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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신심
SGI회장: ‘실증’의 힘입니다. ‘현증(現證)’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인간혁명의 실증을 보이는 것입니다.
“일체는 현증을 따를 것이 없으니”(어서 1279쪽) “도리(道理) 증문(證文)보다도 현증 이상은 없느니라”(어서 1468쪽) 하고 대성인은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가족은 그 사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훌륭한 것처럼 뽐내고 있어도 실제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족도 모르는’ 본인의 일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튼 “아아, 이 아이는 많이 바뀌었구나. 성장했구나” “남편이 어쩐지 멋있어졌다” -- 그런 식으로 느끼고 깨닫게 되는 법입니다. 그 ‘인간혁명’이야말로 ‘신통변화’입니다.
대성인 시대의 이케가미 형제가 신심을 맹렬히 반대하는 아버지를 입신까지 인도했던 것도, 형제가 아버지의 박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인간적인 훌륭함을 끝까지 보여줬던 결과가 아닐까요.
사이토: 신통변화(神通變化)란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혁명을 한다는 것이군요.
대성인도 “성불(成佛)하는 이외에 신통과 비밀이란 없느니라”(어서 753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다: 그렇다면 정장(淨藏)·정안(淨眼)이 ‘신변(神變)’을 나타냈다는 것은 당시의 민중의 기근에 맞춘 표현이라는 것입니까.
SGI회장: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요. 천태(天台)도 이것은 ‘세계실단(世界悉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간 사람들의 기근이나 지향성에 맞추어 법을 설하는 방법>
그런 뜻에서 신변(神變)이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신심을 가르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실증’이다 ‘인간혁명’이다 해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심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의 신심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어중간한 타성의 신심으로는 성불할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하는 불도수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여설수행(如說修行)이 아니라 아설수행(我說修行)입니다.(웃음)
어서 말씀대로 오로지 ‘광선유포를 위해 외곬으로’ 끝까지 신심해 나갔을 때, 숙명전환이 됩니다.
일국의 왕을 개심(改心)시키는 열쇠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한결같은 기원과 싸움으로 민중의 실력을 보이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상처를 입고 맙니다. 마땅히 그 준엄함을 감득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심을 맹렬히 반대하는 남편이 있어서
스다: 일가의 숙명전환을 이룩했다는 훌륭한 체험담을 들었습니다.
이전에 세이쿄(聖敎)신문에서도 소개된 지바(千葉)의 야마시타 지에코 씨<가마가야유코권(鎌谷友光圈) 부부인부장>입니다.
약 천 평에 달하는 자전거를 세워 두는 주차장을 경영하는 회사의 사장님입니다. 본인은 “당치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자전거 보관소 아주머니’에 지나지 않아요”라고 겸손해 하지만.
SGI회장: 아, 개인회관을 제공한 분이시죠.
스다: 그렇습니다. 염원하던 개인회관이 완성되어 이케다 선생님으로부터 야마시타 영광회관이라는 휘호를 받았습니다. 야마시타 씨는 ‘회관’이라는 글자가 보물의 저택으로 보여 선생님의 자애를 느끼면서 크게 감격했다고 합니다.
엔도: 남편이 신앙을 반대했었다지요?
스다: 그렇습니다. 이만저만한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결혼은 전쟁이 끝난 혼란기. 남편은 사업에 실패하고 도박과 술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살 집도 없어 일가족 4명이 아는 사람 집의 부엌 한켠에서 비와 이슬을 피하고, 낮에는 작은 공원에서 갓난아이는 땅바닥을 기어다녔다 - 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 덕분에 두 평 남짓한 방을 얻어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가난은 극심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데도 10엔짜리 동전 두 개를 쥐고 가서 한 무더기에 10엔 하는 정어리와 시금치 10엔 어치를 삽니다. 그때, 등에 업힌 어린애가 과자를 사달라고 보챕니다. ‘10엔짜리 동전 하나만 더 있으면 사줄 수 있을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복잡한 상점가를 정신없이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10엔이 없어 비참했던 심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GI회장: 원래는 명문 집안의 따님이었다지요.
스다: 예, 가고시마(鹿兒島) 태생으로, 생활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가정불화의 괴로움이 있어, 그런 부모에게 반발해서 남들보다 훨씬 결혼에는 신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결국, 어머니와 똑같은 숙명에 울게 되었습니다”라고. 야마시타 씨는 자립을 위해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어린애를 데리고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양친(兩親)이 잇달아 돌아가셨기 때문에 친정에 어린애를 맡길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린 남매는 고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각기 다른 고아원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아이들이 가여워져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결국 남편 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전보다 더 심한 폭력이 매일같이 계속되었습니다.
엔도: 지금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사이토: 입신은 아직 하지 않았군요.
남편을 원망하고 이혼만을 생각해서
스다: 입신은 1965년입니다. 실업상태인 남편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험 설계사를 했습니다. 남편도 형식상으로는 입신했지만 이상하리만큼 맹렬히 반대했습니다.
창가학회에 다니지 말라고 매일 밤,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며 구타했습니다. 술만 취하면 모든 것이 신심의 반대로 향했습니다.
어느 때는 불단을 도끼로 두들겨 부수고, 석유를 뿌려 태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본존님을 품에 안고 맨발로 뛰쳐나가거나, 쫓겨나 제목을 올리면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울면서 선배에게 호소하면, 따뜻하면서도 엄한 지도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한번 반대당하면 하나의 죄업이 소멸되었다고 기뻐하면서 내일부터 또 절복하러 나가세요!”라고.
드디어 남편은 규모가 큰 유리회사의 하청업자가 되었으나 돈 씀씀이가 헤퍼 가난은 계속되었습니다. 야마시타 씨는 그런 속에서도 언젠가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심정으로 가계를 힘들게 꾸려나가며 푼푼이 저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4백만 엔을 모았을 때 기뻐서 남편에게 통장을 보여주자, 낚아채듯 빼앗아 갔습니다. 이틀 후에 방바닥에 통장이 내팽개쳐져 있었습니다. 잔고는 한푼도 없었습니다. 모두 경마(競馬)로 날려버린 것입니다.
야마시타 씨는 말합니다.
“남편을 원망하며 오로지 이혼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로부터 ‘자신의 불행을 남편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당신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복운은 쌓이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 그 한 마디에 굳게 결심을 했습니다.
“법은 체(體)와 같고, 세간은 그림자와 같아서 체가 구부러지면 그림자도 비뚤어지느니라”(어서 992쪽)입니다.
생활상에 나타난 그림자의 흐트러짐에 일희일우(一喜一憂)해서 남편이 이렇다, 저렇다 라고 푸념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나의 숙업이니 내가 책임을 극복하자. 그리고 복운을 쌓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전부 내 자신의 경애인 것이다. 그때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원리를 깊이 확신했습니다.”
SGI회장: 바로 그러한 일념입니다. ‘모두 자신이 일생성불하기 위한 공부다’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일은 해결됩니다.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푸념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만큼 숙명전환은 늦어집니다. ‘내 숙업이다. 내 인생이다. 우선 내 자신이 인간혁명하자’고 정하고, 괴로워도 슬퍼도 어본존께 끝까지 기원해 나가면 반드시 길은 열립니다.
울기만 해서는 복운이 쌓이지 않는다
“남편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신으로 되었다!”
스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시타 씨는 ‘울기만 해서는 복운은 쌓이지 않는다’고 결의하고, 끊임없이 학회활동에 면려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뜻하지 않게 역 앞의 토지를 관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입신한 지 7년째인 1972년에 자전거보관소를 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마시타 씨의 심정이 바뀌어 갔습니다.
신심의 환희를 느끼지 못하는 남편이 정말로 가엽게 여겨졌습니다. 남편의 발심을 진지하게 기원하는 나날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심을 심화시키기 위해 남편은 최고의 ‘선지식’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남편에 대한 생각이 감사의 일념으로 바뀌었을 때, 남편의 도박병이 딱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어본존께 합장(合掌)하는 남편으로 되었습니다.”
1976년 남편이 식도암으로 쓰러졌습니다. 야마시타 씨는 “내 수명의 절반을 잘라 남편에게 주십시오. 함께 광포를 위해 싸우게 해주세요”라고 기원했습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남편에 대한 애정과 감사의 마음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비로소 지금까지 무자비했던 자신의 생명을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병원으로 뛰어가자, 줄곧 의식을 잃고 있었던 남편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침대에서 자신의 힘으로 내려올 수도 있게 되었고, “그리고 처음으로 광포에 대한 것, 학회에 대한 것 – 그 밖에 무엇이라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 통하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불법을 배우고 이듬해, 사명을 마친 듯 영산(靈山)으로 떠났습니다. 그 훌륭한 임종의 상을 보고 친한 친구 두 사람이 입신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수많은 공덕과 벌의 현상을 보여주면서 저에게 신심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선지식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그토록 처참한 고난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릴 수 있는 자신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애혁명은 경제혁명으로도 이어져 “돈이 계속해서 따라붙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염원했던 개인회관을 건설했습니다. 예전에 야마시타 씨 일가를 보다 못해 두 평 남짓한 방을 빌려주었던 친구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창가학회에 들어가 정말로 행복해졌구나!”
SGI회장: 흐뭇한 이야기입니다. 그 일가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야마시타 씨와는) 소카대학에서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무언가 기쁜 일을 말하며 “이렇게 행복해졌습니다!”라고 회원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모습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것만을 위해서 나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것은 전부 부수적인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성실한 모든 학회원 한 분 한분을 만나 감사의 말과 격려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진심어린 마음입니다.
그러나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그런 마음을 어본존께 진지하게 기원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부 여러분은 저를 대신하여 소중한 회원님을 친절하게 돌봐주기 바랍니다. 모두가 부처의 자식들입니다.
▶법화경의 지혜 – ‘묘장엄왕본사품’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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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저도 더욱 인간혁명에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으로읽습니다
자신으로시작해
자신으로 마무리됨을
다시한번 생명에새깁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한 체험담입니다
회원니중에 똑같은 문제로 힘들어 하는분이 계시는데 줂드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되었어요 저두아직 일가화락이 안돼었는데 저부터 인간혁명 해서 신심의 실증을 보이겠습니다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남편의 말이나행동을 선지식으로 받아들여 정말 감사의 제목을 하겠습니다 다음에 일가화락 되었습니다 하는 보고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