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 학파의 창시자는 에피쿠로스(Epikouros, BC 342?~BC 271)이다. 그는 제자들을 정원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이 학파를 정원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윤리학에 대한 연구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고대 원자론자들의 세계상을 보다 정교화하는 데 기여한 바가 많다. 그리고 에피쿠로스 학파의 윤리학적 견해는 그들의 원자론적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원자론은 세상 만물이 동질적인 물질적 특성만을 지닌 매우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마저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인간이 죽는다면 원자들의 구성체인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개별적인 원자들로 분해됨으로써 소멸한다. 즉 인간의 사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산 자는 살고, 죽은 자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죽은 자가 없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날 일만이 문제로 남게 된다. 따라서, 사후의 보상을 기대할 필요 없이,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한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을 얻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에피쿠로스 학파를 "술 취한 돼지들에 비유하면서 비난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기독교의 비난은 그들의 쾌락주의보다는 사후세계에 대한 부정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2. 쾌락의 역리
에피쿠로스 학파는 육체적 쾌락은 지속성이 없으며, 종국에 가서는 고통을 초래한다는 쾌락의 역리를 주장한다. 육체적 쾌락은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달성된다. 반면에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고통을 초래한다. 육체적 욕구는 무한하지만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충족되지 않은 강한 욕구는 강한 고통을 초래할 뿐이다. 즉 쾌락을 욕구의 충족으로 규정한다면, 쾌락을 추구할수록 고통을 겪에 되며, 쾌락의 강도가 클수록 고통도 커지게 된다. 이러한 쾌락의 역리에 따르면, 행복해지기 위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고통만을 얻게 된다. 그리고 쾌락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면 고통을 겪는 것은 불행이므로, 쾌락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지기만 한다. 귿르에 따르면, 육체적 쾌락이 고통으로 귀결되는 반면에 정신적인 쾌락은 고통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없을 수 있다. 이들은 고통이 따르는 육체적 쾌락 대신에 정신적 쾌락을 추구한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에피쿠로스 학파가 추구한 정신적 쾌락이 지적 욕구의 충족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에 따르면 고통은 충족되지 않은 욕구이다. 지적 욕구도 욕구인 한 고통을 유발하게 된다.
3. 고통의 부재로서의 쾌락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정의함에 있어서 긍정적 방법이 아닌 부정적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에 따르면, 쾌락은 고통의 부재이다. 인간은 고통스러울 때 불행해진다. 불행하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지 않은 것은 결국 행복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통이 없다면 불행하지 않다. 따라서 고통스럽지 않으면 불행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특별히 즐겁지는 않더라도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것이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고통은 욕망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욕망이 충족된다면 쾌락을 얻지만, 욕망이 충족되 않으면 고퉁스러워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욕망만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무한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마치 불교에서 주장하듯이, 욕망을 버리면 된다. 그렇다면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란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통이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라면,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없다면 고통도 발생할 수 없을 것이다. 쾌락이 고통의 부재라면, 고통이 없는 상태, 즉 어떠한 욕망도 없는 상태가 최상의 쾌락일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에피쿠로스 학파는 '번뇌없는 평정(ataraxia)'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은 생존을 위해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떠한 욕망도 없는 상태가 아닌 최소한의 욕망만을 가진 상태만이 인간에게 가능하고, 최상의 쾌락이 아닌 최대한의 쾌락이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일 것이다. 쾌락의 최대화는 고통의 최소화에 의해 가능하면, 고통의 최소화는 욕망의 최소화에 의해 달성된다. 즉 욕망을 줄일수록 인간은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를 표방했다는 이유로 '술 취한 돼지'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향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생활 자체는 매우 검소하였으며,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빵과 물과 야채 등만을 먹었다. 그리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지혜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다.