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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의 길
1972.04.01 (토), 프랑스 파리 파리교회
타락에 의해서 우리들은 사탄의 피를 이어받았습니다. 인간시조 아담 해와가 만약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죄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테지만 타락에 의해서 사탄의 자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만 주관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사탄이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탄이 인간의 주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분립섭리의 공식
사랑은 통제력, 지배력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원리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것이 불륜의 사랑이더라도 사탄은 인간에 대하여 그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의 본래의 주인이므로 결국 하나님과 사탄은 함께 인간에 대하여 그 소유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담을 둘로 잘라서 하나님과 사탄이 나누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리적 관점에서 인간을 둘로 분립하기 위한 어떤 룰(rule)을 정한 것입니다. 즉, 내적 존재로서의 하나님과 외적 존재로서의 피조물이라는 입장에서 내외의 관계와 주체 대상의 관계에 의해서 하나님은 그 분립의 룰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그들에게서 태어난 두 아이를 통하여 분립 하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사탄을 표시하는 표시체이고, 아벨은 죄 없는 아담의 입장을 표시하는 표시체입니다. 차남(아벨)을 하나님은 내적 입장에 세운 것입니다. 아벨은 악의 요소가 적은 쪽, 바꾸어 말하면 아담과 해와 사이에 맺어진 제2의 사랑을 표시하는 표시체인 것입니다.
아벨은 두번째 사랑의 열매입니다. 가인은 첫번째 사랑의 열매이며, 사탄을 표시하는 표시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차남인 아벨을-해와와 천사장과의 관계보다도 해와와 아담과의 관계가 더 가까우므로 하나님 편에서 취한 셈입니다.
그런데 본래의 명령계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담,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천사장에게 이르는 것이 순서였으므로, 이 경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아벨로부터 가인에게로 이르는 순서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위치요, 관계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먼저 이 공식을 복귀함으로써 잃어버린 원리를 되찾아 가는 것입니다.
타락행위에 의해 인류의 혈통은 교차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탄의 피가 인류의 혈통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복귀는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때문에 차남 아벨이 장남의 장자권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타락은 어머니의 태내(胎內)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복귀도 어머니의 태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거기가 악의 근원지가 되고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므로, 복귀에 있어서도 그 원인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 두 형제를 내세워서 장남의 장자권을 복귀하는 섭리를 행하려 하게 된 것입니다. 즉, 가인은 아벨의 위치로 내려가야 하며, 아벨은 가인의 위치, 즉 장남의 위치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행위는 아담과 해와 때의 타락행위의 반복입니다. 즉, 복귀된 입장은커녕 다시 천사가 아담을 주관한 입장에 서고 만 것입니다. 이 부분은 좀처럼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이므로, 그림으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나이 차이가 있는 형제를 가지고는 너무 지나치게 거리가 있으므로 하나님은 더욱 가까운 사람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즉, 이 복귀 섭리를 더욱 가까운 기준, 근원에 가까운 기준에서 행하려고 한 것입니다. 최선의 방법은 가인과 아벨의 생명을 되돌려서 어머니의 태내에까지 되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중앙에서 겹치는 것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1과 11는 서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1의 부분은 11의 영역에 반복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에서와 야곱, 쌍동이 형제를 통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적용한 것과 같은 원리인데, 야곱은 형 에서의 위치로 복귀되지 않으면 안 되며, 에서는 동생 야곱의 위치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쌍동이 형제의 어머니는 리브가였습니다. 그녀가 임신하였을 때, 그 태내에서 두 아기는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에게로 가서 하나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나라 국민이 네 태내에 있고, 두 백성이 네 배에서 갈라져 나온다. 한 백성은 다른 백성보다도 강하며, 형은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사명
야곱은 참소를 면하는 조건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떡과 팥죽을 주고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았어도 사탄은 그를 참소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자권은 복귀되고 아버지로부터의 축복은 야곱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전에 가인이 그렇게 했듯이 야곱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야곱은 잃었던 아벨의 위치와 마찬가지로 아담의 위치까지도 복귀해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21년간 하란으로 도망해 있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는 그 동안은 자신의 모든 사명을 완전히 다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1년 후, 재산을 모아 가지고 그는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타락의 과정를 보면, 어머니가 그 타락행위를 선도하고, 아들이 그 행위를 완결한 것이므로, 모자가 합해서 인간에게 타락을 초래한 것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복귀의 과정에 있어서는 그 반대의 경로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 때에는 어머니 리브가와 차남 야곱이 목표 달성을 위하여 협력한 것입니다.
타락의 과정를 보면. 해와는 아버지(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기 오빠인 아담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에 있어서도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받게 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장남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두 형제의 아버지 이삭은 하나님의 입장이며 그 아들 에서는 가인의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기대(基臺)는 세워졌습니다만 아직 실체로서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그때까지 야곱의 어머니는 그 사명을 완수하고 있었지만, 다음은 야곱의 차례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사명이란 천사에 의해서 침해되어진 아담의 위치를 복귀하는 일이며, 또 가인에 의해서 살해된 아벨의 위치를 복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에서의 위치로 돌아가. 야곱의 위치로 내려간 에서를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21년 후의 야곱의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은 아담이 어떻게 하여 사라져 갔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담의 위치 복귀가 우선 첫째로 중요한 그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천사에게 주관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입장을 복귀하기 위해 야곱은 천사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얍복강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는 천사와 하룻밤내 싸웠습니다. 그 결과 무엇이 일어났습니까? 천사는 야곱의 승리를 인정하여 그를 축복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본연의 위치는 복귀된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는 왜 야곱을 축복하기 전에 그의 환도뼈를 친 것일까요? 인간의 타락행위는 몸의 그 부분, 즉 환도뼈를 잘못 씀으로써 초래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죄를 범했던 부분을 침으로써 탕감은 완수되어졌던 것입니다. 즉, 구약성서에 있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고 하는 법칙이 행해진 셈입니다. 그런 까닭에 천사는 야곱을 축복할 수가 있었던 갓입니다.
야곱의 두번째 사명이란 무엇일까요? 천사에게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 즉 내적 승리를 함으로써 아담의 위치는 복귀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조건 아래에서 그는 아벨의 위치를 복귀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21년 후에 하란으로부터 돌아와 형에서의 마음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전재산을 선물로 주고 자기는 다만 형으로부터 축복받는 것을 요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형 에서는 그를 받아들여 환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에서는 동생의 위치로 내려가고 야곱은 형의 위치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야곱은 그의 손자, 즉 요셉의 아기를 축복할 때, 팔을 교차시켜 왼손을 장남 므낫세의 위에. 오른손을 차남 에브라임 위에 놓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위치를 복귀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야곱의 성격은 대단히 교활해 보입니다. 무슨 까닭에 하나님이 이와 같은 교활한 야곱에게 은혜를 베풀고, 들어 쓰시고, 또 축복하셨던가! 그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이와 같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리가 이와 같이 해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이와 같이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한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일이 믿어집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러한 사실들은 수천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지만 원리가 풀기까지 그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참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이 그림의 D점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승리의 기대를 세웠더라도 아직 이 E에 있어서는 그 원래의 입장으로는 돌아가지 못했고, 그 때문에 다시 이 위치까지 복귀해 오는 길을 통과해야 했던 것입니다. 즉, 이 거리 D를 복귀하기 위해서 다시 또 하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야곱의 연령, 그 시점에서 멈추어 버렸다면 야곱의 그때와 연령 이하의 기준은 복귀 안 된 채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야곱의 때에 시작하여 그의 어떤 연령에서 완성되었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렇다고 하면 완성된 때의 그 야곱의 연령 이상의 모든 세대는 이 조건에 의해 복귀되지만 그 연령 이하의 세대, 곧 갓태어난 어린아기로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세대는 복귀되지 않고 흘러가 버리고 말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더욱 철저한 섭리가 근원지 곧 어머니의 태내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말에 의해 이루어진 복중복귀섭리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제3차의 섭리는 또 한번 타락의 근원지인 어머니의 체내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어머니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했으므로, 그 해와의 위치를 복귀하여야 할 다말은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자존심도, 긍지도 잊어버리고, 나아가 생명마저도 버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해와는 불신앙에 의해 아버지인 하나님을 버리고 그 대신 사탄을 아버지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입장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반대로 다말은 아버지인 하나님과 함께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해와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타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다말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의 시아버지였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하나가 됨으로써 그녀는 임신했습니다. 결국 다말은 시아버지에 의해서 아들을 임신한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을 참고로 하여 다시 살펴봅시다. 유다에게는 세 사람의 아들이 있고 다말은 그 장남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죽고, 이와 같은 경우 대개 유대의 관습으로는 그 차남에 의해서 아들을 낳아야 하지만, 차남도 죽었고, 삼남은 너무나 어렸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하나님의 복귀되어 온 혈통을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시아버지 유다에 의해 아기를 임신한다고 하는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긍지도 버리고 생명까지도 내던질 각오를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장으로 가는 유다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유다는 그녀가 자신의 며느리인 줄 몰랐습니다. 영리한 다말은 먼 훗날을 위해 세 가지 증거품을 요구했습니다. 하나는 도장, 또 하나는 지팡이, 또 한 가지는 끈이었습니다. 왜 그녀는 이와 같은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당시의 유대의 율법에 의하면 만약 과부가 임신하였을 경우에는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일이 지나자 다말의 임신이 남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은 퍼지고 유다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유다는 몹시 노하여 그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불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다말은 가지고 있던 증거품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신은 그 증거품의 소유자에 의해서 임신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다말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생명을 건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목적도,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다말은 해와와 전혀 반대의 경로를 걸음으로써 타락한 해와의 위치를 복귀했다는 조건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여 온 해와님들, 다말이 잘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하나님만이 알고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숨겨져 온 수수께끼와 비밀을 고작 3, 40분에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최고로 혜택을 받은 행운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다말은 쌍동이를 임신했습니다. 하나님은 2천년 동안 그 순간을 기다려 온 것입니다. 출산의 때가 와서 장남 세라가 그 손을 내밀었으므로 산파는 그 손목에 주홍색 실을 감았습니다. 이것은 끝날에 공산주의가 먼저 나타날 것을 상징적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7천년 역사(6천년 복귀역사+천년왕국=역사의 완성)의 상징으로써 사탄적 공산주의의 역사가 70년째에 멸망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978년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즉, 공산주의는 1917년(볼셰비키 혁명 성공의 해)에 시작한 것이므로 대체로 그때부터 60년간 지속하여 피크(peak)에 이르고, 그 1978년을 경계로 하여 그후는 내리막 길을 걷게 되며, 70년이 지나면 절멸(絶滅)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은 공산주의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버리고 떠날 때입니다.
그런데 싸움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일어났습니다. 차남 베레스는 세라를 제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이 복귀, 이 역전(逆轉)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다의 혈통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원리는 이 점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점에서 가인은 아래로 내려가고 아벨이 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역사는 다시 넓은 범위, 곧 가정에서 씨족, 씨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기준으로 진행하여 온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사탄세계의 확대도 또한 그것에 병행하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다른 진영은 국가적 기준까지 진행하여 두 개의 다른 지역으로 분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림의 F는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G는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탄세계는 가정적 기준에서 씨족, 민족, 국가적 기준까지 확대하여 사탄국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작은 가정적 기준에서 씨족적, 민족적 기준으로 확대하고 있는 원의 H는 가인국가입니다. 따라서 G는 아벨 국가, 곧 이스라엘 선민국가이며, 역시 가정으로부터 씨족. 민족, 국가에로 확대되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선민 그 한 국가를 형성하기를 2천년간 기다려 온 것입니다. 사탄이 이미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2천년 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탄 국가보다도 우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정적 기준으로부터 씨족, 민족, 국가적 기준으로 역사노정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많은 과오를 범했습니다.
참부모에 의해 완전히 복귀되어야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오실 수 있도록, 이스라엘 민족이 범한 모든 과오를 복귀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가인의 입장에서 나타나고 한편 예수님은 아벨의 입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과 일체가 된 이스라엘 선민에게는 주체적인 입장이 되어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이 민족 위에 오신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하게 일체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절대적인 주체(예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이 되어 결코 파괴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출발한 하나님의 섭리는 최후로 절대적 주체와 절대적 대상이신 참부모에 의해서 정점에 이르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참부모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혈통은 세워졌지만, 영육을 함께한 참부모의 현현은 실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림은 기독교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것은 영계에만 한정되어 있고 영적 구원만 이루어 온 것이며, 육적 구원, 즉 육신의 속죄는 실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까지 기독교에는 영적인 아버지와 영적인 어머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오시면 우리들은 모두 그 부모에 의해 영육이 함께 다시 태어나기 위해 조건적, 혹은 상징적으로 어머니의 태내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노정을 더듬으면서 걷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기독교에 있어서는 성령은 어머니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영(靈)인 성령을 통과하여 아버지 영(靈), 즉 예수의 영을 통과하여 영적 기준에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태어난 셈이지만 다시 한걸음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보면, 생명의 기원은 아버지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태내에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혈통은 교차하고 복귀되었지만, 이 경우 아직 아버지를 맞이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까지 크리스찬들은 어머니의 영인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의 근원, 즉 생명의 기원인, 아버지이신, 와야 할 그리스도의 앞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며 기다려 온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이미 아들과 딸의 생명은 모두 아버지인 아담의 몸 속에서 하나의 씨알로 출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즉, 아들이나 딸이 될 씨알은 아버지의 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영적으로만 태어난다고 하는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됩니다. 영과 육, 곧 영육이 함께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육이 함께 재출발하기 위하여 씨알의 입장에까지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섭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참부모가 되는 신랑과 신부로 와서 그 참부모를 통하여 우리들은 다시 뿌릴 씨앗으로 되돌아가 가지고, 새로운 생명으로서 이 세상에 바로 태어나는 것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태어날 때에는 하나의 새로운 복귀된 생명으로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해 온 사실로 볼 때 재림주, 즉 새로운 메시아는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복귀된 참자녀의 입장에 서려면
예수님 때에 세계는 완전히 복귀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오늘날까지 확대를 계속하여 세계적인 기준으로까지 확대되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끝날에는 세계는 둘로 나뉘어져 한쪽은 사탄을 대표하고 또 한쪽은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그것 이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끝날에는 큰 혼란과 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메시아는 이들 모든 배경과 기대를 상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새로운 메시아는 영적으로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씨알의 입장에 있는 크리스찬의 모든 것을 상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크리스찬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태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몸 속에 있는 씨알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와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일 뿐이므로 우선 실체인 아버지가 처음에 나타나 기대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 속의 E에 기대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 속의 E에서는 어머니가 그 사명을 수행했지만, J에 있어서는 아버지가 큰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 참아버지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 될 7년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의 몸 속에 있는 씨알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근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들은 모두 타락하지 않은 인간인 아버지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타락하지 않은 독신인 아담의 몸에서 출발한 씨알이 어머니의 태내에 깃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씨알은 진짜이며 우리는 그 위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진정 그 일은 통일교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적 사위기대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배척당한 것이므로 그 예수님의 위치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재림에 의한 어려운 일이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미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 성장해 버린 우리는 글자 그대로 완성한 아담의 몸 속의 씨알의 입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부모 및 그 부모로부터 태어난 참자녀와 일체화함으로써 거듭나기 위한 조건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완전히 굴복함으로써 양자(兩者)는 모두 복귀된다는 원리가 있으므로, 이 원리에 의해 우리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참부모, 죄 없는 참자녀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과 일체화함으로써 우리는 복귀된 자녀로서 같은 혜택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죄 없는 참자녀가 참부모를 통하여 태어나게 될 때 우리는 음식물과 그 밖의 같은 성분의 것을 나누어 받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참자녀의 입장에 참여하는 노정을 통과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통하여 참자녀와 일체화하고 새로이 태어날 자녀로서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까? 아버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부모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버지만이 아니고 부모와 그 자녀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성은 누구를 통하여? 물론 참자녀를 통하여서입니다. 참부모는 참아들과 참딸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성은 모두 참아버지와 참어머니와 그 참딸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남성은? 참부모와 그 참아들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자가 먼저 타락했으므로 여자의 복귀가 먼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남자의 복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초에 복귀된 여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참부모로부터 맨 처음 태어나게 된 딸인 것입니다. 최초의 남자는 참부모로부터 두번째 태어난 자녀로서의 아들입니다. 이러한 것은 아주 골자(骨子)이고 매우 간단한 설명입니다. 이러한 설명의 배후에는 대단히 깊고 복잡한 과정이 있음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죄 없는 참자녀의 탄생에 의해 천적 사위기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천적 사위기대의 복귀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의 아무것도 이 기대에 연결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민국가가 복귀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적 사위기대인 이 한 점에서 시작하여 가정적 기준으로부터 씨족, 민족, 나아가 국가적 기준으로 확대되어 가는 노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중심 핵이 되는 것은 천적 사위기대가 조성된 천적 가정인 것이며, 거기에 세워지는 국가야말로 가장 강하고 무적의 국가이며, 그야말로 이스라엘 국가가 성취하지 못하였던 국가인 것입니다.
그 국가는 다른 모든 사탄주권을 이겨내어 외적 세계의 중심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림의 1은 사탄세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번 천적 국가가 복귀되면 그것은 두 개의 주권으로 확대하여 세 개, 네 개, 결국 전세계를 다 덮기까지 확대되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적 국가에 속하는 민족은 자동적으로 무엇이라도 함께 복귀하고 말 것입니다. 그 한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하기까지는 절정을 가는 것 같은 노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 주권을 복귀하는 곳까지 가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복귀의 성업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만약 사탄적 원수(元首), 혹은 그 정부가 서게 되면 모든 것은 무너져 갈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복귀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시급한 임무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하는 일이 우리의 가장 긴급한 임무인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우리는 참부모와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 일본, 그밖의 온 세계의 식구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여러분은 이 복귀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 대해서 '당신은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니고데모는 '사람이 나이를 먹고 난 후에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시 어머니의 태내에 들어가서 태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반론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당신은 이스라엘의 교법사로서 이 정도의 일을 모르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원리를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새생명이라는 말은 모두 이와 같은 패턴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의 E점, 즉 혈통 복귀의 자리는 결국 어머니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더럽혀진 혈통은 하늘의 혈통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이 창조되어 근본적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은 참아버지를 통하여, 즉 참아버지의 몸을 통해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새로운 창조의 때로부터 영육이 함께 속죄받는 완전한 구원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자녀들은 구원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귀라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 과정인가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은 진리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진리의 모든 것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선생님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무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졸업증서를 받는 대학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입장이 얼마만큼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금년의 표어는 '통일전선 수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늘의 기대를 지키고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지 우리 모든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한국식구와 하나가 되어 통일전선을 수호하기 위해 함께 전진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상황으로 보아, 우리들의 걸음 가운데서 한국은 가장 견고한 기대가 세워진 나라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새로이 섭리를 시작하려고 하면 모든 노정을 최초의 출발점에서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제2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74년까지는, 이것은 야곱의 제2차 7년노정에 상응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다음에는 세계적 기대를 만들어 나가게 되고, 천국 복귀를 위한 충분한 경제력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만 복귀되면 모든 국가는 다 복귀되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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