 가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비람 장길섭 목사님은 다음처럼 큰 말을 하신다. “여기 있지만 여기 아닌 데 있는 사람. 그래서 여기 없지만 언제나 여기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런 사람...... 이 무정의 세월을......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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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이은주 김복순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임헌선).충전교회.신평교회.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이은주.최성재.유성반석교회.김기홍.최선희.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4인).양오석.채윤기(박현실).수영교회.김복순.대덕교회.신건태.이원교회.진명구.조정리교회(이정애외1인).금산주부클럽(4인).사랑의쌀나눔공동체(장진성).이건희.살림교회(박상용외15인).금산군청(3인).주식회사EG(이광형)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