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 일반인보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다. 전쟁 수행 중에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여자에 눈이 멀어 아끼던 장수를 전쟁에 보내어 죽게 한 뒤 남의 아내를 취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그 아이가 죽고, 아들 압살롬마저 반란을 일으키고 죽임을 당하자 몹시 괴로워했던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숙원 사업이었던 성전 건축을 하고자 했으나 피를 많이 흘린 연고로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아들에게로 넘겨줘야 했다.
구분선 아래의 글은 다윗의 여러 범죄와 과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다윗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며, 죄를 감출 수 없으며, 다만 통회하고 자복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구원으로 인도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하시는 것은 다만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시 51:17).
다윗이 밧세바와 그의 남편 우리아에게 행한 일에 비춰 볼 때, 어떻게 다윗은 주님 앞에서 그 마음이 "완전한" 자로 여겨질 수 있었는가?(참조. 왕상 11:4; 15:3; 행 13:22) (D*)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이전에도 다윗은 몇 가지 죄와 잘못을 범해서 수치를 당했다. 그는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임으로써, 놉 땅의 거의 모든 제사장이-그들은 도망자로서의 다윗의 신분을 전혀 몰랐으면서도-사울왕의 정탐꾼에 의하여 대량 학살을 당하는 결과를 야기시켰다(삼상 21-22장). 그 후에 갓의 왕 아기스의 봉신으로 있을 때에 다윗은 자기의 전사들이 시글락에서 노략한 여러 부족들과 집단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아기스를 속였으며, 이 때에 다윗은 자기의 행동에 대한 사실이 아기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가 노략한 모든 사람을 죽여버렸던 것이다(삼상 27:8-12). 이와 같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다윗의 사건, 그리고 후에 이 일을 무마하기 위하여 랍바 암몬 성의 전투에서 우리아를 죽게 한 일은(삼하 11장), 비록 이것이 가장 잘 알려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의 이력 중에서 유일하게 수치스러운 오점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사실들을 상고해 볼 때 우리는 다윗이 그의 무죄한 생애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비록 대부분의 그의 행위는 모범적이었으며, 지도자로서의 그의 용기와 능력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가 특별히 하나님께 기쁨을 드린 것은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이 그의 하나님 야웨와 살렘(šālēm)(KJV, "완전한"; NASB, “완전히 헌신된"; NIV, "전적으로 헌신된")을 이룬 것으로 판정된(왕상 11:4, 15:3)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한 그의 큰 믿음 때문이었다. 형용사 살렘은 기본적으로 "완전한, 전체의, 건전한, 완료된"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혹은 심지어 "누구와 더불어( ̒im) 화평한"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이 단어는 "화평, 안녕”이라는 의미의 단어 살롬(šālôm)과 동족어이다.) 즉 다윗의 마음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향해 있었으며, 하나님이 바로 그의 삶의 이유였던 것이다. 그의 시편들 중의 많은 것들은 여호와에 대한 그의 깊은 애착, 하나님과의 그의 교제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에 대한 그의 완전한 신뢰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더욱이 다윗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나서 오랫동안 지낼 수 있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시편 32장은 마침내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와서 야웨의 이름으로 그의 죄악들을 비판할 때까지 (삼하 12:7-10), 그가 밧세바와의 사건 이후에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고뇌를 겪고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이 때에 보다 열등한 사람 같았으면 이 대담한 선지자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며 그를 죽음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성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재산 중의 한 가지는 비난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전적인 죄성을 시인하며 (참조 시 51:3-5), 자기를 용서하고 깨끗케 하며, 다시 한 번 거룩한 교제로 회복시켜 줄 것을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의 능력이다.
다윗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의 죄와 실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신자는 심오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며-사울이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박탈당한 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앞으로 찾아 보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인 것이다(삼상 13:14). 다윗이 바로 여호와의 그런 종류의 자식이요 종이었다. 그는 ̓ îš kil ͤ bāḇô ("그 마음에 맞는 사람”)였다. 따라서 주님을 기쁘게 하며, 그의 말씀에 복종하며, 땅 위에서 그의 왕국의 대의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그의 전적인 헌신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는 모든 신자가 따라야 할 모범이 되었다. 다윗의 중심되는 목적이 자기를 높이거나 자기를 즐겁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큰 책임을 맡기며, 전장에서의 계속적인 승리를 허락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의 이런 지배적인 특성을 상기하면서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성도들에게 다윗을 이렇게 칭찬했던 것이다. “(사울을)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가 다윗 왕에게는-비록 이런 관계들이 잠정적으로 소멸된 때가 있긴 했지만-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설사 죄와 실책에 빠진 다음이라 할지라도 다윗은, 참된 회개의 태도와 함께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버림으로써 거룩함의 대도 위에서 하나님과 다시 보조를 맞추는 상태로 돌아오기에 충분할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의지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 신자는 확실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것이다!
(D*): 빌리그래함전도협회가 발간하는 결단(Decision)이라는 잡지에 실린 아처 박사의 기존 논문에서 가져온 글.
글리슨 아처 저, 황영철 역,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말씀사, 1990), pp.270-272.
첫댓글 매우 좋은 포스팅입니다. 다윗의 회개와 의인은, 이싱칭의의 진리와 회개의 경륜을 밝히는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네, 공감합니다. 특히 시편51편을 읽으면 도움이 크게 되겠어요.
중생했지만 남아 있는 죄성, 죄에 대한 성도의 반응
거듭난 성도일지라도 죄를 짓습니다. 성도는 완벽한 의인이 아니라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려면 ‘도르트 신조 다섯째 교리(성도의 견인) 제1항 : 중생했지만 남아 있는 죄성’의 해설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남아 있는 죄에 대한 성도의 반응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고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개혁주의 성화론의 핵심인 죄 죽이기의 현실적인 모습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회개를 하고 죄와 투쟁하며 성도의 견인을 하는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YlDw/13
다윗이 중생했지만 남이있는 죄성으로 범죄했고, 이후에, 깨달아 회개하는 성도의 반응을 보인 전형적 사례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거듭난 자들도 이 세상에 있는 한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종교개혁이 바라본 성도의 신분과 현실적 상태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이것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거듭난 자들도 이 세상에 있는 한 본성의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법조문처럼 명료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일부 어리석은 위선자들은 본성 자체와 거기에서 비롯하는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어거지를 씁니다. 구원파와 율법폐기론자들이 그런 교묘한 유혹을 하지요. 성도가 원죄의 사함을 받은 이후 짓는 죄들도 죄는 죄이고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에서 “우리”는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들입니다. 성도들도 중생∙회심한 이후 잘잘한 죄들을 계속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래 로버트 쇼의 해설을 통해서 잘 이해하시고 첨부된 성경구절도 다 찾아 읽고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YcL1/45
성령 충만한 것 같은 성도도 잠시 방심하고 우쭐하면 죄를 짓습니다. 다윗의 사례를 보면 더욱 그런데요. 아처 박사의 글 중 오늘 것은 난제 해결 외에 복음의 강력한 제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않는가?
개혁주의가 파악한 성도의 정체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 아니라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신분은 의인이고 상태는 죄인입니다.
거듭난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죄와 투쟁하는 것이지요. 죄와의 투쟁과 회개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결과로서, 점진적 성화의 과정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완전성화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한번 읽어 보시죠.
https://cafe.daum.net/1107/YcL1/6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 성도의 여정에서 죄를 지었을 경우 죄에 대한 민감하고 신속한 반응은 회개이며 성령의 회복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은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주여 나를 거짓말 하는 데서부터 옮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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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 사람들을 침노한 다윗(사무엘 상 27:8-12) <--- 『매튜 헨리 주석』
여기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 있으면서 취한 행동에 관한 기록이 있다. 다윗은 몇몇 저주받은 백성들의 남은 거민들을 침노하고 이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다윗은 아기스에게는 실제와는 다르게 보고하였다.
1. 우리는 다윗이 취한 잔인한 행동에 대해서 나무랄 수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멸망받도록 정해 놓은 족속들이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자로서 그들을 처단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잘한 일이며, 그는 이 일을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드러내지 만 않으면 사울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은거하고만 있다면, 이는 그에게 합당치 않은 노릇이다.
다윗은 이들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전부터의 불만을 해소시켜 드렸으며, 동시에 그 자신과 그의 군대를 위한 식량을 마련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칼을 가지고 먹고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아말렉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아마 그술 사람이나 기르스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들의 한 지파였을 것이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의 왕을 살려 준 일이 있다(15:8, 9). 그러나 다윗은 그들 중 의 어느 한 사람도 살려 두기를 거절하였다. 다윗은 사울의 뒤를 잇기 전에 사울에게서 부족하였던 순종심을 보충하였다. 다윗은 그들을 치되, "아무도 살려두지 아니하였다" (8,9절). 수고에 따르는 댓가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전리품으로 많이 가져갈 수 있었다.
2.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원정에서 돌아와서 그 원정에 관해서 아기스에게 거짓으로 속여 말한 것은 좋게 보아 줄 수 없다.
(1) 다윗은 아기스에게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아무도 살려서 가드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11절). 그런데 이는 다윗이 자기의 한 일이 기쁜 일이기 때문에 부끄럽게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만일 블레셋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면, 자기를 그들의 땅에 숨겨 주는 것이 그들 자신들과 또 동경한 나라들에 대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그들의 땅에 숨겨 주는 것이 그들 자신들과 또 동경한 나라들에 대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그들의 땅에서 쫓아낼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열심히 그들에게 사실을 음폐하기 위해 그 사람들을 모두 살륙하였다. 그래야만 감히 그 이웃들이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또 한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알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정보는 오늘날 처럼 그렇게 빠르지가 못했다.
(2) 다윗은 애매한 대답을 가지고 아기스에게 사실을 숨겼다. 어느 방면으로 출격을 했었느냐는 아기스의 물음에 다윗은 "유다 남방" 이라고 대답했다(13절). 다윗이 유다의 남방에 있는 나라들을 침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아기스로 하여금 자기가 유다의 남쪽 지방, 예를 들면 여러 번 자기를 배반한 바가 있는 십 사람들을 침략했던 것으로 믿게끔 말하였다. 아기스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다" 고 추단하였다. 그리고 다윗이 영영 자기의 편이 되었다고 단정하였다.
다윗에 대한 아기스의 성실성, 좋은 평가, 그리고 신임 등은 그만큼 아기스를 속인 다윗의 죄를 더욱 큰 것으로 만들었다
이 때와 그리고 이와 비슷한 다른 경우를 생각하고, 다윗은 다음과 같은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으로 보인다. "주여 나를 거짓말 하는 데서부터 옮겨 주시옵소서."
@장코뱅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문제에 비해서 덜 알지만 위 사건의 죄악상과 회개의 이야기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포스팅을 읽고 아래 말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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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2:1-5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