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태권브이 정부'가 감사원 길들이기? —시민감시구조로 바꿔야!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2026-05-29
2026년 4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뜻밖의 비유를 꺼냈다. 직업 공무원 조직을 애니메이션 로봇 '태권브이'에 빗대며 이렇게 말했다. "선출직 지휘관을 머리로 꽂으면, 지휘관이 빨간색이면 발끝까지 빨간색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970년대 한국 어린이들의 영웅이었던 태권브이는 조종사가 로봇 머리에 탑승해 몸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 대통령의 비유를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대통령은 조종사, 관료 조직은 로봇 몸통, 그리고 조종사의 색깔이 곧 국가의 색깔이 되어야 한다.'
듣기에 따라 이것은 관료주의의 저항을 뚫고 민의를 실현하겠다는 강한 의지처럼 들린다. 그러나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이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정 철학의 핵심은 '국민주권'이다. 그렇다면 태권브이의 조종사는 국민인가, 대통령인가?
구호와 현실 사이
'국민주권 정부'를 선언한 이 정부가 감사원에 가한 첫 번째 손질은 무엇이었는가. 신임 감사위원으로 대통령 배우자의 배우자실장 출신 인사를 임명했다. 동시에 "정책감사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감사 공포'를 없애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감사원의 상반기 감사 계획에는 전 정부의 정책들이 줄줄이 올라 있었다. '우리 정부 정책은 감사하지 않겠다, 전 정부 정책은 감사하겠다'는 이중 구조다. 원칙이 아니라 편의에 따른 선택적 폐지다.
그뿐이 아니다. GTX-A 삼성역 공사에서 철근 2,500여 개가 누락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시는 이를 6개월간 묵혔다. 국토부·서울시·국가철도공단은 서로 "우리 책임이 아니다"를 반복했다.
미국은 수사 중인 쿠팡 김범석 의장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핵잠수함 협의를 인질로 삼는 압박을 가했고, 한국 정부는 뚜렷한 대응을 내놓지 못했다.
사적 권력도 예외가 아니다. 나치 찬양을 방불케 하는 정용진의 탱크데이 사건에 대해 국가가 어떤 조사와 책임을 물을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공적 권력이 사적 권력마저 견제하지 못할 때, 국민주권은 완전히 공허해진다.
그보다 앞서 내란 수괴의 배우자 사건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판사가, 선고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는데도 그 이유에 대한 조사내용이 석연치 않다. 사법부의 판사는 주권자 국민이 헌법상의 권한을 위임한 존재다. 그의 죽음은 주권의 훼손이다. 왜 진실을 명백히 밝히는 일을 하지 않는가?
국민주권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권력은 책임지지 않고, 진실은 밀실에 머물고, 시민은 여전히 바깥에 서 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반복되는 패턴의 뿌리
이것은 이재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하자 감사원을 활용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정부는 그 도를 넘어 감사원을 노골적인 정치 도구로 전락시켰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구조가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97조는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으로 규정한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피감시 권력이 감시 기관의 수장을 임명하는 이 모순적 구조 안에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감사원은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밀기 어렵다. '경보기'가 꺼진 상태다.
태권브이 발언은 그 모순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조종사가 바뀌면 색깔만 바뀔 뿐, 로봇의 구조 자체는 그대로다. 국민이 조종사가 아닌 한, 이것은 국민주권이 아니라 '대통령 주권'이다.
세계는 어떻게 했는가
같은 문제를 먼저 직면한 나라들은 어떻게 풀었는가.
독일은 연방감사원(Bundesrechnungshof)을 헌법상 완전한 독립 기관으로 설계했다. 기본법 제114조 2항은 '감사원은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한다'고 명시한다. 감사원장은 연방의회와 연방참사원의 공동 선출로 임명되며, 임기 12년 단임제로 어떤 정권도 재임명 카드를 쥘 수 없다. 행정부도, 입법부도 감사원을 소유하지 못한다.
영국의 국가감사원(NAO)은 의회 소속이되, 실질적 독립성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감사 결과가 공공회계위원회(PAC)를 통해 공개 청문의 장에 올려지고, 정부는 이에 서면으로 공식 응답해야 한다. 감사가 밀실에서 끝나지 않고 '광장의 언어'로 번역되는 구조다. 나아가 NAO는 단순한 위법 여부를 넘어 '가치 대비 성과(Value for Money)' 감사를 통해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성까지 따진다.
스웨덴은 1766년부터 공문서 공개를 원칙으로 삼았다. '정보공개가 기본, 비공개는 예외이며 예외 사유를 기관이 입증해야 한다'는 이 원칙 하나가 260년간 부패를 억제하는 토대가 됐다. GTX 철근 누락처럼 6개월간 숨기는 일은 스웨덴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감시 기관이 피감시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그 결과가 시민에게 공개된다는 것이다. 감시의 힘은 실제 감사 횟수가 아니라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한국형 시민감시구조를 설계하라
한국에도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헌 없이도 당장 감사원법 개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첫째, 임명 구조를 다원화해야 한다.
헌법규정의 범위내에서,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추천한 후보를 국회 재적 3분의 2 동의로 임명하는 합의제 구조로 바꿔야 한다. 어느 한 권력도 감사원장을 독점할 수 없게 되면, 태권브이의 조종석이 비로소 비어진다.
둘째, 시민감사 청구권에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현행 법상 300명 이상의 서명으로 감사를 청구할 수 있지만, 수리 여부는 감사원의 재량이다. 일정 수 이상의 시민이 청구하면 감사원이 의무적으로 착수하고 결과를 공개해야 하는 강제 조항이 필요하다.
셋째, 감사 결과의 전면 공개를 법제화해야 한다.
현재 감사 결과는 일부만 공개되고 나머지는 해당 기관에만 통보된다. 국민 안전과 공공 재정에 관한 사항은 즉시 전면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넷째, 추첨제 시민감사위원회를 상설화해야 한다.
정치인이 추천하는 인사가 아니라, 배심원처럼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 위원들이 감사 우선순위 결정과 결과 검토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진영 논리에 오염되지 않은 시민의 눈만이 제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증명은 말이 아니라 구조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태권브이의 조종사가 5년마다 바뀐다면, 그것이 국민주권인가. 조종사가 누구든 로봇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 아닌가.
진정한 국민주권은 "국민을 위한다"는 선언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국민이 권력을 볼 수 있고, 잘못된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낼 때 비로소 증명된다. 자신에게도 불리할 수 있는 견제 장치를 기꺼이 설계하는 용기, 그것이 국민주권 정부의 진정성을 가르는 기준이다.
그래야 하루가 멀다하고 막말을 하면서 주권침해를 하는 미국을, 주권자가 직접 억제하는 구조로도 갈 수 있다.
감사원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 그것이 '태권브이 정부'의 역설을 끊어내는 첫 번째 단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