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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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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민시대에서의 애민, 애국에 대한 이해
1. 애민, 애국에 대한 이해의 혁신 배경
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 쟁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 달리 전개되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반파시즘연합전선과 민족해방전선의 싸움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승리한 결과 자유와 평등이 형해화를 넘어 적극적으로 관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식민지였던 국가도 당연히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제국주의 세력은 사회주의권과 신생독립국가의 등장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날의 제국주의 세력을 다시 끌어모아 동맹을 형성해 우두머리 국가로 등극합니다. 현대 제국주의 등장입니다.
미국은 현대제국주의 국가로서 사회주의권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립 붕괴 정책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신생 독립국을 향해서는 형식적으로 독립을 인정하나 미국의 앞잡이 매국노를 내세워 지배하는 신식민지 체제를 형성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난날과는 달리 매국노의 위상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2. 신식민지에서의 매국노의 위상 변화
강대국이 패권을 행사하여 침략할 때 거의 대부분 외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매국노들이 등장합니다. 매국노들의 등장은 외세와의 싸움에 지극히 불리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역량 관계의 변화를 두 배 이상으로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세와의 싸움을 철저히 벌이는 데에 있어서 매국노의 응징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띠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날의 매국노들은 국내 기반이 취약하였습니다. 아니,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식민지 모국의 힘에 뒷받침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위해 외세에 빌붙거나 그렇지 않으면 침략국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매국노들은 국내적 기반이 있을 수 없었고, 오로지 외세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외세를 몰아내면 이들 매국노는 당연히 나라와 민족의 반역자로 처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식민지 지배 체제로의 전환은 이런 매국노의 위상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독립을 인정한 이상, 한 나라를 이끌려면 어떤 형태로든 간에 국내적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쿠데타 형식이든, 아니면 형식적인 국민투표를 통해서든 국내적 절차를 밟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적 절차를 밟는 과정은 지난날의 매국노와는 질적으로 다른 위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절차를 밟았으니 국내에서 주인 행세할 수 있는 권한이 성립하였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외세의 허수아비가 아니라 국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담당자로 등극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실질적으로 독립을 이루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외세와의 싸움만이 아니라 외세의 앞잡이 매국노와의 싸움이 중대한 영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연한 게 이들 매국노가 외세와의 싸움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는 관계로 이들을 응징하지 못하면 외세와의 싸움 또한 힘 있게 전개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3. 신식민지에서 배신세력의 등장 의미
신식민지 지배 체제로 전화하여 매국노가 국내 절차를 밟아 주인 행세할 권한을 획득했지만, 그것은 지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립을 이룩했는데도 형식적인 인정으로만 그치고 도리어 매국 행위를 벌이는 자가 주인 행세한다는 것은 민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세력 간에는 커다란 충돌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매국노들에게는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과 협조가 이뤄지고, 반면에 애국 세력에게는 탄압이 가해집니다. 한국에서 미군정 시기에 친일 매국노들이 친미 매국노로 변신하는 데에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이뤄졌고, 여순항쟁과 제주도 4·3항쟁 과정에서 엄청난 폭력적 탄압이 가해졌던 사실은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런 형태로 장악한 권력은 지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유린하는 독재정치가, 특히 군사독재정치가 실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취약한 권력 기반 때문에 외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외세와의 협정을 맺어갑니다. 즉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형태의 불평등한 협정과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것은 외세가 신식민지 지배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매국노를 지원하고 양성했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식민지매국사회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를 엄밀하게 표현하면 (신)식민지매국사회라고 해야 하지만, 구식민지나 신식민지도 식민지이고, 어차피 매국노가 국내에서 주인 행세해도 외세의 지배가 관철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식민지매국사회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조차 유린하는 군사독재 체제는 민의 항거에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울러 제국주의 세력의 수탈 체제의 변화와도 관련해 토사구팽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제국주의의 수탈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맨 처음에 원조와 차관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관계에 맞게 한국의 경제를 바꿔나갔으며, 급기야 경공업과 중공업의 분업 체계를 형성해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형성되고 발전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이 전개됨에 따라 자유와 평등을 유린하는 독재정치에 대한 투쟁도 적극적으로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군사독재 세력은 더 이상 지탱되지 못하고 붕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야말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사회가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민의 이해와 요구를 가로막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바로 배신세력입니다. 배신세력은 군사독재 세력과 싸울 때에는 민과 함께했지만, 군사독재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자기들이 권력을 잡자,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민을 배반한 세력입니다.
이들은 군사독재 세력이 자유와 평등을 유린했던 데에서 벗어나 형식적으로 인정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려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않았으며, 나라의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지난날 매국노의 핵심 세력이 군사독재 세력이었으나 이제는 그 자리를 배신세력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배신 정권의 등장은 김영삼 문민정부부터였습니다. 이들이 등장하게 된 국내적 배경은 반독재 투쟁이 거국적으로 전개되면서 군사독재 체제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세계화 정책이 추진된 시대사적 배경이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1980년대 말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세계유일패권을 형성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제국주의로부터 세계제국주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라는 장벽도 무력화하면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세계 유일적 패권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거대독점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유통되어야 했고, 그러자면 민족성과 국가의 주권이 무력화되고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군사독재 체제에서는 받아 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사독재 체제는 자유와 평등조차도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민족성 형태로 치장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지만, 겉치장의 민족성도 배제하고 국가라는 주권조차 무력화하여 미국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지배와 수탈 체제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세력이 요구되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배신세력이었습니다. 군사독재 세력을 대신해 배신세력이 매국노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애민과 애국을 이해하는 데 또 한 번 혁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4. 애민시대에서의 애민과 애국의 심화 발전
배신세력이 등장하였다고 해도 1945년 해방된 뒤 독립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신세력에 대한 반대 투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작용의 결과로 도리어 역사를 되돌리려고 하는 반동세력이 등장하였고, 그 이후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이 한국 사회의 권력을 놓고 나눠 먹는 과정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배신세력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개혁이라는 언사를 수없이 사용하며 개혁할 것처럼 민을 기만하였지만,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33년의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우선 국제 정세에 있어서 영원무궁할 것 같았던 미국의 유일 패권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미국은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동맹국들마저 약탈하고 수탈하는 방식으로 나타났으나, 그것은 위기를 모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몰락을 재촉하였습니다. 미국의 그런 패권적 행태는 각 나라에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욱 확인시켜 주는 과정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권력을 나눠 먹을 것 같았던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의 정체가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를 다 장악하고도 문재인 배신정권의 무능 속에서 개혁이 실패했고, 그 여파로 윤석열 반동정권이 등장했으며, 그리고 윤석열이 내란 범죄 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은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이 서로 권력을 나눠 먹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재명 정권은 이런 교훈을 받아 안고 나아가야 했으나 지난날의 배신정권의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돈을 어려운 국내 경제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미국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하건만 한미동맹 현대화에 굴복해 한국 땅을 미국의 대중국 전초 기지 역할로 전락하게 하고 있으며,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받아내야 하건만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일본의 한반도 재침의 야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들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은 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 국민의힘의 분열과 더불어민주당의 내분 사태입니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내분 다툼을 벌이지만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빈부격차의 해소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주권 회복에 대해서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개혁이나 주권 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의 민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민은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은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민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때는 민과 함께했다가 배신했던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민과 함께하는 세력이 새로운 정권의 주인으로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시대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시대에 맞는 애민·애국의 기치가 요구됩니다.
세계제국주의 세력의 형성과 함께 배신세력이 등장하여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지만, 민족성과 국가라는 장벽도 무력화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약탈 수탈하려는 체제가 형성되면서 무너지는 과정은 애민과 애국의 사상과 이론을 또 한 번 혁신시키는 과정을 겪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주체적 요구를 놓고 살펴볼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지난날에는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속에서 그 나라의 구성원이라면 자연스럽게 포괄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해관계의 차이도 사회의 객관적 조건의 차이에 기초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민이라고 하면 주되게 객관적인 처지를 위주로 놓고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객관적 처지보다는 실질적으로 누리려고 하는 주체적 요구가 더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자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처지가 아무리 좋거나 불리하더라도 결국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사회 객관적 처지보다는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려고 하는 자주적인 인간상이 사회 역사의 참다운 주체인 민임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애민이 시대의 발전에 따라 자주적인 인간상의 요구로 됨에 따라 애국도 주체적 요구에 따라 그 내용이 더욱 심화 풍부화되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애국의 기초는 주되게 핏줄과 언어, 지역과 문화의 공통성이라는 객관적 기초를 위주로 놓고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은 맞지 않았습니다. 분명 핏줄과 언어, 지역과 문화의 공통성을 가진 매국노가 매국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민족 성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불합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민족의 성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립하자면 객관적 측면을 기초로 놓고 바라보기보다는 민족이라는 공동체 집단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걸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주체적 요구로 놓고 판단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애국을 운명 공동체 집단으로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려고 하느냐 하는 주체적 요구를 중심에 놓고 보니 결국 애민과 애국의 내용은 거의 일치하고 동일한 내용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게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는데 애국이 애민과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애민과 애국이 일치하게 파악되니 매국 행위에 대해서도 더욱 주체적으로 파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날에는 외세의 앞잡이 역할을 하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짓거리를 주되게 매국 행위로 파악하였습니다. 반면에 패권을 추구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행위는 애국 행위로 도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침략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애국자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운명 공동체 집단으로 살려고 하느냐 하는 주체적 요구를 중심으로 놓고 애민과 애국의 내용을 살펴보자, 패권을 위한 침략 행위도 애국이 아니라 민에 반하는 반민의 행위가 될 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국가적이고 매국적인 행위로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확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식민지에서 매국노들이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것처럼 패권주의 세력 또한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민을 침략에로 내몰아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님이 밝혀진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이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민을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으로 내몰아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궁극적으로 패배함으로써 일반적인 나라로서 누려야 할 주권 행사마저 제약당하도록 했다는 것은 결국 그 침략 행위가 매국 행위로 귀결된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미 제국주의 세력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민을 침략으로 내몰아가는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미국 민을 전쟁터로 몰아넣고 죽게 만들고 있는데, 나중에 몰락한다면 그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해 국제 협정이 맺어져 미국의 주권이 제약받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식민지에서의 매국 행위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세력의 패권적 침략 형태 또한 궁극적으로 매국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에 반대해서 싸우는 것이 참다운 애국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애민과 애국의 내용이 이렇게 심화 발전된 것은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받으면 별반 의미가 없기에 실질적으로 누려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가능하다는 데에서 나오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실상 지금껏 한국 사회가 참답게 개혁되지 못했던 것은 자유와 평등이, 국가의 주권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방식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만은 예외, 자기 가족만은 예외, 자기 집단만은 예외, 자기 나라와 국가만은 예외라고 생각했을 때 주인의 권리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개인의 권리가 짓밟아졌을 때 언젠가 자기 자신이 그 당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어느 집단이나 국가가 짓밟아졌을 때 언젠가 자기 집단이나 국가가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애민시대에서는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가 실현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리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일치와 입체, 통일입니다. 모두의 이해가 일치된 부분에서는 확고히 단결하고, 이 일치된 부분을 견지하는 조건에서는 차이를 입체적으로 존중하여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로의 요구가 혼란되거나 모순됨이 없이 통일적인 전망성을 세워 풀어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애민시대에서는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을 구사하여야 하고, 현 시기의 핵심적 목표가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최대의 세력이 외세와 매국노이기에 이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현 시기 애민시대에서의 애민·애국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애민과 애국의 내용이 이렇게 풍부화해짐에 따라 그에 맞게 그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민이 직접 애민·애국의 정권을 세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모든 애민·애국 세력이 단합해 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을 벌여나간다면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가 건설될 것이고, 그러면 그 힘으로 애민·애국의 정권을 세울 수 있고, 끝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방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세상을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6. 8. 24.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