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조건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 혹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등의 말들이 올바른 뜻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한다면서 왜 미워하고 헤어져야 하는지 그냥 말장난 정도의 유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그 내면의 역설적인 감정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인간 간의 관계는 그 정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때로는 마치 자기의 목숨이라도 줄듯이 밀착하다가도 한 순간에 배신의 언행으로 돌아선다. 이는 자기만의 아집으로 그에 따른 후유증이나 초래할 문제에 대한 숙고 없이 막연한 기대심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점이 바로 확증편향적인 집단 대립이다. 마치 원시사회의 이전투구식의 생존경쟁을 보는 듯이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본다. 그곳에는 진정한 애정이나 심지어 한 마디의 따뜻한 대화조차 없는 암흑세계이다. 더구나 이 사회의 원로라는 사람도 말과 행동이 달라 평소의 인품에 회의를 느끼게 한다.
동일한 시대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음에도 실생활에서는 전혀 상반된 언행을 한다. 대체로 비이성적인 논리가 비약하면서 일방적인 주장으로 무장하여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곳에는 이성도 자유도 상식과 합리적인 판단도 증오와 비난과 선동에 매몰된다. 경쟁하듯이 마치 열렬한 사명감에 투철한 혁명가로 돌변한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 약자를 비난하는 것은 소위 패거리 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얼마나 소극적(笑劇的)이며 비이성적인 반지성의 행태인가?
이러다보니 그들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으면 이단자로 낙인을 찍는다. 단순히 진실의 유무를 가리지 못하고 감정적인 대응만을 한다면 오히려 반목의 정도가 심화될 뿐이다. 무엇보다 반지성적인 언행은 동일한 부류끼리 호응을 할지라도 엄정한 지성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다수가 동조한다고 진리는 아니며, 소수가 주장한다고 무작정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심리적 공세일지언정 말로는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허위 주장조차 서슴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상이한 견해를 제시하면 하나같이 손가락질과 함께 격렬하게 비난을 한다. 한 마디로 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느냐고 야단이다. 이는 너무 시야가 좁은 불평불만에 불과하며, 오히려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대립하는 소수자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서로를 보완하고 위하는 길이다. 일방적으로 치우치면 오히려 발전에 해악을 끼치게 된다. 서로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방안을 찾아내야만 함께 번영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발전은커녕 퇴보의 길을 걷다가 결국 관심에서 멀어진다.
필자가 직접 가르친 많은 후배들이 있다. 기수로는 12개기에 이른다. 세 번에 걸쳐 호국간성의 요람인 화랑대에서 근무한 인연 덕이다. 모두 개별적인 친소에 관계없이 스승과 제자, 혹은 선, 후배로서의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재학 중에 ‘군인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전제아래 위국헌신(爲國獻身)과 멸사봉공(滅私奉公) 그리고 솔선수범(率先垂範)의 가치실현을 위해 목유이염(目濡耳染: 눈에 젖고 귀에 물들다)하는 수련을 하였다. 나는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별다른 잣대를 들어 따지지 않는다. 다만 한 시대를 함께했던 동료로서 신뢰한다. 그들이 어떤 언행을 하던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성원을 한다.
그 중에는 여도 있고, 야도 있으며 보수와 진보로 각각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별다른 차이를 두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성원하고 격려를 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자의 희망에 따라 원하는 장소에 나가 격려사를 하고, 필요한 사람을 소개하거나 소정의 성원을 아끼지 않는다. 모두가 출중한 능력을 갖춘 자랑스러운 제자로서 동일한 잣대로 대한다.
사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서로가 적절하게 나뉘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진실한 논리로 건전한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일방적인 힘의 쏠림은 마치 전체주의처럼 마치 근친혼과 유사한 기형아를 잉태할 수 있는 위험이 따른다. 모름지기 친소관계를 떠나 피차 인재를 아끼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배척하면 역으로 나 자신도 그런 취급을 받는다. 어느 곳에 있던지 모름지기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정직한 노력을 하는 것이 공직에 있거나 거쳐 간 사람들의 사명이다. 무조건 거두절미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는 지양해야 한다.
엊그제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후배를 격려했더니 곧 바로 감사의 인사가 왔다. 그처럼 많은 선배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일부의 선배들이 마치 집단 따돌림을 하듯이 지탄 일색이다. 이는 마치 「조일루스」가 「호메로스」를 욕하고, 「브루투스」가 「케사르」를 욕하고, 「비제」가 「몰리에르」를 욕할 때처럼 그것은 예전부터 흔히 있던 질투와 증오심에서 생기는 일 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냉철한 이성적 판단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밝고 번창하는 미래의 세대를 위해서 엄정한 ‘역사적 통찰력(Historical Insight)’을 구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분명한 오류는 비판은 하되 축하를 할 때는 통쾌하게 지엽적인 ‘애증의 조건’을 거두고 성원할 일이다. 모두에게 무의미한 대결을 접고 함께 어울려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 도래하길 바란다.
(2024.8.19.작성/2025.3.19.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