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歲暮寄人 (세모기인)
- 세모를 맞아 사람들에게
山 人 索 居 久 (산인색거구) 산 사람 쓸쓸히 산 지 오래인데
志 業 近 何 如 (지업근하여) 가슴에 품은 뜻은 요즘 어떤가
冷 眼 看 時 務 (냉안간시무) 냉철한 안목으로 세상일 살피고
虛 心 讀 古 書 (허심독고서) 마음을 비우고서 옛글을 읽는다
漁 樵 歲 月 晩 (어초세월만) 고기 잡고 나무하기 세월 더디고
著 述 經 綸 疎 (저술경륜소) 책을 저술하기에 경륜이 모자라
最 愛 寒 梅 樹 (최애한매수) 차가운 매화나무 가장 사랑함은
淸 芬 自 有 餘 (청분자유여) 맑은 향기가 스스로 넉넉함이라
(지은 이)
박규수(朴珪壽, 1807~1877), 字는 환경(瓛卿), 號는 환재(瓛齋)이며, 시호는 문익 (文翼)이고,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열하일기 (熱河日記)'로 유명한 연암(燕巖) 박지원 (朴趾源) 선생의 손주로, 184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司諫院)의 정언(正言)으로 조정에 나아갔다.
이후로,
지방직과 중앙에서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 나라 일에 헌신하였다. 두 차례를 청나라에 사신으로
내왕하면서 발전하는 서양 문물에 눈을 떴다.
1864년에 고종이 즉위하자 도승지에 발탁되어, 사헌부 대사헌, 이조참판, 한성판윤과 공조판서
등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공조판서로 재임 중에는 경복궁 중건에 제조(提調)의 중책을 맡았으며,
1866년에 평안감사로 부임하여 3년 2개월간 재임 중에는, 여러 선정을 베풀었고 특히,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온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맞아 이를 격침시켰다.
다시,
중앙으로 돌아 와, 형조판서, 대제학, 우의정을 역임하면서 격동하는 국제 정세 하에서의 나라의
안녕(安寧)을 고심하였으며, 1875년에는 판중추부사로 국정 일선에서 물러났다.
선생의 문하에서 김윤식, 박영효, 김옥균, 유길준 등의 여러 개혁의 선구자들이 배출되었다. 공은
조선 왕조 말엽에 활동하면서, 실학(實學)과 개화(開化)를 연결하는 가교 (架橋)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위의 시는 오언 율시 형식으로,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도 한 겨울의 매화
향기를 사랑하는 선비의 고아(高雅)한 풍모 (風貌)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