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CO Koninklijk Concertgebouworkest
2015년, 2004년 부터 rco 와 함께 하면서 오케스트라의 황금기를 만든 얀손스가 brso 음악감독만을 유지하는 결정에 rco를
떠난다. 이후 2016년 이태리 출신 다니엘레 가티를 수석지휘자로 임명하지만 2년만인 2018년 가티의 MeToo movement에
연루되어 퇴출시키고 악단은 위기를 맞는다. 가티가 떠난후 객원 지휘자 체제를 4년간 유지하다, 2022년 당시 26세의
핀란드 출생 지휘자 Klaus Mäkelä와 2022/23 시즌부터 10년간 장기 계약을 발표한다. 처음 5년 동안은 "예술적 파트너"라는
명칭으로 이후 5년간은 수석 지휘자로 마켈라와 계약하고 젊은 지휘자와의 새로운 여정을 기대하면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근자에 마켈라와 함께한 연주를 들어보면 마켈라의 한계가 보이면서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가 과연 28세의 청년
지휘자에게 오케스트라 성장을 맡겨도 되는가 하는 의문점이 있어 보였다. 지난해 9월 24일에 있었던 말러 교향곡 3번에서
마켈라는 1시간 40분 가량의 대장정 교향곡을 거의 무슨 말을 하는지 두서없이 마구 조각내 버렸다. 아직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그날 공연은 최악의 공연으로 필자의 생각으로 작년 오케스트라 드 파리의 빈 공연과 더불어 무척 실망스러운
공연이었다. 지휘자는 자신의 energy로 오케스트라 앙상블을 끌어내기 때문에 공연 때마다 엄청난 기를 쏟아야 한다.
세계 메이저급 오케스트라를 셋이나 맡고 또 다른 많은 객원 지휘를 통해 1년에 소화해야 하는 곡만 해도 많은 양이면서
공연 횟수 역시 거의 쉴 틈 없이 이어져 많은 곡이 오케스트라를 설득하지 못하고 공연에 임하는 모습에 우려하고 있다.
rco는 세계 음악인에게 가장 존중받는 오케스트라로 단원의 뛰어난 기량은 물론 음질, 음색, 홀을 지배하는 음량 등
오케스트라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여 오케스트라 앙상블에 최상의 조합으로 일치된 음악적 정체성을 통일하여 가장
이상적인 오케스트라 상을 이룬다. 이 오케스트라는 하이팅크가 기초하고 얀손스가 완성시킨 가장 이상적 앙상블과,
엄격한 질서의 클래식 음악 정체성을 지켜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현대적 감각으로 세계 음악인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2000년 입단한 불가리아출신 Vesko Eschkenazy와 2006년 루마니아 출신 Liviu Prunaru 두명의 악장을
비롯하여 유럽 출신 단원은 물론 한명의 한국, 팀파니 수석을 비롯한 6명의 일본인 단원의 다 국적으로 이루워졌다. 특히
목관 파트는 19명의 단원중 수석 8명은 전원이 외국인이고 오직 5명의 네덜란드 국적 자국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단원으로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위치에 있는 매우 특이한 구조로 되 있다. 이 오케스트라에서 보듯이
세계는 이제 더불어 살지 않으면 발전의 동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220만 명이 된다고 하지만 독일은 총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1.98%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고령 사회로 분류되고 있으며, 출산율도 1.5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일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8,5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이민자의 증가 때문이다. 2023년 3월, 독일 연방 통계청은 다른 나라에서
출생한 뒤 독일서 거주하고 있는 이민 1세대의 인구 비중은 17.3%이고 또 이민자의 자녀까지 합치면 그 비중은 23%까지
올라간다고 밝혔다. 2007년에 거주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8.8%를 차지하였고,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도 2005년, 기준 약
10%였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독일의 거주 외국인의 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독일의 연방 이민 및
난민 사무국(BAMF) 인구의 23%가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독일은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외국인을 받아들임으로 자국인의 저출산으로 인구감소를 이겨내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외국인 거주자가
인구의 5%가 안 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여력이 많이 있어, 출산율이 2배 이상 월등한 독일도 버티지 못하고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보고 더 많은 양질의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젊은 나이의 외국인을 받아들이면 고령사회의
우리나라에서 성장에 큰 뒷받침이 될 것이다. 유럽 아니, 전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진취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가
rco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더불어 같이 살아야만 되는 현시대에서 시스템에 의한 조직만 잘 갖추면 세계에서 가장
이상형의 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2023/24시즌 이 오케스트라의 일정을 보면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답게 다양한 지휘자와 다양한 레파투어로 서울 일본
투어를 비롯하여 유럽의 인접 국가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지휘자 정명훈과는 부르크너 심포니 7번, 3회 Concertgebouw, Amsterdam 공연을 비롯하여 독일, 이태리, 프랑스 3회 투어가, Fabio Luisi 와 5회의 일본 투어와 2회의 서울 롯데 홀에서
드볼작 교향곡 9번으로 2023년 11월 공연이 눈에 띄고, 예술적 파트너 마켈라와는 6회에 걸쳐 정기 연주회를 갖고,
Santtu-Matias Rouvali와 조성진이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2024년 1월 24, 25일 공연이 예정된다. 매 시즌 객원
지휘자로 초대받은 96세의 Herbert Blomstedt가 더 이상 초대받지 않아 건강상 이상이 있는지 염려되고, 수석 지휘자를
역임한 Riccardo Chailly 와도 정기 공연이, 지휘자 틸레만과 2024년 시즌 끝 24, 25, 26 June 2024, 10.00 Concertgebouw, Amsterdam에서 젊은 지휘자를 위한 마스터 클래스가 예정되어 있어 많은 우리나라 젊은 지휘자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21, Jänner, 2024. Noisy-le-Grand. franciscopaik.
단원 구성: 1.Vn. 2Vn. Viola. Cello. K.Bass.
RCO: 악장 2,포함 19명. 16명. 13명. 12명. 10명.
.........................................................................................................................
Fl. Ob. Cla. Bn. Hr. Tp. Tb. Tu. Tim. Pe. Hf. pi. 총인원.
5명. 5명. 5명. 4명. 7명. 5명. 5명. 1명. 1명. 3명. 2명. 1명 - 114명. (2024년 1월 현재)
Academy 2022-2023 - 11명 한국인은 2nd 바이올린 수석 이재원이 있다.
*** 직책, 출신국, 입단 시기, 약식 경력. ***
flute:
Emily Beynon - principal (영국) *1999 Alain Marion Hague and Amsterdam 교수
Kersten McCall - principal (독일) *2005 Aurèle Nicolet - third prize 2000 ARD
Julie Moulin (프랑스) *2011 Lyon Conservatoire - RCO Academy Rotterdam Conservatoire 교수
Maria Semotyuk-Schlaffke (우크라이나) *2007 Hochschule für Musik Karlsruhe
Vincent Cortvrint - Piccolo (벨기에) *1996
2024년 현재, 파트 평균 재직 기간; 20.2 년.
oboe:
Alexei Ogrintchouk - principal (러시아) *2005 CNSMP, Genève (1998) London & Royal Conservatoire Hague 교수
Ivan Podyomov - principal (러시아) *2016 ARD (2011), 2nd Concours Genève (2010) Hochschule Luzern 교수
Nicoline Alt - Oboe (네덜란드) *1998 European Union Youth Orchestra
Alexander Krimer - Oboe ( Belarus) *2020 North International Competition 2019 cnsmp
Miriam Pastor Burgos - cor anglais (스페인) *2012 principal Komische Oper (2011-2012).
파트 평균 재직 기간; 13.8년
clarinet:
Calogero Palermo - principal (이태리) *2015 Teatro dell’Opera di Roma principal
Olivier Patey - principal (프랑스) *2013 ARD - principal Rotterdam Philharmonic
Hein Wiedijk - clarinet (네덜란드) *1996 Conservatory in Amsterdam
Arno Piters - es clarinet (네덜란드) *2003 Mahler Jugendorch.
Davide Lattuada - bass clarinet (이태리) *2006 Orch. dell’Accademia di Santa Cecilia
파트 평균 재직 기간; 17.4년
bassoon:
Gustavo Núñez - principal (우루과이) *1995 Klaus Thunemann - Geneva Competition
Andrea Cellacchi - principal (이태리) *2022 Matthias Rácz Zurich University.- Muri Competition
Helma van den Brink - bassoon (네덜란드) *2005 Gustavo Núñez European Union Youth Orch.
Simon Van Holen - kontra bassoon (=) *2012 Gustavo Núñez, Gustav Mahler Jugendorch
"Jos de Lange - bassoon (네덜란드) *1982 Amsterdam Bach Soloists 2023년 은퇴 "
파트 평균 재직 기간; 20.2년
목관 파트 전체 평균 재직 기간; 17.9년
역대 Chief conductors.
Willem Kes (1888–1895)
Willem Mengelberg (1895–1945)
Eduard van Beinum (1945–1959)
Eugen Jochum (1961-1963; jointly with Bernard Haitink)
Bernard Haitink (1961–1988)
Riccardo Chailly (1988–2004)
Mariss Jansons (2004–2015)
Daniele Gatti (2016-2018)
Klaus Mäkelä (artistic partner) 2023 - 2027
왕립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Koninklijk Concertgebouworkest,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은 암스테르담에
본거지를 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이다.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는 네덜란드어로 '콘서트홀'을 뜻하며,
1988년에 네덜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로부터 왕립 칭호를 하사 받기 전까지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Concertgebouworkest Amsterdam)이라는명칭으로 불렸다.
역사
1888년 4월에 암스테르담에 연주회 전용 공연장인 콘세르트헤바우가 개관되었고, 몇 달 뒤 상주 관현악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창단되었다. 첫 연주회는 11월 3일에 빌렘 케스의 지휘로 개최되었으며, 케스는 1895년까지 상임 지휘자로
재임하면서 악단 활동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힘썼다. 동시에 연주회 예절에 익숙지 않은 청중들의 결례를 막기 위해
공연 중에 잡담이나 식음료 취식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엄격한 규정도 만들었다. 케스가 스코틀랜드 관현악단으로
옮겨간 뒤에는 빌렘 멩겔베르크가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1945년까지 약 50년 동안 재임하면서 악단의 명성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멩엘베르흐는 바흐나 헨델 등의 바로크 음악에서 자신의 스승과
친구이기도 했던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이르는 방대한 레퍼토리 영역을 개척했고, 엄격한 리허설로 악단
합주력을 최상급으로 유지시키는 한편 피에르 몽퇴나 브루노 발터 등을 객원 지휘자로 초빙해 공연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네덜란드가 나치스의 점령국이 되면서 멩엘베르흐의 활동도 친나치스 혐의를
받게 되었고, 결국 종전 후 재건된 네덜란드 법원에 의해 강제 추방 선고를 받게 되었다. 멩겔베르크는 이후 스위스로
옮겨가 은둔 생활을 하다가 타계했으며, 후임으로는 1931년부터 멩엘베르흐의 부지휘자를 맡고 있던 에두아르드 반
베이눔이 취임했다. 베이눔은 전임자와 달리 현대적이고 깔끔한 음향을 추구했으며, 브루크너와 브람스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다루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베이눔이 1959년에 리허설 중 심장 발작으로 돌연사한 뒤에는 약 2년간
상임 지휘자 공백 상태로 운영되었으며, 안탈 도라티나 조지 셀 등의 객원 지휘자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등 신진
지휘자들이 악단을 지휘했다. 하이팅크는 1961년에 상임 지휘자로 정식 취임했으며, 동시에 독일 출신 지휘자인
오이겐 요훔이 같은 직책에 임명되어 공동으로 상임 지휘를 맡았다. 요훔이 1963년에 사임한 후에는 하이팅크의 단독
상임 체제로 환원되었으며, 브루크너와 말러 등 전통적인 레퍼토리들 외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을 과감히 다루어
주목을 받았다. 1978년에는 소련에서 망명한 키릴 콘드라신을 수석 객원 지휘자로 영입했고, 니콜라우스 하논쿠어도
1975년 이래 객원 지휘자로 자주 악단을 지휘해 공연과 녹음을 진행했다. 하이팅크가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으로 이직한 뒤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샤이가 발탁되었고, 샤이는 2004년까지 재임하면서 선대
지휘자들의 레퍼토리를 계승하고 힌데미트나 바레즈, 메시앙의 관현악 작품을 레퍼토리에 추가시키는 공적을 남겼다.
샤이는 2004년에 사임한 뒤 명예 지휘자 직함을 받았고, 후임으로는 라트비아 출신인 마리스 얀손스가 임명되었다.
얀손스와 함께 악단의 앙상블이 더욱 발전한 것은 세계 최상의 연주자들로 조직된 목관 파트의 새대교체로 이미 기존의
잘 갖추어진 현악 파트와 금관 파트와 함께 가장 이상적인 교향악단의 像으로 거듭났다.
주요 활동
창단 이래 계속 콘세르트헤보를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멩엘베르흐 시대에 음향 보수 공사를 마친 뒤에는
세계적으로 음향 효과가 가장 탁월한 공연장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오페라단의 오페라
공연 때에도 간혹 반주 악단으로 참가하기도 한다. 왕립 호칭을 받기 이전에도 네덜란드의 대표적 악단으로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아왔으나, 1980년대에 악단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일부 단원들의 해고 방침이 정부에서 발표되어
일시적으로 갈등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팅크가 그 발표에 맞서 자신도 사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분쟁은 일단락되었고, 하이팅크는 이러한 공로로 1999년에 계관 지휘자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녹음은 멩엘베르흐 시대부터 상당히 많이 남겼으며, 독일 음반사였던 텔레푼켄을 중심으로 음반들이 발매되었다.
1940년대에 실황으로 녹음된 음원들도 종전 후 네덜란드에 설립된 신생 음반사인 필립스를 통해 음반화 되었으며,
악단의 왕립 승격에 발맞추어 CD 전집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특히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나 베토벤과 브람스,
프랑크, 차이콥스키, 말러의 교향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녹음들이 유명하다. 베이눔은 필립스와 계약
하고 브람스의 교향곡 전집과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을 주로 녹음했고, 하이팅크는 초기 0번을 포함시킨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과 말러 교향곡 전집을 역시 필립스에 녹음했다. 동시에 데카와도 계약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집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을 음반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샤이도 전속사인 데카에 말러 교향곡 전집과
브루크너의 교향곡들, 바레즈의 관현악 작품과 힌데미트의 '실내 음악' 전집,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앨범'을 녹음했다. 얀손스 재임 기부 터는 악단 자체 레이블인 "RCO live"를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얀손스를 중심으로 니콜라우스 하논쿠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안드리스 넬손스 등의 지휘자들과 실황
음반으로 발매하고 있다. 이외에도 하이팅크와 공동 상임을 맡았던 요훔이나 객원 지휘자로 자주 출연한 도라티와
셀, 콘드라신, 하논쿠어 등의 지휘자들도 필립스와 텔덱 등에 많은 음반들을 취입한 바 있다. 출처: 위키페디아.
이 오케스트라 이름에 있는 Concertgebouw는 1888년 4월 개관한 암스테르담 콘서트 전문 공연장의 명칭이고 상주
악단이 개관 후 창단되었고 이름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라고 명명된다. 초대 수석 지휘자로 Willem Kes가
임명되어 엄정한 리허설로 초창기 시스템을 완성시켰고 2대 지휘자로 1895년 24세의 Willem Mengelberg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해인 1945년까지 50년간 장기 집권을 한다. 그는 당대 작곡가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과 교류를 통해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알렸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 앙상블을 발전시켜 나가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적 성장을 이룬다. 그는 제2 지휘자의 직책을 만들어 다른 지휘자들의 성장을 도왔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에 협조하는 범주에서 벗어나 친나치 발언을 자주 하여 종전 후 네덜란드 법정에서 나치
부역자로 단죄되어 지휘 활동이 금지되었고 스위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영면한다. 좋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탄생하려면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지휘자로써는 함께 가능성을 찾을 자신의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이 중요한데 맹엘베르그와 이 오케스트라는 동반 성장에 필요한 모범적 관계로 최악의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훗날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입지에 기초를 다진다. 멩엘베르그 망명 후 그와 함께 제2
지휘자로 있었던 Eduard van Beinum이 3대 수석 지휘자로 지명되어 전후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잡아 오케스트라
개혁에 힘쓴다. 베이눔이 1959년 4월 리허설 도중 심장 발작으로 급서 하자 2년간 George Szell, 안탈 도라티,
Eugen Jochum 등 객원 지휘자와 하이팅크 등 신진 지휘자의 실험을 거쳐 1961년 32세의 Bernard Haitink 를
수석지휘자로 받아들인다.
하이팅그의 경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악단 운영진은 오이겐 요훔을 초빙하여 2년간 공동 수석 지휘자로 함께한다.
1963년 단독 수석 지휘자가 된 하이팅크는 말러와 부르크너 등 전통적인 레파투어들 외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과감하게 포함시켜 주목을 받는다. 1978년에는 소련에서 망명한 키릴 콘드라신을 수석 객원 지휘자로 영입했고
당대의 촉망받는 지휘자들을 객원지휘자로 자주 불러 오케스트라의 변화를 주었고 무엇보다도 각종 실내악 연주를
통해 소규모의 앙상블을 발전시킨다, 특히 목관 파트의 많은 앙상블 연주와 음반 제작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칼라를 만들어 놓는다. 그때 다양한 시대적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소화해서 만들어진 오케스트라의 목관 파트들의
칼라는 RCO만의 독특한 색채로 남아 지금까지 그 색채를 유지하고 사랑받게 된다. 그 시기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
받고 있는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 있고, 칼 뵘의 빈필이 있어 그들에게 항상 조금은 못 미치는 교향악단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근본적인 단원 자원의 질이 부족한 것을 수없는 크고 작은 앙상블 연주로
단원들을 단단한 구조로 만들어 놓아 그 과실은 다음 지휘자들이 얻고 지금에 와서는 앞선 두 교향악단을 따돌리고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오케스트라가 된다. 또한 그는 1980년대에 있었던 네덜란드 정부의 교향
악단 규모를 줄이고 23명이나 되는 단원들을 해고시키려는 계획에 맞서 자신도 사임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단원의 해고를 막았다. 그의 마지막 임기인 1988년 이 오케스트라는 정부로부터 왕립 오케스트라의
명칭을 받아 Koninklijk Concertgebouworkest라는 현재 명칭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